순례자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작가의 열두 빛깔 소설들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가 쓴 첫 단편소설집이다. 최근에 한국 단편소설도 잘 읽지 않는 내가 이 단편집을 선택한 것은 바로 그녀의 유명한 베스트셀러 에세이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유명하고 호평이 이어졌다. 이런 간단한 정보만 가지고 읽은 이 단편집은 역시 단숨에 읽히지 않았다. 낯선 문화와 간단한 에피소드들이 긴 호흡에 익숙해진 나에게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짧은 순간의 재미에 빠져 감탄한 작품도 있다. 어쩌면 한 편을 읽은 후 잠시 그 단편을 돌아봐야 했는지 모른다. 좀더 꼼꼼하게 읽어야 했던 작품도 있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단숨에 단편을 모두 읽은 다음이면 늘 생긴다.

 

열두 편이다. 표제작인 <순례자들>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들의 농담과 질주가 그 어떤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크의 말> 또한 서로 다른 감정과 생활 습관이 충돌하는 부분에서 나만의 지점을 찾지 못했다. 그 감정의 고저가 만들어내는 심리 묘사가 눈에 들어올 뿐이다. <동쪽으로 가는 엘리스>는 두 남매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남자 형제들이 살아온 삶을 보면서 황당한 느낌이 들면서 그녀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그녀 앞에 펼쳐질 미래가 어떨지 상상하게 된다. <새 사격>은 허세 가득한 한 남자의 행동으로 가득하다. 그 허세가 읽는 내내 불편했다.

 

<톨 폭스>는 길을 마주한 두 술집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부부가 따로 운영하던 술집 중 남편 것이 문을 닫는다. 그 집을 다른 사람이 인수했는데 그곳을 방문한 아내가 그곳에서 본 것을 기억과 연결해서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착륙>은 새로운 삶을 꿈꾼 한 여자의 행동이 제목과 겹쳐진다. 과거와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지막 문장은 그들의 미래를 암시한다. <와서 이 멍청한 녀석들 좀 데려가게>는 부자 친구에 기생해 살고 있던 남녀들의 위험한 파국을 보여준다. 위험한 상황을 만든 것을 증오하는 감정의 증폭은 인간의 심리 중 가장 즉흥적이면서 사실적이다. <데니 브라운이 몰랐던 많은 것들(15세)>은 순수함과 사랑이 느껴진다. 이야기 면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 중 한 편이다.

 

<꽃과 여자의 이름>은 개인적으로 가장 몰입도가 좋았다. 한 노화가의 과거 추억을 풀어내는데 그 순진함과 패티쉬적인 상황이 과연 어느 방향으로 튈지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란 단어가 뒤섞이면서 만들어낸 현재와 과거도 의도적인 설정으로 재미있었다. <브롱크스 터미널 청과물 시장에서>가 더 관심을 끈 것은 한국인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허리 다친 지미의 노조 위원장 도전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하다. <‘명성 자자한 자르고 붙여 불붙이기’ 담배 마술>은 가장 재미난 단편 중 한 편이다. 광기와 마술이 뒤섞이고, 재능이 꽃피우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더 없이 참한 아내>는 역설적이다. 수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했지만 그 어떤 감정의 질척임이 없다. 환상으로 펼쳐지는 그녀의 마지막 운행은 어떻게 보면 황당할 수 있지만 아주 기쁨으로 가득하다. 실제 현실에서 이 상황이 펼쳐지면 온갖 사건, 사고가 다 벌어지겠지만.

 

지나간 시간을 간결하게 줄이고 하루나 그 순간을 포착해 풀어낸 단편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삶이나 행동이나 심리가 나에게 모두 공감을 불러온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상상하는 즐거움은 상당하다. 하루키가 단편을 장편으로 발전시킨 것처럼 작가도 이 단편 한두 편 정도는 단편으로 더 이야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 결과라도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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