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주인공들의 호기심은 아무도 못 말린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 영화도 없었을테니 말할 필요도 없다. 레테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특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강력한 주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야기란 무릇 여기서 시작된다. 비록 용감하진 않지만 궁금한 주인공들은 뒤를 돌아보고, '돌아보지 말라'는 '돌아봐'라는 명령보다 거센 유혹이 된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사과 한 입을 깨물지 않았다면,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지 않았다면, 눈을 뜨지 말라는 에로스의 청을 프
시케가 들어주었다면, 이야기는 누구도 희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금기와 의심이 희롱의 핵심이다.
줄 조셉 르페브르의 1882년 作 〈판도라〉(그림출처; 위키백과)
하면 안되는 일 열 가지는 해도 되는 일 백가지 보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금지된 일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미지수'라는 어리석은 활기에 마음이 동요된다. 가면 안되는 곳들, 망가지면 안 되는 것들, 어기면 안 되는 시간, 해서는 안 될 말들,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들, 사랑하면 안 될 사람, 금지가 주는 각인은 삶의 보호막이 되기도 하고 영웅의 통과의례가 되기도 한다.
지금껏 몇 가지의 금기를 어겨보았고 그에 뒤따르는 몇 번의 추락을 경험했으며 또 몇 번의 환희를 맛보았을까. 금기가 허락되는 순간은 아이러니 하게도 명령을 어긴 사람만이 맛볼 수 있다. 신화나 이야기의 우화 속에서 마음조리며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당신은 '나라면 돌아보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돌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돌아보는 일은 약과다.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누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이라면?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만 학대 당했다면? 도둑질 하지 말라고 했지만 누구나 장발장의 빵 한개에 눈물을 적시며 공감했다. 이야기는 금기를 무력화 하는 악취미를 가졌다.
또 시대적으로 부당한 금기들은 마치 깨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듯 정당한 이야기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는다.
"제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자식에게는 재앙이 있으리라."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죄에 관한 율법. -<양치기의 책>에서
그에 따라 단 하루 게으름을 부린 아이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시장통에서 얻어 맞는다. 세상 어디에도 가혹한 처벌을 금지하는 규율이 없던 시대였다.
하지만 주인공은 계율이 파놓은 함정을 직감한다. '세상 어떤 계율도 한 생명에게 이 같은 고통을 주도록 허락하지는 않았다.' 현대에서는 도덕적 품위를 지키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말이겠지만, 중요한 건 후에 등장할 이런 뉘앙스의 질문이다.
'양을 구하기 위해 늑대를 해치는 것이 과연 선일까?'-같은 책에서
이야기란 금지에 담을 수 없는 인간사의 딜레마 드러내기에 주력해야 한다. 돌아봐야만 하는, 열어야만 하는, 감은 눈을 떠야만 하는, 금기와 저울질 할 수 있는 막상막하의 상황을 제시해야 한다. 양을 구할 것인가? 늑대를 해칠 것인가? 문제에 두 가지 보기가 기다리는 듯한 함정을 파야 한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주인공은 계율을 어길 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다. 아예 공증된 시험 문제에 헛점이 있다는 듯 접근했다. 이런 맹랑한 의심은 궤도의 이탈, 즉 고독을 가져온다. 영웅에게 고독은 장식품일 뿐이다.
이런 답이 기다리고 있다.
"비둘기를 길러내게. 늑대를 키우는 대신에."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허탈할수록 좋다. '모든 것은 네 안에 있다' 같은 귀결은 우리를 힘빠지게 하지만 고민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 목적지보다 여정을 즐긴다면, 정답에 놀라는 대신 현답 속에서 휴식할 수 있다.
여기서 '금기'가 갖는 다른 힘을 만난다. 하지 말것인가,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게끔 하는 것이 금기의 어법이다. 다른 선택은 없어 보인다. '하지 말것'을 강조할수록 금기의 효력은 강해진다. 마치 궁지에 몰린듯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하지말라고 했기때문에 어기는 일은 부정의 당위성을 얻는다. 만약 위기 속에서 침착해져서 '하면 좋을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금기는 금새 효력을 잃는다. 악을 물리치지 말고 비둘기, 즉 평화를 기르란 말은 다름 아닌 긍정강화 효과다.
하지만 반항심과 의심많은 악마는 이렇게 속삭인다. '금기를 억제하기 위한 수작을 믿고 따를 수 있겠어?'
<양치기의 책>-신화의 영웅담을 복제하다.
이런 영웅담의 골격은 좀 지루할 때도 있다. 더우기 신화의 모티브들을 보란듯이 차용하고 이미 증거된 진실들을 녹음기처럼 되풀이 할 때, 아는 문제와 같은 답을 만난 불성실한 학생이 된다. 수학이나 과학의 응용문제에 요하는 사고력에는 치를 떨었지만, 어쩐지 이야기만은 왜 늘 새롭길 바라는 걸까.
이 밖에 글을 쓰며 떠올렸던 책들입니다.
*신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책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같은 신화, 시네필 다이어리
*금기와 선과 악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던 책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
*긍정강화 방식을 육아에 응용한 책
칭찬은 아기고래도 춤추게 한다.
*금기를 어기고 파멸했던 여성
마담 보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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