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공부 마치고 와서 앉아 있었더니 아이가 나를 부른다. 색칠공부 책에 씌어진 글자를 가리키면서 자기가 이걸 읽을 수 있단다. 사실 한글 시작한 지는 올해 2월부터다. 에미가 잘 못 놀아 주니까 학습지라도 놀이 삼아 하라고 시켜 본 건데 별 진전도 없는 것 같고 유치원에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글 수업을 시작한다길래 진도나 맞출까 싶어 그나마도 8월달에 끊은 후다. 그후로 나 혼자 앉혀 놓고 조금씩 읽혀 보려고 애는 썼지만 녀석 맘이 콩밭에 가 있는 터라 번번히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였다. 어제도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래, 한번 읽어 봐. 건성으로 이르고 남은 손으로 리모콘을 집어 들던 참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더듬더듬 읽는다. 게다가 정확하게!
너무 놀라서 다른 것도 읽어 보라고 시켰더니 한 글자씩 더듬거리면서, 맞추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정확한 발음에 꽤 근접한 수준으로 읽어내려갔다. 처음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그 다음에는 애를 껴안고 굴렀고, 그리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엄마 너무 좋아서 우는 거라고 했더니 쌕쌕 웃으면서 눈물을 닦아준다. 아주 오랜만에, 기뻐서 울다가 웃어봤다.
서럽게 키운 아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힘들 때 얻은 아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변화를 보일 때 엄마가 기뻐해 주는 건 당연한 건데, 나는 주책시리 눈물이 난다. 그러고 보니 작년 유치원 발표회 날도 아이가 춤추는 무대 앞에서 나만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때도 눈물 훔치면서, 희야가 혹시 엄마를 볼까봐 눈물 닦으면서 웃어주던 기억이 난다. 우는 엄마들 아무도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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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키우는 거 솔직히 힘들다. 내가 이걸 왜 낳았나 싶다. 세월도 꽤나 지났으니 이젠 우리 부부 애 낳고 잘 사는 사람들로 주변엔 비칠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그때를 여전히 후회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후회한다.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내게 당연히, 마땅히 주어졌을 기회와 시간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나는 낙태를 하지 않았지만 낙태를 한 사람들을 비난하기는 싫다. 못한다. 혹자는 나에게 생과 사중 생을 택했고, 그 생명을 낳아서 키우는 보람이 또한 값지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위에 쓴 내 경험이 바로 보람이요 행복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런가? 행복 맞다. 정말 어쩌다 찾아온 달콤한 행복. 그렇지만 그것이 낙태 반대론자들의 명분으로 쓰인다면, 나는 단호히 그것을 거부한다. 생명 존중 좋아하시네. 그 생명이 누구의 희생과 눈물 위에 세워진 건지 알기나 해? 그래.나는 힘들고 괴로운 길을 택했지만,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고 해서 그 목숨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독선이 많은 걸까?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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