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주인공들의 호기심은 아무도 못 말린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 영화도 없었을테니 말할 필요도 없다. 레테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특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강력한 주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야기란 무릇 여기서 시작된다. 비록 용감하진 않지만 궁금한 주인공들은 뒤를 돌아보고, '돌아보지 말라'는 '돌아봐'라는 명령보다 거센 유혹이 된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사과 한 입을 깨물지 않았다면,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지 않았다면, 눈을 뜨지 말라는 에로스의 청을 프
시케가 들어주었다면, 이야기는 누구도 희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금기와 의심이 희롱의 핵심이다. 



줄 조셉 르페브르의 1882년 作 〈판도라〉(그림출처; 위키백과)

하면 안되는 일 열 가지는 해도 되는 일 백가지 보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금지된 일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미지수'라는 어리석은 활기에 마음이 동요된다. 가면 안되는 곳들, 망가지면 안 되는 것들, 어기면 안 되는 시간, 해서는 안 될 말들,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들, 사랑하면 안 될 사람, 금지가 주는 각인은 삶의 보호막이 되기도 하고 영웅의 통과의례가 되기도 한다.
 
지금껏 몇 가지의 금기를 어겨보았고 그에 뒤따르는 몇 번의 추락을 경험했으며 또 몇 번의 환희를 맛보았을까. 금기가 허락되는 순간은 아이러니 하게도 명령을 어긴 사람만이 맛볼 수 있다. 신화나 이야기의 우화 속에서 마음조리며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당신은 '나라면 돌아보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돌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돌아보는 일은 약과다.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누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이라면?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만 학대 당했다면? 도둑질 하지 말라고 했지만 누구나 장발장의 빵 한개에 눈물을 적시며 공감했다. 이야기는 금기를 무력화 하는 악취미를 가졌다. 

또 시대적으로 부당한 금기들은 마치 깨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듯 정당한 이야기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는다. 

"제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자식에게는 재앙이 있으리라."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죄에 관한 율법. -<양치기의 책>에서
그에 따라 단 하루 게으름을 부린 아이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시장통에서 얻어 맞는다. 세상 어디에도 가혹한 처벌을 금지하는 규율이 없던 시대였다. 

하지만 주인공은 계율이 파놓은 함정을 직감한다. '세상 어떤 계율도 한 생명에게 이 같은 고통을 주도록 허락하지는 않았다.' 현대에서는 도덕적 품위를 지키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말이겠지만, 중요한 건 후에 등장할 이런 뉘앙스의 질문이다.

'양을 구하기 위해 늑대를 해치는 것이 과연 선일까?'-같은 책에서

이야기란 금지에 담을 수 없는 인간사의 딜레마 드러내기에 주력해야 한다. 돌아봐야만 하는, 열어야만 하는, 감은 눈을 떠야만 하는, 금기와 저울질 할 수 있는 막상막하의 상황을 제시해야 한다. 양을 구할 것인가? 늑대를 해칠 것인가? 문제에 두 가지 보기가 기다리는 듯한 함정을 파야 한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주인공은 계율을 어길 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다. 아예 공증된 시험 문제에 헛점이 있다는 듯 접근했다. 이런 맹랑한 의심은 궤도의 이탈, 즉 고독을 가져온다. 영웅에게 고독은 장식품일 뿐이다.
 
이런 답이 기다리고 있다.
"비둘기를 길러내게. 늑대를 키우는 대신에."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허탈할수록 좋다. '모든 것은 네 안에 있다' 같은 귀결은 우리를 힘빠지게 하지만 고민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 목적지보다 여정을 즐긴다면, 정답에 놀라는 대신 현답 속에서 휴식할 수 있다. 

여기서 '금기'가 갖는 다른 힘을 만난다. 하지 말것인가,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게끔 하는 것이 금기의 어법이다. 다른 선택은 없어 보인다. '하지 말것'을 강조할수록 금기의 효력은 강해진다. 마치 궁지에 몰린듯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하지말라고 했기때문에 어기는 일은 부정의 당위성을 얻는다. 만약 위기 속에서 침착해져서 '하면 좋을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금기는 금새 효력을 잃는다. 악을 물리치지 말고 비둘기, 즉 평화를 기르란 말은 다름 아닌 긍정강화 효과다.

하지만 반항심과 의심많은 악마는 이렇게 속삭인다. '금기를 억제하기 위한 수작을 믿고 따를 수 있겠어?'    




<양치기의 책>-신화의 영웅담을 복제하다. 

이런 영웅담의 골격은 좀 지루할 때도 있다. 더우기 신화의 모티브들을 보란듯이 차용하고 이미 증거된 진실들을 녹음기처럼 되풀이 할 때, 아는 문제와 같은 답을 만난 불성실한 학생이 된다. 수학이나 과학의 응용문제에 요하는 사고력에는 치를 떨었지만, 어쩐지 이야기만은 왜 늘 새롭길 바라는 걸까.   






이 밖에 글을 쓰며 떠올렸던 책들입니다.


*신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책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같은 신화, 시네필 다이어리

*금기와 선과 악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던 책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

*긍정강화 방식을 육아에 응용한 책
칭찬은 아기고래도 춤추게 한다.

*금기를 어기고 파멸했던 여성
마담 보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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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놀이 책 몇 권을 모둠하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요가책도 소개했었습니다. 일반 요가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티브이의 기인열전에 나오는 유리상자에 몸 구겨 넣기 같은 묘기는 없습니다. (실제 요가원에서도 그런 동작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부분은 아이와 함께 했던 은연중의 몸 놀이들이 '요가'가 된다는 거죠. 결국 요가가 별거 아닌지, 내 몸에 요기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도의 수행승들로부터 시작된 요가도 여느 수행법들과 마찬가지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기술인양 요가 자격증 시대가 도래하고 다이어트, 필라테스, 사우나와 결합하고 당연히 요가의 본질에서는 점점 멀어져 갔죠. 한 때 요가 수행법에 미쳐 독학하고 민간 요가 자격증(국가 공인 자격증은 현재로써는 없습니다)을 3개월만에 취득!한 다음 곧장 요가강사의 어줍짢은 명함을 얻기도 했습니다. 

요가의 본고장에라도 가고 싶었지만 제 몸 하나 불편함 없는 걸로 만족스러웠기에 그런 서툰 고행은 감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도 '요가'가 뭔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단지 요가의 언저리에 머물다 온 샘이지요. 하지만 자격증을 따기 위한 수업말고 강사일을 하면서 월급의 8할을 쏟아붓게 만든 '티벳탄 펄싱 요가'는 아사나(동작)와 호흡의 하타요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뉴 마인드'라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었는데 둘 사이의 경계가 뭔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밀교를 떠올리게도 했고, 동시에 인간끼리의 과장된 포옹같기도 했습니다. 포옹에 거액을 쓸 사람은 없기에 의심이 드는 순간 내려놓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감각은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요란한 환상이 될까 두려워 한 가지 건전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보통은 둘 씩 짝을 지어 수행합니다.
 



                                                      

사진 출처 http://www.tibetan-pulsing.de/index.html

오늘의 세션이 '신장'이라면 신장을 상징하는 신체의 다른 부위(수지침처럼 입 속에도 각 장기의 부위가 있음을 말합니다.)와 실제 신장의 위치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신장'에 얽힌 전설을 이해합니다. 전설이라는 표현을 쓴 건 신체의 과학적인 분석보다 감성적인 영역에 더 많은 함의를 두고있기 때문입니다. '심장 본래의 조화로운 펄스는 사랑의 진동'이라는 식입니다.

이 전기 혹은 맥박을 조화롭게 하는 힘이 '티벳탄 펄싱 요가'의 핵심입니다. 각 장기나 부위에 해당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짝을 지은 둘은 엉덩이 위쪽, 신장부위를 마주 댈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합니다. 한 사람은 엎드리고 파트너가 거꾸로 그의 몸 위에 눕습니다. (두 사람의 다리 때문에 X자 모양이 완성됩니다) 사람에게 실제 흐르는 약한 전류 때문인지, 상대의 전류가 전달되기 때문인지, 최면 때문인지, 그저 인간의 온기 때문인지, 타이머로 돌아가는 보일러의 점화 때문인지, 몸은 달아오르고 잠도, 꿈도, 각성의 상태도 아닌 휴지에 들어갑니다. 간혹 신장이 안좋으셨다는 분들은 놀랍도록 개운해진 느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도 어떤 세션에선 머리의 뚜껑이 열리는 듯한 잡아당김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대체의학'의 모토인 치료보다는 치유, 신체를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심리적 장애의 상징물인 장기를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장기가 육체의 부속이 아닌 마음의 일부라는 듯이 '내부의 두려움과 충격이 방광에 전달되면 우리는 추종자가 된다' '쓸개는 유혹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 같은 도통 비유적으로 밖에 상상할수 없는 말들이 일상적으로 오고갑니다. 

'티벳탄 펄싱 요가'는 매우 상징적인 수행법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우리의 모든 사랑과 미움과 분노와 질투와 우정이 가지는 행위들-악수와 포옹과 섹스와 거부와 애무와 구타와 손가락질-이 티베탄 펄싱 요가의 밑바탕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능한한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분절이 요가가 이룩한 위대한 분석력 같았습니다. 더불어 하타요가 역시도 일부러 수행법을 실천하기 이전에 나의 모든 일상이 요가의 무드라가 될 수 있기를 남몰래 바래왔습니다.(상당히 사이비죠!) 지극히도 현실적인 가운데 요가를 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도끼요가?


숲은 둘도 없는 내 일터다. 토요일을 애써 비우고 농장으로 갈 때마다 나는 손바닥만한 숲에서 꽤 오랫동안 보낸다. 도끼는 인간이 다루어 온 것 가운데 가장 건강에 좋은 연장이다. 늘 앉아서 글을 써버릇하는 사람들이나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도끼질을 하면 굽은 어깨가 뒤로 넘어가면서 가슴이 펴지기 때문에 허파가 크게 열린다. 열다섯 살에서 쉰 살까지 남자들이 하루에 두 시간만 도끼를 휘두른다면 지구위에 소화불량이 사라지고 관절염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나는 도끼질이 서툴다. 하지만 도끼는 내 의사이자 기쁨이다. 도끼질을 하노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정신이 또렷해 진다. 몸에 있는 근육들이 맘껏 운동을 하지만 지치지 않는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도끼를 사랑해야 한다
-<월든>에 인용된 호레이스 그릴리의 말 


이미 <웰니스>라는 책의 서평에서도 인용한바 있는 호레이스 그릴리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요가도 신체를 이용한 의식적 몰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에 요가라는 단어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동작과 호흡과 마음의 일체가 드러나 있습니다. 간혹 의무감과 근력만을 요구하는 것 같은 노동에도 육체와 마음에 대한 어루만짐과 통합이 가능했습니다.

하타요가는 호흡과 동작의 일체, 명상과 자각을 가르칩니다. 테벳탄 펄싱 요가에서는 인체를 회로로 보고, 감정을 기억하고 에너지가 흐르는 신체에 대한 일깨움을 골조로 수행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열 때 말했던 아이와 함께하는 요가도 오히려 일상을 모방하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평이합니다. 




    

어짜피 요가가 대게 다이어트나 운동습관 정도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수행'이라는 품위는 효력을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와 함께하는 요가는 특히 하타요가보다는 탄트라(상대가 있어야 하는) 즉, 티벳탄 펄싱 요가에 더 가까이 가 있습니다. 아이를 배 위에 올려 놓고 함께 호흡하는 일이나, 뱃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감싸주라는 위 캥거루 자세 등등이 그렇습니다. 아이가 몸 전체나 한 부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접촉함으로써 몰입을 이끌어내는 행위는, 몸놀이이자 사랑이자 요가입니다. 동시에 아이를 위한 몸사용설명서이며, 몸에 대한 자각이 삶에 대한 맨 처음 감각임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하려는 말은 '요가는 일상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가부좌를 틀고 '옴'을 외지 않아도 우리는 시시때때로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원시부족의 달기기 비법을 다룬 <본투런>에서도 타라우마라족의 달리기는 '명상'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목표물이나 효용성을 따지지 않고 달리는 본능, 달리는 몸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몰입 상태가 '명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호레이스 그릴리의 도끼질과 마찬가지로요.

하타 요가에서의 아사나(동작)에 붙은 이름들은 매우 시적입니다. 나무자세, 산자세, 영웅자세, 메뚜기 자세, 활자세...지극히 사적인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장하면서 결국 '몸' 하나,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되는 큰 세계를 말하는 요가의 선(禪)은 일상의 모방이자 원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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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어떤 바보 집에 칼을 든 강도가 들었다. 바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열심히 여기저기를 뒤지는데 바보가 잠에서 깼다. 
"강도여유?"
바보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바보는 놀라서 "살려주시우."라고 말했다. 바보로 정평이 나있는 고로 강도가 말했다. 
"그래. 네가 우리나가 삼국시대의 세 나라를 말하면 살려주겠다."
강도가 바보의 배에 칼을 갖다대며 말했다. 
"배 째시려고 그려?"
바보가 물었다. 강도는 "뭐? 백제 신라 고구려? 맞아. 약속은 약속이니 살려주지." 라고 말하고 일어나 나갔다는 이야기.

-<장영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서 

장영희는 처음입니다. 문학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소문으로만 들었고,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어떤 연유로 책장에 꽂혀 있긴 하지만 별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실은 <인간극장>류의 극복형 에세이는 별로 제 타입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 컴플렉스를 어리석게 탈출했습니다.) 요새는 더러 <인간극장>을 보기도 하지만 예정된 감동에서 빠진 스릴은 어쩐지 탄력이 없다고 할까요. 구도자에게 주어지는 지난한 길은 아직 제 차례가 아닌가 봅니다. 

아침이 왜 축복인지 저는 문자로만 아는 사람입니다. 실로 아침이 축복같다는 기분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행아 입니다. 꽃비가 예쁜건 알겠지만 황홀한 눈으로 쳐다볼 수 없는 외눈박이 입니다. 의심과 비판과 독설로 채워진 삶이 부끄러워질까봐 미담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움을 마주한다는 건 무척 불편한 일입니다. 강한 사람이 오히려 잘 휘어진다고들 합니다. 느낍니다. 전 알맹이보다 껍질이 두꺼운 두리안입니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는 무척 유연하군요. 삶을 대하는 자세만으로도 그의 아우라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그들의 영혼을 훔쳐보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혼 도둑이다. 그들의 젊고 맑은 영혼 속에서 나는 삶의 보람과 내일의 희망을 주는 글거리를 찾는다.'

그가 찾은 글거리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미담 백과사전이라도 지닌 듯, 주제와 문학에 맞는 일화들을 척척 인용합니다. 그의 삶이 얼마나 잘 통합되어 있는지를 가늠해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느낄 수 있는' 촉수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예민함 일테지요. 


잘 사는 나라의 딕과 제인이 나비를 잡고 다람쥐를 쫓으며 꿈을 키울 때, 영희와 철수는 파리를 잡고 쥐를 잡으려고 쓰레기통에 앉아 있었다. 잘 사는 나라의 아이들이 펄펄 내리는 눈을 보고 썰매를 타고 산타맞이 '징글벨'노래를 할 때, 우리는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라고, 눈이 공짜로 내리는 떡가루이길 바라며 노래 불렀다.

조교가 문득 물었다.
 "우리말 처음 배운 외국사람이 보고 제일 놀라는 간판이 뭔지 아세요?"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 뼈다구 해장국이요." 한다. 맞다 나도 간판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용인 근처에서 본 '남동 생고기'라는 음심점 간판이다.

미담의 따순 온기에 그저 언 손을 맡기고 침잠해 있을 때, 미친듯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두 번째, 세 번째 글이었습니다. 이 외에는 없었습니다. 참새 시리즈로 오인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못 박아 둡니다. 

기발한 일화들 덕분에 거의 지루하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지만, 제 반쪽이 심성으로는 특별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책에 편지를 남긴 박완서님처럼 '실은 그게 나의 삶의 원초적 환희' 였다는 걸 확신할 날이 올까마는 모르겠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오늘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숨겨진 보석,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다, 가슴 속에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아 마음의 부자가 된다면.' 같은 메시지를 문자 이상으로 육화할 수 있을 지 영 자신이 없습니다. 

반면 후반으로 이어지는 장영희가 사랑한 영미문학의 직접 번역 텍스트와 거기에 딸린 짦은 글들은 명징하게 다가옵니다. 무언가 '대상'이 있어야 흡족한 이 병은 걸리시지 않는게 좋습니다. 저는 투병 중입니다. 개중 신선하고 발랄한 동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침식사 때
에드거 A. 게스트

우리 아빠는요, 아주 우스운 방법으로 아침을 먹어요.
하루 중 첫 식사 때 우리는 아빠를 볼 수 없지요.
엄마가 음식을 앞에 놓아 드리면, 아빠는 자리에 앉죠.
그러고 나서 신문을 집어 들면, 우리는 아빠 얼굴을 볼 수 없죠.
아빠가 커피를 후후 부는 소리, 토스트 씹는 소리는 들려요.
하지만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아침신문 같아요. 
                   
'문학전도사'라는 별칭을 두 눈으로 확인한 샘입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첫 단독 번역작이라는 <종이시계>를 비롯해 <바너비 스토리>와 <슬픈 카페의 노래>같은 다른 번역작은 읽어보고 싶습니다. 故 장영희 교수를 에둘러 만나는 편이 제게 어울리는 처방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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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황현산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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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기록- 시 소묘 사진 1956-1996
존 버거 지음, 장경렬 옮김 / 열화당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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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어떤 책처럼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은 모두 우리동네에 있다'고 믿는 엄마가 반색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우리동네 어린이 도서관 101%활용법>에서 마을을 산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어린이 도서관 사례를 만났습니다. 저는 곧장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골목 어귀에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소풍이라도 갈 모양으로 둘 씩 손을 잡고 노인정, 미용실, 식당, 공원, 구멍가게, 지업사, 시장 등등을 기웃거리는 겁니다. 가게에 딸린 방에서 아이들은 무슨 놀이를 하는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하루는 얼마나 느리게 흘러가는지, 짜장면 집에 전화기가 얼마나 자주 울려대는지, 미용실 원장님은 언제 의자에 앉으시는지. 말하자면 우리의 이웃들은 어떤 일을 하면서 땀을 흘리고 시간을 보내는지 살피는 겁니다. 

실제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도서관을 구심점으로 마을 공동육아를 지향하는 책으로 무척 반가웠습니다. 또 실제 그런 가치를 담은 아이책이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도 생겼구요.

실은 아이의 하루일과는 제가 한 상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장이나 놀이터, 시할머니 댁으로 걸어가는 날이면 온 동네가 구경거립니다. 대게 시간약속이나 목적지가 없는 여정이라 아이를 채근하는 일 없이, 오히려 제가 더 기웃대면서 길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요샌 모퉁이에 새로 들어선 '생각 만들기'라는 도예가게에 불쑥 들어가 흙 빚는 광경을 넋이 빠지도록 구경하기 일쑵니다. 레스토랑 '메이'에서 마련한 대기 손님들을 위한 벤치는 서영이의 단골 휴식터이기도 합니다. 운이 좋으면 막 가게 문을 여는 젊은 여급의 재빠른 일솜씨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남슈퍼' 앞의 마루도 모녀의 시원한 정류장 입니다. 한동안 앉아 있으면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아줌마나 쥐포와 함께 막걸리를 자시는 어르신들과 잠시 말을 섞을 수도 있습니다. 지업사나 미용실에 들르면 온통 신기한 물건 투성입니다. 귀가길에 들렀던 골목어귀 할머니 집에는 올해, 보리 이삭이 새파랗게 섰습니다. 
 
작은 동네의 구겨진 듯한 집 속에 튼튼한 가장과, 채소모종 같은 아이들과, 이웃과 교환할 먹을거리 입을거리를 구비한 바지런이들과, 동네 몸단장 집단장을 도맡아 하는 재주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긴밀함은 엄마에게도 많은 생각을 던져줍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시에서 공부를 마친 제게도 적당한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움텄습니다. '똑똑하게 기르기'라는, 나도 모르게 주어진 육아 목표가 지방의 작은 도시로 시집오면서, 또 한번 시나브로 수정되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 엄마와 단둘이 하는 창의력과 상상력, 수학능력을 위한 한가지 놀이, 두 가지 배움이, 집 밖에서 '일과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소중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찾아왔습니다. 둘 사이를 저울질 하기에 저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하지만 육아서들이 기형적으로 권장하는 아이의 능력 선점에 대부분 '마을 육아'가 빠졌다는 사실은 확실히 부당한 처사같았습니다. 오히려 육아서가 아닌 인문서, 동화책, 문학에서 육아를 상상하는 일이 제법 균형을 잡아주기도 했습니다.

이 두 권의 책이 반가운건 '직업 체험'이라는 이름하에 부각되는 또 다른 학습이 아니라, 직업과 삶, 즉 이 시리즈의 이름인 '일과 사람'에 촛점이 맞춰진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아이들을 위한 인문학 도서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마을이다>를 써서 마을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 조한혜정님의 추천사도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제 일과 사람에 대해, 일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에 대해 다시 상상할 때가 되었다. '먹고, 입고, 자고, 배우고, 즐기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사는 마을은 어떨까? 우리 이웃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고 싶은 행복한 마을을 가꿀 수 있다. 그분들이 하루를 어떻게 지내는지, 일 년을 어떻게 꾸려 가는지, 언제가 가장 행복한 때이고 언제가 힘든 때였는지 귀 기울여 보자.









퍽이나 인상적이었던 <짜장면 더 주세요!>는 신흥반점의 살림방에서 자란 딸이 쓴 책이라는 고백같은 '작가의 말'에 감동을 더했습니다. 처음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쓰려고 했을 때는 무슨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자신도 잘 몰랐다고 함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고 어느새 '일하는 사람'이 된 딸은 신흥반점의 주방장인 아빠가 아침 일찍 장을 보며 했던 말, 엄마가 마수손님(첫 손님)을 보고 그날 장사를 점쳤던 일, 하루 장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엄마랑 아빠가 조곤조곤 나누던 말소리를 진심으로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또 짜장면을 맛있게 먹던 이웃들까지 보였다는 말에는, 어느 동네에나 있는 작은 중국집이 얼마나 큰 통로인가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는 우편 집중국, 창구, 분류, 배달 같은 정보에서부터 아주 시시할 수도 있는 우체부들의 팁, 노고, 여성 우편집배원의 평범한 하루를 밀착해 확대하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산너머 마을로 가는 배달에서 읍내에 나가기 힘드신 어르신들을 위해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따뜻한 메신저의 역할을 부각시킵니다. 소리없이 움직이는 것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빛나는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정스런 우편집배원의 역할은 물론이고 의당 믿음으로 결속된 이웃들간의 우정은 삶의 냄새를 진하게 풍겨옵니다. 

빨간 우체통을 열고 사연이 담긴 편지를 바라보는 집배원의 얼굴이 마지막장에 클로즈업되면서 굳이 일의 기쁨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만한 진한 감동이 찾아 옵니다. 어둠에 휩싸인 신흥반점의 밤 역시 서정성을 무기로 시같은 구절을 끌어냅니다.


나는 잘 때 아빠 엄마 손 냄새 맡는 게 좋아. 맛있는 냄새가 나거든. 아빠 손은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 엄마 손은 짭조름하고 새콤한 냄새. 오늘을 내 손에서도 냄새가 나. 새콤달콤 단무지 냄새. 

이 희미한 삶의 냄새들로 아이를 자극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마을 사랑은 가느다란 실선의 거미줄과도 같이 아이 마음 속에 연하게 새겨지길 바랄뿐입니다. 그저 너와 내가, 노동과 돈이, 사람과 사랑이, 분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희미한 냄새들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영어 원서 보드북 한 권보다 탄탄한 삶의 디딤널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짜장면 더 주세요>로 순진하게 수타면 만든 사연♥ 







왠지 가능할 것 같았죠. 하라는 대로 다 했습니다. 꽈배기처럼 꼬고 반죽 두 끝을 쥐고 흔들면서 늘리고 도마에 탕탕쳐댔습니다. 칠 때마다 끊어졌구요. 다시 반죽하고 접고, 흔들고, 때리고, 또 끊어집니다. 치댈수록 끈기가 생긴다지만 다섯번 반복하고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겨우 칼국수 짜장을 먹었다는 기막힌 헤프닝. (신흥반점 딸은 역시 비법을 공개하지 않는군요.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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