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이는 것'을 그릴까. '생각하는 것'을 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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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미르 말레비치, 칸딘스키, 데이빗 봄버스, 파울클레(시계방향으로 화가이름만), <20세기의 미술>/노버트 린튼/예경,에서
추상적인 작품에 수없이 노출된 우리에게 그림은 원래 '아름답'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색의 조화, 형태는 아름답지만 '의미'에 대해서는 골머리를 썩는게 당연하다. '생각'을 그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익숙한 것 만은 확실하다. 그림이 '재현'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여겼던 시대에 살았던 건 내가 아니라 피카소다.
하지만 '생각하는' 과학 만큼은 다르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했던 선구자들이 목숨을 잃고, 뉴턴의 중력이나 딱딱한 유클리드 수학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고, 시간과 공간을 떼어 놓을 수 없는 시공간 속에 살고 있다해도, 나는 여전히 태양이 뜨고 진다고 말하며 8분전의 별을 지금 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보이는 것을 대체로 믿고 있는, 과학의 내면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일상을 불편함 없이 영위하고 있다.
예술은 가깝고 과학은 멀다. 그림 앞에선 눈 두개만(실상은 그렇지 않을지라도)있으면 되지만 과학의 언어는 붓질보다 난해하다. 이런 과학을 그림을 통해 이해한다?
과학의 붓으로 그리는 예술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에른스트 페터 피셔/들녘/2010.3)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지식에 대한 이해가 목적이라면, 다른 길을 통해서 그것을 달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 길 중 하나는 예술을 통해 열린다. 물리학자는 -실험과 수학을 통해-원자의 성질을 알아낼 수는 있어도, 그들이 이해한 것을 일상어로 이야기 하지는 못하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원자에 대한 지식은 회화적 용어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과학자가 자신의 설명에 시적인 형식을 부여해 청중을 유혹하는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 인문학>에 인용된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시인들이 과학적 진실을 왜 시로 노래하지 않느냐는 강력한 주문을 내놓았다. 이 책은 그에 대한 한 권의 화답 같았다. 문학과 철학을 통해 바라보는 김병호 시인의 물리학 수업에서, 저자의 작품을 포함해 과학적 주제를 다룬 시들을 몇 편 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과학적 진실을 아름답게 구현한 안정감 있는 작품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시에 자연과학적 통찰이 부족했던 건 일면 사실이지만 시의 눈을 통해 과학을 바라보는 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출발부터 뭔가 어긋났을지도 모른다. 예술이 과학적 영감을 내포하는 것과 과학을 시의 소재로 삼는 것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시도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과학적 인지를 토대로 시적 영감이 독립적으로 발산된다면 피카소와 몬드리안이 그랬듯 그들은 독립적인 문예의 창조적 발상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으로 과학적 사실을 구현한다? 이말은 틀리다.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이 시대의 변화에 영감을 얻고 각 분야에서 동일한 결과물을 내놓긴 했지만 그들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는 그들이 각각 얼마나 비슷한 행보와 동일한 질문을 각자의 영역에 동시적으로 발현했는가에 대해 다을락 말락한 접점을 찾는다.
이런 시도가 아주 낯선것만은 아니다. <20세기의 미술>의 저자는
(미술에서의)새로운 관행들은 때때로 물리학에 있어서의 발전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된다. 이는 특히 원자가 종국적으로 물질의 최소단위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전자, 양자, 중성자의 덩어리라는 사실의 발견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및 질량과 에너지를 동일시 하는 이론과 관련되고 있다.
고 했다. 칸딘스키도 그의 회고록에서(<20세기의 미술>에서 발췌)
"원자의 분열은 나에게 있어 전세계의 붕괴와 같다"
라고 한 점을 든다면 당시 미술계는 과학적 입장 변화에 무척 민감했고 또한 열려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18세기 뉴턴의 등장 이후로 유럽은 과학에 열광했다.
뉴턴 시대 이전의 사람들과 이후의 사람으로 나뉠 수 있는 것은 과학이 사람들의 생각을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뉴턴 이후 사람들은 과학이 대중의 생각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또한 과학은 신학의 한 모서리를 담당하던 시대를 뛰어넘어 신이 하지 못한 일까지 할 수 있었다. -<생각의 진화>(김용관/국일 미디어/2010.1) 에서
하지만 예술가들이 피카소가 말했던 '새로운 표현방법의 모색'이라는 이유로 변화를 주도 했다는 분명한 사실로 인해 예술과 과학과의 섵부른 연계는 한정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는 그런 연결점에 더욱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것으로 다가간다. 화가들이 사실은 새로운 표현양식에 더욱 몰두 했음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한 시대를 살았던 과학자와 예술가들의 선긋기를 멈춰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비뇽의 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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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프리카-사라져가는 세계 부족문화>라는 어린이 교양도서에서 원주민의 가면을 유심히 볼 기회가 있었다. 문득 아비뇽의 여인의 얼굴 중 하나로 가면을 채택한 피카소의 심미안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했다는 자신이 들었으나, 그 그림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운데 미적인 기준을 넘어선 연구적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 피카소도 자신의 구상과 스케치를 '연구'라고 불렀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가면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편견이 지워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왜 그것이 아름다운가를 물을 때 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피카소는 아마도 그것의 가장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것을 미술계에선 '원시주의'라 부르기도 하고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의 동일 명제인 '모든 것은 기하학이다' 로 도출되기도 한다.
세잔의 풍경화가 장면을 모사하지 않고 자연물 개별의 기하학적 구성을 독립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아비뇽의 처녀들>은 배경과 인물의 따로됨이 아니라 한데 뒤섞여 따로 구분지을 수 없을 정도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아가기 직전의 원형을 드러낸다. 그것은 결국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간과 공간을 떼어놓을 수 없는 시공간 개념을 구축한 것으로 읽힌다.
수 년전 <아비뇽의 처녀들>을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그림이 품고 있는 시간성에 대해 의아하기만 했다. 뒤틀리고 뒤죽박죽이 된 형태들이 무의식적으로 눈을 잡아 끌긴했지만 그림이 '생각하고 있는' 의도에 대해서는 수동적인 짐작만 가능할 뿐이었다. 게다가 그림이라면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겼다. 화가가 아무리 획기적인 시도로 예술사에 남을 만한 공을 세웠던 간에 내적인 아름다움이 상으로 맺힌다면 굳이 심각하게 들어가서 해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거만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는 과격한 방어일 뿐이었다. 게다가 추상적이지 않은 그림에서 난해함을 느끼기란 아주 애매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시간을 두고 누군가를 지켜볼 때의 전신의 모든 방향이 정면을 향했다는 처녀들의 뒤틀림은 기실 그림에 담은 시간성이란 문제에 대해 매우 색다른 영감을 줄 뻔도 했지만 무지의 소치로 그림은 가려지고 말았다. 과학도 그렇지만 예술의 내면화도 나에겐 아직 먼 일이다.
<아비뇽의 처녀들>의 배경은 마치 구겨진 커튼처럼 아가씨들을 애워싸고 있으면서 스스로 배경임을 거부한다. 그 구겨짐으로 우리는 2차원의 평면에서 인물이 뒤로 밀리거나 배경이 튀어나오거나 하는 공간적 질감과 기하학적 구성을 염두하게 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마치 '공간이 오히려 인물들의 형상을 결정하는 것'은 상대성이론의 기본 통찰과 통한다고 한다. 여전히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거의 감이 오지 않고 있으나 피카소를 통해 바라보는 시공간의 전면적 도출은 감히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해부되고 해석되는 그림에서 아름다움은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은 이제 사라졌다. 물리학적 표현으로 피카소의 그림이 '동시성이 존재하는 좌표체'라고 한 저자의 말을 지금 당신이라도 이해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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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곰브리치/예경,에서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생각하는 것'을 그린 그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옆얼굴과 정면 몸통, 투시 연못, 물고기의 옆모습, 눕혀진 나무를 그린 이집트의 벽화가 가장 보여지기 좋게 그려지기도 했지만 그들이 인지하는 것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피카소도 알았을 것이다. 결국 피카소는 원시주의와 시대적 변화의 바람과 시대의 탐구 과제를 그림에 녹여내는 비상한 재주를 보여주었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는 세계선을 공유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멀고 멀게 주고 받은 영향은 아주 가까웠다. 그들은 물리적으로 단 한번도 부딪힌 적이 없고, 만난척도 하지 않으며, 시시한 가정이나 비유로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라는 제목이 탄생한 건 아니었다. 책이 강요한 그들의 만남이 당시 흔했던 예술가들의 카페나, 학술적인 파티에서가 아니라 '영화관'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는, '시간'이라는 4차원을 경험하게 하기에 딱 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획기적인 장르가 그들 공동의 은유적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영화가 시간의 예술이라는데는 더이상의 설명은 불필요 하다.
상대성이론이 입체주의와 어떻게 짝을 이룰 수 있는가는 우리와 멀고도 먼 과학과 예술의 이야기지만, 저자는 과학이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그럴만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 반갑다. 우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과학적 지능과 예술적 지능을 구별하는 이분법에 너무나 오래 익숙해져 있다. 저자는 이 점을 예술작품의 신비로움에 매혹되듯이 과학의 수수께끼로도 관람객들을 유혹할 수 있다고 풀어낸다. 과학적인 폐쇠성이 예술로 발빠르게 구현되었을 때 우리가 예술작품을 보면서 과학적인 시각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일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다.
피카소가 약 8년이 지나서, 그것도 상대성 이론까지 등에 업고 내게 왔듯이 그 언젠가 아인슈타인이 스며들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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