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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의 즐거움 -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수집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두리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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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수집의 즐거움」 행복을 모으는 사람들




수집의 즐거움 - 
박균호 지음/두리반


 군시절 후임에게 소설 책을 빌려줬는데 물에 흠뻑 젖은 채로 돌아왔다. 종이가 불어 글씨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고 후임은 내 어처구니 없는 표징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나는 군기확립이 철저한 군인이었다. 후임이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후임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책이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고 파손이나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고 소중히 하는 사람들은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들은 책 모서리를 접는 모습으로 보고 기겁하는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은 그렇게 취향이 다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다르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배려와 존중 사이에서 태어난 책이 바로 「수집의 즐거움」이다. 


 일본의 문예평론가이자 미술 수집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으려는 마음이야 딱히 어느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애초부터 존재하는 바"라고 말했다. 기성세대가 어렸을 때 구슬과 딱지를 모으고, 요즈음 아이들이 포켓몬 카드를 모으는 것을 보면 수집이라는 것이 어느 몇몇 사람의 유별난 취미 활동은 아니며 다만 그 대상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의 문제라고 김근영 씨는 말한다.

P. 159 

 

 

 수집가들의 이야기는 보기에도 즐겁다. 괴담을 수집하는 작가의 이야기나 청첩장, 콜라병, 연필 등 가지각색의 수집품들이 곧 인간의 마음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난 이걸 좋아해, 그래? 난 이걸 좋아해.

그들이 좋아하는 물건의 가치와 좋아하는 마음의 가치를 저울질하며 '수집'이라는 개념을 바라보는 올바른 자세가 뭔지 어렴풋이 떠오른다. '수집가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책의 발단이 재밌어서 이야기는 끈기를 갖는다. 제3자가 보기에도 희귀한 물건을 구했을 때는 같이 환호성을 지를만큼의 공감과 절정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볼 거리는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쏟아 내는 사람, 연애의 감정과도 비슷한 그 사람들의 마음이다. 


 톰 시버의 카드를 구하지 못해서 애를 태울 당시 토니 김은 톰 시버의 카드만 구한다면 카드 수집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작정했다고 한다. 토니 김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카드를 구입했는데 톰 시버의 전 세계 한 장 한정카드가 나와서 도시 한복판에서 미친 사람마냥 소리를 질렀다. 그에겐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다름없는 행운이었다. 

P. 77 



 수집가들의 특이할만한 공통점은 거의 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생의 즐거움이 정해져 있으니 구태여 술과 담배에서 즐거움을 찾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보통의 편견처럼 '수집'에 몰두하여 '일상'에 소홀하기 보다는 '수집'을 위해 '일상'을 꼼꼼히 챙긴다. 우리는 뭔가 소중한 것, 이를테면 가족이나 꿈 같은 것을 위해 힘겨움을 참아낸다. 수집가들은 그 소중한 목록에 '수집'이 추가돼 있을뿐이다. 그 목록은 오랜 시간 바람을 견뎌 낸 바위처럼 흔들림없이 확고하다. 

 책에 소개된 수집의 스케일이 크지 않다는 건 삶의 행복 또한 한 아름 안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같다. 삶에는 흔히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커다란 보답을 행운이라 하는데 이것이 과하면 오히려 불행으로 다가온다. 반면에 수집이라는 작은 노력은 쌓이고 쌓여 어느날 바라보면 행복으로 바뀌어 있다. 그들이 모으는 것은 모두 다르지만 '행복'을 수집하고 있다는 점은 같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 행복. 수집가들이야말로 삶이라는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내고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수집가다"라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처럼 김근영 씨에게는 콜라 컬렉션을 소유한다는 자체가 최고의 행복이고 만족감을 준다.

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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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0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보면 예전에 거들떠보지 않은 사물들도 수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마치 서평집을 읽으면 글쓴이가 읽은 책을 가져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요. ^^
 
사계절 걷기 좋은 서울 둘레길 - 서울.수도권 한나절 걷기 여행 코스 60
강세훈.이강 지음 / 비타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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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평] 「사계절 걷기 좋은 서울 둘레길」 인생 걷기의 시작





사계절 걷기 좋은 서울 둘레길 - 
강세훈.이강 지음/비타북스


 인생을 어떤 행위나 사물에 비유할  나는 글쓰기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글을 쓰는 행동 자체에서  인생을 써내려 가고 있다는 다차원적인 느낌을 받았다한마디로  설명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아마 사람마다 '인생과 닮았다라고 느끼는 일들이 있을테니 대부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그밖에 '인생' 비유할 것이  있다면 요즘에는 '걷기' 생각하고 있다어느덧 3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지금까지 전력으로 뛰어왔다면 이제는 조금 속도를 늦추고 걷기 시작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 문득문득 든다(혹자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주위는 확실히 이전보다 조금 느리게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다예전에는 출근길 사람들로  들어찬 버스 안에서 보이지도 않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제는 도착지가 조금 멀게 느껴지더라도 천천히 느린 속도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느긋하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 '걷기' 그런 느낌이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걷기 초보들은 좋은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걷는다라는 진취적인 행위 자체에 기쁨을 느끼거나 가까이에 있는 우리 동네매일 걷던 길에서 새로운 기쁨과 평소 보지 못한 즐거움을 발견하고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등과 같은 고급 기술(?) 무리다. '걷기좋기로 유명하고 여태껏 많은 사람이 걸어 오며 증명된혹은 걷기 고수들에게서 입증된 둘레길부터 시작하는  가장 옳은 방법걸음마를 떼는 방법이 아닐까.

 

 걷기 여행은 향이좋은 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듯자연과 함게 걸어가며 내면을 돌아보는 힐링여행입니다이제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서울 도심의 현대적인 풍경 속에지닌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을 살피고서울 외각과 수도권의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 자연을 한껏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P. 5 

 

 「사계절 걷기 좋은 서울 둘레길」은 초보를 위한 배려가 가득한 둘레길 가이드 책이다. 2015 개정판에 맞춰 최신 정보와 새롭게 조성된 둘레길 코스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다시작점과 도착점에 가까운 대중교통이나 난이도볼거리화장실 등의 정보주의해야  코스  주변 즐길거리 등이 힐링이라는 이유로 집을 떠나기에 충분한 바탕이된다특히  가장 뒷페이지에 있는 서울 둘레길 스탬프 투어라는 코너로  둘레길 마다 설치되어 있는 스탬프 시설에서 스탬프를 찍을  있는 페이지는 둘레길 정복(?) 동기를 부여하는 흥미진진한 콘텐츠이다모든 스탬프를 찍은  서울시 자연생태과를 방문하면 '완주인증서' 발급해준다고 하니 「사계절 걷기 좋은 서울 둘레길」과 함께 '걷기인생' 시작해 완주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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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의 비밀 - 초등4~중3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요즘 사춘기' 설명서
김현수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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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녀교육/서평]「중2병의 비밀」내 아이가 아프다면



  

중2병의 비밀 - 
김현수 지음/덴스토리(Denstory)


 나는 자녀 교육에 참 관심이 많다(여자친구도 없는 주제에). 독서지도사 생활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얻어야 했던 지식과 정보들이 관심으로 바뀌고, 내가 어렸을 때 받은 교육에 대한 회의가 느껴져서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배우고자 했다. 독서지도가 보통 유아나 초등부를 대상으로 하고 그동안 교육에 관해 읽었던 책 대부분 역시 같은 대상과 입시에 대한 책이었기에 일명 '중2병'을 앓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생소한 편이었다. 내가 과연 '중2병'을 앓고 있는 사춘기 자녀가 있다면 나는 과연 현명하게 그 우환(?)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의 아이들은 내가 자랄 때와는 다르고 내가 자녀를 키울 때쯤이면 또 지금과는 다를 게 분명하다. '아이들은 다 알아서 자란다' 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중2병의 비밀」​의 내용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다.

 

 김정은이 남침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2병'이 무서워서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만큼 현재 우리 아이들이 앓고 있는 중2병은 무척 무섭다.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싸우자 귀신아>에서 중2병을 정의하길 중2병이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고독하며 세상을 등진 존재라 여기는 증상'이라고 한다. 사춘기는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여서 긴장과 불안이 넘치기 때문에 올바른 길잡이가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은지 어림짐작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엄마 아빠는 너밖에 없어" 을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도 모른 채 아침마다 그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부모를 보면 얼마나 소통이 안 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특히 자녀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고 뭐든지 부모의 뜻대로 자지우지 하려는 모습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모습으로 보인다. 그들이 이제 막 부모의 품을 벗어나 하나의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개채로 인정할 때 사춘기, '중2병'의 처방은 시작된다.




 가족이라는 구성은 아무리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얼굴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상호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아이나 부모 둘 중 하나가 아침에 화를 낸다면 그 화가 그날 저녁까지 감정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는 일이 곧 나의 행복을 지켜주는 처방과도 같다. 대부분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학교라는 공간에 소속되는 이상 중학생이라는 신분은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고 중2병은 필연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중2병은 불치병이 아니다. '중2병'으로 파생되는 정신적인 질환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가족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2병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조치할 수 있는 그 비밀을 안다면 우리 가족의 정신 건강을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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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대로도 좋아 - 해다홍의 일상공감 에세이툰
해다홍 지음 / 미디어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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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서평] 「그냥 이대로도 좋아」 기록이라는 특별한 주문


 


 짐 캐리가 열연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트루먼 쇼>는 배우의 역량은 물론 '나의 일상이 전세계 생중계 되고 있다' 라는 약간 중2병스러운 설정이 무척 참신하고 철학적이어서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 독특한 세계관을 바라보며 한 가지 들 수 있는 의문은 과연 평범한 남자의 일상이 전세계 생중계 될 정도로 콘텐츠적 가치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내가 느끼기에 나의 일상은 무척 반복적이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일상이 곧 재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재적으로 마음에 들어왔다. 에세이도 의외로 일상을 다룬 에세이가 재밌다. 무언가 가르침을 주려하고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에세이는 부담스럽기만 하고 재미도 없다. 딱히 마음 속에 와닿는 것도 없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도 부담없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책을 배우기 위해 읽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책은 첫 번째로 재밌어야 읽을 수 있다. 해다홍의 일상공감 에세이툰 「그냥 이대로도 좋아」​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이지만 담백하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페이스북 '좋아요'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엄만 어떻게 그렇게 버티고 살았어?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

  "나도 미리 알았다면 못 살았을 거야."

P. 51 


 사람은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을 통해 본인의 존재를 확인한다. 해다홍의 「그냥 이대로도 좋아」​를 보고 있자면 그런 존재에 대한 느낌을 확실하게 받는다. 나만 세상 살이에 힘든 줄 알았더니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다. 힘든 세상에서 나와 같이 각자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 역시 있구나 하는 생각에 별 것 아닌 일인데도 마음이 벅차다.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없을 때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건 재밌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다.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없다는 말은 물리적인 능력 이외에도 이렇게 정신적인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


 말로 다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기엔 글이 최고인 것 같다.

P. 176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된 그림 일기가 매일 똑같아 보이진 않는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쳇바퀴만 도는 것 같은 착각에도 인생은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었다. 일기로 하루하루를 기록한다는 건 내 일상이 특별해지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기억하려하면 일주일 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일기에 기록된 내 삶은 분명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내 안에 쌓여 있다. 내 인생에 아무런 특별한 일이 없을 거 같은 기분이 들 때, 나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해다홍의 그림 일기는 이대로도 좋다는 응원을 해준다. 


 나는 내 인생을 0.001% 시청률의 드라마라 비유하고 싶다.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주인공이니까. 웅장한 배경음악을 깔면 스스로 머쓱해질 때도 있고 역할에 심취하기엔 심심할 정도로 평범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난 언제나 중심에 있다. 가끔 본인이 타인의 드라마에서 엑스트라인 것 같아 우울해질 때 오로지 나만 연출할 수 있는 드라마로 돌아오자.

 P.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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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쓴 편지 - 붓다처럼 걸어간 1600리 길, 그 위에서 나눈 묵상
호진.지안 지음 / 불광출판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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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서평] 「성지에서 쓴 편지」 당신의 위로는 어디에 있습니까?



 

성지에서 쓴 편지 - 
호진.지안 지음/불광출판사


 가족이나 친한 지인 중에 종교에 깊이 빠진 사람이 없어서인지 적극적으로 권유를 받아본 적도 없고, 종교를 믿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고등학교 때 드럼을 배우려는 불온한(?) 의도로 잠깐 교회에 다닌 것 말고는 특별히 종교를 찾은 일이 없다. 평소에 즐겨 보는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믿을 수 없는 사건·사고로 어쩐지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지기도 했다. 또한 웹서핑을 하다보면 종교를 믿는 일로 우월감을 느끼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생각은 틀린 생각이라 치부하며 자신의 신을 믿지 않는 것을 우매한 정신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종교에서 얻을만한 건 뭘까? 각각의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적 존재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더라도 가슴 속 어딘가에 무언가 의지할만한 존재를 간직하는 일만은 가치 있는 일 같다. 물에 빠졌을 때 기도하며 동아줄이 내려오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용기를 부여할만한 그런 존재가 나에게는 신이 될만하다. 


 몇 년 전 어떤 책에서 "진실의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무릎이라도 칠 만큼 기뻤습니다. (…) 신격호와 전설이 싯다르타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죽이고 있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한때는 우리에게 그런 요소들, 그런 표현 방법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같은 것들이 싯다르타를 역사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P. 27 

 

 편지는 그런 면에서 종교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알겠지만 훈련소에서 받는 편지 한통의 위력은 대단하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온전히 담겨 오랜 시간 정성들여 쓰인 편지는, 요즘에 스마트폰으로 1초면 보낼 수 있는 메신저의 메시지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비로소 힘을 낼 수 있는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게 하는 도구가 바로 편지다.「성지에서 쓴 편지」​는 불교와 붓다(석가)라는 신념으로 굳게 묶인 호진 스님과 지안 스님이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그들의 편지에는 편지에서 얻을 수 있는 그리움이 담겨 있고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의지 또한 빼놓지 않았다.


 뒷날 싯다르타가 소나 비구에게 거문고의 비유로써 설명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문고 줄은 지나치게 팽팽해도, 반대로 지나치게 느슨해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지 않습니까.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줄이 적당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수행을 위해서도 두 극단에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P. 84 


 호진 스님이 붓다의 뒤를 따라 떠난 1,600리 순례 길 여정은 무척 고단한 길이라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 호진 스님과 지안 스님의 불교에 대한 태도는 굉장히 겸손해 놀랄만하다. 그건 바로 깨달음이 '고행'에 있지 않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붓다 역시 고행이 깨달음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그것을 전파하려 발을 돌렸다. 역사와 신화가 된 붓다의 모습을 현재에 맞춰 형상화 시키는 모습은 그들의 성지가 '고행'이 아니라 이미 마음에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해골물로 유명한 원효 스님 역시 모은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았나. 편지로 주고 받은 그들의 생각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의 성지, 그 위안의 장소 또한 보이는 것만 같다. 


 종교는 자칫 교조의 역사를 미화시키기 위해 허구적이고 초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설화들이 가지는 전설의 상징성을 잘못 받아들이면 맹신에 빠져 문제가 생기지요. 결과적으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의해서 오도되어 그릇된 종교관과 인생관을 가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오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간자의 역할이 있어야 하고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도와주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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