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장사수완이 익히 알려지긴 했지만 실 예를 본 일은 드물었다. 가히 '신화'라 불릴만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200년 내력을 기록한 <로스차일드 신화-세계 금융의 지배자>는 개미투자자들이 우러를만한 '돈 불리는 비법'을 적고있다. 개성상인들도 말했다는 '돈 쓰는 법'과 '돈 지키는 법'역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 일개 가문의 가계 흐름도에서 재계의 '보이지 않는 큰 손'을 가늠해 보는 일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한국형 재무관리 시스템의 최초 설계자라 할 수 있는 개성상인은 돈에 대한 개념을 크게 세 가지로 정의했다. 돈은 모으는 것(접전)과 쓰는 것(용전), 그리고 지키는 것(수전)이 그것이다. -<행복한 가족 경제학>에서 

재산을 지키려면 돈을 벌 때보다 열 배는 더 용감하고 신중해야 한다.-<로스차일드 신화>

돈과 신용에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한반도의 상업을 이끌었다는 개성상인과 바다건너 번성한 유대인의 경제개념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확연한 차이점으로 돈을 바라보는 안목을 달리한다. 

유대인 특유의 인내심과 위기대처법, 발빠른 정보 선점, 로비 기술, 핍박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의지 등이 일구어낸 성과는, 유대인 격리 지역의 날품팔이에서 유럽과 미주권의 자원시장을 흔드는 큰 손이 되기까지 로스차일드가는 총 8대를 거친다. 

온갖 풍파를 겪고 윌리엄 황실의 재정 관리인이 된 왕조의 창시자 로스차일드는 훗날 금융왕조의 설립을 위한 규정을 유서로 남겼다. 그 중 '가족은행의 중요한 직책은 모두 로스차일드 가문의 직계 남성이 담당한다.''가문의 재산이 분산되지 않도록 친적끼리 혼인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지나칠만치 폐쇠적인 그들만의 가문색을 만들어낸다. 암호로 중요한 정보를 주고 받는 일은 사신을 따로 둘 정도로 비밀유지에 애썼다. 

여전히 건재한 로스차일드 금융 그룹,(사진 출처;http://www.rothschild.com/)  
'한낱 바람이라 할지라도 그 냄새를 맡아봐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그들은 육감을 동원했다.

'신화'라고 긍정적으로 포장되긴 했지만 가문 번성의 주를 이루는 비법은 다름아닌 '편법'과 '투기'였다. 이른바 '열쇠인물'로 불리는 로비대상을 통해 최상위계층을 공략하는 전술!, '거리가 피바다가 될 때마다 나는 매입했다'는 전쟁을 이용한 투자, 왕실의 자금을 이용해 밀수로 끌어모은 돈, 정보의 선점과 주식의 시세를 이용한 막대한 차익 등, 이른바 뒷거래를 일삼았지만 '그들만의 도덕개념'은 확고했다. 

어쩌면 세상의 많은 부자들이 서민들처럼 월급과 수익의 저축, 정직한 투자만으로 돈을 불렸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펼친 묘기에 가까운 돈 굴리기 재주는 미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번듯하게 인정되는 것이었다. '자본'에 한해서는 도덕 개념이 따로 쓰여져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얄굿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에 반해 신뢰와 무차입 경영을 모토로 했다는 '개성상인'은 근검절약, 정직과 신용, 그리고 부채 없이 사업을 경영하고자 했던 핵심가치를 지녔다. '무차입 경영'이라면 '남의 돈으로 장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로스차일드가가 윌리엄 왕실의 자금을 차관형태로 융통해 몰래 손에 쥐고 있다가 그 액수를 몇 달만에 불렸던 사건에 비한다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신중한 태도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건 도박에 가까웠고 그들, 로스차일드가에는 끝없는 행운이 따랐던 것 같다. 어떤 변수도 위험요소도 발생되지 않았거나, 그들의 위기대처 능력이 출중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들에게 경제흐름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대기업들의 경영원리는 어느쪽에 가까워야 할까. 이윤을 본다면 당연히 '로스차일드'를 본보기로 삼아야겠지만 도덕적 신뢰경영이라면 '개성상인'을 본받아야 옳다. 핍박의 역사 속에서 이중장부가 하나의 탈출구가 되었던 유대인처럼 할 수도 있겠지만, 거래사실에 대한 객관적 기록을 중요시했던 개성상인의 자세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들 사이의 빠질 수 없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장기적 신뢰구축을 경영의 제 1모토로 여겼던 개성상인의 후예들은 수익의 사회환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로스차일드가 역시 지역의 복지에 힘쓰거나 참혹한 억압에 시달리는 유대인 동포들의 정착을 도왔던 시오니즘의 기둥이 된다. 이런 인본주의에 가까운 경영이념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변함없는 명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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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 예수의 역사 모두 '종교'라는 사명보다는 '역사'라는 거짓말을 농후하게 포함시켜 왔다. 

'역사는 모두 헛소리다' -헨리포드
'역사는 승리자가 자신을 위해 기록한 것'-<세계를 속인 거짓말> 서문에서

이미 한몸으로 지칭되어왔던 기독교와 예수를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로 방점을 찍어보자. 확실히 기독교의 역사는 예수 탄생 이후이므로 충분히 가능한 명제다. 굳이 교회에 나갈것도 없이 예수가 전하는 신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다는, 다소 불안정한 가능성도 제기해보자. 그렇다면 기독교를 향해있던 의심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

혹시 일종의 기독교라는 사업계획 안에 예수가 가장 적절한 인물로 채택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화적, 정치적, 집단적 산물이 신의 말씀과는 방향을 달리할 수 있다는 여실한 가능성으로, 위선적인 교인들이나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다소 폭력적인 슬로건을 향한 예민한 반응을 거두어본다. 

한 마디로,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예수 모독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기독교에 대해 '사람의 잘못'을 조금 짚어보고자 하는 것 뿐이다. 로마가 국교로 기독교를 채택하면서 제외한 복음들은 정확히 정통파와는 대결되는 것이었다. 정치적 결정이 신성을 내세우는 종교에서도 이루어지면서, 기독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히람의 열쇠와 프리메이슨>은 콘스탄틴누스 대제가 '공식'성서에서 누락시킨 <도마복음>의 구절들을 증인으로 세운다. 로마교회가 차기 지도자로 선호했던 인물은 예수가 지목한 야고보가 아니라 베드로였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을 편집하는 '종교 만들기' 작업이 시작된다. 신약성서에서 야고보의 말씀 역시 누락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절차였다. 

더욱 중요한 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 알고 있었던 '예수'가 사실, 두 아들 중의 하나였고 둘 모두 구세주 또는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점이다. 따라서 둘은 모두'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게다가 둘 중 의인으로 불리며 당대 더 낳은 평가를 얻었던 건 예수가 아니었다. 

한 명은 십자가 위에서 죽고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죽지 않았던 자가 야고보, 바로 둘 중 더 낮았지만 평가는 더 높았던 자였다.
 -<히람의 열쇠와 프리메이슨>에서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교환되었는지, 대체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다는 사실도 처음이지만 그런 불씨가 제공되는 고고학적 사적이 존재한다는 건 더 놀랍다. 의도적 탈락이 잠시 진실을 가리긴 했지만, 그건 고양이털을 숨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대단한 사실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주로 백인의 훤칠하고 반듯한 인물로 그려졌던 예수의 외향에 대한 숨겨진 기록 역시 역사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거짓말의 단면을 입증한다.  

평범한 외모에 진한 피부색, 작은 체구, 3큐빗의 키(약140센티미터)긴 얼굴에 곱사등이, 코가 길고 눈썹이 맞붙은 성인 남자, 성성한 머리카락은 머리 가운데에서 나뉘고 나사렛인의 태도에 빈약한 턱수염을 가진 자로, 무서운 인상을 풍긴다.
 
신약성서에서 제외된 <요한 행전>에서도 예수는 '작은 체구의 남자'로 기록되고 있었다. 신에 버금갈만한 인물에게 아름다운 용모나 큰 키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예수를 신으로 섬기게 하기 위해 벌인 가식적인 노력들이 들통났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2천 년 동안의 반유대주의 운동을 초래한 거짓말과, 예수가 행한 기적같은 일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확인하면서 감히 기반부터 흔들리는 기독교의 역사를 마주한다. 다만 기독교가 '사람'이 만들었다는 전제를 상기시킨다면, 신 혹은 예수의 말씀이 더이상 욕보이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생각이다. 한 권의 책으로(6년에 걸친 공동탐구와 집필의 결과물이었다) 밝혀진 역사적 진실로 성경이 다시 쓰여지기에 기독교의 몸통은 너무 비대하다. 그들(공동저자)이 확신하는 로슬린 성당의 숨겨진 문서가 파헤쳐지기 전까지는.

하지만 여기 기독교인의 철저한 자기성찰을 담은 책이 있다.<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목사의 반성치고는 꽤 강도도 세고, 위트도 있다. 네 명의 목사와, 평신도 유명 연예인, 사회학자, 반 기독교 방청객들이 두루 등장하는 100분토론이라.





기독교를 위한 변명이나 상식적인 결론의 도출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진 않을까, 했지만 수위높은 비판들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통에 기겁하고 말았다. 초고를 완성하고 원래 뜻과 달리 다른 기독교인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저자는 <MBC100분 토론>의 형식을 빌어 지루한 종교서를 긴장감 넘치는 연극으로 탈바꿈해냈다. 현장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한 토론 현장을 방청한다.
 
붕어빵 기독교, 개독교, 예수없는 기독교, 짝퉁예수,먹사 등 거침없이 비판의 정체를 해부하면서, 옹호를 위한 언급이 아니라 토론을 통한 가치관 찾아내기로 방향을 잡아가는 구성은 참신하고 속시원하다. 예상대로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패널들이 출연하는데 정통파, 보수파, 급진파로 나뉘어지는 목사들에게서는 현실 기독교의 다양한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필자는 급진적인 대안과 의견을 쏟아내는 조하나 목사에게 동조했지만 정통적인 기독교적 입장이나, 신실한 마음의 연예인 신자 예신자, 기독교를 사회적 안목으로 바라보는 권중진의 말에도 적극 공감했다.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로서 인간이 만든 사회적, 문화적 실체입니다.  ..그런 종교를 신뢰하고 믿는 것과 예수님이라느 존재를 믿는 것을 동일시하게 되면 기독교를 좇아가다가 예수님 신앙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또한 반대로 기독교를 절대화시킬 수 있는 위험도 있고요.
 
'어떻게 목사로서 기독교를 안 믿고 교회를 안 다녀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이성공 목사(가상인물)의 비난을 받은 말이긴 하지만, 기독교가 예수의 모든 것을 포함하긴 해도 예수가 모든 기독교를 포함할 수 있는 건 분명히 아니다. '로마의 공인과 국교화로 시작한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예수에 관한 종교'였다'고 보는 남예혁 목사(가상인물)의 말로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붕어빵 기독교에 대한 정화력도 대단하다. 예수님의 겉모양만 있을 뿐,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품어내는 생명의 자궁을 잃어버린 쓸쓸한 종교. 그 원인을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해결책은 드러난다. 성격독해력의 저하,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한 불순한 이미지, 교회만 나가면 신앙심을 얻을 수 있다는 가벼움, 예수님을 이용해 이루려는 사적인 욕망, 자본주의와 결합한 맘몬주의. 

스스로 몸담은 종교를 향한 화살치곤 대차다. 이참에 기독교, 제대로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무관심을 철회하고 나니 오히려 두 눈은 충실해진다. 의심하는 자를 끌어들일 때는 의심만 걷어주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전도의 룰이 적용된 샘일까.

<제 3의 예수>는 성경독해를 위해 팔을 걷어부친다. 조하나 목사(가상인물)의 말대로 '문자 너머의 말씀이 담고 있는 깊은 뜻과 큰 진리'를 보려는 노력이다. 성경의 진실여부를 떠나 하나의 철학서로 읽힐 수 있다.    





 디팩 초프라(저자)는 예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함을 강조한다. 성서를 깊이 파고 든다면, 그 안에 진정으로 종교에 구하는 단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 환하다. 일방적인 '믿음'과 '교화'를 강조하던 기독교의 몸불리기 전술에 빠졌던 핵심이 아닐까. 기적이나, 희생의 뿌연 안개에서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 예수가 걸어 나오는 기분이다. 

책은 다양하게 성경구절을 되읊으면서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누군가 너의 빰을 치거든 다른 쪽 빰을 내주라"는 자학이나 순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비폭력 또는 아힘사로 전해지는 이 구절의 깊은 속내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폭력을 제압함으로써 스스로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말이라는 것이다.     
 
신약에 대해서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남긴 예수 해설서라고 일축하면서 예수 재림에 대한 기대도 단박에 꺽어버린다. 예수와 하나님의 증거에 목마른 교인들에게는 불벼락 같을지라도 예수의 깨달음을 거웃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천국이 안에 있다'는 말씀은 내면으로 들어감이 깨달음과 같다는 방향으로 풀이된다. 천국으로의 도달을 위한 헌신과 봉사, 묵상등의 방법만으로 내면과 바깥 세계의 모순을 풀어줄 수 없단다! 예수는 매일의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경배로 가득 찬 길을 바라지 않는단다! 저자는 오로지 자신을 깨우치는 깨달음만이 어떤 영적인 길이든 충만히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필자도 언젠가는 종교로 귀의할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있다면 내가 아니라 종교가 날 찾아올 것이다. 나뭇잎 한장이 손바닥에 떨어지는 것만큼 우연을 가장해야하는 일이겠지만 무심결에 잡을 지도 모른다. 약한 인간이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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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을 응용한, 온고지신이 빛나는 글소리 책 <훈민정음 ㄱㄴㄷ>. 한글을 만든 원리를 설명해 두었다는 원본을 본적이 없었기에 낯설고도 아름답다. 글자가 있기 전부터 소리가 있었던 우리말을 적기 위해 소리로 설명되었다는 훈민정음의 창안을 빌어
 
ㅇ 이응은 애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아요 -애기똥풀꽃

과 같이 적혀있다. 책 뒤에 공개된 원본에서는

ㅇ 목구멍소리니 '욕(欲[욕])'자의 처음나는 소리와 같다.  

를 대응할 수 있다. 우리말로 된 우리 꽃들을 소릿자에 따라 세밀화로 보여주고 있는 점도 흐뭇하다. 강아지풀, 달개비, 민들레, 찔레, 어디하나 아름답지 않은 말이 없고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나랏님이 백성에게 들려준 한글 수업을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유산같은 글자책이다.  







<소리치자 가나다>. 글자에는 무심해도 그저 즐겁다. '가,나,다,라,마,바,사'에 어울릴 감정데로 책을 읽어주는 게 중요하다.  

볼일을 보고있는 아이에게 달려드는 강아지. 그 옆엔 크고 분명하게 쓰여진 '가'라는 글자가 있다. "가, 저리가!"라고 가를 반복해서, 강조해서 읽어주면 낱자와 문장, 그림 상상법 등을 두루 익힐 수 있다. 이를테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글자와 협응이 가능하다. 상황들이 매우 익살스러워서 이야기를 꾸며내기에도 알맞다. '카'는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들이키는 부녀의 그림이 곁들여지고,  '하'의 경우에는 유리창에 입김을 불고 하트를 그리는 여자아이를 그려넣었다.
 
ㄱ,ㄴ,ㄷ,의 초성만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기차ㄱㄴㄷ>, 또 하나는 <개구쟁이ㄱㄴㄷ> 이다. 작가의 말놀이 재능을 십분 발휘했을 이 책들은, 한글의 닿소리(자음)과 홀소리(모음) 스물 네 개를 '모아쓰기' 했을 때 1만 개가 넘는 글자를 만들 수 있다는 대단한 위력을 실감케한다. 초성만의 제약으로도 어엿하게 이야기가 완성되는 걸 보면 말이다.







'ㄱ기다란 기차가 ㄴ나무 옆을 지나서 ㄷ다리를 건너서 ㄹ랄랄라 노래를 부르며'

로 이어지는 <기차ㄱㄴㄷ>은 기차의 여행 풍경을 무리없이 담고 있다. 'ㅋ커다랗고 컴컴한 ㅌ터널을 통과해서'에서는 이 소재가 이 책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 알 수 있었다. 어렵지 않다면 아이와 이야기 짓기를 시도하면서 첫소리를 다양하게 변형해 보는 것도 좋겠다. 

'ㄱ기린이 ㄴ나뭇잎을 보고 ㄷ동그랗게 혀를 말아서 ㄹ랄랄라 노래를 부르며'같이.
 






<개구쟁이ㄱㄴㄷ>은 주인공 만큼이나 개구진 그림과 흥겨운 말놀이가 즐겁다. <기차ㄱㄴㄷ>의 서사가 단순한 반면, 이 책은 글씨를 빼고라도 한 편의 극적인 이야기로 모양새를 갖춘다.  

'기웃기웃, 고양이가 구멍(나무구멍) 속에 들어갔는데?(나무 뒤에서 도깨비가 부끄러운 듯 실실거린다)ㄴ누구야, 누구? 너 때문에 놀랐잖아! ㄷ다다다닥! 도깨비 달아난다.'

역동적이고 생기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이 말을 쏟아내는 듯 느껴진다. 이어 도깨비와 장난질을 시작하는 아이가 집으로 들어와 일상 속에서 벌이는 일들을 실감나게 말 속에 담는다. 한 장의 그림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주변 물건들이 고스란히 등장하는데, 그냥 넘긴다면 아까울 정도다. 각 초성에 해당하는 물건들을 짚어보는 보물찾기 지도로 사용해 보자.







현재 5권까지 나온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이다. 최승호 시인의 말솜씨는 이미 여러 편의 시집에서 발휘되 왔다. 다의적인 언어의 성질을 누구보다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시인말고 또 있을까. 

한 편의 시에 어떤 어휘든 사용될 수 있지만 모든 말이 시가 될 수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말을 시로 쓰기로 결심한 것처럼 시도된, 이 말놀이 동시의 릴레이를 구경한다.

초, 초여름밤//초가집 위에/초롱초롱/올빼미 눈 위에/초롱초롱/별 떴다/초여름밤/초승달 떴다
부, 부엉이//부엉/부엉/부엉이 운다/두부 몰래 먹는/부뚜막 생쥐야/부엉이 발톱 조심해라/부엉/부엉/부엉이 운다 

쉽고 단순해 보인다면 지금 당장 아이와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마치 시제를 주고 시문을 써내는 과거 시험처럼 말이다. 어구를 대응하고 운을 맞추는 시의 기법도 꼭,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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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하다. 비밀 교리. 피타고라스. 앞치마. 컴퍼스. 

'프리메이슨'을 아시나요? 도를 아십니까,처럼 들리는가. 성경, 신화, 윤회 사상, 영혼, 기하학. 이 모든 것이 통합된,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공통되는 비의로 묶는 것.(<프리메이슨>) 그것이 바로 프리메이슨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 
기독교의 교리를 적극 채용하고, 고대종교의 신화들을 상징으로 제시하고, 불교와 같은 윤회와 거듭남을 강조하고, 세계의 원리가 기하학, 건축, 과학과 맞닿아 있다고 확증하는 이색 종교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전혀 모르셨다구요. 하지만 프리메이슨을 대표했던 인물들의 유명세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확히 프리메이슨은 아니었지만 훗날 프리메이슨이 그의 정의나 사상을 많이 포함했던 피타고라스만해도 수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비주의 철학자이자 정치가, 과학자, 스포츠맨이었다는 피타고라스는 수학적 계측이나 측량이 우주의 창조원리와 동일하다는 프리메이슨의 믿음과 일치했다. 모짜르트나 서구 낭만주의의 거장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르즈벨트,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괴테, 역시 모두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면 확실히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까.





<시크릿 코드>는 전쟁 암호, 문자, 종교의 상징들, 그래피티, 바코드, 등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코드로 이루어졌는지 실감할 수 있는 코드백과다. '코드'의 매력이나 쓰임이라면 비밀과 상징에 있을 것이다. 상징적인 암호들을 공유할 수 있는 집단에 속한다는 건 결속을 강화하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신비주의를 낳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프리메이슨'은 <시크릿 코드>에 꼭 포함되어야만할 종교였다. 

메이슨이라는 단어와 그것이 품고 있는 그 어떤 의미도 비밀로 간직하라. (중략) 우리들이 남자, 여자, 아이, 막대기, 돌에 관해 비밀고 하라고 명한 것을 당신만이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형제에게만 밝히거나 프리메이슨의 지부에서만 밝혀라. 
-'돌의 비밀에 대한 서약' 중에서 

'입문하다'는 프리메이슨이 보통의 종교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체계적인 배움에 돌입하거나 발을 담그는 것을 보통 입문이라고 한다. 프리메이슨에는 이런 입문 절차, 혹은 통과제의가 존재한다. 몇 단계에 걸친 통과제의 안에는 비밀을 지키기 위한 서약과 경고를 담은 신화들이 등장한다. 이 '비밀스러움'이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온갖 의혹들을 난무하게 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부와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만든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시크릿 코드>) 비밀의 힘이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프리메이슨이 쓴 프리메이슨 책<프리메이슨>이나 상상력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한다는 진형준 교수가 쓴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에서 만난 프리메이슨은 세계재패의 의혹이나 잔혹한 형제애를 보여주는 이단의 집단이 아니었다. 물론 프리메이슨 자처해서 그것을 실토할리는 없겠지만 책 <프리메이슨>은 스스로의 종교를 변명하지 않으며 흩어지고 잘려나간 프리메이슨만의 순수한 가치들을 그러모아 진리에 대한 그들의 강렬한 갈구를 드러낼 뿐이다.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로는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의혹의 실상과 이상을 추구했던 한 종교에 대한 탐색을 경험할 수 있다. 

<프리메이슨>이 종교의 심장부를 보여 준다면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는 프리메이슨의 몸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책의 초반부에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비밀단체라면 왜 이제와서 책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걸까,라고 말이다. 현재 프리메이슨은 사실, 본질을 많이 상실한 상태이며 자선단체나 정당 정도로 비춰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감추고 있던 '비밀'은 그때도 지금도 비밀이 아닐수도 있다는 점이다. '신을 만난 이는 벙어리가 된다'는 말처럼 비밀이 스스로 자신의 입을 닫고 있는 거라면. 매우 개인적이고 지극한, 누구에게도 말로 전해줄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걸 굳이 '비밀'이라고 해도 좋은 것인가. 

실제 예수와 붓다는 그런 비밀들을 현명하고 상징적인 언어나 삶으로 풀어낸 성자들이다. 프리메이슨의 비밀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진형준은 스필버그의 UFO영화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설명한다.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는 보들레르의 시 <알바트로스>, 멀더와 스컬리의 X파일, 살인마 잭 사건, 스님행새를 하는 땡초의 전말 등, 흥미진진한 예를 통해 프리메이슨의 교리나 암흑의 실체에 다가가려고 한다. 독자는 고딕의 건축들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낭만주의 작품들 속에서 프리메이슨을 만나면서 우리도 그 진리의 멀지 않은 영역에 닿았있음을 상기시킨다. 



 책 사진; 진형준 저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
직각자, 컴퍼스, 정삼각형 등은 기하학에 우주의 진리가 담겨있다고 여기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을 드러낸다. 

 

 

 

 

 

세계 속의 '프리메이슨'은 짧은 번성과 긴 오명의 역사를 써야했지만 그 의미만큼은 강렬하다. 진형준의 책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바이기도 하지만 <프리메이슨>을 만나면 좀 더 확실해진다. 프리메이슨이 도달하려는 '영적인 목표', 조직의 계보, 입문의식을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크리슈나무르티나 붓다의 깨달음을 전하는 종교서적과도 빗댈만하다.

그들의 입문 의식을 보면

첫 단계; 열기와 닫기의 시작인 이 단계에는 닫힌 의식, 잠든 영혼을 깨워서 신에 대한 경외감을 보이는 동시에 비밀을 함구하라는 닫기로 마무리 된다. 
두 번째 단계; '폭포수 옆의 낱알'로 상징되는 이 단계는 철학적 단계다. 영적인 길로 들어가기 위해 지적인 본성을 발전시키고 통제하면서 내적으로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이다. 이 입문단계의 지원자는 플라톤의 대화편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의 글, 성녀 데레사의 '내면의 성채'를 탐독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세 번째 단계; 신비한 죽음의 단계다. 이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닌 정신적 죽음이다. 육적이고 감각적인 삶에서 영혼이 더 없이 자유로워지는 죽음. 죽음과 재탄생의 세 번째 단계를 통과하면 최초의 금속세공인 이름이 타이틀로 주어진다. 


각 입문의식에는 그에 따르는 상징적인 물질들을 함께 만나게 된다. 이 의식은 '프리메이슨'이 얼마나 참회와 속죄, 세속의 때를 벗겨야 함을 주입하며 깨달음을 위한 피나는 정진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현재는 상징적인 의식들로만 그 자리를 메우지만 '프리메이슨' 본래의 고매한 정신을 만난다. <프리메이슨>은 종교의 기원을 말하면서 프리메이슨이 나아가야할 원론적인 방향에 대한 모색도 꿈꾼다. 시장체제와 편가르기로 인해 왜곡되고 모순된 현실의 종교에대한 따끔한 가르침으로 들어도 무방할 듯하다.

이런 이상적인 목표를 가진 종교가 왜 기독교나 불교만큼 널리 알려지지 못했는지는 공개된 입문의식이나 깨달음에 대한 비밀의 함구에서 드러난다. 수행, 영혼의 정화, 깨달음이 얼마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은밀히 일어나는지 이 종교는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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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손에 어린이 축구책 두 권이 있습니다.
한솔수북은 지식으로서 다룬 월드컵 이야기, 주니어랜덤은 직업으로서 다룬 축구선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월드컵 개최 이후로 축구 꿈나무들이 더 많이 생겼으리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화려한 축제 이면에 자리한 축구선수의 고통과 월드컵의 진실까지 아이들이 파악하기란 힘든 일이지요. 막연히 축구선수의 꿈을 가졌을 때, 혹은 축구선수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을 때 도움이 될만한 책들입니다.

 





<세상을 울리고 웃긴 축구 전쟁 월드컵 이야기>는 '축구박사'로 통하는 강통을 따라 상상의 축구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예요. 
오로지 '이론'만 '축구박사'인 강통을 내세운 건 아무래도 이 책이 월드컵의 역사를 훑고 있기 때문일거예요. 월드컵 속의 흥미로운 사건 사고, 매번 갱신되는 진기록들, 사라진 트로피와 컵에 대한 비밀, 대회 주요 기록 등을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또 tv속 경기를 지켜보면서 궁금했을 심판, 기술 용어들이 정리되어있어 진정 축구박사가 되고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좋겠네요. 

옆 반과의 즉석 경기에서 큰 패배를 하고 수니따라는 낡은 공과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축구공에 얽힌슬픈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월드컵에 쓸 축구공을 만들려고 인도, 파키스탄 어린이들이 하루 열두 시간 꼬박 바느질을  하는 모습은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먼 축구의 이면이죠. 선수들의 생생한 땀방울이나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기장에 서는 모습 역시 겉으로만 보던 축구선수와는 다른 모습일테구요.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을 시작으로 전세계를 울리고 웃기는 이 축구의 매력을 꽉찬 지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책입니다.







<세계를 향한 슈팅 축구선수>는 축구선수를 장래의 희망으로 짚은 아이들에게 어울릴만한 책이예요. 승리라는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는 과정 속에서 부상과 패배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지켜보면서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도록 쓰여졌어요. 승리의 기쁨과 슬픔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 형식입니다.

축구 선수 뿐만이 아이라 감독, 코치, 스카우터, 해설자 등 축구에 관련된 다른 직업들도 눈에 익혀볼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하네요. 직업에 대한 입체적 상상을 가능하게 하고 자칫 스타로서만 여겨지는 축구선수의 다른 몫도 살필 수 있으니까요.   

축구선수가 되려면 어떤 재능과 실력이 필요한지, 실전에서 어떤 훈련과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지, 무슨 공부를 해야할지, 어떤 선수를 롤모델로 삼아야 할 지 고민하는 꿈나무라면 이 책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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