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진보 Real Progressive - 19개 진보 프레임으로 보는 진짜 세상
강수돌.구갑우.김상봉 외 지음 / 레디앙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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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의 물음은 단호하다. 지난 10여년간 집권세력이었던 이른바 민주화정부,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진보'였는가?' 그는 그 두 정권이 서민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간 신자유주의 '보수 정부'였음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과 이들의 차이는 질이 아니라 양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이들이 주장하는 '민주대연합'론은 허구라고 비판한다.
-<리얼진보>/강수돌 외/레디앙/2010.2 서문에서

  
서문을 한 차례 읽고 이대근(<경향신문>논설위원)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진보'였는가'를 펼쳤다. 민주화의 대표격이랄만한 두 이름이 '신자유주의 보수정부'였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재빨리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민주 개혁 세력에 대한 냉담한 반응을 주시하며 시작된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이 발간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는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진입한, 성공한 10년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으례 그랬던것처럼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고,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우울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회라는 정반대의 통계를 제시한다. 

논지는 분명하다. '민주화세력'이 가난한 서민과 보통 시민을 전혀 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대중 정권은 집권 후반기 개혁 후퇴로 일관하면서 재벌의 독점과 집중을 도왔고, 한국을 외국 자본의 투기장으로 변모시켰으며, 생산적 복지개념 역시 최소한의 복지에만 머물렀다. 

김대중의 개혁포기가 시장주의 이념을 급속도로 퍼트렸고 노무현은 아예 시장에 권력을 내주었다고 말한다. 그의 좌파든 신자유주의든 국익에 도움만 된다면 상관없다는 정체성으로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정권"이라는 이미지만 만들어 냈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의 친기업 정책, 무한교육 경쟁, 공기업 민영화 확대, 각종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에 가속도를 붙인 일이 지난 10년의 정권과 대단한 차이를 둘 만하지 않다는 점은 '민주 대 반민주'구도로 민주세력의 선을 강조할 수 없다는 생존전략의 실패요인으로 나아간다.  
 
아마도 민주당의 비지니스는 반MB가 아닌 지난10년의 정권에 대한 반성(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했는지)으로 시작되야 한다는 충고인듯 싶다. 진보적 시민, 다수의 서민들을 묶을 수 있는 진보정치야말로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고 극복하는 정확한 해답이라고 말이다. 

의무감처럼 받아보던 한겨레신문도 끊고, tv가 없으니 하물며 김연아의 메달 소식에도 뚱하고, 매일 책 속의 미로같은 글씨나 헤매고 다니는 이 아줌마에게 정치적 견해란, '그놈이 그놈이지'란 허무와 방관에 가깝다. 내게 진보란 아이에게 몸에 좋은 야채를 먹일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만큼도 의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슬프게 했다. 다시 되물었다. '왜 그 놈이 그놈이지?' '정권이 바뀌어도 왜 그대로지?'

이 논설에 의하면 민주주자들이 켜놓은 좌측 깜빡이도 별다른 의미를 생산해내지 못한 결과 때문인가? 내가 그 어떤 정권에서도 우대받지 못했던 보통 시민과 서민이기 때문인가? 나는 내 일상 어디에서 정치의 진보를, 혹은 후퇴를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자조하고 만다. 갑론을박 정치인들을 욕할 만큼의 의지도 내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했고, 이 논설은 사실 '의식없는 나'를 더 기운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김대중이, 노무현이 최고의 공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을 놓았던 바보이기도 했다. 노무현의 탈권위주의, 권력기관의 탈정치화, 지역 균형발전의 추구, 남북 화해 노력 등의 업적에 오히려 중심을 잃은 사람이다. 그가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노선이 그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기만을 빌면서 방관했던 국민이다. 지난 10년의 민주정권에 잘못이 있다면 그건 누구보다도 민주당이 절감하고 떠안아야 될 일이지만, 기득권만 선점하려는 거짓 얼굴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며 '민주'와 '평등'을 갈망하는 진보적 시민을 공허하게 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결국 이런 목소리는 애정어리지만 다분히 이상적이다. 내가 아는 정치라면, 그게 누구든 반성을 모르는 무뢰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적 허무주의로 흐르리란 것을 잘 알면서도 난 이 글을 시작했고 '진보'에 대한 갈망에 목소리를 보태고 싶어졌다. 비록 무국적 거리에 내던져진 아이를 안고 있는 아줌마이지만 누군가 우리가 앉아 쉴만한 들마루에 걸레질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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