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어떤 바보 집에 칼을 든 강도가 들었다. 바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열심히 여기저기를 뒤지는데 바보가 잠에서 깼다. 
"강도여유?"
바보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바보는 놀라서 "살려주시우."라고 말했다. 바보로 정평이 나있는 고로 강도가 말했다. 
"그래. 네가 우리나가 삼국시대의 세 나라를 말하면 살려주겠다."
강도가 바보의 배에 칼을 갖다대며 말했다. 
"배 째시려고 그려?"
바보가 물었다. 강도는 "뭐? 백제 신라 고구려? 맞아. 약속은 약속이니 살려주지." 라고 말하고 일어나 나갔다는 이야기.

-<장영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서 

장영희는 처음입니다. 문학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소문으로만 들었고,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어떤 연유로 책장에 꽂혀 있긴 하지만 별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실은 <인간극장>류의 극복형 에세이는 별로 제 타입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 컴플렉스를 어리석게 탈출했습니다.) 요새는 더러 <인간극장>을 보기도 하지만 예정된 감동에서 빠진 스릴은 어쩐지 탄력이 없다고 할까요. 구도자에게 주어지는 지난한 길은 아직 제 차례가 아닌가 봅니다. 

아침이 왜 축복인지 저는 문자로만 아는 사람입니다. 실로 아침이 축복같다는 기분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행아 입니다. 꽃비가 예쁜건 알겠지만 황홀한 눈으로 쳐다볼 수 없는 외눈박이 입니다. 의심과 비판과 독설로 채워진 삶이 부끄러워질까봐 미담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움을 마주한다는 건 무척 불편한 일입니다. 강한 사람이 오히려 잘 휘어진다고들 합니다. 느낍니다. 전 알맹이보다 껍질이 두꺼운 두리안입니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는 무척 유연하군요. 삶을 대하는 자세만으로도 그의 아우라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그들의 영혼을 훔쳐보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혼 도둑이다. 그들의 젊고 맑은 영혼 속에서 나는 삶의 보람과 내일의 희망을 주는 글거리를 찾는다.'

그가 찾은 글거리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미담 백과사전이라도 지닌 듯, 주제와 문학에 맞는 일화들을 척척 인용합니다. 그의 삶이 얼마나 잘 통합되어 있는지를 가늠해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느낄 수 있는' 촉수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예민함 일테지요. 


잘 사는 나라의 딕과 제인이 나비를 잡고 다람쥐를 쫓으며 꿈을 키울 때, 영희와 철수는 파리를 잡고 쥐를 잡으려고 쓰레기통에 앉아 있었다. 잘 사는 나라의 아이들이 펄펄 내리는 눈을 보고 썰매를 타고 산타맞이 '징글벨'노래를 할 때, 우리는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라고, 눈이 공짜로 내리는 떡가루이길 바라며 노래 불렀다.

조교가 문득 물었다.
 "우리말 처음 배운 외국사람이 보고 제일 놀라는 간판이 뭔지 아세요?"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 뼈다구 해장국이요." 한다. 맞다 나도 간판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용인 근처에서 본 '남동 생고기'라는 음심점 간판이다.

미담의 따순 온기에 그저 언 손을 맡기고 침잠해 있을 때, 미친듯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두 번째, 세 번째 글이었습니다. 이 외에는 없었습니다. 참새 시리즈로 오인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못 박아 둡니다. 

기발한 일화들 덕분에 거의 지루하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지만, 제 반쪽이 심성으로는 특별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책에 편지를 남긴 박완서님처럼 '실은 그게 나의 삶의 원초적 환희' 였다는 걸 확신할 날이 올까마는 모르겠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오늘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숨겨진 보석,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다, 가슴 속에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아 마음의 부자가 된다면.' 같은 메시지를 문자 이상으로 육화할 수 있을 지 영 자신이 없습니다. 

반면 후반으로 이어지는 장영희가 사랑한 영미문학의 직접 번역 텍스트와 거기에 딸린 짦은 글들은 명징하게 다가옵니다. 무언가 '대상'이 있어야 흡족한 이 병은 걸리시지 않는게 좋습니다. 저는 투병 중입니다. 개중 신선하고 발랄한 동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침식사 때
에드거 A. 게스트

우리 아빠는요, 아주 우스운 방법으로 아침을 먹어요.
하루 중 첫 식사 때 우리는 아빠를 볼 수 없지요.
엄마가 음식을 앞에 놓아 드리면, 아빠는 자리에 앉죠.
그러고 나서 신문을 집어 들면, 우리는 아빠 얼굴을 볼 수 없죠.
아빠가 커피를 후후 부는 소리, 토스트 씹는 소리는 들려요.
하지만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아침신문 같아요. 
                   
'문학전도사'라는 별칭을 두 눈으로 확인한 샘입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첫 단독 번역작이라는 <종이시계>를 비롯해 <바너비 스토리>와 <슬픈 카페의 노래>같은 다른 번역작은 읽어보고 싶습니다. 故 장영희 교수를 에둘러 만나는 편이 제게 어울리는 처방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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