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 슈퍼 히어로를 읽는 미국의 시선
마크 웨이드 외 지음, 하윤숙 옮김 / 잠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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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있는 강한 힘이다. 이 힘은 우리 자신도 알 수 없을 정도로매우 강하다. ..우리는 스스로 물을 때 나는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답고, 재능많고 멋진가라고 묻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물을 때에는 당신이 누구이기에 그렇지 '못한가'라고 묻는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다. 당신이 시시하게 놀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이 불안하지 않도록 움츠려 있어봐야 아무것도 계몽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빛나는 존재이듯이 우리 모두 빛나는 존재다. 우리 안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영광을 널리 보여주기 위해 태어났다. ..또한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빛을 밖으로 비출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도 자기 안에 들어있는 빛을 밖으로 비추게 한다.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에 인용된 마리안 윌리엄슨의 말 

크립톤의 마지막 아들, 즉 슈퍼맨에 대해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일컬어지는 마크 웨이드는 "슈퍼맨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 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 앞에서 평생 쌓아온 자부심의 빛이 사라졌다. 오랜 세월 남다른 애착으로 슈퍼맨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빠짐없이 읽고, 보고, 심취해 있었던 이 전문가는 누군가 툭 던져놓은 '왜?'로 슈퍼맨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건 '착각'을 반성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그는 마리안 윌리엄슨이 쓴 독창적인? 글을 보고 모든 것이 명징해 졌다. 클라크 켄트가 인간이듯이 크립톤 인(슈퍼맨)역시 소속 욕구와 외로움을 가진 사람이며, '진정 살아 있는 세상의 일원이 되었다고 느낄 수'있는 방편으로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서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이타적인 영웅적 행위의 미덕을 보여주는 빛나는 모범이었던 슈퍼맨이 실은 '이기적인 생각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위대한 역설'을 보여주었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나는 아쉽게도 그가 품은 회의에도, 그가 발견한 위대한 역설에도 의아하기 그지 없었다. 슈퍼맨 신화를 어떻게 강화하고 있는지를 맨 살로 느꼈을 뿐이었다. 그들이 슈퍼맨을 '이타적인 영웅의 미덕을 보여주는 빛나는 모범'이라고 보았다면 나는 '이타적 영웅이 필요한 미숙한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았다.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계몽해야 한다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의무에 골몰하는 바보영웅을 만났다. 슈퍼맨이 '이기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구하고 지구인의 일원이 되었다는 반쪽 휴머니티에 중독된 미국인을 대면했다.
 
이 꼭지는(이 책은 슈퍼히어로에 대한 여러명의 철학적 칼럼을 모아놓았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긴 했지만 자위적이고 작위적인 물음이기도 했다. 난잡한 세상을 구할 영웅을 만들고 그것을 신화로로 재생산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오로지 슈퍼맨의 세계에서나 의미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슈퍼맨의 바깥에서 묻고 싶었다. 왜 미국인들은 슈퍼맨이 필요한가. 슈퍼맨은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 자리의 새로운 영웅 모델이기도 하고, 초인에 대한 경외의 대체물이기도 하고, 재미없는 세상의 극적 도구 이기도 하며, 잘 팔리는 영화의 잘 만든 복제품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보존물이기도 하고, 영화의 비극이 현실로 재현되는 미국의 보금자리 이기도 하다. 화려한 환타지 액션물이 사실은 현실이 얼마나 초라한 지를 반증하고 억압된 욕망의 세계를 가장 천진하게 드러낼 뿐이다. 최근 '수정주의'적 히어로 영화(<왓치맨><다크나이트 리턴즈>)에서 시도된 영웅의 도덕성 탐구가 무릇 소정의 답변이 되기도 했다.    

마크 웨이드가 '독창적'이라고 찬탄한, 우리 안의 강한 힘을 부채질 하는 글은 언뜻 파격적으로 보일 뻔 했지만, 공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 우리의 빛을 밖으로 비춘다는 논리는 우습기 짝이 없다. 게다가 '슈퍼맨이 왜 이런 일을 하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어색한 종교적 답변은, 도덕성을 야릇하게 강조하고 있었다.   

계몽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증명하려 드는 것은 사실 감정적 폭력이며, 그것을 가장 자주, 무심하게 행하는 나라에 바로 슈퍼맨이 살고 있었다. 슈퍼맨을 아무리 인간으로 끌어내려도 그 사실만은 변함없다. 수퍼맨이 인간의 고뇌를 간직한 영웅이라는 사실은 크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영웅됨이 아닌, 동등한 관계를 통해서 성숙한 재능을 발휘해야 한다. 

이 책이 여러 명의 필자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다각도로 슈퍼히어로를 볼 수 있게끔 했지만, 다분히 '미국적인' 세계 속의 진술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 책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다. 슈퍼맨보다 더 슈퍼맨 다운 생각을 하는 책이다. 미국을 확인하기에 이보다 알맞은 책은 없을 지도 모른다.
 
끝내 <무서운 심리학>에서 기억해 두었던 한 구절이 떠오르고 만다.

'자신이 품었던 회의를 논리적으로 극복하면 그것은 신념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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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런 Born to Run - 신비의 원시부족이 가르쳐준 행복의 비밀
크리스토퍼 맥두걸 지음, 민영진 옮김 / 페이퍼로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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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이키 운동화의 비윤리성은 나이키의 과학을 이기지는 못했다. 혹시 타라우마라족의 맨발은 나이키를 이길 수 있을까? (사진출처)
 
지도에도 없는 멕시코의 척박한 벽지에 오두막을 짓고 돌멩이들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인 달리기 미치광이 카바요가 사랑하는 땅. 그 곳의 원시부족 타라우마라족은 샌들만으로 고산을 평지처럼, 협곡을 고무줄처럼 타넘는 초인적 습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줍음을 지녔다. 팔릴만한 물건이라면 영혼이라도 주머니에 넣을 챠보지(타라우마라족에게 모든 이방인은 이렇게 불린다)들은 울트라러닝(일반 마라톤보다 험난하고 긴 코스)으로 그들을 끌어낸다. 겨우 옥수수 몇 말로. 

그렇다고 <본투런>이 미개부족에 대한 연민이나 신기를 다룬다고 생각하면 많이 안타까울 것이다. 권법의 고수처럼 프리메이슨의 등급처럼, 이 책에는 다양한 달리기의 현자들이 떼를 지어 등장한다. 또 소림축구의 주성치가 희대의 영웅들을 호출해서 말도 안되는 축구팀을 만든 것처럼 달리기의 신기원들을 모아 '달리기란 이런거야'라며 발끝을 툭툭차서 50km 전방의 계곡에 착지하는 식이다. 이 다소 황당한 실화가 건강 잡지의 칼럼니스트의 취재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얼떨떨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행복한 종족, 그리고 강인한 종족이라는 칭호를 얻는 타라우마라족은 80세 노인이 산중턱을 내달릴 정도로 대단한 달리기 실력을 빼면 매우 수줍고 소박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시부족의 미덕을 발휘한다. 덧붙여 위대한 달리는 명상자들의 면면은 울트라 러닝이 아니라면 한심할 정도의 일상을 영위한다는 사실도 남다르다.


                                                                    ('달리는 동물' 스콧과 타라우마라족의 아르눌포)

그들은 엄밀히 말해 원시부족의 이방인이 아니다.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반대 편에서 출발하여 정확히 중간지점에서 만난 주자들이다. 이 화기애애한 화합의 장면은 드라마처럼 후반부에 이르러서 연출되지만 그 여정은 각종 소림의 영웅담을 모아놓은 듯 하나하나가 각별하다.  


타라우마라족의 비밀을 뒤쫓는 연구자인 카바요도 오직 그의 근육에 역사를 기록했을 따름이다. 파티하는 것처럼 달리면 타라우마라족도 이길 것 같은 젠과 빌리는 <달마행자들>로 트레일러닝을 배우고 찰스 부코우스키(미국문학의 이단아이자 타고난 술고래)에게서 영감을 얻는 21세의 연인이다. 맨발의 테드는 세계 최고의 탄력, 최상급 운동화와 뒤꿈치 패드에도 고질적인 발목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신발을 벗어 던져 자유를 찾았다. 경주를 시작할 때마다 지르는 오싹한 비명과 경주를 마치면 흥분한 사냥개처럼 흙바닥에 구르는 스콧은 카바요가 점찍은 순수한 달리는 동물이다. 작가이며 타라우마라족의 비결을 배우고 싶은 형편없는 주자가 그려낸 이들은 정말 사랑스런 괴짜들이다.   

이 괴짜들에게 과연 게으른 우리는 무엇을 이식받을 수 있을까. 운동은 몸에 좋다는 또 하나의 단서? 이 참에 값비싼 나이키 신화를 깨보자는 혁명? 인류가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라는 확신? 원시부족에 대한 한없는 경외? 달리기의 창조성에 대한 새삼스런 감회? 달리는 주자들이 전하는 소박한 삶에 대한 가르침?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오랫동안 뜀박질했지만 그 무엇보다 지겹도록 들어왔던 '사랑'이란 단어가 <본투런> 독서를 관통하고 말았다. 도대체 사랑이 달리기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비질이라는 달리기 코치는 걸어서 오르기도 힘겨운 언덕을 싱거운 웃음으로 평지를 달리듯 하는 이 괴짜부족을 보고, 도서관에서 고서를 발견한 학자처럼 감격하고 만다. '타고난 주자'들은 영감에 사로잡힌 예술가처럼 달린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타라우마라족의 그것은 '달리는 방법'이 아닌'사는 방법'이었음을 발견한다.
 
<본투런>의 주자들은 타라우마라족과 마찬가지로 달리는 것이 사는 것이었고, 삶을 사랑하는 것이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이었다. 그들의 삶이 44사이즈의 미관이나, 트로피나 상금, 푸쉬 프레스 위의 근육질을 위한 것이었다면 달리기는 때론 고통이고 인내이고 한계였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처럼 먹는 일을 당연히 여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원시부족에게 달리기는 전투나 비즈니스가 아니라 순수한 기쁨일 뿐이었다. 없어도 그만인 옥수수 몇 자루와 우정의 축제를 위해 달리고, 즐겁게 살았다. 

'운동'이 슬로건처럼 자기계발의 중심부로 떠오르는 시대에 달리기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마술같은 전복을 통해 거꾸로 우리에게 '달리는 영혼'이 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헬스장이나 요가원, 러닝트랙, 좋은 신발을 위해 또 다른 소비를 시작하는 우리를 질책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원시부족의 무용담 정도로 여긴다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나이키 스스로도 인정한 신발의 과학에 빠진 밑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딱딱하고 부드러운 신발이 실은 충격흡수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으며 나아가 푹신한 신발이 발과 무릎에 악영향을 키칠 수도 있다는 증거들. 신발이 발을 옭아매는 그물이고 깁스며. 바닥과의 정보 교환을 차단하는 발의 수면제라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아주 얇은 신발을 신고도 그들의 발이 튼튼하고 부상도 적은 점은 지금 당장 수줍은 시도를 해보고자하는 용기를 준다. 

달릴 때의 좋은 느낌, 가깝게는 전속력으로 질주했던 어린시절, 멀게는 '달리는 사람'을 맨 처음 동굴벽화에 그려넣었던 인류의 최초를 내 몸으로 시연해보고 싶은 쾌감이 몰려온다. 분명 그들처럼 살 수 있다면 그들처럼 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처럼 달릴 수 있다면 그들처럼 삶을 사랑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쫓지 말고, 달리기 본능을 꺼내 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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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진보 Real Progressive - 19개 진보 프레임으로 보는 진짜 세상
강수돌.구갑우.김상봉 외 지음 / 레디앙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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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대근의 물음은 단호하다. 지난 10여년간 집권세력이었던 이른바 민주화정부,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진보'였는가?' 그는 그 두 정권이 서민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간 신자유주의 '보수 정부'였음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과 이들의 차이는 질이 아니라 양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이들이 주장하는 '민주대연합'론은 허구라고 비판한다.
-<리얼진보>/강수돌 외/레디앙/2010.2 서문에서

  
서문을 한 차례 읽고 이대근(<경향신문>논설위원)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진보'였는가'를 펼쳤다. 민주화의 대표격이랄만한 두 이름이 '신자유주의 보수정부'였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재빨리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민주 개혁 세력에 대한 냉담한 반응을 주시하며 시작된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이 발간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는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진입한, 성공한 10년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으례 그랬던것처럼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고,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우울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회라는 정반대의 통계를 제시한다. 

논지는 분명하다. '민주화세력'이 가난한 서민과 보통 시민을 전혀 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대중 정권은 집권 후반기 개혁 후퇴로 일관하면서 재벌의 독점과 집중을 도왔고, 한국을 외국 자본의 투기장으로 변모시켰으며, 생산적 복지개념 역시 최소한의 복지에만 머물렀다. 

김대중의 개혁포기가 시장주의 이념을 급속도로 퍼트렸고 노무현은 아예 시장에 권력을 내주었다고 말한다. 그의 좌파든 신자유주의든 국익에 도움만 된다면 상관없다는 정체성으로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정권"이라는 이미지만 만들어 냈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의 친기업 정책, 무한교육 경쟁, 공기업 민영화 확대, 각종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에 가속도를 붙인 일이 지난 10년의 정권과 대단한 차이를 둘 만하지 않다는 점은 '민주 대 반민주'구도로 민주세력의 선을 강조할 수 없다는 생존전략의 실패요인으로 나아간다.  
 
아마도 민주당의 비지니스는 반MB가 아닌 지난10년의 정권에 대한 반성(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했는지)으로 시작되야 한다는 충고인듯 싶다. 진보적 시민, 다수의 서민들을 묶을 수 있는 진보정치야말로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고 극복하는 정확한 해답이라고 말이다. 

의무감처럼 받아보던 한겨레신문도 끊고, tv가 없으니 하물며 김연아의 메달 소식에도 뚱하고, 매일 책 속의 미로같은 글씨나 헤매고 다니는 이 아줌마에게 정치적 견해란, '그놈이 그놈이지'란 허무와 방관에 가깝다. 내게 진보란 아이에게 몸에 좋은 야채를 먹일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만큼도 의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슬프게 했다. 다시 되물었다. '왜 그 놈이 그놈이지?' '정권이 바뀌어도 왜 그대로지?'

이 논설에 의하면 민주주자들이 켜놓은 좌측 깜빡이도 별다른 의미를 생산해내지 못한 결과 때문인가? 내가 그 어떤 정권에서도 우대받지 못했던 보통 시민과 서민이기 때문인가? 나는 내 일상 어디에서 정치의 진보를, 혹은 후퇴를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자조하고 만다. 갑론을박 정치인들을 욕할 만큼의 의지도 내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했고, 이 논설은 사실 '의식없는 나'를 더 기운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김대중이, 노무현이 최고의 공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을 놓았던 바보이기도 했다. 노무현의 탈권위주의, 권력기관의 탈정치화, 지역 균형발전의 추구, 남북 화해 노력 등의 업적에 오히려 중심을 잃은 사람이다. 그가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노선이 그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기만을 빌면서 방관했던 국민이다. 지난 10년의 민주정권에 잘못이 있다면 그건 누구보다도 민주당이 절감하고 떠안아야 될 일이지만, 기득권만 선점하려는 거짓 얼굴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며 '민주'와 '평등'을 갈망하는 진보적 시민을 공허하게 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결국 이런 목소리는 애정어리지만 다분히 이상적이다. 내가 아는 정치라면, 그게 누구든 반성을 모르는 무뢰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적 허무주의로 흐르리란 것을 잘 알면서도 난 이 글을 시작했고 '진보'에 대한 갈망에 목소리를 보태고 싶어졌다. 비록 무국적 거리에 내던져진 아이를 안고 있는 아줌마이지만 누군가 우리가 앉아 쉴만한 들마루에 걸레질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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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책 - 북 아티스트 강진숙의, 만들면서 행복하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책 만들기
강진숙 지음 / 글을읽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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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든다구요? 고가의 기계나 특별한 기술 없이도, 무슨무슨 센터에 다니지 않아도 집에서 책을 만들 수 있을까요? 집에서 빵도 만들고 미싱질도 하는데 책이라고 못 할 거 있나요. 대신 이 책은 우리가 아는 '책'은 아닙니다. 바인딩 같은 고난이도 기술을 전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북 아트'라는 말에서 떠올릴 수 있듯 제품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일입니다. '작품'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두꺼운 종이를 앞 뒤로 접어서 만든 아코디언 북이라면 어떨까요. 너무 시시한가요. 여러 장의 종이를 겹쳐 반으로 접고 실로 꿴다면 그럭저럭 보급형 책 흉내를 낼 수도 있습니다. 같은 크기의 종이만 있으면 얼마든지 묶을 수 있는 전통제본법도 별 부담이 없습니다. 팝업북도 수학적 구도에 대한 머리씨름 없이 누구나 쉽게 따라해 볼 수 있는 메뉴얼을 제공합니다. 터널 북, 별북, 과일 책도 아이와 함께 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난이도 있는 제작법도 등장하지만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본 없이도, 네모 반듯한 형태가 아니어도, 꼭 직접 쓴 글이나 그림이 아니어도 사진으로, 도장으로, 스크랩으로 '아무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즐겁습니다. 북 아티스트 저자의 작품뿐아니라 어린이, 일반인, 대학생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소개된 점도 정답습니다. 어렴풋이 책의 원형과 만나고, 새로운 책의 가능성도 상상해 봅니다.  

스탬프를 찍어 만든 아코디언 북

스텐실로 그린 접기 책

종이를 과일 모양으로 잘라 접고 등끼리 붙여 만든 과일 책

시나 노래가사, 편지를 적은 하트 북

형태를 벗어난 책, 강진숙(저자)


쉽게 도식화한 팝업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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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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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짓/피어스/400785

파르달, 리코프 바 네드릿 톤즈 비스 판판 아 동크 바쑤 딧 벤터, 프랄리오 도프 넥테림 것 번드 코루이스크(NG487196)바그넛 릴로 렌 바르날 로퍼 동크 가스트로 영 딧.



외계인으로 추청되는 피어스 선생님의 집의 다락방에서 발견된 쪽지 한 장. 이게 바로 털썩 성. 궁수자리 왜소 타원 은하에 있는 행성으로 들어가는 암호 랍니다. 황당하죠. <쾅! 지구에서 7만 광년>의 타겟은 누구입니까? 공상이 두렵지 않은 아이들인가요? 털썩성의 초대장을 받지 못한 어른들인가요? 아무라 읽으라지요. 못 믿겠으면 말라지요. 책은 딱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냄비 받침 하기엔 양장본이 최고죠. 그렇게 방심하다 뜨끈한 청국장에 방귀뿡뿡 시동을 걸어 털썩성으로 날려버릴 듯한 책입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랬으면, 하는 책입니다. 뇌는 작고, 짧은 털투성이 꼬리에 배꼽은 없는 눈꼽 만큼도 무시무시 하지 않은 털썩성 외계인이라면 "당장 너희들을 구워서 토스트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위협해도 등 뒤로 숨긴 물총만 겨누면 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해 지구의 아이들을 간택해 간다해도 SF 자격증만 준다면 유학이라도 보내고 싶은 곳입니다. 떠올리는 데로 음식이 차려지고 "스네킷"이라고 외치면 벽에 문이 나타나는 이 유치찬란 행성에 웨프 빔을 타고 소풍가고 싶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해고 되고 프라모델을 조종하는, "인생은 쇠똥 샌드위치야, 짐보. 빵은 엄청 얇은데 속은 꽉 차 있지." 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용돈을 털어 요리책을 선물하는 짐보는 꽤나 착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지만 어쩌다 이런 허무맹랑에 휘말리게 되었을까요?

슈퍼맨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클라크 켄트 였을 때의 얼빵하고 소심한 기질 때문일 것입니다. 짐보에게는 절대 영웅적 기질 같은 건 없지만  "물론 위험하지, 위험하지 않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라고 말하는 찰리라는 절친은 있습니다. 하지만 조셉캠벨이 말한 영웅의 궤적까지는 아니어도 머뭇거림, 도전에 대한 수줍음이 진정한 탐험의 통과의례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찰리의 용기는 순진한 호기심에 가까웠죠. 그래서 이 황당은 신화같은 무게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앞서 갔군요. 궁수자리까지 날아가지 않을 만한 현실이 <쾅! 지구에서 7만 광년>에 있습니다. 전 늘 지금의 용기가 두려움이라는 터널을 통과한 것인지 되묻곤 합니다. 호기심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그 반짝이는 별만 보고 살기엔 저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상상력에 모조리 몸을 내 맡기지 못하고 현실로 끌어 당기고 맙니다. 짐보의 '성장 여정'에 당연히 촛점을 맞추는 제가 참 고루하긴 하지만 그래야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어른이든 어린이든 간에 저와 다른 가능성으로 즐거움을 얻길 바래봅니다. 실직 가장이 도전하는 꿈에, 하드코어 누나의 사랑스러움에, 찰리의 추진력과 기지에, 가정을 책임질 만한 두 엄마의 덤덤한 배포에, 털썩 성 외계인의 진화되지 않은 고뇌에, 철학을 뺀 유머 등등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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