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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범인인가 -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범죄사회를 말하다
배상훈 지음 / 앨피 / 2015년 3월
평점 :
[범죄/서평] 「누가 진짜 범인인가」 요괴와 퇴마사

평소에 TV를 잘 보지 않는데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다. 특히 <그것이 알고싶다>는 혹시나 놓친 '그것'이 있을까 지나간 회차까지 다시 둘러볼 정도로 흔히 말해 광적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짚어내는 집중력이나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구성 또한 무척 훌륭해 어쩌다 결방이라도 하는 날에는 화장실을 갔다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개운치가 않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강력 범죄를 다룬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사건들은 방영 막바지에 이르면 항상 공권력의 무능력함과 무책임함을 겨냥하며 사회적 문제로 이끌어 나가곤 한다. 그 단 하나의 범죄, 단 한 명의 범인을 잡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와 모순적인 사회 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제 2의, 제 3의 피해자는 또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님의 「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영상에서 글로 바뀐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기분이다. 게다가 더욱 전문적이고 더욱 날카롭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보니, 대학 초년생 시절 꿈꾸었던 사회정의는 범죄자 몇 명을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우고 사회에서 격리시킨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짓밟히는 사람은 여전히 짓밟히고 억울한 사람은 억울함을 풀기 어렵다.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탐욕스런 자본가들은 수천억, 수조 단위의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이 사회에서 갑 행세를 하고 있다. 인권위원회, 노동청, 경찰서 앞에 가 보라. 억울함을 호소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는 사람들이 줄을 잇지만, 기득권과 연결된 범죄 수사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묻혀 버리기 일쑤다.
P. 25
「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을만큼 익숙해진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의 뿌리이자 근원지를 바라보고 있다. 전국민적인 비극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사건은 물론 가장 최근에 인육의 공포를 다시 되살린 수원 팔달산 토막 살인 사건까지, 지금 우리 곁에 발생하며 우리를 갉아먹고 있는 치명적인 강력 범죄를 다시 돌아 본다. 사이코패스 · 소시오패스 등 우리사회가 길러 낸 괴물들과 그를 쫓는 프로파일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판타지 소설 「퇴마록」 연상된다.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세상에 원한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는 요괴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스스로 사람이라는 존재와 멀어지는 퇴마사의 모습. 친딸을 성폭행한 아버지, 연쇄강간범, 재미로 사람을 살해한 살인범, 불을 지르고 사람이 타 죽는 것을 구경한 방화범, 의붓자식을 잔혹하게 학대한 계모 등의 모습을 바라보면 요괴를 연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적 관계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공적 관계 즉 '사회'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으며, 인간의 재생산도 가능하지 않다. '사회' 없이 살아도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삶이 바로 소시오패스의 삶이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P. 94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서 언급되는 범죄의 일면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저렇게 됐을 수도 있다' 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저런 무서운 범죄에 휘말려 피해자가 되는 생각보다 내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사회라는 악령에 홀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나도 경악할만함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더 무서웠다. 과연 내가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 속의 분노를 달랠 수 있었을까?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서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 대해 우리는 어렴풋이 정답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진짜 범인과 마주할만한 용기가 있을까?「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가치가 부숴지지 않도록, 또한 나조차 그에 따라 파괴되지 않도록 범죄라는 사회와 맞서 싸울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이 실험은 이전까지 학자들이 집중했던 범죄의 생물학적 요인이나 심리학적 요인 등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특정 상황에 놓이면 충실한 역할(행위)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특별한 누군가가 '범죄자' 혹은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범죄자' 혹은 '악인'이 될 수 있다!
P.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