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 - 그림 속으로 들어간 마술사들
오은영 지음 / 북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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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평]「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인생의 프레스티지




 고등학생 때 여자친구와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를 봤다. 연애 초기 단계였던 그때는 영화의 내용이야 무엇이든 상관없으리 그저 같이 있기만 하면 좋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니 그 마술같은 세계에 흠뻑 빠져 여자친구에게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물론 보고 나서야 이런 좋은 영화를 정신적으로 공유 했다는 사실에 즐거웠다. 프레스티지라는 단어는 영화 첫 장면에서 설명이 나오는데, 마술의 3단계 중 조우, 대전환에 이은 마지막 단계 대단원을 뜻한다. 프레스티지에서 중요 마술로 등장하는 '순간이동' 마술로 예를 들자면 사라졌던 마술사가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짠! 하고 나타나는 그 순간이 바로 프레스티지다. 서로의 마술 비법을 캐내기 위한 휴 잭맨과 크리스천 베일의 갈등이 무척 흥미진진하고 배우들의 역량 또한 매우 뛰어나다. 두 주인공이 마술과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려는 치열한 경쟁은 정말 볼만하며 관객들을 위해 마련된 반전의 '프레스티지' 역시 굉장한 즐거움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가진 힘을 느낌과 동시 알게 모르게 한낱 유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마술이, 인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양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에 정치적인 힘을 발휘했던 주술부터 20세기 대중오락으로 진화한 마술쇼까지 마술은 정치, 사상, 학문, 예술, 상업, 오락, 일상생활, 개인의 내면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에 관여해 왔다. 마술의 이러한 모습은 인간사의 모순적인 모습들과도 닮아있어 자연과 초자연, 정치와 종교,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드는 모호한 사회적, 철학적 경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P. 9 

 

 「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는 여태껏 마술과 미술의 콜라주로 만들어진 인문학 도서가 없었기 때문에 마치 세상에서 단 한 명의 마술사만이 할 수 있는 마술처럼 유니크한 책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마술이라는 행위를, 내가 영화 <프레스티지>를 보기 전에 생각한 것과 같이 그저 구경거리라고만 생각하며 '인문학'이라는 양식의 옷을 입은 걸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아마 20~30대 남자의 경우 과거에 한 번씩은 마술을 배우려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은결이라는 인물이 유명세를 타며 마술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마술이 가지는 감정의 놀라움으로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남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나 역시 좋아하던 선배에게 마술을 선보이며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했지만 그 선배의 전 남자친구가 직업 마술인이라는 사실을 듣고 다시는 마술에 손을 대지 않았다. 어쨌든 마술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이 공포이든 신기함이든 분명 그것에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사람의 감정을 겨냥하고 움직이려는 시도는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 장르와 닮았다. 미술과 마술은 철자 외에도 닮은 점이 있는 것이다. 특시 제7의 예술이라고 불리우는 영화의 모태가 마술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인공 빛을 오목렌즈에 투과시켜 그림이 그려진 작은 유리 슬라이드에 쏘아 스크린에 투사하는 매직 랜턴을 통해 공포스럽고 으스스한 마술쇼를 선보였고 이를 판타스마고리아라고 이름 붙였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19세기말에 등장한 영화의 기술적, 내용적 기원으로 판타스마고리아를 지목한다. 현대에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각광받고 있는 영화와 모태가 마술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마술과 미술이 나란히 선다 해도 큰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마술이 창녀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공연이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아주오래전부터 인류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판타스마고리아는 낯선 언어가 되었지만 놀이공워원의 유령의 집에도, 대형스크린에 비치는 영화에도 판타스마고리아 쇼의 흔적은 여전히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믿게 되는오싹오싹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 그것이 바로 판타스마고리아의 유산이다.

P. 70 



 「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이 끝날 때 쯤 나오는 마술의 3원칙을 살펴보자.


 하워드 서스톤의 3원칙

 1. 마술을 연기하기 전에 현상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2. 같은 마술을 2번 반복해 보여서는 안 된다.

 3. 마술의 비법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P. 243 


  앗, 이거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우리 인생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떨까?


인생과 운명의 3원칙

1. 인생을 살기 전에 운명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2. 같은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다.

3. 운명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어떤가? 무척 비슷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프레스티지>의 두 주인공처럼 서로 속고 속이며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려는 결정적 한방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다. 마술은 속이는 과정, 속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마술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따지며 하염없이 마술사의 손짓만 바라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마술이 주는 즐거움에 온전히 빠질 수 없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설령 운명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게 바로 우리 인생의 '프레스티지'를 완성하는 마술과 같은 트릭 아닐까? 


 마술쇼를 찾는 관객들이 어떤 마술에 즐거워하고 놀라워하며 마술쇼를 통해서 어떤 시간을 추구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마술사 개인의 쇼의 질을 높여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함은 아니다. 그보다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해보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여가를 즐거운 시간으로 꾸며주기 위해 노력하는, 다분히 공동체적인 실천이라고 자부한다.

P.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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