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 슈퍼 히어로를 읽는 미국의 시선
마크 웨이드 외 지음, 하윤숙 옮김 / 잠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있는 강한 힘이다. 이 힘은 우리 자신도 알 수 없을 정도로매우 강하다. ..우리는 스스로 물을 때 나는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답고, 재능많고 멋진가라고 묻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물을 때에는 당신이 누구이기에 그렇지 '못한가'라고 묻는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다. 당신이 시시하게 놀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이 불안하지 않도록 움츠려 있어봐야 아무것도 계몽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빛나는 존재이듯이 우리 모두 빛나는 존재다. 우리 안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영광을 널리 보여주기 위해 태어났다. ..또한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빛을 밖으로 비출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도 자기 안에 들어있는 빛을 밖으로 비추게 한다.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에 인용된 마리안 윌리엄슨의 말 

크립톤의 마지막 아들, 즉 슈퍼맨에 대해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일컬어지는 마크 웨이드는 "슈퍼맨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 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 앞에서 평생 쌓아온 자부심의 빛이 사라졌다. 오랜 세월 남다른 애착으로 슈퍼맨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빠짐없이 읽고, 보고, 심취해 있었던 이 전문가는 누군가 툭 던져놓은 '왜?'로 슈퍼맨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건 '착각'을 반성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그는 마리안 윌리엄슨이 쓴 독창적인? 글을 보고 모든 것이 명징해 졌다. 클라크 켄트가 인간이듯이 크립톤 인(슈퍼맨)역시 소속 욕구와 외로움을 가진 사람이며, '진정 살아 있는 세상의 일원이 되었다고 느낄 수'있는 방편으로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서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이타적인 영웅적 행위의 미덕을 보여주는 빛나는 모범이었던 슈퍼맨이 실은 '이기적인 생각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위대한 역설'을 보여주었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나는 아쉽게도 그가 품은 회의에도, 그가 발견한 위대한 역설에도 의아하기 그지 없었다. 슈퍼맨 신화를 어떻게 강화하고 있는지를 맨 살로 느꼈을 뿐이었다. 그들이 슈퍼맨을 '이타적인 영웅의 미덕을 보여주는 빛나는 모범'이라고 보았다면 나는 '이타적 영웅이 필요한 미숙한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았다.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계몽해야 한다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의무에 골몰하는 바보영웅을 만났다. 슈퍼맨이 '이기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구하고 지구인의 일원이 되었다는 반쪽 휴머니티에 중독된 미국인을 대면했다.
 
이 꼭지는(이 책은 슈퍼히어로에 대한 여러명의 철학적 칼럼을 모아놓았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긴 했지만 자위적이고 작위적인 물음이기도 했다. 난잡한 세상을 구할 영웅을 만들고 그것을 신화로로 재생산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오로지 슈퍼맨의 세계에서나 의미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슈퍼맨의 바깥에서 묻고 싶었다. 왜 미국인들은 슈퍼맨이 필요한가. 슈퍼맨은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 자리의 새로운 영웅 모델이기도 하고, 초인에 대한 경외의 대체물이기도 하고, 재미없는 세상의 극적 도구 이기도 하며, 잘 팔리는 영화의 잘 만든 복제품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보존물이기도 하고, 영화의 비극이 현실로 재현되는 미국의 보금자리 이기도 하다. 화려한 환타지 액션물이 사실은 현실이 얼마나 초라한 지를 반증하고 억압된 욕망의 세계를 가장 천진하게 드러낼 뿐이다. 최근 '수정주의'적 히어로 영화(<왓치맨><다크나이트 리턴즈>)에서 시도된 영웅의 도덕성 탐구가 무릇 소정의 답변이 되기도 했다.    

마크 웨이드가 '독창적'이라고 찬탄한, 우리 안의 강한 힘을 부채질 하는 글은 언뜻 파격적으로 보일 뻔 했지만, 공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 우리의 빛을 밖으로 비춘다는 논리는 우습기 짝이 없다. 게다가 '슈퍼맨이 왜 이런 일을 하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어색한 종교적 답변은, 도덕성을 야릇하게 강조하고 있었다.   

계몽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증명하려 드는 것은 사실 감정적 폭력이며, 그것을 가장 자주, 무심하게 행하는 나라에 바로 슈퍼맨이 살고 있었다. 슈퍼맨을 아무리 인간으로 끌어내려도 그 사실만은 변함없다. 수퍼맨이 인간의 고뇌를 간직한 영웅이라는 사실은 크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영웅됨이 아닌, 동등한 관계를 통해서 성숙한 재능을 발휘해야 한다. 

이 책이 여러 명의 필자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다각도로 슈퍼히어로를 볼 수 있게끔 했지만, 다분히 '미국적인' 세계 속의 진술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 책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다. 슈퍼맨보다 더 슈퍼맨 다운 생각을 하는 책이다. 미국을 확인하기에 이보다 알맞은 책은 없을 지도 모른다.
 
끝내 <무서운 심리학>에서 기억해 두었던 한 구절이 떠오르고 만다.

'자신이 품었던 회의를 논리적으로 극복하면 그것은 신념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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