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강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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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퓰리처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이력이 있다. 대단하다.

현재 ‘Visual History of Korea’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둘째는 한국의 찬란한 역사를 품은 유산, 마지막으로 한국의 고유함을 오롯이 새긴 유산 들이다.

모두 스물다섯 개의 유산인데 개인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알고 있던 것들도 많지만 새롭게 알게 되고,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각 장마다 영어로 그 유산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글이 나오는데 영어 울렁증 때문에 대충 읽거나 그냥 넘어갔다. 읽으면서 번역이 같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고인돌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한국에 있다.

이 ‘고인돌’의 사진 중 일부는 낯설다. 내가 생각한 모양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백제 금동 대향로’나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을 이렇게 큰 사진으로 본 적이 없다.

세밀하고 자주 보지 못한 각도의 모양은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은 그 유려함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신라의 유리그릇을 보고 나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았다. 그 시절에도 이런 멋진 유리 제품이 있었다고.

‘팔만대장경판’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항상 조정래의 소설이 떠오른다. 장경판전에 대한 몇 가지 소문도.


종묘 제례와 한국의 서원으로 넘어오면 문화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그 단절을 걱정한다.

아주 오래 전 안동의 서원 한 곳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지금 가면 그 느낌이 아닐 것 같다.

최근 매년 가는 제주도에서 동굴은 가본 적이 없다. 대학 때 가본 것 같아 그냥 넘어간다.

예전 느낌을 기대하고 올라간 성산 일출봉에서 그 감동이 사라진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연천 전곡리 주먹 도끼의 의미를 이번에 새롭게 새겼다. 잊고 있던 것인지, 배우지 않았던 것인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주변에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선대 유산들이 떠오른다.

개발과 산업회의 욕망 속에 얼마나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사자렸던가!

‘정문경’ 뒤에 새겨진 무늬를 보면서 그 정성과 노력에, 그 기술에 감탄한다.

‘성덕 대왕 신종’ 보다는 에밀레 종이 더 익숙한 이름이다. 지금도 타종하는지 궁금하다.


가야를 역사 시간에 배웠지만 한 번도 이 지역을 가야라고 생각하고 돌아본 적이 없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민간 인쇄 조보는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은데 우리의 인쇄기술과 그 시대를 살짝 엿본다.

독도하면 노래가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이번에 1948년에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국의 폭격 연습으로 그곳에서 미역을 채취하고 고기잡이를 하던 어민들이 150~200명 정도 죽었다.

이순신. 그 이름만으로 국뽕 가득하게 만든다. 그의 이름이 군사 정권의 목적에 의해 더 알려줬다고 해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지만 늘 새롭게 나온다.

우리의 글, 한글, 광화문 세종로에 선 이순신 장군상과 앉아 있는 세종대상 동상을 보면 늘 고마움을 느낀다.


한국 토종개는 사실 눈으로 보고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삽살개 정도나 겨우 알까?

‘하회 별신굿 탈놀이’이 보다 만화나 드라마로 각시탈이 더 유명하다.

탈들에 입이 움직이느냐를 두고 신분을 구분한 부분은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한국 사람 중 따뜻한 온돌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더워 싫다고 할지 모르지만 한번 그 따스함을 맛들이면 평생 잊지 못한다.

직장 선배가 해외 호텔 화장실에 깔린 보일러에서 잠을 잤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한지를 볼 때면 조선 시대 문서고가 생각난다. 종이가 귀해 옛 책을 씻어 재활용했다는 것도.

김치. 채소 절임으로 생각하면 전 세계에 퍼져 있지만 우리의 김치는 그 중에서도 특이하다. 국뽕인가?

제주마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섬이란 특이 지형과 관련 있다. 제주도에선 내가 탄 말은 조랑말이 아니었다.

증도가자 금속 활자는 금속 활자에 대한 기록을 갱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불확실하다.

학창 시절 열심히 외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전문가가 한국의 유산들을 자세하게 쓴 글이 아니다.

사진작가가 아주 멋지게 찍고 그 유산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들려주는 책이다.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니라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도 좋다.

화려한 사진은 보는 재미를 주고, 기존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많은 글과 설명도 중요하지만 그 유산을 이렇게 멋진 사진으로 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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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아일랜드 -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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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존 그리샴의 소설을 읽었다. 한때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초기작들을 좋아한다. 법정 스릴러를 그보다 더 잘 쓰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정신없이 빠져든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번역작들은 예전처럼 출간되지 않고 있다.

한국 출간도 5년만이다. 이번에 나온 책도 2017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한때 그의 소설 판권을 둘러싸고 거액이 오고 간 것을 기억하는 나에게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위대한 개츠비>의 자필 원고를 둘러싼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아직 <위대한 개츠비>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호밀 밭의 파수꾼>도 마찬가지다.

자필 원고와 초판본에 대한 수집가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다른 책에서 봤다.

여전히 나에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저자 사인본은 한 권씩 모아 보려고 하지만.

소설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자필 원고를 훔치기 위한 도둑들의 철저한 계획과 노력으로 시작한다.

프린스턴 대학 파이어스톤 도서관의 철통 같은 보안을 뚫고 그 원고를 도둑들이 훔친다.

도둑들 중 한 명이 작은 실수를 하고, 이 실수가 단서가 된다.

하지만 도둑들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다른 사람이 잡히면 다른 사람이 알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도둑들과 자필 원고는 사라진다.


브루스 케이블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유산을 많이 받지 못한 그다.

여자 친구와 여행을 하다 카미노 아일랜드에서 독립 서점을 인수한다. 그냥 덜컥 산 것은 아니다.

사양 산업 중 하나인 서점을 인수하기 전 여러 곳을 돌면서 서점 운영에 대한 것들을 보고 배운다.

서점을 인수해 일부 고치고, 초판본과 희귀본을 거래하고, 책방 운영에 큰 수완을 보여준다.

출판 행사에 온 여성 작가들과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잘 살고 있다.

그러다 프랑스 고가구에 재능이 있는 여성 작가 노엘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5년 전 첫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머서는 학자금 대출금 상환부터 새로운 신작 등으로 골치가 아프다.

이런 그녀에게 한 보험회사 직원이 다가와 브루스 케이블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요구한다.

학자금 대출 상환과 좋은 금액을 제시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카미노 아일랜드에 있는 할머니의 주택이다.

머서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이곳에 와서 머문 적이 있다. 좋은 추억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곳은 작가들이 상당히 많이 살고, 이 작가들이 브루스 케이블과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그녀를 이 섬에 오게 한다.

머서는 이 섬에 머물면서 새로운 소설도 쓰고, 보험회사의 요구 사항도 들어주려고 한다.


희귀 원고를 둘러싼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이 원고를 두고 벌어지는 추적을 중심에 놓지 않는다.

머서를 낯선 작가들의 세계로 데리고 와 출판계의 풍경을 보여준다.

브루스의 서점이 어떤 식으로 책을 팔고, 성공한 서점으로 남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머서도 한때 북투어 장소로 이곳을 넣은 적이 있지만 너무 적은 수가 모여 취소한 이력이 있다.

매년 수많은 작가들이 이곳에 와서 북투어를 한다. 당연히 많은 사인본들이 생긴다.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머서는 조금씩 브루스에게 다가간다.

아니 처음에는 브루스가 그녀를 끌어당겼다고 해야 한다.  잦은 모임과 유혹도 같이.


처음 이 원고를 훔친 도적들이 잠시 중간에 나오지만 그들의 활약은 앞부분에서 거의 끝났다.

머서가 브루스에게 한발씩 다가가면서 그의 사업 실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잘 관리된 초판본 한 권의 가격이 얼마인지 나올 때 놀란다. 그것이 1980년대였기 때문이다.

집에 손떼 묻은 책들을 한 번 뒤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뭐가 돈이 되는 책인 줄 알아야 팔 것 아닌가? 예전 옥션에서 본 LP판처럼.

이런 이야기와 함께 사라진 희귀 원고를 둘러싼 이야기는 조금씩 나아간다.

과연 브루스가 이 원고를 가지고 있을까? 가지고 있다면 이 원고를 어떻게 처분하려고 할까?

이전 같은 화려한 반전이나 강렬한 법정 장면은 없지만 아주 뛰어난 필력과 꼼꼼한 전개로 나를 매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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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유리 - 그래픽노블로 만나는 AI와 미래 탐 그래픽노블 3
피브르티그르.아르놀드 제피르 지음, 엘로이즈 소슈아 그림, 김희진 옮김, 이정원 감수 / 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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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기초 지식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그래픽노블이다.

현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인공지능이 학습을 하는 방법,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인공지능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 그리고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실제 인공지능 유리의 개발자가 말한다.

수학과 코딩에 대한 지식이 약해 많은 부분을 놓쳤지만 과도하게 포장된 부분을 일부 지울 수 있었다.

만화로 보여주어서 비교적 가독성이 좋지만 전문분야로 넘어가면 역시 쉽지 않다.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방송 무대에 유리가 데뷔한다. 처음엔 단순히 실루엣 정도만 보여준다.

심사위원들이 유리의 랩을 듣고, 합격 판정을 내린다. 그런데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놀란다.

이 책에 나오는 유리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컴퓨터에 스피커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아이폰의 쉬리의 데스크탑 버전처럼 보인다. 물론 성능은 월등하게 좋다.

이 놀라운 등장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유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재밌는 부분은 유리의 기초 데이터를 저작권이 사라진 문학 등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젠더 감수성이 옛날식이다.

현대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지적 능력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가면 바뀔 부분이다.


학습은 입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처럼 학습하지 않고 수학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복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단순히 데이터만 넣는다고 인공지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제작자가 프로그램을 정밀하게 작업해야 한다.

순서는 텍스트 연구, 그 텍스트 바탕으로 다른 텍스트 생성, 자신이 만들어낸 텍스트의 일관성을 원본과 비교, 스스로 점수를 매기고, 최고의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하면서 이것을 반복한다.

이 과정이 엄청나게 빠르게 많이 일어난다. 쉬지도 않는다. 하지만 단순한 논리의 반복이다.


우리는 요즘 TV 광고로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장면을 본다.

대화 상대로.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을 시키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

이 책 속에서는 트위터 챗봇이 먼저 되고, 사람들이 인격을 느끼고, 위로를 바란다.

우리의 TV 광고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현실적이다, 여기서 저자들은 한 발 더 나간다.

아들을 잃은 엄마가 아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와서 아들의 인공지능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만약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아들을 만들어낸다면 과연 그 인공지능은 그 엄마의 아들일까?

윤리적인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해결할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런 시장을 노리고 진입하려는 업체들도 생길 것이다.


인공지능의 장점과 허점을 저자들은 그대로 보여준다. 현실적 한계다.

테러리스트가 동선 등을 보고 그 인물을 예측하지만 완전히 맞지는 않다.

확률의 문제는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100% 완전한 방법도 나오지만 전혀 현실성 없다.

이 인공지능이 현장에 투입되면 일자리를 잃게 될 사람들의 모습도 나온다.

실제 현실에서 이미 많은 부분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지난 세기 산업 로봇이 단순 노동을 대체한 것처럼, 이제 지적 노동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거대하다. 미래의 우리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투려움이나 환상을 자제하고, 현실 기반으로 직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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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 소녀 안전가옥 쇼-트 14
박에스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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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14권이다. 대충 세어 보니 이 책까지 7권 읽었다. 생각보다 적다.

시간 나면 중간에 놓친 소설들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시간 내서 읽어야 하는데 말이다.

영매란 단어를 보고 무당과 차이를 찾아봤지만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한 글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영매를 무당의 일부로 인식한다는 글이 보이는데 좀더 공부해야겠다.

주인공 은파의 경우 무당의 딸인데 특정 귀신의 신내림이 보이지 않는다.

무당의 신내림을 생각하면 귀신을 보고, 그것을 정화하는 영매술사에 가까운 것 같다.

너무 자의적인 해석인가?


Y여고는 기숙 여학교다. 은파는 귀신 등을 볼 수 있다.

어릴 때 이 능력을 말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소문도 좋지 않다.

Y여고는 산중턱에 있는데 이 학교는 이상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온갖 잡귀들이 학교와 학생 주변에 머물면서 기이한 일들을 벌인다.

대부분 큰 문제가 아니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넘어간다.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은파는 동급생 모니카의 축원문이 지워지는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때 학교의 마스코트인 검은 고양이 이채를 만난다. 그 만남은 은파가 제령한 잡귀를 먹으면서부터다.

이후 은파가 타로 점을 잘 본다고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실체를 가지고 있지만 본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검은 고양이 이채와 함께 타로 점을 보고 제령한다.

제령 후 잡귀들은 이채의 먹이가 된다. 덕분에 이채는 더욱 커진다.

빛나고 이쁜 선배 김기율에게 다가가기 위해 모니카의 문제를 해결했는데 다른 일이 더 많다.

그러다 모니카의 비싼 옷이 갑자기 사라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캐비닛 속에 시간이 중첩된 이상한 공간이 있다. 판타지의 인벤토리와 닮아 있다.

이 공간에서 이상한 사진 하나와 모니카의 옷을 찾아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이상한 사진 한 장이다. 사진 속 소녀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여학교의 소소한 귀신들 제령 이야기였다.

하지만 수능 100일 앞두고 학교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소문과 전설이 엮인다.


고3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수능이다. 이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미래를 결정한다.

실패했다고 다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의 순간이 열린다.

그 동안 들인 노력과 열정을 생각하면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큰 행사다.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그런데 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으면 전교생의 수능 성적이 엄청나게 좋아진다.

은파와 김기율이 이상한 경험을 한 이후 고3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감정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한탕주의가 결합한 것이다. 씁쓸하지만 아주 현실적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괴이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교실에 걸리는 괴이한 모양의 인형들, 구간제라는 이상한 의식, 숨겨진 욕망의 뒤틀린 표현.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주하는 사건의 진실.

가려져 있고, 숨겨져 있던 사실들이 드러나고,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 가운데 있는 것은 은파의 엄마, 한경이. 가슴 아린 사실과 감정들.

어느 정도 예상한 결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더 많은 뒷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야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미지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공존한다.

기존의 오컬트 소설과 조금 궤도를 달리한 듯하고, 더 많은 은파의 제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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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김병종 지음 / 너와숲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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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화가 김병종의 에세이를 읽었다.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기회가 닿으면 그의 에세이를 읽었다. 그렇다고 모두 읽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이 아마도 <자스민, 어디로 가니?>였던 것 같다. 그때 쓴 글과 표지를 보니 생각난다.

작년과 올해 <시화기행>이 두 권 나왔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계속 나올 것 같다.

옛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 예상하지 못한 에세이가 나왔다. 반가웠다.


전체적으로 그가 여행한 곳에 대한 풍경, 기억, 감상 등을 적은 글이다.

특유의 화풍을 보여주는 그림도 같이 실려 있다. 그림만 대충 보면 아이가 그린 것 같다.

대충 휘적휘적 그린 듯한 그림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눈길을 잡아 끈다.

동양화가란 것을 이전에도 인식하고 봤는지 모르겠지만 색감,  질감 등을 보면서 서양화가 먼저 떠올랐다.

동양화 붓질 특유의 느낌이 있지만 서양화가들도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을 봤다.

색감이나 인물의 질감 등을 보면서 나의 얕은 지식이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이다. 다음까지 기억하려나?

푸른 바다의 색감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화가는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곳의 풍경을 그렸고, 감상을 적었다.

내가 잠시 스쳐간 곳도 있지만 대부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낯설고, 신기하고, 가고 싶다.

화려한 수사보다 자신의 감상을 그대로 적은 글은 담담하게 읽힌다.

내가 간 곳에서 내가 놓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지금 당장 달려갈 수 있는 곳은 자꾸 오라고 손짓한다.

얼마 전 읽었던 라오서의 <찻집>에 대한 이야기는 반가웠지만 ‘카더라 통신’은 조금 아쉽다.

읽으면서 <라틴화첩기행>의 흔적을 더듬어 본 것도 있다. 아주 희미하지만.


장소 중 호텔 이야기는 사실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아마 경험치가 달라 그럴 것이다.

네팔 공항 이야기는 두 번 나오는데 편집 과정에서 놓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세 단계의 여행 이야기를 할 때 자신 있게 나는 2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화가는 1단계와 2단계 사이라고 말한다. 순간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얼마나 많은 것은 내가 놓치고 있기에 이런 오만한 말을 했을까 하고.

폐허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문화에 대한 천박한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치앙마이의 타패가 얼마나 많은 여행객을 끌어당기고, 긴 여운을 나에게 남겼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일강변의 잠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서늘함보다 모기 걱정이 먼저였다. 감성 파괴자인가?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루하고 어려웠던가.

한국, 중국, 일본의 정원 이야기를 읽으면서 실제 셋 모두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대한 정원은 솔직히 감흥이 없었다. 그냥 넓고, 넓었다.

몽마르트르의 기억도 그렇게 좋지 않다. 수많은 흑인 삐끼들 때문일까? 아니면 제대로 보지 못해서일까?

파리 도시 속 수많은 갤러리와 수많은 미술품 등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다.

동네의 작은 다리 퐁네프도 다시 걸으면 기분이 달라질까? 기억을 환기시키는 곳들이 보인다.



작가처럼 거기서 죽어도 좋아하는 곳은 당장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짧은 여행 경험 속에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늘 있다.

아마 다시 간다면 그때의 감성은 사라졌겠지만 또 다른 감상이 그 빈 곳을 채워줄 것이다.

한국 속에서도 늘 가야지 생각만 한 곳 중 하나가 섬진강이다. 스쳐 지나만 갔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 둘러본 곳을 다시 갔을 때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아이와 다시 가면 어떨까?

남미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이 교차하는데 언제 이것을 풀어낼까? 다시 살짝 아바나에 가고 싶다.

장소, 기억, 사람 등이 시간과 엮여 빗어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한 곳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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