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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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렸을 때 그랬다.

 집에 들어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책을 봤다. 나 말고 아무도 들일 생각이 없었던 방안에서 혼자 책을 보는 시간은 특별했다. 결말이 보이지 않는 소설처럼 영원히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책을 보는 일은 내세울만한 단 하나의 우월감이었고 누군가 그 우월감으로 가득싸인 방에 침범할까 겁나 영역을 지키는 짐승처럼 촉각을 곤두세웠다. 뫼비우스 띠에 발이라도 얹은 듯이 겉돌고 있었다. <소희의 방>의 주인공, 소희와 같은 열다섯 살이었다.

 

 소희는 아빠의 죽음과 엄마의 재혼으로 고모 집에서 얹혀 사는 아이였다. 매사에 눈치를 보고 꿈인 것을 확인한 후에야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로 자란 소희는 이야기가 시작되며 엄마를 다시 만나고 굉장한 부자인 새아빠와 같이 살게 된다. 아침이 되면 새아빠는 정원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고 두 아들은 조립한 비행기를 날리며 활기차게 뛰어논다. 엄마는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며 과일을 깎는다. 소희는 이 풍경이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다. 마치 이 행복 위에 놓이면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자신의 방으로 숨어버리기 일쑤다.

 

 소희를 보고 있자면 누구나 지나쳐 온 사춘기 시절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먹먹하다. 소희가 느꼈을 살얼음 같은 감정이 모두의 것이라는 암시는 소희의 친구와 새아빠 딸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시기이지만,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소희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를 방에 초대하는 일이다. 혼자만 보는 일기처럼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 있던 그 방에 말이다. 만약 소희에게 편지를 쓴다면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나온 말을 적고 싶다.

 

우주를 향해 네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도대체 왜 하게 되었냐고? 넌 이 우주의 일부야. 한 성분이라고. 따라서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에 참여하고, 나아가 네 감정을 알릴 자격이 충분해. 그러니까 네 의견을 털어놔 봐. 자기 진술을 해보란 말이야. 내 말 믿어. 적어도 고려의 대상은 될 테니까.

 

 소희는 엄마에게 자신의 일탈을 폭발적으로 뿜어내며 가출까지 하게 되지만, 비로소 집에서 벌어지는 우주의 일을 털어놓으며, 다시 방으로 돌아오게 된다. 옛친구 바우가 그려준 그림처럼 자기 자신을 조금이나마 사랑할 줄 아는 꽃이 된 것이다. 내가 만약 열 다섯 때, 내 방안에 <소희의 방>을 초대해 같이 읽었더라면 나 역시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춘기에 갇혀 방문을 닫아버린 청소년에게 이 책이 자물쇠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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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 길 위의 노래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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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단


은교, 나마스테 무척 감명깊게 봤는데 이번 추문으로 환멸이 느껴지네요.
대학에서 문학을 배울 때 작품을 알려면 작가부터 알아라, 라고 배웠는데 정말 딱 작가따라 작품이 만들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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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haeg 2016.9.No 19 - September
(주)책(월간지) 편집부 엮음 / (주)책(잡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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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기구독을 신청하고 처음 받아봤는데 실망이 크네요. 여자나 페미니스트에 관한 내용만 줄줄이 나오는 거 보니 이번호 주제가 그건 거 같은데. 너무 획일화된 방향의 글만 있네요. 책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잡지가 이렇게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니 실망이에요. 정기구독 해지할까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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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강아지 - 어른을 위한 동시
이순영 지음, 최지혜 옮김, 조용현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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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평]「솔로강아지」 어리고 탁월한, 그리고 잔혹한 재능




 

솔로 강아지 - 
이순영 지음, 최지혜 옮김, 조용현 그림/가문비(어린이가문비)


 사회가 재능을 닫아버리는 경우는 어떤 게 있을까. 엄마를 씹어 먹고 구워 먹는다는 등 잔혹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됐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보고 어린 작가의 출중한 재능이 눈을 감아 버릴까봐 걱정됐다. 「솔로강아지」는 초판에 담겼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빼고 다른 시 아홉 편을 대신 채워 내놓은 개정판이다. 나는 대학에서 시를 배우며 누군가에게 '시'와 '시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시인의 표현을 더 깊이, 많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느끼게 됐다. 이 어린 작가는 이미 '시'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다. 다른 시인과 다른 점을 찾자면 표현하는 소재뿐이었다. 이순영 작가는 나이에 걸맞은 일상적인 소재를 언어로 훌륭히 표현해내는, 다 큰 시인이 쓸 수 없는 시를 썼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성장에 따라 풍부한 계절처럼 모습을 바꿔갈 이순영 작가의 시가 기대된다.

 이 어린 작가의 멋진 예술성을 더 파헤치고 느낄 수 없을까, 하며 책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마음에 거슬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순영이는 시 쓰기를 좋아하지만 자주 쓰지는 않고 가끔 자기가 진짜 쓰고 싶을 때만 쓰며 살아갈거라고 합니다. 시는 순영이의 베프거든요.' '학원가기 싫은 날'이 대중들에게 거부 당하면서 창작에 대한 마음이 구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 같은 시인으로 이미 비슷한 고난을 헤쳐나갔을 어머니(이순영의 어머니는 시인 김바다 씨다)가 좋은 멘토가 될 것이라 위안을 삼기도 한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며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아이를 보고 막연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쓰고 싶은 글'이 아닌 '대중에게 거부 당하지 않을 글'을 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또 든다. 물론 어린 작가의 역량과 솔직함을 보면 괜한 걱정이라는 안심... 걱정과 안심... 계속 반복... 앞으로 이순영의 시가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중심을 잃어버리거나 창작을 그만둬 보지 못하게 된다면 무척 아쉬울 것 같아 드는 생각이다. 


 시는 어린 아이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장래희망처럼 다양한 모습을 띈다. 맨몸으로 집을 돌아다니는 오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아이다운 시가 있는가 하면(22P '오빠의 고추') 그 적은 세월에 어디에서 이런 '어둠'을 느꼈나 하고 깜짝깜짝 놀랄 만한 시도 있다. "어린이가 말하는 건 모두가 다 시 아닌가"(82P '시') 하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나 탁월한 감각, 강렬한 이미지 역시 볼 만하다. 뒷표지에 적혀 있는 이병철 시인의 평가처럼 공깃돌로부터 바다로 넓어져 가는 생각, 상상, 감각은 놀라웠다.

 

공깃돌이라고 하는 작은 일상적인 사물부터 바다를 연상시킨 사유의 확장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ㅡ 이병철 시인


 공깃돌을 보고 소금 알갱이를 연상하고 공중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모습에서 바다와 소금 알갱이를 떠올렸다. 무궁화를 보고 "분홍빛 레이스 / 투명한 피부 아래 보이는 가는 핏줄" 이라는 표현을 쓴 시 '무궁화'에서는 섬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시는 '감금'과 '고기굽기'다. 장롱의 겉무늬를 보고 감금된 사람을 떠올라다니! 내가 어렸을 떄 장롱무늬를 보며 간직하고 있었던 막연한 생각을 마치 척추 뽑듯이 쑥! 하고 봅아낸 느낌이었다. 불 태워서 나오게 하려는 강렬한 이미지가 인상 깊다. '고기굽기'에서 선택한 '말랑한 피가 솟는다', '고기는 온몸으로 운다'라는 표현은 쉽고도 재밌다. 육즙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고 모두가 생각할 법 하면서도 언어로는 쉽게 하지 못했던 표현 아닐까. 우리에게 가장 좋은 시는 이런 시라고 생각한다. 읽는 순간 아! 그렇지! 하고 다 마른 줄 알았던 우물에서 약수 한 바가지 퍼올리듯 감성을 끄집어 내주는 시. 아직 딱딱하게 굳지 않은 말랑말랑한 생각. 이순영의 시가 좋아질수록 32페이지의 '학원가기 싫은 날' 제목을 달고 있는 텅빈 페이지가 아쉽다.


 그런데 「솔로강아지」에 삽입된 그림은 이해되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에서 글 대신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이는 결코 시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66페이지의 시 '토마토'를 보고 그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젠가 화가나 뭉개진 토마토처럼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그려보다 불현듯 이순영의 토마토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를 그제서야 이해할 때, 그때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한 문학적 쾌감을 앗아가 버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출판사의 의도는 알겠지만 언어로 그려야 할 세상을 그림으로 채우다니... 시 옆에 놓인 그림을 바라봄으로써 '시'로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세계를 그림 한 장에 가두어 버렸다. 머릿속 풍부한 세계를 잃어버린 느낌. 문학 작품 대부분 그림이나 사진 없이 오로지 백지와 글로 이루어져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으로 채우라는 의미다. 그게 허구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문학적 상상 아니던가. 출판사의 과도한 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로 치자면 "혹시 이해 못할까봐 말해주는 건데, 여기서 주인공이 '이런' 행동을 한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거야. 결말은 '이렇고', 아! 몇 페이지 전 쯤에 복선과 암시가 깔려 있으니 다시 한 번 봐봐" 정도의 친절이랄까?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페이지를 양분한 영어 번역이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영문으로도 다시 한 번 읽어보라는 뜻일까? 아니면 이대로 해외 출판을 하려는 걸까? 아쉽기보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추측한다면 이순영의 '시'를 보여주는 책이 아닌 이순영의 '시'를 재료로 만든, 멋들어지게 꾸민 '상품'이라는 느낌이다. 뭐 물론 책의 구성과 디자인 약간 아쉽긴 하지만 이순영이라는 재능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다음에 보는 '이순영'은 온전하게 시만을 즐길 수 있는 '이순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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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상자 위의 소년 - 홀로코스트에서 피어난 기적
리언 레이슨 외 지음, 박성규 옮김 / 꿈결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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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세이:서평]「나무 상자 위의 소년」존엄성을 잡아먹는 괴물



 

나무 상자 위의 소년 - 
리언 레이슨 외 지음, 박성규 옮김/꿈결



 쉰들러 오스카가 만들어 준 자리, 키가 작아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기 위해 올라가야 했던 그 '나무상자'는 주인공 리언에게 생존이었다. 그 나무상자는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광기에 현기증을 느끼던 이들의 마음 속에 깊게 뿌리 박고 근사한 그늘이 되어준다. 「나무 위의 소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막아낸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의 '리스트'에 올랐던 가장 어린 리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는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유명해진 '쉰들러 리스트'는 오스카 쉰들러가 새로 지은 공장에서 일할 유대인의 명단으로,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면죄부'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죄인이었던 리언은 전쟁이 오기 전 천진난만했던 시절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고통의 세월까지 선명하게 책 안에 담았다. 

 이야기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이렇게 순식간에 읽어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사건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는 주인공의 감정 표현이 무척 자세해 일품이다. 이 책에서 지루한 부분을 뽑으라면 너무 자세한 나머지 땀을 삐질 흘리게 되는 초반부의 가족과 마을 구성원에 대한 설명뿐이다. 고통과 광기에 휩싸여 변하는 사람들, 이전 모습을 영원히 '상실'해버리는 장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간 겪은 일 때문에 아버지가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힘없고 여윈 모습만이 다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이 변해 있었다. 나치는 그의 힘뿐만 아니라(이후 수년 동안 놀라울 정도의 힘을 발휘하긴 했지만), 경쾌한 걸음걸이의 비결이었던 자신감과 자부심까지도 빼앗아 갔다.

P. 63

 

 표지를 보면 「안네의 일기」를 뛰어넘는 감동 실화라는 문구가 있다. 이 책이 「안네의 일기」와 비교되는 것은 영웅적인 인물 '오스카 쉰들러'를 바라본 게 아니라 평범한 개인, '리언'을 바라본 다는 점이다. 리언도 안네처럼 거대한 두려움과 마주한 어린 아이였을뿐이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그 어린 생명들은 나름의 투쟁을 이어간다. 리스트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신을 독일군에게 드러내는 용기, 엄마와 아빠 품에 뛰어들지 않고 꾹 참아내는 끈기는 온실 밖에서 자라는 거친 야생화를 보는 것같이 기특하다.

 책 마지막에 나오는 리언의 아들과 딸의 헌사를 살펴보면 그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쉰들러 리스트의 가장 어린 아이'로만 살아온 게 아니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그게 당연한 일임에도!).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또 손자 손녀의 할아버지로, 어디서나 사랑 받고 존중 받아야 할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왜 충격을 받아야 하는가. 홀로코스트라는 괴물은 여태껏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생을 삼켜버린 것인가. 또한 그 괴물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검은 뱃속에서 1,500명의 리스트를 지켜낸 오스카 쉰들러는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나무 상자 위의 소년」은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리는 과정과 그 속에서 지켜내는 과정 전부가 절묘하게 담겼다. 어렸을 때 보았던 전래동화처럼 일종의 권선징악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행복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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