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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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 레베카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외면 받을 정도로 못생겼다. 그래도 자기 자식인데 이렇게까지 반응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레베카는 다른 사람들이 혐오를 느낄 정도로 못생겼다. 이렇게 못생겼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나의 상상력의 한계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한 에피소드는 그녀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친구가 있다. 수다쟁이 루칠라다. 물론 그녀가 살아남게 된 데는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고모였다. 엄마는 그녀에게 그 어떤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가장 큰 도움이 된 마달레나가 있다.

 

마달레나가 그녀의 집으로 온 것은 레베카의 아버지가 받은 쌍둥이가 남편과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볼에서는 항상 눈물이 흐른다.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다 보니 고모가 집을 들락거리면서 가정부에 대한 면접을 본다. 깐깐하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하지만 마달레나는 다르다. 마달레나는 레베카의 행동이나 동작만 보고 감정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모두가 레베카를 배척하는 집에서 어쩌면 유일한 지원군인지 모른다. 그녀의 혐오를 주는 외모에 관계없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그녀의 고모가 한 번 정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고 하다 엄마의 반대로 무산된 적은 있다.

 

레베카의 부모님은 둘 다 미남 미녀다. 이런 부부에게서 어떻게 이런 흉측한 아이가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가장 먼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계 쪽의 문제다. 이 문제가 엄마를 급속하게 늙고 집안에 틀어박히게 만들었다. 한 아이의 미래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서. 물론 여기에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아이보다 자기들 우선이다. 이런 그녀에게 변화가 오는 것은 역시 피아니스트인 에르미니아 고모다. 그녀는 세상과 떨어진 아이에게 세상의 한 면을 보게 만들었고, 그녀의 손가락을 보고 피아니스트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조그만 발견이 그녀가 세상으로 나가게 만드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루칠라. 유일한 친구. 그녀를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 유일한 또래. 그녀에 비해 훨씬 작은 집에 살고,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뚱뚱하지만 멋진 소녀다. 루칠라의 가정도 평탄하지 않다. 그녀의 아버지가 제자와 함께 도망친 것이다. 집에 있는 모든 재산을 들고. 그렇지만 그녀와 엄마는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아이의 못생긴 외모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괴한 레베카의 엄마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 둘이 함께 있는 순간들은 읽는 내내 훈훈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장에 와서 나에게 강하고 진한 울림을 준 것도 루칠라와의 에피소드다. 그 향수의 냄새가 나쁜 기억을 모두 날려버린다.

 

못생긴 여자의 엄청난 반전이 펼쳐지거나 자기비하의 극단으로 치닫는 소설이 아니다. 자신이 못생긴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룬 것도 아니다. 그냥 그녀의 삶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묘사보다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하지만 이 담담한 이야기가 몇 개의 비밀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렇다고 장르소설처럼 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레베카의 출생을 둘러싼 진실은 아들의 출생 비밀을 숨긴 데 렐리스 할머니의 사연과 연결된다. 엄마가 남긴 일기는 그녀에게 다른 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멋진 순간은 역시 레베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다. 지금 머릿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회오리친다. 그렇게 두툼한 책은 아니지만 많은 이야기 거리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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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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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았을 때 두 가지 느낌이 먼저 들었다. 하나는 표지가 폭신폭신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키가 동화책을 썼구나 하는 것이다. 촉감은 맞지만 시각적으로 느낀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읽으면서 동화책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장르를 나중에 검색하니 에세이다. 그것도 그림 에세이. 다 읽은 후 분량이 너무 적어 그 감상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며칠을 묵혀둔 채로 있다가 다시 시간을 내어 한 번 더 읽었다. 그때 무심코 지나간 문장들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었다. 솔직히 말해 그림체는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자꾸 보니 괜히 정감이 생긴다. 특징을 잘 표현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꼬마 하루키와 늙고 커다란 암코양이가 함께 있는 그림이 없다는 것이다. 혹시 있는지 다시 찾아보지만 없다. 고양이 전체를 그린 그림이 없어 여기저기 뒤적였는데 앞모습은 제일 앞장에, 뒷모습은 마지막 장에 그려져 있다. 그림보다 글에 먼저 눈이 가면서 많은 것을 놓친 모양이다. 다음에 또 한 번 읽게 되면 또 뭔가를 발견하지 않을까?

 

후와후와란 단어에 대한 설명은 앞에 나온다. ‘구름이 가볍게 둥실 떠 있는 모습이라든지, 소파가 폭신하게 부풀어 있는 모습이라든지, 커튼이 살랑이는 모습이라든지, 고양이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설명을 보면서 대부분이 모습을 표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촉감과 관련된 느낌은 고양이털을 제외하면 없다. 너무 오래전에 고양이를 만져보았기에 지금은 이 느낌을 잘 모르겠다. 언제 들고양이라도 만나면 이 감촉을 한 번 느껴봐야겠다.

 

늙고 커다란 암코양이 단쓰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짧은 에세이다. 여기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 곁들여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에세이만 놓고 보면 아이들이 보기에 쉽지 않지만 그림만 놓고 보면 아이들에게 재밌는 그림책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적고 보니 어른과 아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책처럼 보인다. 이 부분은 내가 당장 확인할 수 없으니 생략. 길지 않은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 최근에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여직원들이 떠올랐고, 한때 집에서 키웠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물론 그때는 집안에서 고양이를 키우던 시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죽었던 나쁜 기억이 났다. 아마도 그 이후 고양이는 항상 이 죽음의 트라우마를 나에게 지웠다. 가끔, 불연 듯이 이 기억이 난다. 많이 희석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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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캐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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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받았을 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예전에 읽었던 <미국의 비극>을 잘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낡았을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다. 이런 선입견은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을 읽을 때 늘 생긴다. 그러다 이 선입견이 깨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때는 그 몰입감이나 재미가 더 뛰어나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것은 바로 이 소설이 그런 작품이기 때문이다. 처음 캐리가 시카고에 오면서 바람둥이 드루에를 만나고, 언니네 집에 머물고 힘겨운 노동자로 살면서 화려함에 유혹당할 때만 해도 진부한 소설이라는 선입견이 들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욕망이 하나씩 드러날 때 강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시대 삶의 단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도입부만 보면 시골 소년 캐리가 드루에를 만나 몸을 망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갈 것처럼 보였다. 화려한 시카고에 비해 그녀의 언니 부부가 사는 모습은 힘겨움 그 자체고, 순박한 소녀는 그 화려함에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그녀의 등장이 언니 부부에게는 부담인 동시에 생활비의 보탬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보탬은 그녀가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낼 때 가능하다. 힘겹게 구한 열악한 일은 감기 때문에 날아가고, 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태로 전락한다. 이때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남자가 등장한다. 드루에다. 그의 유혹은 가난한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과 맞아 떨어진다. 언니 몰래 나와 드루에와 살게 된다. 이때까지도 처음 생각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청교도적 도덕주의가 있던 그 시절 그녀가 바란 것은 드루에와의 결혼이다. 하지만 드루에는 이것을 자꾸 뒤로 미룬다. 이때 새롭게 등장하는 남자가 있다. 술집 지배인 허스트우드다. 좋은 매너와 통찰력과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춘 그는 캐리가 이전에 만나보지 못한 남자다. 매혹된다. 드루에가 이 만남을 주선할 때만 해도 그냥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뒤로 미룬 결혼과 자신의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낀 허스트우드의 감정이 결합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드루에가 자주 떠난 출장도 한몫한다. 이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캐리가 바라는 것은 허스트우드와의 결혼이다. 유부남인 그가 이혼을 하지 않은 이상 이것은 불가능하다. 욕망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일을 벌인다.

 

예쁘지만 어떻게 보면 수많은 미인 중 한 명일 뿐인 캐리다. 하지만 그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 무대는 아마추어 연극이다. 이 빛은 환하게 빛난다. 두 남자가 더욱 매혹당한다. 드루에보다 허스트우드가 더 심하다. 캐리와의 연애 동안 그는 집안일을 등한시 했고, 그 댓가를 치른다. 아내의 명의로 된 그의 재산과 이혼 소송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다 우연히 열린 금고를 본다.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가며 갈등한다. 불안한 심리와 캐리에 대한 열망이 결합하여 실수를 한다. 이 실수는 하나의 핑계가 된다. 돈을 훔치고, 캐리에게 드루에가 다쳤다는 거짓말을 하며 함께 캐나다로 달아나려고 한다. 멋진 성공이 펼쳐질 것 같지만 그를 뒤쫓는 탐정이 있다. 우발적인 행동과 치밀하지 못한 계획은 금방 산산조각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캐리가 바라는 것은 한 남자의 아내다. 그가 도망친 것도 몰랐고, 그의 아내가 된 것을 기뻐할 뿐이다. 쫓기듯 뉴욕에 온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안정된 생활이 아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 기반이었던 술집이 문을 닫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에 자본금이 부족한 상태에 이러자 조금 모아놓았던 돈을 까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허스트우드가 한 단계씩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과도한 소비로 인한 것도 아니다. 집세가 더 싼 곳으로 갔다고 해도 이 과정이 조금 더 길어졌을 뿐이다. 캐리를 매혹시켰던 빛이 하나씩 꺼지고 실업자가 된 그가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주변의 수많은 정리해고자들이 겹쳐보였다.

 

반면에 생계를 위해 일을 찾아나선 캐리는 점점 더 성공한다. 이 성공의 달콤한 열매를 허스트우드와 함께 하기에는 그 단계들이 많고 돈도 부족하다. 빛을 잃은 허스트우드를 돌봐주는 것보다 자신의 치장이 더 우선이다. 그를 떠난 그녀에게 행운도 생긴다. 우연은 그녀 속에 있던 빛을 발견하고 더욱 빛나게 한다. 성공은 점점 더 자란다. 그녀가 처음 시카고에 왔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주급을 받는다.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살 정도로 돈이 생기고, 여유 돈은 저축한다. 책을 읽는 내내 왜 허스트우드는 은행에 저축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 남자의 몰락과 한 여자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기만 했다면 고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 시대의 부조리한 단면과 인간의 욕망을 잘 엮어 지금도 충분히 공감하게 만들었다. 이 시대의 열악한 공장 환경을 보면서 후진국의 노동자들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보였다. 멋진 작품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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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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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직접 단편을 선택한 단편집이다.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편집했다. 이 중에서 중기 단편들은 연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있는 편집이다. 그리고 초기 작품은 중기 이후 작품들과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해설을 보면 큰아이의 머리 이상이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또 하나 놀라운 이야기가 옮긴이의 말에 나온다. 그것은 한 작가에 대한 깊은 독서가 그의 글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기 단편들을 읽다 보면 이것을 아주 잘 느낄 수 있다.

 

오래전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그의 소설을 사 읽었다. 솔직히 말해 그 당시 정말 재미없었다. 하지만 상에 대한 허세가 지금보다 더 강했던 그때는 고려원에서 나온 전집의 몇 권을 살 정도의 오기도 있었다. 아마 고려원 부도로 인해 할인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SF라는 말에 혹해 산 책을 아주 힘겹게 읽고 바로 다른 책들은 포기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체인지 링>에서 시작하는 삼부작 중 두 권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 <체인지 링>은 아주 힘겹게 읽었다. 그런데 다음 작품인 <우울한 얼굴의 아이>는 전편보다 더 쉬웠고 재미있었다. 아마 이때부터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 나에게 조금씩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기 작품들은 지금 그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처녀작인 <기묘한 아르바이트>와 <사자의 잘난 척>은 어떻게 보면 연작의 분위기가 풍긴다. 화자는 대학을 배경으로 아주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폐기처분해야 하는 개들 이야기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 등이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살짝 엮어 풀어내는데 조금은 끔찍하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남의 다리>는 어떻게 보면 외설적이다. <사육>은 추락한 비행기 흑인이 산속 마을 사람들에게 잡힌 후 그를 둘러싼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대응과 반응을 다룬다. 흑인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의 반응과 대화가 통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간적 교감이 좋게 느껴지다 반전이 펼쳐진다.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인간 양>은 읽으면서 이청준의 단편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물론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나지만. 미군과 굴욕적인 사건을 다루는데 이 사건보다 놀라운 것은 이후 한 사람이 보여주는 반응과 집착이다. 굴욕의 대상이었던 학생보다 선생이 자신의 입장을 내세워 사건을 키우려고 희생양을 요구할 때 사회의 한 단면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았다. <돌연한 벙어리>는 미군 통역사가 보여준 호가호위를 둘러싼 이야기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반전이다. <세븐틴>을 읽으면서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 소년이 우익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빠르게 다루는데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할 소설이다. <공중 괴물 아구이>는 역자의 말에 따르면 <개인적 체험>과 짝을 이룰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아들에 대한 선택을 다르게 해서 풀어내었는데 그 감정이 강하게 다가온다.

 

중기로 넘어가면 연작 소설이 네 개 나온다.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과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와 <조용한 생활>과 <하마에게 물리다> 등이다. 이 작품들부터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하나의 소재로 이용되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과 조화를 이룬다. 어떻게 보면 전혀 관계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가족들, 특히 큰아들이 중심을 잡아준다. 그리고 반핵과 반전. 이 작품들에서는 그가 집중적으로 읽는 작가에 대한 글들이 단편 속에서 계속 나온다. 맬컴 라우리. 윌리엄 블레이크, 단테 등이 대표적이다. 맬컴 라우리는 생소해서 검색한 후 알게 된 인물이고, 다른 시인들은 한 번씩 가볍게 휙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얇은 지식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겉만 살짝 핥고 지나간다. 이 중에서 <조용한 생활>은 집에 고려원 판이 있어 첫 문장을 비교해봤는데 상당히 달랐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손보면서 바뀐 것인지, 아니면 같은 문장을 다르게 번역한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후자라면 어느 쪽이 제대로 된 번역인지 원문과 비교해보고 싶다.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역시 후기 단편으로 오면 좀 더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가족과 주제가 뒤섞이면 풀어내는 이야기가 세밀하고 집중적인 독서 없이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울보’ 느릅나무>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벨락콰의 10년>은 단테의 한 인물을 자신과 비교해서 풀어내는데 마지막 문장은 웃게 만든다. <마고 왕비의 비밀 주머니가 달린 치마>는 한 필리핀 여성을 두고 마고 여왕 이야기를 엮어 풀어내었는데 재미도 있고 작가의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불을 두른 새>는 젊은 시절 오독이 새로운 해석을 만난 후 완전히 굴복한 것을 자신의 경험과 엮었는데 역시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 작가의 이 경험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는데 왜 그가 세계적인 대문호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모든 단편들을 읽고 난 후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일단 집에 꽂혀 있는 작품들에 한 번 더 시선을 줘야겠다. 늘 그렇듯이 언제 읽을지 알 수는 없지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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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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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기시 유스케의 소설이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에 <검은 집>을 읽었지만 솔직히 나에게 강한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 당시 더 자극적인 소설을 읽었던 탓도 있고, 이런 종류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읽은 <푸른 불꽃>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기시 유스케의 소설을 한 권씩 사는 것이다. 그리고 책장에 고이 잠들어 있다. 이 책도 분량이 좀더 많았고, 선물이 아니었다면 그런 책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을지 모른다. 책 욕심이 독서 속도를 이미 추월한지 오래다.

 

1인칭 소설이다. 화자는 작가인 안자이 도모야다. 그는 나름 성공한 작가다. 꿈으로 문을 열고, 잠에서 깨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날 밤 아내 유메코와 신작 <어둠의 여인> 성공을 축하하는 술 한 잔 하고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내는 곁에 없고, 신발과 옷이 사라졌다. 밖으로 연결 가능한 통신 수단은 모두 불통이다. 이때 그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린다. 벌의 날개 소리다. 한 겨울인데 벌이라니 이상하다. 그런데 이 벌이 보통 벌이 아니다. 말벌이다. 그는 말벌에게 쏘이면 그 쇼크로 죽을 수 있다. 공포에 사로잡힌다. 창에 있던 한 마리를 죽인다. 안심한다. 이 안심은 다른 말벌의 출현으로 사라진다.

 

다른 방으로 도망간다. 기억을 더듬어 말벌을 피하려고 한다. 모든 도구를 이용해 말벌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도는 금방 무력화된다. 따뜻한 집안은 말벌이 서식하기 좋은 온도다. 밖으로 달아나면 간단하지만 옷도 신발도 없는 상태에서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것은 무리다. 살기 위해 말벌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되살린다. 밀폐된 공간에서 말벌과의 싸움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긴장감 사이사이에 과거의 기억과 그가 쓴 글들이 삽입된다. 여기에 단서가 숨어 있다. 반전도 있다. 그리고 사라진 아내와 그녀의 친구였던 곤충 전문가 미사와가 떠오른다. 이 두 사람이 그를 죽이려고 이런 장치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유는 보험금이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 추위와 말벌의 공격으로부터 어떻게든 말이다.

 

작가는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아주 긴장감 있게 잘 다루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넘어가면서 앞에 깔아둔 설정을 반전으로 이용하면서 그 힘을 잃어버린다. 단순히 반전만 놓고 보면 서술트릭의 멋진 승리일 수 있지만 전체 구성을 놓고 보면 이 반전이 오히려 산만하게 다가온다.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내 개인의 취향에 비추어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읽으면서 어색하고 뭔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것을 마지막 순간에 다 풀어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증인들까지 동반한 채로. 솔직히 말해 다른 작품들처럼 계속 1인칭으로 풀어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더 많은 여운을 남기면서 독자가 상상할 공간을 남긴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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