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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 문화저널리스트 박진현의
박진현 지음 / 예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편집과 사진과 형용사가 압권입니다. 형용사요? 미술, 작품의 감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형용사'를 사용해야하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림 앞에서 저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빵빵'으로 '아름답다'는 울분을 토하는 수밖엔 별 도리가 없습니다. 황금비율로 계산된 르네상스의 조각품이든, 드로잉 실력에 자신 없었던 잭슨 플록이 페인트 흩뿌리기로 만든 No.1이든 참 매 한가지로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답다'가 어떻게 분화되는 지, 마치 꽃들의 축제처럼 '형용사의 잔치'를 배불리 만끽할 수 있는 미국 미술관 가이드 입니다. 그 찬탄의 대상이 미술관이 소장하는 작품은 물론이고 미술관 건물의 양식, 미술관에서 만난 아티스트까지 해당됩니다. 수려한 문장이나 비유는 없습니다. 깜빡이는 방향지시등이나 비상등, 야간 조명등 등, 감정은 거세되었지만 단순한 필력으로 속도감있게 시승할 수 있는 미국 미술관 탐방입니다.
실은 미국 미술을 만날 기회는 적었습니다. 미술 사조들을 다루는 책들에서 주목되는 쪽은 아무래도 낭만주의, 인상주의, 큐비즘, 추상화파 이고 미국화가들은 늘 변방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요행히 잭슨 플록이나 앤디 워홀을 거의 독보적으로 미국을 대표할 만한 화가로 인식하고 있을만큼 미국 미술에 대한 제 조명은 어두웠습니다.
옳거니, 좋은 기회다 싶었죠. 부러 찾아볼만하지는 않았지만 최대 강대국 실용주의 노선의 미국에 어떤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을 지 훑기에 딱 적당해 보였죠. 이건 시누이도(전 시누이가 없습니다만) 못말리는 제 허영심 입니다.
지식을 연결해주는 '눈이 즐거운' 정보들을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골치 아픕니다) 네. 이 책은 정보서에 가깝지만 원한다면 미술사의 흐름을 심심치 않게 꿰찰 수 있기도 합니다. 미국 미술관이라지만 본국의 작품보다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양적으로 우세합니다. 특별히 전통을 고집하는 '아메리칸 포트아트 뮤지엄' 같은 곳이 아니라면 거물급 작품들이 미술관의 자존심을 추켜세웁니다. 히틀러의 독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유럽 화가들의 작품이 미국으로 몰리게 된 연유들과 같은 삼삼한 정보들이 달콤합니다.
'글로벌 경영의 성공신화'로 소개된 '구겐하임 미술관'을 볼 때는 지난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을 즐겁게 떠올렸죠. 과거의 현재를 확인한 샘입니다. 또 미국의 미술관들이 대부분 재력가들의 기증과 기부로 이루어진 컬렉션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문화적 지형을 가늠해 보게 했습니다.
당시 뉴요커들이 가장 증오하는 기업가였던 헨리 클레이 프릭은 인색했던 양반이었을텐데, 선뜻 미술관 건립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재밌습니다. 라이벌들이 은퇴 후 자선과 나눔에 관심을 보인데에 대한 경쟁심으로 추측된다는 것입니다. '문화 경쟁력'이 공공성이나 고차원적인 욕구가 아니라 말초적인 질투심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 미술관들이 표방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아이같은 모습입니다.
또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고고한 품격, 쾌적하고 지적인 공간의 대명사인 미술관의 이런 시도는 미국인의 실용주의를 많이 닯았습니다. 각 주의 개성있는 미술관들의 면면으로 자유로운 표현 수단을 중시하는 그들을 만납니다. 또 건립자의 정신이 대대로 존중되는 전시틀이 남달랐습니다.
학술적 가치로 그림들을 줄세우는게 아니라 개인(물론 만 명의 재산을 모은 만큼 돈이 많은) 컬렉터들의 취향이 그대로 존중 받으면서 전시의 감흥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또 다른 대화의 창을 열어보입니다. 거장들의 작품도 넘쳐났지만 인상적인 미국작가들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