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쓰는 글쓰기 - 명로진의 인디라이터 시즌 2
명로진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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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글쓰기 책을 보면서 낄낄댔습니다. 블로그에 아얘 딴 살림을 차린 제게 작법 책은 교과서만큼 진지하거나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오규원의 <현대 시작법>도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도 안도현의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도 <맛있는 글쓰기의 길잡이>도 유익한 참고서였지만 당장 손가락 관절에 펜을 쥐어 줄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다 제 탓입니다) 문청시절 읽었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가 개중 가장 뼛속을 후볐던 기억이 납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아직 읽지 못한게 아쉽긴 하지만 <내 책 쓰는 글쓰기>만의 특별 것저리는 어디에도 없을것입니다.  

마치 달리기 주자가 출발선에서 신호총 소리를 들은 자동반사적 시점 같았다고나 할까요. 저는 들썩거렸습니다. 제게 뛰쳐나가지 않고는 못베길 만큼 시공간의 정적을 깨는 단발이었습니다. <내 책 쓰는 글쓰기>의 비법들은 모두 살을 부데끼고 나온 것 같았습니다. 종이와 펜, 모니터와 자판 사이 보다 밀착된. 폼도 없고 겸손도 없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걸(그게 모든 비법은 아닐지라도) 전수하겠다는 봉사정신이 심금을 울립니다. (이 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사이긴 해도)


인디라이터


여기에는 있지만 다른 책에는 없는 것 중 하나는, 쓰기부터 출판 후 A/S까지의 과정을 시원스럽게 내다볼 수 있다는 거죠. 저자가 살사책을 완성하기 위해 살사의 고향 쿠바에 다녀와서 적잖이 딴지거는 인물에게 '쿠바에선 그렇게 안추거든?'이라고 했던 말이 '내 책에는 다른 책에 없는 뭔가가 있거든?'이라고 들립니다.  

예문도 많고 반면교사도 있고 책을 내본 사람의 충고와 가르쳐본 사람의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책에는 없는(100% 확신할 순 없지만) 날개 프로필 쓰기, 기획안 돌리기, 출판사와 컨텍하기, 가장 중요한 '인디 라이터', 즉 상업적인 글쓰기에 대한 독려가 있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대우받는 시대가 갔다는 통찰은 서글프기도 하지만 여태껏 외면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 여전히 작가들의 고루한 사색을, 난해한 요구를 기꺼이 감내하는 편입니다. 베스트셀러같은 최전방은 아닐지라도 지독한 고통의 허기로 불러들이는 극단적인, 혹은 비현실적인 세계가, 보존되어야 할 유물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등단문인 신춘문예로 당선된 소설가들의 월 평균 수입이 100만원이라해도, 오히려 그런 이유로 더더욱 문학에의 애착은 강해져만 갑니다. 말하자면 저는 난생처음 '인디라이터'의 세계에 눈을 돌렸습니다. 지지부진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나 손보면서 재능없음을 한탄하고 있을 때, 그들은 정말 멋지게 한 방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작법이 작법


<내 책 쓰는 글쓰기>. 사실 이 책 한 권이 스스로의 이론들을 집약한 표본입니다. 

모욕과 치욕의 순간을 글로써라. 입사원서 접수만 100번 했다고? 265번을 채워라 그리고 <365일 만에 취업 성공하기>로 책을 내라.

저자는 책에 자신의 모욕과 치욕의 순간을 빼놓지 않습니다. 배우 섭외도 끊기고, 책이 무슨 소용이랴 모두 내 던지고, 머릿속의 먹물을 빼버렸던 어떤 시절이 사이 읽기에 끼어있지만 이론대로 결코 빠지면 안됩니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시련을 기대합니다.  설교대신 드라마를 원합니다.

돈을 내고 살 독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시장에서 선택되지 않는다. 

이 책은 안마부터 시작되는 별의 별 서비스로도 모자라 집까지 모셔다줍니다. 다시 11번 장미!를 찾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대출받아 의료기계를 잔뜩 장만한 의사가 문을 열고 들오는 첫 환자를 대하는 마음으로 글을 쓸 준비가 됐는가?

이 비유는 의사의 소명과 밥벌이가 글쓰기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상상하게 합니다.  

방송국의 김탁환이 작가지망생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작가는 혼자 밥 먹을 줄 알아야 한다"였습니다. 저자는 인디라이터는 고독을 인정해야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두툼한 살을 붙입니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인용하며 우리는 '흥미로운 예시도 없이 주장부터 한다. 에피소드도 없이 원론부터 말한다'에 대한 적절한 예가 됩니다. 

'한 장의 원고지를 메우는 작가의 피를 토하는 고통'은 시인이나 소설가의 몫이다. 인이라이터는 '글을 쓰는 동안 자유롭고 글쓰기를 통해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글쓰기가 지겹거나 어렵가고 느낀다면? 쓰지 않으면 된다. 

저자의 문장들은 (가벼운게 아니라)가뿐합니다. 힘이 안들어 갑니다. 어떤 춤 강사의 말처럼 '춤출 때 근육을 쓰지마라'는 것을 글로 보여줍니다.

프로필 쓰기의 핵심은 '드러내기'다

그의 프로필을 봅니다. 16개의 책이 드러났습니다. 다른 책도 팔릴 것입니다. 저자는 기자의 발과 마감의 유전자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쓰든 '정보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쓰려고 하는 대부분의 정보는 이미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나와 있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해석은 이미지를 통해 전달된다.

결국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명로진은 이 책으로 글쓰기에 대한 그만의 해석법을 정리했습니다. '설명하든 묘사하든 재미있게 써라'가 그 중 하납니다. 하위 오락문화로 여겨진 '게임을 벤치마킹하라'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삼천포로 빠져라도 그렇습니다.  

물론 알고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헝그리 정신은 배고프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진짜 배고픈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그런 관문을 버틸만 하겠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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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
한지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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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완성된 허구의 세계는 바둑판이나 퍼즐같은 가상의 게임 같습니다. '현실'의 완성도는 요람과 무덤의 데칼코마니, 단 하나 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품'에서의 완성도는 매 게임을 치루는 작가의 전투력 입니다. 작품 속의 한 단어, 작은 에피소드는 자석처럼 어딘가를 향합니다. 게임이 승리를 위하듯 작가들은 메타포로 전술을 꾸밉니다. 

이런 생각들이 저절로 드는 소설집 한 권입니다. 속어이긴 하지만 와꾸(틀)가 잘 맞는 다는 이 느낌은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가 다루는 부재(구멍)와 부재를 메꾸는 실물의 대응이 대략 뚜렷하다는데서 옵니다.

다섯이 눕기도 비좁은 집을 교대로 들고나는 가족들의 살림살이와, 재개발 선고로 쫓겨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비좁은 도시 서울은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이제 오빠만 더 살이찌지 않는 다는 조건 하에 '나한테는 택시가 있는' 아빠가 바깥살림을 한다면 이 집은 다섯가족에겐 꼭 맞겠군요. 하지만 자고 나면 '나'는 키가 크고, 오빠는 살이 쪘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게을러터진 오빠가 어쩌다 편의점 밤근무 자리를 얻게된 횡재 덕에, 비로소 해답이 나온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군요. 

비우고 메꾸기 작업은 공사판처럼 나날이 새로운 상황을 전개합니다. 작가의 퍼즐 놀이가 '미스터 택시 드라이버'의 경우 유쾌하고 분명하네요. 아얘 천 피스 만피스짜리 퍼즐을 파는 남자도 등장시킵니다. 인근 백화점에서 수건을 팔고 있는 여자와 퍼즐 한 개로 운명을 가장하는 뻔한 도식을 작가는 어떻게 풀어 낼까요. 앞서 말했던 '부재'가 그 답입니다. 의사는 기어코 상상임신이라고 하지만 월경이 멎고, 헛구역질이 나고, 배는 부풀고, 부정할 수 없는 태동을 감지합니다. 산달이 다되가서 된장찌개를 올려놓고 나간 남편(퍼즐을 팔던)도 사라집니다. 남편과 아이 정말 잃어버린 걸까요.

'실종'과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가 말해주듯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가 브리핑하는 '부재'는 잃어버렸으나 원래 있지도 않았던 것들에 대한 얘깁니다. 원래 있지도 않았는데 잃어버렸다니 꼭 납량특집 같습니다. 잃어버린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다해도 이 소설집엔 분명 '뭔가를 잃어버린 자'들로 수두룩 합니다. 범인은 없는데 피해자로 가득한 경찰서 같습니다. 사라진 사람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원혼처럼 지상을 떠돕니다.    

메워질리 없는 그 허탈한 구멍은 소설 속에서 어떻게든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청력을 잃었지만 몸으로 소리를 듣고 듣지 말아야 될 소리까지 들으면서 불구의 남자의 수음을 돕는 '소리는 어디에서 피어나는가'가 그렇습니다. 만난적 없이 헤어지기만 해도 연애가 되는 '4월이 오면 그녀도 오겠지'도, 잃어버린 것을 아얘 죽은 것으로 대치시키는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단편은 다른 단편의 상징어가 됩니다. 통틀어 이미 있지도 않은 것들의 '실종'을 다룹니다.

진술만 믿고 없던 것을 진짜 없다고 할지, 혹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할지는 독자가 결정할 일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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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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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고 또 접었습니다. 망설임없이 책의 모퉁이를 접어댔습니다. 결국 216페이지의 반은 접혔군요. 자, 그럼 이제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아. 다시 독서를 시작해야겠군요. (접은 부분을 늘 새로 읽습니다) 뉴턴이 <기하학>을 읽은 것처럼, 꼬마 신랑이 반짝이는 눈으로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를 바라볼 때처럼, 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으려면 접은 부분을 다시 읽는 수 밖에요. 


<사과가 가르쳐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는 유물입니다. 어쩌면 살아있는 화석일지도 모릅니다. 10년동안 사과를 수확하지 못한 농부가 캬바레에서 밤일을 하다가 야쿠자의 싸움에 휘말려 부러진 이빨을 훈장처럼 남겼다가 결국 몽창 빠져버렸다고 하니 뼈말고, 살만 남은 화석이군요. (사진출처)

글쎄 10년 동안 사과는 안따고 뭘했냐구요? 그 사람 농부 맞냐구요? 자연을 일구는 농부, 아닙니다. 자연을 사색하는 철학잡니다. 10년동안 자연을 탐구해서 뉴턴의 사과나무 한 알을 건져낸 과학잡니다. 

과학자면 뭐하고 철학자면 뭐합니까. 본업은 농부고 딸래미는 "우리 아버지는 사과를 키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기른 사과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숙제에 폭로하는 걸요. 농약 없이, 제초 없이, 비료 없이 자연이 10년 후 선물한 사과라구요? 아니요. 기우제가 불러온 비같습니다. 인간의 소원이 불러온 환영같습니다.

6년 동안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지 않았다면 그것도 겨우 한 두 알로 시작됐다면 사과나무는 사과나무이길 포기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기무라씨도 밧줄을 들고 농부이길, 아버지이길 포기하려고 산 속에 들어갔습니다. 나무가지 위로 던진 밧줄은 스르륵 떨어집니다. 그것도 산 속의 사과 나무 아래에요.

이쯤되면 인간의 주술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 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고집스런 농부의 목숨을 건진 사과나무는 물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는데도 고색창연하게 아름답습니다. 흙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꼭 쥐면 잡히고 놓으면 포슬포슬 흩어집니다. 뭐가 좋은 흙인지는 몰라도 좋은 흙은 이럴거란 확신이 듭니다. 자연의 고집과 아량은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합니다. 

무농약 결심을 하고 백방으로 안 해본 것 없는 시도를 했지만 사과나무는 말이 없었고 죽음을 목전에 둔 기무라씨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사과알 말고 사과밭의 흙이 건강해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흙이 건강해 지려면 '자연 상태' 즉,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가까운 진리를 획득합니다. 이걸 '자연 재배'라고 이름합니다.     

<자연달력 제철밥상>에서 '자연재배'법에 얼핏 감흥이 왔습니다. 도쿠노가진의 <무농약 건강채소 기르기>에 "대부분의 충해는 화학비료나 덜 발효된 퇴비가 발효될 때 나오는 화학물질, 그리고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는 데서 발생한다. 질소비료 과용으로 진디물이 생기고, 덜 발효된 퇴비로 배추벌레 풍뎅이가 생기는 것은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라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누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과는 채소에 비할게 못됩니다. 손이 제일 많이 가고 약을 제일 많이 친다는 사과는 저자의 다른 책 <기적의 사과>의 말마따나 '기적' 입니다. 썩지않고 시들기만 한다는 사과도 기적이지만 이 농부야 말로 기적입니다. 쌀 한 톨로 상징되던 농부의 땀에 감히 질책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쌀 한톨과 대화하는 기무라 아키노리 일겁니다.

그럼 그의 노하우를 적극 수용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다 잘 되는 거 아니냐구요? 잡초도, 해충과 익충의 구별도 없애고 사과밭을 원시림으로 놔두면, 아담과 이브가 깨물었던 사과를 먹고 우리가 이번 만큼은 진짜! 부끄러워하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꼭 그런건 아닙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의 심부름꾼이 되라는게 그의 철학이지만, 사과밭에 무성한 잡초도 일년에 한 번은 이발을 해주어야 한답니다. 척박한 땅에 비료 대신 콩씨를 뿌리랍니다. 아얘 잡초를 구해서 다양한 잡초 컬렉션을 만들랍니다. 사과나무와 담소하랍니다.
 
다양한 노하우까지야 구하는 사람에게만 유용하겠지요. 하지만 그 사과가 우리가 먹을 게 분명하다면, 우리 아이들이 밟을 땅이 확실하다면, 이건 기술이 아니라 가치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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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 문화저널리스트 박진현의
박진현 지음 / 예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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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 사진과 형용사가 압권입니다. 형용사요? 미술, 작품의 감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형용사'를 사용해야하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림 앞에서 저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빵빵'으로 '아름답다'는 울분을 토하는 수밖엔 별 도리가 없습니다. 황금비율로 계산된 르네상스의 조각품이든, 드로잉 실력에 자신 없었던 잭슨 플록이 페인트 흩뿌리기로 만든 No.1이든 참 매 한가지로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답다'가 어떻게 분화되는 지, 마치 꽃들의 축제처럼 '형용사의 잔치'를 배불리 만끽할 수 있는 미국 미술관 가이드 입니다. 그 찬탄의 대상이 미술관이 소장하는 작품은 물론이고 미술관 건물의 양식, 미술관에서 만난 아티스트까지 해당됩니다. 수려한 문장이나 비유는 없습니다. 깜빡이는 방향지시등이나 비상등, 야간 조명등 등, 감정은 거세되었지만 단순한 필력으로 속도감있게 시승할 수 있는 미국 미술관 탐방입니다.
 
실은 미국 미술을 만날 기회는 적었습니다. 미술 사조들을 다루는 책들에서 주목되는 쪽은 아무래도 낭만주의, 인상주의, 큐비즘, 추상화파 이고 미국화가들은 늘 변방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요행히 잭슨 플록이나 앤디 워홀을 거의 독보적으로 미국을 대표할 만한 화가로 인식하고 있을만큼 미국 미술에 대한 제 조명은 어두웠습니다.

옳거니, 좋은 기회다 싶었죠. 부러 찾아볼만하지는 않았지만 최대 강대국 실용주의 노선의 미국에 어떤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을 지 훑기에 딱 적당해 보였죠. 이건 시누이도(전 시누이가 없습니다만) 못말리는 제 허영심 입니다. 


지식을 연결해주는 '눈이 즐거운' 정보들을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골치 아픕니다) 네. 이 책은 정보서에 가깝지만 원한다면 미술사의 흐름을 심심치 않게 꿰찰 수 있기도 합니다. 미국 미술관이라지만 본국의 작품보다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양적으로 우세합니다. 특별히 전통을 고집하는 '아메리칸 포트아트 뮤지엄' 같은 곳이 아니라면 거물급 작품들이 미술관의 자존심을 추켜세웁니다. 히틀러의 독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유럽 화가들의 작품이 미국으로 몰리게 된 연유들과 같은 삼삼한 정보들이 달콤합니다. 

'글로벌 경영의 성공신화'로 소개된 '구겐하임 미술관'을 볼 때는 지난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을 즐겁게 떠올렸죠. 과거의 현재를 확인한 샘입니다. 또 미국의 미술관들이 대부분 재력가들의 기증과 기부로 이루어진 컬렉션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문화적 지형을 가늠해 보게 했습니다. 


당시 뉴요커들이 가장 증오하는 기업가였던 헨리 클레이 프릭은 인색했던 양반이었을텐데, 선뜻 미술관 건립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재밌습니다. 라이벌들이 은퇴 후 자선과 나눔에 관심을 보인데에 대한 경쟁심으로 추측된다는 것입니다. '문화 경쟁력'이 공공성이나 고차원적인 욕구가 아니라 말초적인 질투심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 미술관들이 표방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아이같은 모습입니다. 

또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고고한 품격, 쾌적하고 지적인 공간의 대명사인 미술관의 이런 시도는 미국인의 실용주의를 많이 닯았습니다. 각 주의 개성있는 미술관들의 면면으로 자유로운 표현 수단을 중시하는 그들을 만납니다. 또 건립자의 정신이 대대로 존중되는 전시틀이 남달랐습니다. 

학술적 가치로 그림들을 줄세우는게 아니라 개인(물론 만 명의 재산을 모은 만큼 돈이 많은) 컬렉터들의 취향이 그대로 존중 받으면서 전시의 감흥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또 다른 대화의 창을 열어보입니다. 거장들의 작품도 넘쳐났지만 인상적인 미국작가들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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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 2
정재승.전희주 지음 / 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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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 상식 책에 대해 실은 조금 폄하했다. 큰 몰입이 어렵기도 했지만 쓸데없는 물건만 발명한다는 괴짜 발명가처럼(이것도 책의 꼭지 중 하난데, 생선 눈가리개나 횡단보도가 그려진 커다란 휴대용 그림같은 걸 발명한 일본인이다) 보였기 때문이다. 

그 일본인의 발명 철학은 발명품을 팔지도, 특허 내지도, 독점계약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책이라해도 지적 실용성을 먼저 따지는 내게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 책(발명품)을 읽어라(만들어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시간만 잡아먹는 책'인지 아닌지 계산기를 먼저 두드려야 성의껏 몰입할 수 있는 영악함에 대한 비틀기였다. 

'잡학 상식 책'에 대한 편견 깨기는 이 책과 엉뚱한 발명가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이어 고른 <독서의 즐거움>의 독서전략11에서는 지식을 확장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 잡학 상식의 힘을 말했다. 요행히도 정재승의 <도전 무한 지식>이 '재미있는 사고가 아니라 도전하는 사색으로 우리의 뇌를 인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간단히 소개되어 있기도 했다.
 
도전하는 사색까지야 무리수이지 않나 싶었지만 '쓸데는 있겠지만 절실하지 않았던' 지식들이 긴장을 풀고 즐길만 하다는 사실을 <도전 무한지식>이 보여준다. '잡학'만큼 책 사이의 징검다리를 놓기에 적절한 디딤돌도 없고, <천하무적 잡학사전>의 서문처럼 '누구든 붙잡고 침을 튀기며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고' 사소한 궁금증에 대한 해갈에 '무릎을 치며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독서의 즐거움>의 저자처럼 잡학 상식을 모은 책들이 그다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야말로 잡다한 상식들을 엄선하는 작업은 결코 아마추어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하기야 우리에겐 절대 절명의 순간의 구원수인 검색창이 커서를 끔뻑거리며 키워드 자동 완성까지 해주고 있으니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책의 소견은 좁기도 하다. 웹은 동시다발적으로 상반된 견해와 과거와 현재를 브리핑해주는데 말이다. 그래도 즐거웠다. 궁금해서 읽는 게 아니라 '궁금했구나' 깨닫는 과정이 나를 환기 시킨다. 누구에게 묻기도 멋쩍은 사소한 질문들이 묻지도 않았지만 답을 해준다. 

책 속에서
 
이를테면 '달은 왜 항상 나를 따라다닐까'는 아이가 언젠가 물어올 질문임을 직감했다. 졸기만했던 과학수업을 애써 쥐어짜야봐야 결국 아이는 궁금증도 풀지 못하고 엄마의 횡설수설만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과학 상식의 이 피폐함이여!) 하지만 이젠 당당히 말하리라. 달과 지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의 움직임은 사실 매우 미미하다고. 그래도 아이가 묻기 전에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서영아 달이 자꾸 우리를 따라오네?'라고 능청을 떨 것이다. 

'요게 궁금했구나'느꼈던 지식은 겨울이면 나무기둥에 두르는 '잠복소'였다. 보온이 아닌 해충 박멸을 위한 지혜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명칭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그 효과에 대한 의문으로 해충이 좋아하는 유인제를 숨긴 잠복소를 둘러 방충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니, 우리동네가 관습적인 잠복소로 혈세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시청에 여쭈어야겠다.
 
'누구든 붙잡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 해주고 싶은' 꼭지는 

생쥐는 원래 치즈에 열광하지 않는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노하우.-바위를 가장 강력한 무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보를 내는 사람이 많아지고 결국 가위를 내면 승률이 높아진다 
충전식 배터리, 이렇게 하면 오래 쓴다.-니켈 배터리는 완전 충전, 완전 방전이 배터리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좋았지만 최근 리튬 배터리는 수시로 충전하는 것이 배터리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효과적이다.
친환경 시체 매장법.

이다. 

이밖에도 얕지 않은 환경-과학 지식들이 실로 사색을 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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