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장사수완이 익히 알려지긴 했지만 실 예를 본 일은 드물었다. 가히 '신화'라 불릴만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200년 내력을 기록한 <로스차일드 신화-세계 금융의 지배자>는 개미투자자들이 우러를만한 '돈 불리는 비법'을 적고있다. 개성상인들도 말했다는 '돈 쓰는 법'과 '돈 지키는 법'역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 일개 가문의 가계 흐름도에서 재계의 '보이지 않는 큰 손'을 가늠해 보는 일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한국형 재무관리 시스템의 최초 설계자라 할 수 있는 개성상인은 돈에 대한 개념을 크게 세 가지로 정의했다. 돈은 모으는 것(접전)과 쓰는 것(용전), 그리고 지키는 것(수전)이 그것이다. -<행복한 가족 경제학>에서
재산을 지키려면 돈을 벌 때보다 열 배는 더 용감하고 신중해야 한다.-<로스차일드 신화>
돈과 신용에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한반도의 상업을 이끌었다는 개성상인과 바다건너 번성한 유대인의 경제개념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확연한 차이점으로 돈을 바라보는 안목을 달리한다.
유대인 특유의 인내심과 위기대처법, 발빠른 정보 선점, 로비 기술, 핍박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의지 등이 일구어낸 성과는, 유대인 격리 지역의 날품팔이에서 유럽과 미주권의 자원시장을 흔드는 큰 손이 되기까지 로스차일드가는 총 8대를 거친다.
온갖 풍파를 겪고 윌리엄 황실의 재정 관리인이 된 왕조의 창시자 로스차일드는 훗날 금융왕조의 설립을 위한 규정을 유서로 남겼다. 그 중 '가족은행의 중요한 직책은 모두 로스차일드 가문의 직계 남성이 담당한다.''가문의 재산이 분산되지 않도록 친적끼리 혼인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지나칠만치 폐쇠적인 그들만의 가문색을 만들어낸다. 암호로 중요한 정보를 주고 받는 일은 사신을 따로 둘 정도로 비밀유지에 애썼다.
여전히 건재한 로스차일드 금융 그룹,(사진 출처;http://www.rothschild.com/)
'한낱 바람이라 할지라도 그 냄새를 맡아봐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그들은 육감을 동원했다.
'신화'라고 긍정적으로 포장되긴 했지만 가문 번성의 주를 이루는 비법은 다름아닌 '편법'과 '투기'였다. 이른바 '열쇠인물'로 불리는 로비대상을 통해 최상위계층을 공략하는 전술!, '거리가 피바다가 될 때마다 나는 매입했다'는 전쟁을 이용한 투자, 왕실의 자금을 이용해 밀수로 끌어모은 돈, 정보의 선점과 주식의 시세를 이용한 막대한 차익 등, 이른바 뒷거래를 일삼았지만 '그들만의 도덕개념'은 확고했다.
어쩌면 세상의 많은 부자들이 서민들처럼 월급과 수익의 저축, 정직한 투자만으로 돈을 불렸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펼친 묘기에 가까운 돈 굴리기 재주는 미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번듯하게 인정되는 것이었다. '자본'에 한해서는 도덕 개념이 따로 쓰여져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얄굿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에 반해 신뢰와 무차입 경영을 모토로 했다는 '개성상인'은 근검절약, 정직과 신용, 그리고 부채 없이 사업을 경영하고자 했던 핵심가치를 지녔다. '무차입 경영'이라면 '남의 돈으로 장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로스차일드가가 윌리엄 왕실의 자금을 차관형태로 융통해 몰래 손에 쥐고 있다가 그 액수를 몇 달만에 불렸던 사건에 비한다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신중한 태도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건 도박에 가까웠고 그들, 로스차일드가에는 끝없는 행운이 따랐던 것 같다. 어떤 변수도 위험요소도 발생되지 않았거나, 그들의 위기대처 능력이 출중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들에게 경제흐름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대기업들의 경영원리는 어느쪽에 가까워야 할까. 이윤을 본다면 당연히 '로스차일드'를 본보기로 삼아야겠지만 도덕적 신뢰경영이라면 '개성상인'을 본받아야 옳다. 핍박의 역사 속에서 이중장부가 하나의 탈출구가 되었던 유대인처럼 할 수도 있겠지만, 거래사실에 대한 객관적 기록을 중요시했던 개성상인의 자세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들 사이의 빠질 수 없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장기적 신뢰구축을 경영의 제 1모토로 여겼던 개성상인의 후예들은 수익의 사회환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로스차일드가 역시 지역의 복지에 힘쓰거나 참혹한 억압에 시달리는 유대인 동포들의 정착을 도왔던 시오니즘의 기둥이 된다. 이런 인본주의에 가까운 경영이념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변함없는 명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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