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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접고 또 접었습니다. 망설임없이 책의 모퉁이를 접어댔습니다. 결국 216페이지의 반은 접혔군요. 자, 그럼 이제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아. 다시 독서를 시작해야겠군요. (접은 부분을 늘 새로 읽습니다) 뉴턴이 <기하학>을 읽은 것처럼, 꼬마 신랑이 반짝이는 눈으로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를 바라볼 때처럼, 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으려면 접은 부분을 다시 읽는 수 밖에요.
<사과가 가르쳐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는 유물입니다. 어쩌면 살아있는 화석일지도 모릅니다. 10년동안 사과를 수확하지 못한 농부가 캬바레에서 밤일을 하다가 야쿠자의 싸움에 휘말려 부러진 이빨을 훈장처럼 남겼다가 결국 몽창 빠져버렸다고 하니 뼈말고, 살만 남은 화석이군요. (사진출처)
글쎄 10년 동안 사과는 안따고 뭘했냐구요? 그 사람 농부 맞냐구요? 자연을 일구는 농부, 아닙니다. 자연을 사색하는 철학잡니다. 10년동안 자연을 탐구해서 뉴턴의 사과나무 한 알을 건져낸 과학잡니다.
과학자면 뭐하고 철학자면 뭐합니까. 본업은 농부고 딸래미는 "우리 아버지는 사과를 키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기른 사과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숙제에 폭로하는 걸요. 농약 없이, 제초 없이, 비료 없이 자연이 10년 후 선물한 사과라구요? 아니요. 기우제가 불러온 비같습니다. 인간의 소원이 불러온 환영같습니다.
6년 동안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지 않았다면 그것도 겨우 한 두 알로 시작됐다면 사과나무는 사과나무이길 포기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기무라씨도 밧줄을 들고 농부이길, 아버지이길 포기하려고 산 속에 들어갔습니다. 나무가지 위로 던진 밧줄은 스르륵 떨어집니다. 그것도 산 속의 사과 나무 아래에요.
이쯤되면 인간의 주술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 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고집스런 농부의 목숨을 건진 사과나무는 물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는데도 고색창연하게 아름답습니다. 흙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꼭 쥐면 잡히고 놓으면 포슬포슬 흩어집니다. 뭐가 좋은 흙인지는 몰라도 좋은 흙은 이럴거란 확신이 듭니다. 자연의 고집과 아량은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합니다.
무농약 결심을 하고 백방으로 안 해본 것 없는 시도를 했지만 사과나무는 말이 없었고 죽음을 목전에 둔 기무라씨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사과알 말고 사과밭의 흙이 건강해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흙이 건강해 지려면 '자연 상태' 즉,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가까운 진리를 획득합니다. 이걸 '자연 재배'라고 이름합니다.
<자연달력 제철밥상>에서 '자연재배'법에 얼핏 감흥이 왔습니다. 도쿠노가진의 <무농약 건강채소 기르기>에 "대부분의 충해는 화학비료나 덜 발효된 퇴비가 발효될 때 나오는 화학물질, 그리고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는 데서 발생한다. 질소비료 과용으로 진디물이 생기고, 덜 발효된 퇴비로 배추벌레 풍뎅이가 생기는 것은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라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누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과는 채소에 비할게 못됩니다. 손이 제일 많이 가고 약을 제일 많이 친다는 사과는 저자의 다른 책 <기적의 사과>의 말마따나 '기적' 입니다. 썩지않고 시들기만 한다는 사과도 기적이지만 이 농부야 말로 기적입니다. 쌀 한 톨로 상징되던 농부의 땀에 감히 질책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쌀 한톨과 대화하는 기무라 아키노리 일겁니다.
그럼 그의 노하우를 적극 수용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다 잘 되는 거 아니냐구요? 잡초도, 해충과 익충의 구별도 없애고 사과밭을 원시림으로 놔두면, 아담과 이브가 깨물었던 사과를 먹고 우리가 이번 만큼은 진짜! 부끄러워하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꼭 그런건 아닙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의 심부름꾼이 되라는게 그의 철학이지만, 사과밭에 무성한 잡초도 일년에 한 번은 이발을 해주어야 한답니다. 척박한 땅에 비료 대신 콩씨를 뿌리랍니다. 아얘 잡초를 구해서 다양한 잡초 컬렉션을 만들랍니다. 사과나무와 담소하랍니다.
다양한 노하우까지야 구하는 사람에게만 유용하겠지요. 하지만 그 사과가 우리가 먹을 게 분명하다면, 우리 아이들이 밟을 땅이 확실하다면, 이건 기술이 아니라 가치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