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 - 그림 속으로 들어간 마술사들
오은영 지음 / 북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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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평]「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인생의 프레스티지




 고등학생 때 여자친구와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를 봤다. 연애 초기 단계였던 그때는 영화의 내용이야 무엇이든 상관없으리 그저 같이 있기만 하면 좋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니 그 마술같은 세계에 흠뻑 빠져 여자친구에게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물론 보고 나서야 이런 좋은 영화를 정신적으로 공유 했다는 사실에 즐거웠다. 프레스티지라는 단어는 영화 첫 장면에서 설명이 나오는데, 마술의 3단계 중 조우, 대전환에 이은 마지막 단계 대단원을 뜻한다. 프레스티지에서 중요 마술로 등장하는 '순간이동' 마술로 예를 들자면 사라졌던 마술사가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짠! 하고 나타나는 그 순간이 바로 프레스티지다. 서로의 마술 비법을 캐내기 위한 휴 잭맨과 크리스천 베일의 갈등이 무척 흥미진진하고 배우들의 역량 또한 매우 뛰어나다. 두 주인공이 마술과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려는 치열한 경쟁은 정말 볼만하며 관객들을 위해 마련된 반전의 '프레스티지' 역시 굉장한 즐거움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가진 힘을 느낌과 동시 알게 모르게 한낱 유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마술이, 인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양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에 정치적인 힘을 발휘했던 주술부터 20세기 대중오락으로 진화한 마술쇼까지 마술은 정치, 사상, 학문, 예술, 상업, 오락, 일상생활, 개인의 내면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에 관여해 왔다. 마술의 이러한 모습은 인간사의 모순적인 모습들과도 닮아있어 자연과 초자연, 정치와 종교,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드는 모호한 사회적, 철학적 경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P. 9 

 

 「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는 여태껏 마술과 미술의 콜라주로 만들어진 인문학 도서가 없었기 때문에 마치 세상에서 단 한 명의 마술사만이 할 수 있는 마술처럼 유니크한 책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마술이라는 행위를, 내가 영화 <프레스티지>를 보기 전에 생각한 것과 같이 그저 구경거리라고만 생각하며 '인문학'이라는 양식의 옷을 입은 걸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아마 20~30대 남자의 경우 과거에 한 번씩은 마술을 배우려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은결이라는 인물이 유명세를 타며 마술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마술이 가지는 감정의 놀라움으로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남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나 역시 좋아하던 선배에게 마술을 선보이며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했지만 그 선배의 전 남자친구가 직업 마술인이라는 사실을 듣고 다시는 마술에 손을 대지 않았다. 어쨌든 마술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이 공포이든 신기함이든 분명 그것에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사람의 감정을 겨냥하고 움직이려는 시도는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 장르와 닮았다. 미술과 마술은 철자 외에도 닮은 점이 있는 것이다. 특시 제7의 예술이라고 불리우는 영화의 모태가 마술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인공 빛을 오목렌즈에 투과시켜 그림이 그려진 작은 유리 슬라이드에 쏘아 스크린에 투사하는 매직 랜턴을 통해 공포스럽고 으스스한 마술쇼를 선보였고 이를 판타스마고리아라고 이름 붙였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19세기말에 등장한 영화의 기술적, 내용적 기원으로 판타스마고리아를 지목한다. 현대에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각광받고 있는 영화와 모태가 마술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마술과 미술이 나란히 선다 해도 큰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마술이 창녀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공연이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아주오래전부터 인류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판타스마고리아는 낯선 언어가 되었지만 놀이공워원의 유령의 집에도, 대형스크린에 비치는 영화에도 판타스마고리아 쇼의 흔적은 여전히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믿게 되는오싹오싹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 그것이 바로 판타스마고리아의 유산이다.

P. 70 



 「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이 끝날 때 쯤 나오는 마술의 3원칙을 살펴보자.


 하워드 서스톤의 3원칙

 1. 마술을 연기하기 전에 현상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2. 같은 마술을 2번 반복해 보여서는 안 된다.

 3. 마술의 비법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P. 243 


  앗, 이거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우리 인생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떨까?


인생과 운명의 3원칙

1. 인생을 살기 전에 운명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2. 같은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다.

3. 운명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어떤가? 무척 비슷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프레스티지>의 두 주인공처럼 서로 속고 속이며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려는 결정적 한방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다. 마술은 속이는 과정, 속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마술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따지며 하염없이 마술사의 손짓만 바라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마술이 주는 즐거움에 온전히 빠질 수 없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설령 운명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게 바로 우리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는 마술과 같은 트릭 아닐까? 


 마술쇼를 찾는 관객들이 어떤 마술에 즐거워하고 놀라워하며 마술쇼를 통해서 어떤 시간을 추구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마술사 개인의 쇼의 질을 높여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함은 아니다. 그보다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해보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여가를 즐거운 시간으로 꾸며주기 위해 노력하는, 다분히 공동체적인 실천이라고 자부한다.

P.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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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범인인가 -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범죄사회를 말하다
배상훈 지음 / 앨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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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서평] 「누가 진짜 범인인가」 요괴와 퇴마사




 평소에 TV를 잘 보지 않는데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다. 특히 <그것이 알고싶다>는 혹시나 놓친 '그것'이 있을까 지나간 회차까지 다시 둘러볼 정도로 흔히 말해 광적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짚어내는 집중력이나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구성 또한 무척 훌륭해 어쩌다 결방이라도 하는 날에는 화장실을 갔다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개운치가 않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강력 범죄를 다룬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사건들은 방영 막바지에 이르면 항상 공권력의 무능력함과 무책임함을 겨냥하며 사회적 문제로 이끌어 나가곤 한다. 그 단 하나의 범죄, 단 한 명의 범인을 잡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와 모순적인 사회 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제 2의, 제 3의 피해자는 또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님의 「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영상에서 글로 바뀐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기분이다. 게다가 더욱 전문적이고 더욱 날카롭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보니, 대학 초년생 시절 꿈꾸었던 사회정의는 범죄자 몇 명을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우고 사회에서 격리시킨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짓밟히는 사람은 여전히 짓밟히고 억울한 사람은 억울함을 풀기 어렵다.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탐욕스런 자본가들은 수천억, 수조 단위의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이 사회에서 갑 행세를 하고 있다. 인권위원회, 노동청, 경찰서 앞에 가 보라. 억울함을 호소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는 사람들이 줄을 잇지만, 기득권과 연결된 범죄 수사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묻혀 버리기 일쑤다.

P. 25 


 ​「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을만큼 익숙해진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의 뿌리이자 근원지를 바라보고 있다. 전국민적인 비극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사건은 물론 가장 최근에 인육의 공포를 다시 되살린 수원 팔달산 토막 살인 사건까지, 지금 우리 곁에 발생하며 우리를 갉아먹고 있는 치명적인 강력 범죄를 다시 돌아 본다. 사이코패스 · 소시오패스 등 우리사회가 길러 낸 괴물들과 그를 쫓는 프로파일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판타지 소설 「퇴마록」 연상된다.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세상에 원한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는 요괴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스스로 사람이라는 존재와 멀어지는 퇴마사의 모습. 친딸을 성폭행한 아버지, 연쇄강간범, 재미로 사람을 살해한 살인범, 불을 지르고 사람이 타 죽는 것을 구경한 방화범, 의붓자식을 잔혹하게 학대한 계모 등의 모습을 바라보면 요괴를 연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적 관계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공적 관계 즉 '사회'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으며, 인간의 재생산도 가능하지 않다. '사회' 없이 살아도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삶이 바로 소시오패스의 삶이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P. 94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서 언급되는 범죄의 일면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저렇게 됐을 수도 있다' 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저런 무서운 범죄에 휘말려 피해자가 되는 생각보다 내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사회라는 악령에 홀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나도 경악할만함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더 무서웠다. 과연 내가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 속의 분노를 달랠 수 있었을까?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서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 대해 우리는 어렴풋이 정답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진짜 범인과 마주할만한 용기가 있을까?「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가치가 부숴지지 않도록, 또한 나조차 그에 따라 파괴되지 않도록 범죄라는 사회와 맞서 싸울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이 실험은 이전까지 학자들이 집중했던 범죄의 생물학적 요인이나 심리학적 요인 등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특정 상황에 놓이면 충실한 역할(행위)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특별한 누군가가 '범죄자' 혹은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범죄자' 혹은 '악인'이 될 수 있다!

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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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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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서평]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인생을 위한 발판




 2010년 9월 G20 정상회의의 마지막 날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폐막 연설을 마치고 한국 기자들에게만 질문권을 줬다. 개최국 역할을 훌륭히 해낸 한국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고 하나의 특권이었다. 우리 기자들은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 결과는 중국 기자의 질문을 끝났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 기자들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하고 중국 기자에게 그 권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G20의 대미를 장식한 10분 남짓의 간담회 동영상은 '오바마 한국 기자'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기자들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하고 질타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기자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질문 부재 현상은 대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 강의실 대부분의 모습에서 토론과 같은 상호작용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경청과 필기만이 가득하다. 배움의 전당 대학에서조차 질문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질문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안의 탐구욕과 학구열이 만들어낸 궁금한 물음이 아닌 남이 정해놓은 답을 찾기에만 연연하고 있는 것 같다. 밑바닥을 치고 있는 독서율만 보더라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많은데 사람들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책을 읽지 않는다. 잘 나가는 책은 학습 만화나 자기계발서가 거의 다다. 


 문제는 우리 인생도 '질문 부재'와 같이 누군가 정해 놓은 답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내놓은 답이 오답인지 정답인지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는 대학에만 가면 행복할 줄 알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학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대학이 탐구보다는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한 대학이라는 수단이 어느새 대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불행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로 바뀌고 말았다.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까?


 나는 대학 생활을 무척 즐겁게 한 편이다. 강의도 정말 유익했고 캠퍼스 생활도 무척 재밌었다. 가슴 설레는 연인도 만났었고 지금까지 연락하고 왕래하는 선후배도 생겼다. 내가 이렇게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이 대학을 위한 경주마로 키워지던 도중 의지가 약해서였든 경쟁에 뒤쳐져서였든 어쨌든 나는 입시라는 전국민적 대회에서 중도이탈을 했지만 누구보다 보람차게 대학 생활을 했다. 그때 배웠던 독서와 글쓰기는 인생의 한 지표가 되었고 지금도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도 대학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어린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대학을 가려 하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왜 대학을 가는지 물음에서 더 나아가 왜 인생을 사는가에 대한 물음까지 나아가기 위해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가 새로운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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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테스트 - 스탠퍼드대학교 인생변화 프로젝트
월터 미셸 지음, 안진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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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서평] 「마시멜로 테스트」 운명은 별에 새겨지는가, DNA에 새겨지는가?



 

 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때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운명은 별에 새겨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유전자에 새겨진다면?". 운명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으로 이미 정해져 있어 바꿀 수 없는 일을 의미한다. 「마시멜로 테스트」가 궁금해 했던 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제력이 과연 운명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과연 자제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 유전자는 자제력을 가질 수 없는 유전자인 것인가? 우리는 삶의 곳곳에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매우 큰 각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제력을 키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무척 중요하다. 운명과 관련된 영화 중에 어렸을 때 봤던 <기사 윌리엄>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는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딱 하나 기억에 남는 주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미천한 신분으로 기사의 자리까지 오르며 보여 준 '운명이란 바꿀 수 있다' 라는 주제였다.

 


 마시멜로 테스트에서 더 오래 기다린 유아원생들이 약 12년 후 청소년이 되어서는 좌절 상황에서 더 많은 자제력을 발휘하고 유혹에 덜 굴복하며 더 강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또한 지능이 더 높고 더 자립적이며 자신감과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도 더 강하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짧게 기다렸던 아이들만큼 몸과 마음이 허물어지지 않으며, 당황하거나 흐트러지거나 미성숙한 행동방식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적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미리 생각하고 더 많이 계획하며, 동기를 부여받으면 목표를 더 잘 추구한다. 그뿐 아니라 집중력도 상대적으로 높고 논리에 대한 대응과 이용 능력이 더 우수하며, 차질이 생겨도 곁길로 샐 가능성이 적다.

P. 32 


 모든 해답은 1960년대 스탠퍼드대학교 부설 빙 유아원에서 진행된 '마시멜로 테스트'에서 시작됐다. 마시멜로 테스트는 선택이라는 딜레마를 주고 반응을 관찰하는 아주 간단한 실험이다. 예를 들어 즉시 누릴 수 있는 한 가지 보상(한 개의 마시멜로)과 15분 정도 먹지 않고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더 큰 보상(두 개의 마시멜로)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하도록 말이다. 이 테스트를 기본으로 다양한 변화를 주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실험은 뜨거운 충동 시스템과 차가운 억제 시스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간단히 설명하면, 눈 앞에 보이는 유혹을 현재의 초점에 맞춰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맛을 음미하는 등의 생각으로 뜨겁게 받아 들이면 그 유혹은 거절하기가 힘들고, 미래의 초점에 맞춰 눈 앞에서 치워버린다든가 다른 재밌는 생각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차갑게 받아 들이면 그 유혹을 거절하기가 쉽다는 결과다. 또한 충동을 억제하는 힘은 노력과 연습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내용도 빠지지 않는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제력을 발휘하기 위한 핵심 전략을 '지금'을 차갑게 하고 '나중'을 뜨겁게 하는 것이다. 눈앞의 유혹을 시간 · 공간상으로 멀리 밀어버리고 멀리 있는 결과를 마음속 가까이 가지고 오면 된다.

P. 301 


 책을 통해 자제력은 별이나 DNA에 새겨진 게 아니라 노력을 통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은 자제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는 사람이다. 수십 년을 참아가며 공부를 하고 그렇게 또 수십 년을 참아가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지금의 행복을 유보한다고 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에는 충동 억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어떤 남자가 의사에게 찾아가 이유를 알 수 없이 몸이 아픈 것에 대해 물어본다. 오래 살고 싶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의사는 술을 하는지, 담배를 피우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취미는 있는지, 삶은 즐거운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남자가 전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의사는 왜 오래 살려고 하는지 되물으며 이야기는 끝났다.

 과식이나 담배, 음주와 같이 명백하게 비참한 결과가 예정되어 있는 충동이라면 참아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 그 외의 충동은 우리가 억제 했을 때 받을 보상이 보장되어 있는가에 대해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자제력이 별이나 DNA에 새겨진 게 아니라 나의 노력에 새겨져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인간 본성의 핵심은 가변적인가 아니면 불변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사다. 어떤 이들은 자제력과 의지력, 지능 등의 특지을 타고난 불변의 특성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교육적 개입으로 EF와 자제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실험적 증거를 접하면, 장기적 차이를 낼 가능성이 별로 없는 단기적 영향으로 해석한다. 타고난 자질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같은 연구 결과를, 우리가 변화에 열려 있고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DNA 제비뽑기가 아니라 스스로 공들여 만들어나갈 수 있는 무엇이라고 믿는 것이다.

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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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 - 사고의 틀을 바꾸는 유쾌한 지적 훈련 인문 사고
최원석 지음 / 북클라우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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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서평]「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생각을 훈련하는 상식에 대한 물음 



 

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 - 8점
최원석 지음/북클라우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은 하늘하늘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하얀 옷을 입고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무저항주의로 인도 독립의 상징적 인물인 간디는 평소 행동거지나 말투 모두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인물일 거라 생각했다. 내가 몰랐던 실제에서는 어땠을까? 여성적이고 상냥한 이미지가 강했던 나이팅게일은 오히려 강인함과 거친 비난을 일삼는 주무기로한 행정가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흰색'이 아니라 짙은 색의 검소한 옷을 입어 천사 같은 겉모습은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간디의 모습은 더 충격적이다. 무언가 금욕적인 이미지가 강한 간디는 오히려 67세에 몽정을 했다고 대중 앞에서 고백할 정도로 성 에너지가 넘쳤고, 항상 10여 명의 여성을 주위에 두고 성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내에게 독신주의자로 살겠다고 뜬금없는 선전포고(?)를 한 후에 자신의 금욕을 실험하기 위해 여성과 나체로 한 침대에서 잤다는 변명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을 통해 알게 된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은 인식과 사고가 상식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얼마나 편협하게 존재하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하지만 에디슨이 이 말을 한 의도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반대다. 노력은 그다음 문제고, 가장 앞세워야 할 부분은 '영감'이라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이 격언을 다시 풀이하면 이렇게 된다. 1%의 영감이 없으면 노력해봐야 별 소용없다.

P. 68 


 지금은 상식으로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지동설'이 오랫동안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식이었으며 가까웠던 과거에 미친 소리로 취급했는지만 보더라도 상식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 수 있다. 지금의 상식이 과거나 미래에는 비상식이 될 수 있고 지금의 비상식이 미래에는 상식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비상식적인 인물들이 세상에 얼마나 상식적인 일들을 만들어내는지 지켜보고 있다. 도대체 상식이란 뭘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의 정의는 당연히 알아야 할, 모르면 부끄러운 정보와 무척 가깝다. 정보와 상식은 시간 경과에 따라 그 가치가 무척 흔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지식'을 찾고 있다. 그게 바로 인문학을 읽는 이유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정말 상식일까? 혹시라도 천동설처럼 우리가 굳건히 믿고 있는 상식 중에 틀린 것은 없을까? 사실 인류가 발전해온 과정을 생각하면 세상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으레 그러려니 했던 것들은 대부분 틀렸었다. 모범생보다는 괴짜가 세상을 바꾸고, 세상살이에는 필연보다는 우연이 더 많이 작요해왔다. 법칙은 있으나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돌연변이가 새로운 종의 출현을 예고했다. 사물은 늘 일관성이 없고, 변칙이 성행했다. 결국 기존의 사고 틀을 깨거나 거부하는 방식으로 비상식적이거나 몰상식하지 않으면 변화도 창출할 수 없다.

P. 7 


 인문학에는 '왜?' 라는 물음이 담겨 있고 「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본문을 읽다 보면 당연스레 받아들이던 일반적인 현상과 상식에 대해 왜? 라는 물음의 자세를 갖게 된다. '왜?' 는 곧 생각을 뜻하고 생각은 데카르트의 말처럼 우리의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라고 물어봤을 때 많은 사람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을 꼽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책은 생각으로 태어난 소통의 도구이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다. 항상 '왜?'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생각은 발전한다. 실제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경우 답을 말하는 학생보다 질문하는 학생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만큼 '왜?' 는 중요하다. 기존의 틀에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왜?'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잇는 한 뼘의 자세를 갖는 책, 「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이다.


 특정 인물과 사물의 정확한 실체 혹은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그것을 뒤집어 이면을 살펴보자. 상식이라고 사람을 배신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P.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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