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4
장영란 지음, 김정현 그림 / 들녘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2월부터 시작하는 농사달력. 24절기 음식 공부 책. 그런고로 한 해를 두고 봐야 할 장맛 같은 책.
 
다소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농사꾼의 일 년을 담은 이 책에는 10년이 넘을 만한 시골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있습니다. 단번에 읽어치우기가 못내 아깝습니다. 설령 귀농이라도 할라치면 옆구리에 끼고 봐야겠습니다. 


경칩엔, 춘분엔, 백로엔, 좀 더 쉽게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무슨 씨를 뿌리고 무슨 열매를 거두어야 하는지, 어떤 나물을 캐다 먹어야 하는지, 된장은 고추장은 토마토 병조림은 어떻게 해먹는지, 불은 어떻게 떼는게 좋을 지, 감은 어떻게 말리는지, 집지어 산다는게 어떤 건지, 농사에서 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셀 수 없이 많은, 어쩌면 전부라고 해도 좋을 시골 살림 살이 내력이 이 안에 녹아 있습니다. 

제가 기준하는 좋은 정보서란 방법을 '일러주는'것이 아니라 '임하는 마음'를 살필 수 있는 것입니다. (꼭 탈무드에 나오는 고기잡이 얘기 같습니다) '정보'에 수용자 스스로 살을 찌울 수 있는, 일테면 영감을 지닌 책이야 말로 진짜 실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실용을 앞세운다고 해도 말이죠. 특히 요즘 쏟아지는 육아서들이 떠오릅니다. 출처도 모를 당당한 요구로 배는 부르지만 소화는 안되는 그런 책들에선 하나로 묶인 철학을 만나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자연달력 제철밥상>은 정보와 영감을 골고루 담은, 정다우면서도 따끔한 책입니다.  


사십 가까이 도시내기로 살아온 내가 새로 일을 배워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첩첩산중 다랑다랑한 논밭에서. 우리 자신을 알고 우리한테 맞게 자급자족하려 한다. 

농법도 '나대로 농법'이다. ..내 먹을 거니 내가 하고픈 대로 농사를 짓는다. 농약이나 비료는 물론 쓰지 않는다. 기계도 되도록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 덕에 밭은 땅을 갈지 않고 농사지은 지 꽤 된다. 일명 '무경운 농법'이다.

'무경운 농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나옵니다. "대부분의 충해는 화학비료나 덜 발효된 퇴비가 발효될 때 나오는 화학물질, 그리고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는 데서 발생한다. 질소비료 과용으로 진디물이 생기고, 덜 발효된 퇴비로 배추벌레 풍뎅이가 생기는 것은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도쿠노가진의 <무농약 건강채소 기르기>) 

저자가 귀농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을지 짐작가는 대목입니다. 땅 힘만 살아있으면 잘 자라는 예술자연재배. 저도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이 무기술! 하나만 봐도 마음가짐이 단박에 드러납니다. 팔아서 돈 벌려고 든다면 상품을 만들어야겠지만 진짜 상품은 내가 먹을 거리를 만드는데 있다는 분명한 철학 입니다. 도시인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7년 전쯤 채식을 시작하고 오래도록 귀농을 꿈꾸고 있는 제게는 이정표와도 같았습니다. 

계절밥상, 자연치유, 환경친화. 도시에 울리는 이런 구호들이 실은 인간에게 어떤 '이득'을 줄까에 촛점이 맞추어져서, 자연에 대한 노골적인 학대보다 한 수 높은 경지에 이른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뚱뚱해지는(정보나 지식의 면에서 위축되고, 좀 나은 식재료들을 사기 위해 드는 웃 돈으로 인해)시대에 저런 근본적인 가치조차도 소위 엘리트들만 살 수 있는 '상품'으로 변질되는 것을 마냥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귀족적 혹은 낭만적 귀농 생활을 영위하려는 움직임이 본래의 의미와 얼만큼의 간격이 있는지는 <자연달력 제철밥상>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시골살이,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그냥 힘든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삶의 시스템이 완전히 부서진다는 뜻입니다. 돈 들고 가서 대궐같이 지어놓고 기름 떼고 수세식 화장식 들이고 좋은 공기 마시면서 좋은 음식 먹는 귀농이 자연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제 편하게 살자는데 누가 욕하랴마는 '귀농'의 본색과 만나 저는 몸을 움츠렸습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도시에서의 삶을 간소화 하는 편이 자연과 나 토착민에게 이로우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연달력 제철밥상>은 시골의 진짜 삶을 시뮬레이션 해줌으로서 요 반만 해도 기특한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달과 절기의 농사일을 펼쳐놓고 듣도보도 못한, 하지만 지천에 깔린 나물 밥상을 소개하고 '요리'로 이어갑니다. 여기서의 요리란 효소, 엿기름, 고추장, 누룩, 도토리묵 등 우리가 생각하는 '요리'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요리라 이름 붙인 것도 재미났습니다. 무계절 채소들을 한데 모아놓고 드레싱을 뿌려 건강식을 즐기는 도시인의 요리가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 없게 느껴지던지. 요리란 말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차와 곶감 묵나물 하는 법, 미숫가루 내리기, 씨감자 고르기, 매실작두 만들기, 생명역동용법농사력, 가을걷이, 군불때기, 에너지 이야기, 등등 초보 귀농자에게는 확신과 비법을, 도시인들에겐 비범할 농사력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말한 '우리 안의 떡만드는 피'처럼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길러내는 피가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지식들이 한 가지 마음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완벽한 미장센의 영화필름 같았습니다. 또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 아마존의 극락조만큼이나 희귀하게 여겨지는 것이 도무지 이상했습니다.  

술을 먹는 맛보다 빚는 맛이 좋아질 때까지, 몸을 움직여 일하면 손발이 따뜻해 진다는 걸 직접 느끼기까지, 돈주고 사오는 건 모두 쓰레기를 남긴다는 사실을 알 만큼 쓰레기를 줄이기까지, 지렁이가 생기면 두더지가, 두더지가 생기면 뱀이 나타나는 시간을 견디기까지, 그녀의 귀농이 제 눈엔 고통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농사꾼 장영란은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건 그것을 고통스럽게 여기는 저 때문이고 결국 제 마음이 미천함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한편 귀농욕구에 대한 조급함과 걱정이 사라진 것을 느꼈고, 통증이 사라지기 이전에는 그곳이 그렇게 오랫동안 아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도 토마토 병조림은 가끔 해놓는데요, 요게 아주 쉬워요. 해두면 쓰임새도 많구요.



①유리병과 집기, 뚜껑을 모두 끓는 물에 소독해서 물을 빼놓아요.
②물이 끓는 동안 토마토 꼭지를 따고 몇 토막으로 자릅니다. 
③냄비에 담고 물없이 뭉근하게 끓여요.(책에는 거품이 한 차례 올라오고 잦아들면 꺼내라고 하네요)
④뜨거울 때 소독한 병에 담고 얼른 뚜껑을 닫아 뒤집어 세워놓아요. (24시간 실온에서)
⑤바로 돌려 냉장고에 넣어두면 아주 오랫동안 싱싱한 토마토 소스로 먹을 수 있습니다.

빨갛게 잘 익은 완숙 토마토로 해야 하구요, 먹기 위해 뚜껑을 열었을 때 쨈처럼 '퐁'소리가 나야 잘 된 거예요.

하도 맛나서 날토마토 만큼이나 빨리 먹는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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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어린이도서관 101% 활용법
김명하 지음, 마이클럽닷컴 기획 / 봄날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도서관과 공동체. 도서관과 마을. 거미줄 치는 이야기.
 


<우리동네 어린이 도서관 101% 활용법>/miclub기획/김명하/봄날/2010.3

그저 도서관이 좋은 이유를 다방면으로 수집해서 들려주는 '도서관예찬론' 쯤 되겠구나 했지요. 하지만 읽어 갈수록 알 수 없는 전율이 있었습니다. 절 흔들리게 한 말은 다름 아닌 '공동체 육아' 였어요.

일고 여덟씩 낳아 논일 밭일 살림 뒷수발까지 다하면서 고추모종처럼 아이들을 키워내던 어른 들이 보기에 요즘 육아 환경은, 그야말로 축복일 겁니다. 임산부 요가, 국가의 무료 철분제, 산후 조리원, 불꺼질 일 없는 자동 난방, 인터넷 육아 정보, 전문가의 견해(육아서), 영재교육, 문화센터, 놀이기관. 적절하게 프로그래밍된 육아는 투덜대기 부끄러울만큼 윤택합니다.

하지만 베이비 블루나(산후 우울증) 주부 우울증은 통과의례가 되었고, 너도 나도 모여서 애 보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독한지를 쏟아내기 일쑵니다. '애만 보면 되는데 뭐가 힘들어' 삼신할미가 엄마의 투정을 힐난합니다. 하지만 이젠 '애만 보니까' 힘들다고 대꾸합니다.


엄마의 고립감은 상상 이상입니다. 사랑하지만 말은 안통하는, 교감하라지만 고통은 내색할 수 없는 이 외계의 생명체를 적어도 어린이집에 보내긴 전까지 책임전담해야 하는 엄마들은, 아이의 독립을 꿈꾸면서도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야릇한 상황입니다. 어엿한 사회인의 자리에서 물러나 '집구석'에 머물면서 이유식이며 병치레를 인터넷 창에 검색하며 정보들을 조합하고 육아박사가 되는게 현대의 현모인가요.  

여러 해 '마을'개념을 되살리기 위한 책들이 몇 권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원순 님의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윤구병 님의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조한혜정님의 <다시, 마을이다>. 모두 '함께'사는 삶을 응원하는 한 목소리 입니다.
 
노인은 어린아이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청소년 역시 든든한 후원자들과 잘 늙어 가는 어른들이 곁에 있을 때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마을이다>에서 

“나는 사람이 제 앞가림도 못하고, 이웃과 어울리지도 못하면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는 없다고 봐요. 결국 공동체가 복원되지 않으면 인류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복원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낼 때라야만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구병



은둔병, 우울증, 개인주의, 성공가열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 즉 공동체를 꼽는 것입니다. 마을을 묶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도서관을 네트워킹한 또 하나의 책. 바로 <우리동네 어린이 도서관101% 활용법>입니다. 표제는 무척 실용적, 교육적인 냄새를 풍기지만 실로 이런 '마을 철학'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도 걸어서 십분이면 당도할 도립 도서관이 있고 '가족 열람실'의 혜택이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이 소개한 '어린이 도서관'은 정말 꿈 같은 장소였습니다. 간식 먹으며 책읽고, 뒹굴고 언니 오빠들이 책을 읽어주고, 함께 동네 골목길을 순례하고, 마음 맞춰 캠핑도 가고, 부모들끼리 독서회도 만들고, 마을 꾸리기를 위한 아이들의 아이디어가 시에 채택되고.. 마을 속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문턱 낮아진 도서관 사례들이 어쩐지 비현실적입니다.

사진출처(대전의 모퉁이 어린이 도서관)

현실의 소통이라면 문화센터나 또래 아이를 두고 있는 아파트의 이웃 정도일 뿐인데에 반하면 대단한 반향입니다. 화가 나더군요. '왜 나와 아이는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거야. 그림의 떡이군.' 낙담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인터뷰와 인용구들이 뜻하는 바를 짚어보니 그곳에 '공동체 문화'를 향한 열렬한 바램이 있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의 은밀한 육아가 아닌 온 마을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데, 가족이나 개인에게만 떠맡겨진 짐을 덜겠다는데 거부할 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부록으로 전국 어린이 도서관 목차를 제공합니다)육아의 큰 방향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누가 뭐래도 내 아이, 엄마 혼자 어떻게든 해보자는 생각으로 각종 육아서들을 파고들어봤자, 길이 열리는게 아니라 세상을 향한 문이 닫힐 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두돌 즈음 아빠를 떼어버린(멀리 한옥 공부하러 갔어요) 아이의 히스테리가 날로 심각해질 즈음 저는 그토록 혐오하는 문화센터를 기웃거렸습니다. 노는 것도, 엄마와의 스킨쉽도, 흙놀이도 저런 데나 가야 '누구랑'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죠. 좀처럼 오지 않는 봄을 원망하며 썰렁한 동네를 쏘다니면 마음엔 한기가 들었습니다. 그래도 고립된 아이와 저를 위해 문화센터라도 가보자고 마음먹었지만 다음 신청일은 한 참 후더군요. 다행히 시간은 악투하며 흘러갔고 봄 밖으로 흘러나온 사람 구경으로 요샌 바빠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겨울이 오면 저는 세 돌을 맞는 아이를 두고 어린이 집에 보낼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터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 혼자도 잘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는 조금 벗어났다는 겁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우리 동네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까지는 무리이겠지만, 우리 골목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댁의 초인종을 아이와 함께 더 자주 눌러야겠다는 생각이 우선 찾아옵니다. 교육적 목적으로 도서관을 향하는 발걸음 만큼이나 자주 말이죠


--남은 이야기

이주에 읽은 도서관 관련도서의 머리말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이 나옵니다.

다른 곳에서는 학생들끼리, 할아버지 할머니끼리, 대학생 언니 오빠들끼리 어울리지만, 도서관에서는 이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함께 지내잖아요. ..누군가는 도서관이 대안교육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학원에 가는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요. -<노는 도서관 배우는 도서관>에서

도서관에 가는 엄마와 아이가 겪을 만한 일들을 이야기로 풀었어요. 검색방법, 책의 역사, 어린이 도서관, 다양한 문화컨텐츠, 책을 소재로한 유명인의 에피소드, 등 도서관을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으로 재발견하려는 어린이 책 입니다. 아무래도 다음 주 4월12일 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는 '도서관 주간' 때문인 것 같아요. 도서관 앞마당에서 김밥이라도 먹어볼까요?





/서해경.이소영/현암사/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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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가 되는 비밀 17가지
E. L. 코닉스버그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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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네요. 아이를 재우고 듀오백 의자에 앉아 부팅을 기다리고, E 아이콘을 더블클릭하면 웹세계로 진입하는 포털 창이 뜹니다. 서울과 인천, 다시 서울, 그리고 대전을 경유해서 딱 한 주만에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지난 주에 읽고 미처 포스팅 하지 못한 책들이, 개키지 않은 빨래 옆에 쌓여 있습니다. 이 아줌마는 아무래도 아이 옷의 얼룩보다 정리되지 못한 책에 더 마음이 쓰입니다.          

<스타가 되는 비밀 17가지>에 대해 떠들고 싶어 안달이 나놓고도 어찌 태연한 척 일주일 씩이나 밖을 쏘다녔나 싶습니다. 허구의 세계가 저를 더 흥분시킨다는 사실을 이제 인정해야겠습니다. 제겐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남편과, 인생의 쓴 맛과 함께 담배를 빼어물 수 없는 아이와, 벚꽃과 날씨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옆집 언니가 있습니다. 지금은 죽었지만 '스타가 되는 비밀'에 대해선 일갈해줄 수 있는 내쇠적인 배우 '탈룰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곳은 여기, 바로 블로그의 글쓰기 창 뿐입니다.

탈룰라라면 제게 무슨 조언을 해줄까요. 

"그건 고독이야.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건 인간 뿐이고, 고독을 물리치치 않아야 하는 게 배우야. 스타가 되고 싶은게 맞다면 지금 그 냄새를 기억해. 그렇지만 사람들 앞에선 널 꼬치꼬치 드러내면 안돼."

"너무 길게 이야기하지 마라. 훌륭한 설명이란 수영복 같아야 하는 거야. 수영복은 최소한의 크기로 모든 것을 드러내지."

후자가 진짜 탈룰라의 이야깁니다. 제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됩니다. '스타가 되는 17가지 비밀'의 '스타'대신 그 무엇을 우겨넣어도 통찰력을 줄만한 시적 비법들이 이 소설의 가능성이군요. 긴장됩니다. 아슬아슬 치부만 가리고 이 소설이 준 감동에 대해 쓴다는 게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 글쓰기 창은 무대입니다. 세상은 제게 '아줌마'란 직책을 주었지만 저는 배우(연필 한다스)이길 자청했습니다.

"무대 안쪽에서 보면 왼쪽이 오른쪽이다. 무대 안쪽이 뒤쪽이고, 무대 아래가 앞쪽이다. 극장의 무대는 거울에 비치는 세상과 같아."

거울만큼 분명한 것도 없지만 거울만큼 거짓으로 위장된 것도 없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모습을 비추는 거울은 내면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블로그라는 무대는 스스로에 의해 검열된 모습만을 비춥니다. 탈룰라가 일깨웁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너희들은 지금 배우라는 거야.

저는 이 블로그의 마법을 현실로 믿습니다. 그래야 진짜 배우가 될 수 있습니다. 연극 연습이 심장, 폐, 그리고 평소 쓰이지 않는 신체기관을 튼튼하게 만든다면 블로그의 글쓰기 연습은 청소기를 돌리거나 반찬을 만드는데는 쓰이지 않는 지적 영감을 단련시킵니다. 기껏해야 책이라는 통로가 필요한 의존적 과정이지만 자음과 모음을 분해하고 밑 줄을 옮겨 적고 주석을 다는 일이 적어도 자동기술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 저를 위로합니다. 오늘 모니터 앞에 엄정히 책을 두고 앉아서 무슨 말을 하게 될 지 일부러 재단하지 않습니다. 그건 '아줌마'에게 허용되지 않는 '연필한다스'의 스릴입니다. 얼마나 영악하게 훌륭한 연기를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또 다시 탈룰라는 뒤통수를 칩니다.

"나는 사람들이 왜 스타가 되려고 애쓰는지 모르겠어. 스타가 된 후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보이려고 그렇게 애쓰면서 말이야."

제게는 답이 있습니다. 애초 스타가 되려는 게 아니라 '똑같이'되려고 시작한 일입니다. 탈룰라도 맞습니다. 특별해 진다는 건 외로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똑같이 보일 수 있다면 특별함은 더욱 빛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어떻게 읽으실 건가요. 

지금껏 아줌마와 연필한다스를 분리하기 바빴지만 모두 제 삶의 일부분이라는 건 당연하겠지요. 말콤과 진마리가 탈룰라의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투명인간으로 공간이동을 했다해도 '보이지 않는 것'도 삶의 한 부분임을 인정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스타가 되는 비법, 즉 여왕석으로 상징되는 남은 하나는 무엇일까요. '답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같은 어처구니 없는 교훈이라도 탙룰라가 던진 말이라면 흔쾌히 수락할 생각입니다. 

'이만큼 했으면 됐잖아?'라고 또 다시 7개 째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각자의 영역으로 연기처럼 사라져야 합니다. 그것이 스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준비 입니다. <스타가 되는 비밀 17가지>. 책을 덮었을 때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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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어요 - 틱낫한 스님이 추천한 어린이 '화' 우리 아이 인성교육 1
게일 실버 지음, 문태준 옮김, 크리스틴 크뢰머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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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흔히 다혈질로 분류되는 인간에게 화는 일단 내고 보는 게 상책입니다. 트라우마로, 혹은 가족내력으로 감정표현이 서툰 어떤 사람은 화를 감추고 있다가 홧병을 만들거나 목젖까지 쌓아놓고 폭팔시킵니다. 이론가라면 조근조근 상대를 채근합니다.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넘치는, 감정이입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성급히 화낸 걸 사과할 지도 모릅니다.
 
어떤 육아서들은 말합니다. 엄마육아의 큰 헛점이 '화'라고. 도를 닦으란 말입니까. 한 발 물러서서, 화 안내고 살 수 있겠습니까. 

좀처럼 무슨 일에도 화가 나지 않을 때의 무력감은 '화'가 삶의 에너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세상만사 별 흥미 없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와 애정을 동일시 할 수야 없는 노릇. 겉잡을 수 없는 불길로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면 그것만큼 해로운 것도 없겠지요. 


<화가 났어요>의 얀처럼 다짐합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나쁜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화가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어. 내가 도와줄게."
여느 친구처럼 "네가 화가 날 때면 언제든지 나와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어." 얀의 화는 정답습니다. 

'날 화나게 하는'이라는 말엔 화가 밖으로부터 들어와서 나를 괴롭힌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얀의 화가 바라는데로 '관심'을 가져주면 그것이 어디로부터 솟아나는 지는 분명해 집니다. 화란 내쳐야할 무엇이 아니라 성의껏 살피고 보듬어야할 '내 것'이란 메시지를 전합니다.

<내 맘대로 안되는 딸 당당한 리더로 키우는 법>에서는 화가 났을 때 머릿속으로 똑똑히 생각하면서 셋을 세라고 말합니다. 얀의 화는 얀과 함께 춤을 추고 지구를 드럼인양 두 손으로 방바닥을 쾅쾅칩니다. 그리고 지쳤을 때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숨을 내쉽니다. <내 맘대로~>에서는 <화를 내자>란 책의 이런 말도 전합니다.

"당신의 분노는 사람을 상처주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 두자. 당신의 화는 당신 자신을, 그리고 세계를 더 낫게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화를 부정했을 때의 부작용을 자주 경험합니다. 뒤늦게 어떤 식으로든 표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천한 경험으로 되새겨봅니다. 끊임없는 부부싸움의 주인공들이 비난과 비판으로 일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를 어떤 식으로 부정하고 은폐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비난은 화가 지닌 위선입니다. 비난과 비판에는 방어가 뒤따릅니다. 내 말이 모두 옳아도 상대의 마음은 이미 닫혀 있습니다.

아이와의 대화법을 선전하는 책들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화법은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라는 것입니다. '아. 우리OO가 화가 났구나' 하지만 제게는 이것 또한 부모가 우의에 있다는 암시 같아서 거꾸로 제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서영이가 그래서 엄마는 속상해. 화가 나려고 해. 기분이 안 좋아. 좋은 방법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일단 화가 나면 '내가 왜 화를 내고 있지'를 먼저 생각해봅니다. 거기까지는 다다르지도 못할 만큼 화가 났다면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라고 자각 합니다. 얀의 화만큼 다정하진 못해도 '화'와 '나'를 분리하는 것만으로 숨통이 트입니다. 여전히 저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화 내지 않는 상냥한 엄마는 진즉에 포기하고 맙니다. 아이와 어서 <화가 났어요>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네 방으로 가서 너의 화와 함께 앉아 있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네가 차분해져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때 가도록 하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을 많이 읽어주고 싶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도 나의 화를 만났었단다."
"정말이에요? 블록 쌓기 때문이었나요?"
"아니란다." 할아버지가 웃었어요. "그때는 블록은 없었고, 백합이 가득 핀 연못과 개구리과 절대로 질 것 같지 않은 태양이 있었단다. 이리 오렴. 저녁을 먹자. 그러고 나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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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탄생 - 천재성을 폭발시키는 강력한 힘
베르너 지퍼 지음, 송경은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천재성을 폭발시키는 강력한 힘'  대체 뭐가 천재성보다 앞선다는 걸까? 천재, 재능, 타고난 소질, 뭐 이런 것들이 우리를 기죽인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천재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끝없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거의 신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재능의 탄생>에 인용된 <천재를 말하다>의 첫 문장

맞다. 근접할 수 없기에 질투도 흉내도 무의미 했다. 남의 일이였다.

<재능의 탄생>. 결국 또 노력, '죽도록 노력 하면 안될게 없다'는 투의 얄팍한 선동이겠지. 읽기도 전에 조소를 띄운다. 그러나 읽고 싶었다. '천재의 호기심과 몰입도 타고난 재능아냐' 라는 내 안에 만연하는 비관을 거울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혹시 모른다.(아주 적은 확률이겠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르다는 선입견일지도.
 
목표는 분명했다. 이런 생각을 뒤집지 않는다면 이 책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결국 책의 말미에서 이 단락을 찾았다.
 
타고난 재능에 의미를 두는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소질이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보통사람보다 그 분야를 쉽게 이해하기 때문에 연습을 더 자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성공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그 때문에 더 많은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릭슨 교수에 따르면 "초보자는 목표가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한다. 이런 연습이 실력자로 이끄는 길이다. 훈련이야말로 능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에릭슨 교수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 분야 연구에 쏟아부어 이런 결론을 내린 사람이다.

"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은, 한 삶의 능력은 꾸준한 훈련에 제한을 받지 결코 신체 크기나 눈동자 색, 얼굴 생김새 따위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에릭슨 교수는 천재나 재능, 소질이라는 낱말을 쓰지 않기로 했고, 그와 관련된 연구도 하지 않는단다. 이런 낱말의 개념이 너무 공허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연구하기에 애매모호하단다. (구구절절이 옳은 것 같다) 한마디로 <재능의 탄생>은 재능이 아닌 초심, 즉 호기심을 믿게 해준다. 

수많은 과학적 검증과 사례분석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 이유를 100가지는 댈 수있는 학자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은 육감으로 느껴진다. 뭐가 맞냐는 학자들의 고전적 물음보다 '내가 무엇을 믿을 것이냐'라는 이기적 접근을 더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인지, 학습되는 것인지의 두 가지 중 어느 관점에 있느냐에 따라 학습 경로가 달라진다."
 -책에 인용된 음악예술학교의 교육심리학자 마리아 스파이치거의 말

즉 운명이 자기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고전적 명구의 학구적 표현이다. 그렇다고 말만 바꾸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대게 이런 중대한(내게?) 말은 함부로 나오지 않는다.  


<기하학>을 이해하기 위해 한 페이지를 겨우 읽고 처음부터 다시 읽기를 반복했던 아이작 뉴턴의 일화는 유명하다. 뉴턴이 이룩한 공을 빛나게 하는 에피소드로만 보고 왜 뉴턴의 피나는 노력에는 주목하지 않았을까. 출중한 운동선수나 음악가들이 상당한 연습벌레란 사실은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왜 믿지도 않는 신이 선사한 재능만 바라봤던 걸까. 아마 현실을 체념하기에 포기보다 쉬운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검색)

<재능의 탄생>의 기나긴 레이스로 천재들의 헌신적인, 집중적인 노력에 눈을 돌리고, 재능보다 환경이나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사례들을 만나면서 불신에서 긍정쪽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이제 얕은 확신에 무릎 꿇고 순진한 어린양이 되는 것도 손해볼 게 없다 싶다. 이 책이 일부러 나같은 독자들의 엉덩이를 두드리기위해 태어난 것 같진 않지만 대단한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또한 훌륭히 반성했다.

훈련

재능과 노력의 이분법에도 공통분모가 있었는데 그건 '훈련'이다. 하지만 단순한 반복훈련이 아닌 '계획된 훈련'이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고도의 집중력과 친구나 주변 사람없이 혼자서도 이 과정을 묵묵히 수행할 수 있어야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약점을 파악해 집중적으로 연습하는게 훈련의 포인트다. 이런 이론이 신선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래의 구절은 마음을 흔든다. 

연습자체에서 근원적인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애물을 만났을 때 어렵게 생각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깨달을 때 진정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에 비판적인 시선으로 집중적인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특정한 수준에서 실력이 멈춰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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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바꾸어 학습경로를 틀어봐야겠다는 사뭇 진지한 다짐을 위해 아래의 말을 믿어볼 작정이다.

유전적 소질은 한 사람의 내부에서 저절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정분야를 정복하려는 동기부여와 관심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때 발휘하는 것이다. 유전자는 능력있는 사람 편이 아니라 의지 있는 사람 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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