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4
장영란 지음, 김정현 그림 / 들녘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2월부터 시작하는 농사달력. 24절기 음식 공부 책. 그런고로 한 해를 두고 봐야 할 장맛 같은 책.
 
다소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농사꾼의 일 년을 담은 이 책에는 10년이 넘을 만한 시골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있습니다. 단번에 읽어치우기가 못내 아깝습니다. 설령 귀농이라도 할라치면 옆구리에 끼고 봐야겠습니다. 


경칩엔, 춘분엔, 백로엔, 좀 더 쉽게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무슨 씨를 뿌리고 무슨 열매를 거두어야 하는지, 어떤 나물을 캐다 먹어야 하는지, 된장은 고추장은 토마토 병조림은 어떻게 해먹는지, 불은 어떻게 떼는게 좋을 지, 감은 어떻게 말리는지, 집지어 산다는게 어떤 건지, 농사에서 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셀 수 없이 많은, 어쩌면 전부라고 해도 좋을 시골 살림 살이 내력이 이 안에 녹아 있습니다. 

제가 기준하는 좋은 정보서란 방법을 '일러주는'것이 아니라 '임하는 마음'를 살필 수 있는 것입니다. (꼭 탈무드에 나오는 고기잡이 얘기 같습니다) '정보'에 수용자 스스로 살을 찌울 수 있는, 일테면 영감을 지닌 책이야 말로 진짜 실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실용을 앞세운다고 해도 말이죠. 특히 요즘 쏟아지는 육아서들이 떠오릅니다. 출처도 모를 당당한 요구로 배는 부르지만 소화는 안되는 그런 책들에선 하나로 묶인 철학을 만나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자연달력 제철밥상>은 정보와 영감을 골고루 담은, 정다우면서도 따끔한 책입니다.  


사십 가까이 도시내기로 살아온 내가 새로 일을 배워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첩첩산중 다랑다랑한 논밭에서. 우리 자신을 알고 우리한테 맞게 자급자족하려 한다. 

농법도 '나대로 농법'이다. ..내 먹을 거니 내가 하고픈 대로 농사를 짓는다. 농약이나 비료는 물론 쓰지 않는다. 기계도 되도록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 덕에 밭은 땅을 갈지 않고 농사지은 지 꽤 된다. 일명 '무경운 농법'이다.

'무경운 농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나옵니다. "대부분의 충해는 화학비료나 덜 발효된 퇴비가 발효될 때 나오는 화학물질, 그리고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는 데서 발생한다. 질소비료 과용으로 진디물이 생기고, 덜 발효된 퇴비로 배추벌레 풍뎅이가 생기는 것은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도쿠노가진의 <무농약 건강채소 기르기>) 

저자가 귀농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을지 짐작가는 대목입니다. 땅 힘만 살아있으면 잘 자라는 예술자연재배. 저도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이 무기술! 하나만 봐도 마음가짐이 단박에 드러납니다. 팔아서 돈 벌려고 든다면 상품을 만들어야겠지만 진짜 상품은 내가 먹을 거리를 만드는데 있다는 분명한 철학 입니다. 도시인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7년 전쯤 채식을 시작하고 오래도록 귀농을 꿈꾸고 있는 제게는 이정표와도 같았습니다. 

계절밥상, 자연치유, 환경친화. 도시에 울리는 이런 구호들이 실은 인간에게 어떤 '이득'을 줄까에 촛점이 맞추어져서, 자연에 대한 노골적인 학대보다 한 수 높은 경지에 이른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뚱뚱해지는(정보나 지식의 면에서 위축되고, 좀 나은 식재료들을 사기 위해 드는 웃 돈으로 인해)시대에 저런 근본적인 가치조차도 소위 엘리트들만 살 수 있는 '상품'으로 변질되는 것을 마냥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귀족적 혹은 낭만적 귀농 생활을 영위하려는 움직임이 본래의 의미와 얼만큼의 간격이 있는지는 <자연달력 제철밥상>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시골살이,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그냥 힘든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삶의 시스템이 완전히 부서진다는 뜻입니다. 돈 들고 가서 대궐같이 지어놓고 기름 떼고 수세식 화장식 들이고 좋은 공기 마시면서 좋은 음식 먹는 귀농이 자연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제 편하게 살자는데 누가 욕하랴마는 '귀농'의 본색과 만나 저는 몸을 움츠렸습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도시에서의 삶을 간소화 하는 편이 자연과 나 토착민에게 이로우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연달력 제철밥상>은 시골의 진짜 삶을 시뮬레이션 해줌으로서 요 반만 해도 기특한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달과 절기의 농사일을 펼쳐놓고 듣도보도 못한, 하지만 지천에 깔린 나물 밥상을 소개하고 '요리'로 이어갑니다. 여기서의 요리란 효소, 엿기름, 고추장, 누룩, 도토리묵 등 우리가 생각하는 '요리'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요리라 이름 붙인 것도 재미났습니다. 무계절 채소들을 한데 모아놓고 드레싱을 뿌려 건강식을 즐기는 도시인의 요리가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 없게 느껴지던지. 요리란 말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차와 곶감 묵나물 하는 법, 미숫가루 내리기, 씨감자 고르기, 매실작두 만들기, 생명역동용법농사력, 가을걷이, 군불때기, 에너지 이야기, 등등 초보 귀농자에게는 확신과 비법을, 도시인들에겐 비범할 농사력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말한 '우리 안의 떡만드는 피'처럼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길러내는 피가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지식들이 한 가지 마음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완벽한 미장센의 영화필름 같았습니다. 또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 아마존의 극락조만큼이나 희귀하게 여겨지는 것이 도무지 이상했습니다.  

술을 먹는 맛보다 빚는 맛이 좋아질 때까지, 몸을 움직여 일하면 손발이 따뜻해 진다는 걸 직접 느끼기까지, 돈주고 사오는 건 모두 쓰레기를 남긴다는 사실을 알 만큼 쓰레기를 줄이기까지, 지렁이가 생기면 두더지가, 두더지가 생기면 뱀이 나타나는 시간을 견디기까지, 그녀의 귀농이 제 눈엔 고통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농사꾼 장영란은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건 그것을 고통스럽게 여기는 저 때문이고 결국 제 마음이 미천함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한편 귀농욕구에 대한 조급함과 걱정이 사라진 것을 느꼈고, 통증이 사라지기 이전에는 그곳이 그렇게 오랫동안 아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도 토마토 병조림은 가끔 해놓는데요, 요게 아주 쉬워요. 해두면 쓰임새도 많구요.



①유리병과 집기, 뚜껑을 모두 끓는 물에 소독해서 물을 빼놓아요.
②물이 끓는 동안 토마토 꼭지를 따고 몇 토막으로 자릅니다. 
③냄비에 담고 물없이 뭉근하게 끓여요.(책에는 거품이 한 차례 올라오고 잦아들면 꺼내라고 하네요)
④뜨거울 때 소독한 병에 담고 얼른 뚜껑을 닫아 뒤집어 세워놓아요. (24시간 실온에서)
⑤바로 돌려 냉장고에 넣어두면 아주 오랫동안 싱싱한 토마토 소스로 먹을 수 있습니다.

빨갛게 잘 익은 완숙 토마토로 해야 하구요, 먹기 위해 뚜껑을 열었을 때 쨈처럼 '퐁'소리가 나야 잘 된 거예요.

하도 맛나서 날토마토 만큼이나 빨리 먹는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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