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 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개정증보판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세계 도서관 기행」도서관이 비추는 불빛



 

 

 "천국은 틀림없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다. 새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물이 없는 세상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을 연 20세기 대표적 지성인 보르헤스가 남긴 말이다. 「장미의 이름」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는 그를 향해 "인류에게 장차 1천 년을 먹고 살 양식을 남기고 갔다"라고 평하며 본인 소설에 등장하는 눈먼 도서관장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 

 

 그의 삶을 추적하다보면 도서관과의 운명적인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1세 때까지 수천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국립도서관에 자주 갔다고 한다. 그렇게 성장한 후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위해 사상과 지식의 보급을 필수적으로 꼽으며 세운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에서 시력을 잃은 상태로 무려 18년 동안이나 관장으로 지냈다.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붉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확고부동하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되지 않고, 비밀스런 모습으로."

 「바벨의 도서관」중에서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세계 도서관 기행」에는 세계 각 곳에서 빛을 밝히고 있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얽힌 흥미로운 인물, 에피소드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링컨, 마오쩌둥, 정조와 같이 도서관이 만들어낸 지도자가 있는가하면 빌 게이츠 같은 도서관이 만들어낸 천재도 있고, 조지 부쉬, 클린턴 등 도서관에서 사랑을 키워 대통령자리까지 오른 사람들도 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를 살펴보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이야기가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 사후 안토니우스와 결혼할 때 지상 최고의 결혼 선물을 받았다. 안토니우스는 이 절세미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로마의 정복지인 오늘날 터키 지역에 있던 페르가몬도서관의 20만 장서를 통째로 배에 싣고 와 바쳤다. 화재로 도서관 장서가 손실되어 상심하던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이곳의 왕국이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잘 말해준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원용하여 말하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다.

P. 30

 


 도서관이 나에게서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어딜까. 나는 도서관이 담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체 건강에는 이롭지 않지만 정신 건강에는 매우 이로운 것. 그것이 공통점이다. 신체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과 정조가 선왕으로부터 '건강을 해치니 책을 그만 읽으라'는 금서령을 받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책을 읽으려면 가만히 자리에 앉아 한곳을 적당히 응시하고 있어야 하니, 근육이나 눈 건강에 이롭지 못한 것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담배와 도서관의 가장 큰 공통점은 한번 맛들이기 시작하면 끊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책에 어지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에 다니지 않는다. 기껏해야 어렸을 때 엄마 손 잡고 놀러 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험이나, 학창 시절에 심부름이나 과제를 위해 한두 번 들러본 경험밖에 없는 게 대부분이다. 문예창작과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 내내 도서관 한번 가본적 없는 동기들도 있었으니 알만한 노릇이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도서관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놀이와 재미가 있는 공간이고, 청소년들에겐 이야기와 경험이 있는 공간이며, 그밖의 사람들에겐 이야기와 삶이 있는 곳이다. 마치 지식의 영혼이 아름답고 순수한 시골 처녀처럼 미소짓고 있는 그곳을 잊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이란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 생활과 밀착된 도서관을 경험해본 일이 거의 없다. 나만 하더라도 독서실과 도서관을 혼동하기 일쑤였다. 맥도널드보다 도서관이 많은 나라라고 불리며 지상 최대의 도서관 공화국이라는 미국은 실생활에 접근성 높은 도서관을 잘 구현해놨다. 

 

 영화 <투모로>를 기억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야기한 재앙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집어삼키는 해일과 살인적 강추위가 뉴욕을 엄습할 때 시민들이 피해 들어간 곳이 바로 뉴욕공공도서관이다. 그만큼 이 도서관은 시민 생활과 밀착된, 아니 시민 생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도서관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곳이다.

P. 233

 


 다행히도 국내에도 이런 노력이 보이고 있다. <세계 도서관 기행> 377페이지에 소개된 경기도 용인 수지의 '느티나무 도서관'은 "도서관에서 놀자!" 라는 말에 정확히 부합하는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5배 이상의 많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숲 한복판에 자리를 잡아 접근성을 높였다고 한다. "도서관에 왜 가지 않습니까?" 라는 물음에 "멀어서 가지 않습니다" 라는 답변이 가장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현명하고 용기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도서관 기행>에 소개된 이집트, 영구,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러시아,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일본 등 여러 국가의 도서관을 살펴보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국내의 도서관의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약해보이는 게 사실이다. 국내 도서관에 대한 소개가 가장 후반부에 나오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었지만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규모나 장서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도서관에 대한 인식과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 중 하나의 빛줄기라도 발견한 것처럼 아주 즐거운 소식이 담긴 지면을 볼 수 있었는데, <세계 도서관 기행>의 저자가 바로 내가 사는 관악구의 구청장이며, 관악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도서관'운동이 담긴 지면이었다.

 

 내가 20년 넘게 살아오고 있는 구이기 때문에 더 많은 흥미가 생겼지만,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도서관'운동 자체로서 너무나 반갑고 즐거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에 도서관이 설치되고, 관악통합도서관시스템을 구축했으며, 해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북스타트 운동 등, 내가 평소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도서관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힘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니 새삼 감격했다. 

 그저 하나의 구에서 펼쳐지는 운동이긴 하지만 이 운동이 여러 곳을 밝히는 지식의 등대가 되어 다른 혹시나 놓치고 있을 정신 건강의 이로움을 챙기길 수도 있을 것이다.

 

 2010년 필자는 국회도서관장으로 재직하던 중 관악구청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지역에서 도서관 운동을 한번 전개해보자는 뜻도 출마 이유 중 하나였다. 어떤 일을 좁은 범위에서 성공시켜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16쪽 분량의 선거공약서를 대부분 도서관과 책 읽기 운동으로 꾸몄다. 주면의 걱정을 물리치고 과감하게 시도한 것인데, 놀랍게도 구민의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동안 경제 제일주의로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지식 문화에 목말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따.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다. 경제만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 경제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을 풍부하게 누리려면 지식 문화가 필수적 요소이다.

P. 440

 

 선진국에서는 도시를 조성할 때 도서관 위치를 가장 먼저 결정한다고 한다. 그만큼 시민들의 지식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고 그 가치를 알아준다. 그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보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과연 미래를 탄탄히 다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지만, 정작 우리가 미래를 놓치고 있진 않은가 하는 걱정이 든다.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도서관이, 나나 우리의 영혼에도 중심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 도서관 기행>은 여러 국가의 선진 도서관 문화에 물들어 지식에 대한 갈망을 꿈꿀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들이 비추는 지식의 불빛이 우리에게도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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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생을 사로잡다
이석연 지음 / 까만양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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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평]「책 인생을 사로잡다」내 삶의 자유로운 독서를 위하여 (e-book)


 

 독서 습관을 잘못들인 사람들이 참 많다. 독서에 대한 편견과 오해도 가득하다. 독서지도사를 하다보니, 여러 친구들에게 독서를 권하다 보니, 다양한 북카페를 방문하다 보니 그런 불편한 사실들을 확실히 느끼게 됐다. 베스트셀러나 고전 문학을 반강제적으로 읽는 것이 하나의 예다. 많은 사람이 읽었기 때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독서를 하고, 무엇을 읽을지 몰라 좋다 소문만 들은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위한 하나의 지적 운동인데, 무엇을 읽을지에 대한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하다니 정말 웃긴 일이다. 「책 인생을 사로잡다」는 이런 행동을 포함한 모든 '정착적', '부자연스러움'의 독서 행동을 비판하며 유목적인 독서를 권하고 있다.

 


나는 자유롭게 이동하며 세계를 정복한 유목민들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1부에서 '유목적 읽기'에 대한 방법과 기술을 소개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아남는다.'라는 유목정신(노마드)이 바로 나의 독서편력이다. 건너뛰며 읽고, 밑줄을 치고, 베껴 쓰고, 좋은 문장을 외우고, 독서 메모와 일기를 작성했던 나만의 독서법을 논리적으로 풀어 설명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P. 9

 


 「책 인생을 사로잡다」의 저자 이석연 변호사에게 호감이 생겨 프로필을 자세히 살펴보고 검색해보니, 서울대 대학원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법제처 처장까지 지냈으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대단한 사람이더라. 그렇지만 이런저런 공적인 지위보다도 '책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문이 열리더라. 

 「책 인생을 사로잡다」은 주로 이석연 변호사가 일생동안 독서를 한 기록의 한 모퉁이를 보여주며, 그동안 쌓아올린 독서에 대한 지식, 노하우 등을 옮겨놨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는 것이, 책이 사람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을 널리 전하고 싶어 하고, 독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절히 가이드하려는 마음을 담아내려 한 것 같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는 예수님 같은 마음이랄까.

 책과 친해지는 방법이나 번역서 공략법, 개론서 공략법, 시간을 절약해서 독서 시간을 늘리는 법, 독서모임 운영법 등에서 그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안 한다. 대신 두 가지를 특별히 강조한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 당부와 더불어 읽는 것 따로, 쓰는 것 따로 하지 말고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으라고 조언을 한다. 

P. 32

 


 책의 2, 3부에는 '젊은 시절부터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책' 이라는 제목으로 항상 허기진 자유와 정신을 채워줬던 10권의 책을 소개하고, 지혜와 감동과 교훈을 준 15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 이후에는 스스로 해왔던 독서 노트의 일부분을 보여주며 어떤 글귀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자유가 억압받지 않았으며 정신을 이롭게 했는지 알려준다. 

 

 여러가지 방법론이나 책소개 등도 이 책에서 얻어갈 수 있는 좋은 지식들이지만, 무엇보다 크게 얻을 수 있었던 건 자유로운 독서였다. 베스트셀러나 고전 문학에 얽매이지 않고,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기민하고 풍족한 독서는, '부자연스러운' 독서를 하는 독자들이 필히 습득해야 할 자유로운 정신이었다.

 

 청춘의 열정은 아름답지만 세계의 질서는 냉정하고 차갑다. 그 온도 차이에서 오는 방황과 갈등이 바로 청춘의 빛나는 특권이기도 하지만 이제 막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 그들의 정신은 미숙하고 허약해서 늘 허기지기 마련이다.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만 그에 대한 답은 신통치가 않다. 그래서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그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게 청춘의 또 다른 아름다움일 것이다.

P.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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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글쓰기 - 치유하는 자기 이야기 쓰기
이남희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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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를 만나는 글쓰기」단언컨대 글쓰기는 가장 쉬운 힐링 방법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쓸 때의 설레임을 기억하시는지. 생일 축하라던지, 수줍은 고백, 안부 인사 등의 내용. 주로 편지글 형식이 되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라는 목적이 분명한 글은 진심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글은 분명 상대방에게 닿아 마음이라던지 어쩌면 영혼 같은 것을 끌어내어 영적인 만남으로 소통을 나눌 수 있다. 그 글 속에 담긴 것은 바로 솔직한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방법으로, 각자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같이 담배를 피운다던지, 술을 마신다던지, 취미를 공유한다던지 하는 방법이다. 나도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문예창작과를 나온 덕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기회가 많았는데, 선배든 후배든 동기든 누구나 할 것 없이, 소설, 시, 비평문이든 형식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의 특색이 아주 짙게 뭍어나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여태껏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있다. 바로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내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용도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표현하는 용도로만 생각했었다. 나는 과연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모르는 아픔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진 않은지.

 

 「나를 만나는 글쓰기」는 힐링을 절실히 요구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자세히 알고 치유할 수 있을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행을 떠난다거나, 멘토를 만난다거나, 요리, 운동, 영화 감상, 수다 떨기 같은 번거롭지 않은 방법으로, 혼자서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힐링을 말이다. 어쩌면 글쓰기가 위에 나열한 힐링보다 더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내가 글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글쓰기란 과연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남은 심리학자이다.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강제노동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기가 살아야 할 의미를 가진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이 끝난 뒤 프랭클은 삶의 의미 찾기를 핵심으로 한 심리요법 '로고테라피'를 만들었다. 프랭클은 "의미라는 것은 찾지 못했을 때 인간이 무너져 버리는 무엇"이라고 정의했다. 

 P. 27

 

 책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내린 해답으로는 글쓰기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반세기 전만을 비교하더라도 훨씬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겪는 고통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 아닐까. 주로 '삶의 의미'는 '일과 사랑'이라는 두 영역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에 이르는 중년 무렵에 찾아온다고 한다. 그때 필요한 지금까지의 나는 어땠나,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아보는 데 글쓰기란 가장 편리하고 적합한 방법이다.

 비록 당신이 아직 중년의 나이에 이르지 못했을지라도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면 충분히 해볼만한 방법이 아닌가?

 

 자, 그 다음 걱정 거리. 나는 자기 소개서나 보고서 외의 글은 전혀 써보질 않았어요, 라는 사람들도 걱정말고 책을 펼치길 바란다. 펜에 손조차 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여러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제시하거나 묘사문을 연습하는 형태로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가이드 라인이 제시되어 있다. 

 '내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나를 소개하는 글 쓰기', '최근 내 마음을 뒤흔든 사건', '공연히 싫은 동성 친구 묘사하기' 등을 부담없이 써내려가면 된다. 맞춤법이나 문법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만 볼 글인데 무슨 상관이랴?

 

 이렇게 탄생한 글들은 마치 다큐멘터리 속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어린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통해 심리 분석을 하는 것처럼, 나를 만나는 입구로 활용된다. '내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나를 소개하는 글 쓰기' 는 외면적인 나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진심을 알아낼 수 있고, '공연히 싫은 동성 친구 묘사하기'는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는 일들과 무의식에 숨어 있는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배설물을 배출하듯 내 안에 있는 글들을 토해내고 나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인물처럼 한바탕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면의 심연을 표출하는 행동. 번거로운 활동이나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는 글쓰기는, 단언컨대 가장 쉬운 힐링 방법이다. 



글쓰기로 자기 해방을 말하는 김영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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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力사전 - 세상을 읽는 힘
김동주 지음 / 종합출판(미디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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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력 사전」생각 주머니 비틀기

 

 

 

 사람마다 각자의 생각 주머니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은 말캉말캉, 모양이 자유자재로 변하는 유연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의 것은 금속과 같이 단단하고 굳건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 주머니는 외부의 변화나 지식의 유입을 통해 변하게 된다. 강한 인상과 맞부딛칠 수록 변화는 무쌍하다. 유연했던 주머니는 베베 꼬여 자국과 흉터가 남을 수 있고, 단단했던 주머니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부셔져 산산조각 날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 주머니란 꽤 변태적인 것이어서 부셔지거나 흉터가 남는 꽤나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더 해줘! 더 해줘! 라며 오르가즘이 담긴 비명과 신음을 내뱉는다. 그만큼 우리의 두뇌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과 통렬한 비판, 신선한 위트를 즐긴다. 평소와 다른 무엇을 경험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일탈을 꿈꾸는 이유고 책을 읽는 이유도 된다.

 

 「인문력 사전」은 여태껏 인문 서적에서 보지 못한 신선한 구성에 새로운 지식을 담아냈다. 'ㄱ' 부터 'ㅎ' 까지 사전 형식을 차용해 단어에 대한 현대 사회를 풍자, 위트, 독설 등을 담아냈다. 이러한 인문 내용과 배열형식은 이미 100여 년 전에 미국작가 앰브로스 비어스가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악마의 사전」을 통해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단어 하나에 담긴 새로운 사고방식,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유머, 직설적인 독설, 위트 넘치는 풍자는 새롭게 맛볼 수 있는 달콤한 두뇌적 유희임이 틀림없었다. 

 


 

 「인문력 사전」은 꽤나 냉소적이고 공격적이다. 또한 여자에 대한 일관된 부정적 인식은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사전'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곳곳에 위트가 넘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 고질병으로 남아있는 편견과 편협한 사고방식, 고정관념을 꼬집어 속 시원히 말해주는 우리의 '마음 속 주둥이'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머리 속으로 느끼고 있어도 함부로 입 밖으로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나의 생각 주머니 관통하는 사전의 무차별적인 지식 공격으로 다가온다.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사전'이 서사적인 구성을 띄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첫 장부터 순서대로 끝가지 읽기엔 부족한 감이 있지만, 시간이 틈틈이 비었을 때 마치 명언을 읽듯 한 단어, 한 페이지 씩 읽어 정신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엔 충분하다. 혹은 단어에 대한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을 때, 인터넷 검색창을 대체해 줄 수 있는 책이 되리라. 

 이 '사전'은 잠깐의 시간동안 화장실에서 읽기 좋은 책인만큼, 오래 머물러 썩어갈 지경에 이른 생각과 시각을 배출하기에 좋은 변기 같은 책이다.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 현대레알사전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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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삼국지 인물 108인전
최용현 지음 / 일송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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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삼국지 인물 108인전」삼국지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e-book)


 


 

 나는 삼국지를 무척무척 좋아한다. 만화로만 읽은 삼국지의 종류가 적어도 10가지 이상은 되고 삼국지 연의를 바탕으로한 소설과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편찬된 삼국지 정사, 자치통감을 심심할 떄마다 뒤적였으며 삼국지를 주제로 공개된 게임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초등학교 때 만화책으로 처음 접한 삼국지를 그야말로 원 소스 멀티 유즈1로 성인이 된 지금까지 즐기고 있다.

 

 삼국지는 크게 2가지로 나뉘어 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연의가 하나이고, 진수가 쓴 위서, 촉서, 오서를 통틀어 말하는 정사 삼국지가 하나다. 두 개의 삼국지는 허구로 구성된 소설이라는 점과 실제 역사서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겠지만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 바로 구성의 차이다.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는 시간 흐름의 순서대로 전개되는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이지만, 정사 삼국지는 시간의 흐름을 배재한 채 인물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인물 열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위서는 위나라를 창업한 조조전부터 시작해서 그의 아들 조비전, 손자 조예전으로 이어지고 촉서는 유비의 종친으로 알려진 유언전, 유장전과 그 다음 유비전으로 이어진다. 「삼국지 인물 108인전」도 바로 정사 삼국지와 같은 구성으로 엮어져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SBS에서 방영된 K팝 스타에서 양현석 심사위원은 이런 말을 했다. 출연자가 타이거JK와 비슷한 랩을 보여주고 아무런 색깔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타이거JK의 랩을 듣지 출연자의 랩을 들을 이유가 어디있겠느냐 하는 말이었다.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삼국지 인물 108인전」이 정사 삼국지와 똑같은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아무런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정사 삼국지를 재치고 「삼국지 인물 108인전」를 읽을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의외로, 「삼국지 인물 108인전」를 읽을 이유는 정사 삼국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사 삼국지는 삼국지에 관해 아주 지극한 관심이 있지 않은 독자가 보기에는 너무 딱딱한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정사 삼국지에는 인물들의 출생이나 친척 관계, 식읍 등이 알아보기 힘든 단위로 일일이 열거되어 있는 한편 생전 듣도보도 못하고, 앞으로 알지 못하더라도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의 열전까지 포함되어 있다(이선, 윤묵, 맹광, 내민 이런 인물들을 아시는가?). 

 그에 비해 「삼국지 인물 108인전」은 삼국지를 읽는 데 꼭 필요한 인물 108인을 뽑아 알기 쉽게 나열해놓았다. 삼국지를 이야기하며 꼭 언급해야 할 인물들과, 놓치기 쉬운 인물들을 꼭꼭 모아놨고, 그들의 에피소드와 활약을 쉽게 축약해놓았다. 삼국지를 알지 못하는 독자라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고 전반적인 흐름을 관찰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건 단순히 시간적 흐름으로 쓰여진 소설을 읽는 방법과 차별화된, 삼국지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삼국지 인물 108인전」의 또 다른 특징은,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가 주장하는 정통성에 중간 단계에 위치했다는 점이다. 삼국지 연의의 경우는 유비를 정통으로 세우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정사 삼국지의 경우는 조조를 정통으로 세우며 인물들을 언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 연의의 경우엔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인물들이 거의 신격화 되어 있고 조조는 악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고 정사 삼국지의 내용을 그대로 믿기도 힘들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는 법이기 때문에 조금의 왜곡은 불가피하다고 봐야 한다. 위서, 촉서, 오서 중 위나라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촉나라의 존재에 관한 촉서가 분량이 가장 적은 것만 보더라도 촉나라를 차별하는 것을 볼 수 있다(워낙 촉나라의 인재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하나의 사건, 전투, 인물, 에피소드에 관해서도 일일이 입장이 바뀌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일관적으로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 「삼국지 인물 108인전」는 이 가운데에서 두 가지 입장을 모두 살펴보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그렇다면 사실과 근접한 이야기는 뭘까를 충분하고 면밀히 말해주고 있다. 실제 역사와, 소설 사이에서 헷갈려하는 독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저자의 배려라고 할까? 

 

 이제까지 언급한 「삼국지 인물 108인전」의 특징을 요악하자면 이렇다. 정사 삼국지의 구성인 인물 중심 구성을 따르고 있다. 정사 삼국지보다 쉽고 알아보기 쉽게 적혀있다.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의 입장을 두루 살펴보며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3가지 특징만 살펴보더라도 「삼국지 인물 108인전」는 기존의 삼국지 팬과, 그렇지 않은 독자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더군다나 인물 중심의 읽기 쉬운 삼국지의 등장은 쌍수들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삼국지를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이야기가 중심이냐, 인물이 중심이냐의 선택! 그것은 이제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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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의 소스(source) 즉 하나의 컨텐츠(contents)로 여러 상품 유형을 전개시킨다는 뜻.
[네이버 지식백과] 원 소스 멀티 유즈 [one-source multi-use] (영화사전, 2004.9.30, propag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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