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평범하지 않은 사례에서 그 작용의 신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7세기 영국의 해부학자 토머스 윌리스의 말입니다. <내 몸의 사생활>은 사라진 입맛에서 공복감의 화학적 요소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얼굴 지각의 기적에 대해 새로운 식견을 얻었고, 촉감을 잃은 사람에게서 애무의 생물학을 알게 되었다고 정리합니다.

실제로 본문에 등장하는 현대인, 즉 우리처럼 밤에 잠을 몰아자지 않는 에페족에 대한 독특한 이야기는 밤의 패턴을 연구하는 데 좋은 실예가 되어주었습니다. 요즘의 수면 습관이 현대생활의 인위적인 결과라고 추측할 만한 실험을 더하면서 우리의 몸이 실은 선사시대에 빚을 지고 있음에도 잠을 줄이고 통합했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현대인들이 '신화와 판타지의 원천과 멀어지고, 생리 기능에 잠재하는 다양한 대안 방식을 깨닫지 못한다'는 야릇한 결론을 향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 사실 저는 할 말이 없지만 <진화에 정답이 어딨어?>로 추측되는 진화론은 이른바 '우성'만이 진화의 승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을 뒤집으려 하고 있습니다. 가장 약삭빠르고 강한 동물만이 진화의 승자가 되고, 가장 합리적인 습관들이 우리의 유전자에 기록된다는 진화론이 이 두 책에 의해 힘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밤의 패턴을 인위적으로 바꾸어 우둔해진 영혼이나 진화에 실패한 듯 보이는 동물들의 생태계도 진화의 결과물이라면, 합리적인 적자생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신적, 신체적 후퇴가 수반되는 삶이 과연 앞섰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진화'라는 말로 그려지는 그림은 마치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사다리타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의 진화>의 주인이었던 '생각' 역시도 항상 발전적인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란 기대가 그저 기대뿐이라고 말합니다. 선사시대, 과학의 시대, 영감의 시대를 지나쳐 우리가 고도로 진화된 영장물이라는 환상은 원래의 뇌의 크기를 현재와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유익하게 진보적으로 비대해진 뇌라고 말하는 데서 머뭇거리게 됩니다. 혹시 진화가 옆으로 풍성해지고 분화되는 가지는 아닐까요?  

진화의 실패작같은 동물들이 불완전한 몸을 이끌고 버티는 생태계는 인간이 지칭한 '진화'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잠들었다가도 무언가 흥미로운 소리(대화나 음악)을 들으면 망설임 없이 깨어나고 밤에 아무때고 일어나 콧노래를 부르거나 엄지 손가락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행위, 밤에 집회를 열고 잡담하고 그밖의 사회활동을 하면서 보내는 킹족과 에부시족. 만일 현대인의 밤 패턴보다 이것이 영감어린 습관이라면 우리가 진화의 혜택을 제대로 보고 있는 고등한 인류가 맞습니까? 라고 묻고 싶어집니다. 


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진화론에 맞장 뜰만한 바다게나 달팽이, 개구리의 짝찟기 습성은 엄연한 사기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힘이 더 세다고 약한 놈보다 기회가 많지 않다는 사실들이 다윈을 반박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따라옵니다. 암컷에게 능력을 과시하며 구애하는 대신 패자처럼 숨죽이고 있다가 암컷이 나타나면 갑자기 보충한 에너지를 쏟아붙는 이놈들의 영리함이, 원래 힘보다 나은 것은 아닐른지요. 말하자면 이런 동물들의 습성이 진화론을 뒤집을만한 정확한 예가 되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아야 하는데 <진화에 정답이 어딨어?>가 불러모은 동물들은 인간이 구분한 열등에 무척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거죠. 도퇴되었어야 마땅한 척박한 현실에 그들은 여보라는 듯이 잘 살고 있는 겁니다.  

다윈의 진화론까지 섭렵해봐야 진위를 가릴 수 있겠지마는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를 떠올리게 만드는 동물들의 희귀한 습성을 진화의 수순이 아닌 우연이나 아름다운 실수로 치환하면서 진화론을 반박할 수 있는지는 두고봐야 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화론과 관련을 맺건 말건 간에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 사례에서 자연의 신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해마가 창조주께서 술 한잔 걸치고 만든 우연의 산물이라고 해도, 수컷들의 허풍이 똑똑해질 줄 모르는 러닝개그 중이라도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 졌습니다. 어쩌면 진화론 자체보다는 진화의 엘리트주의를 반박하는 익살스런 모함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뜬금없이 이 과학책은 정치인문 도서에서나 등장할 서민우대정책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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