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인생을 배웠다고 감히 자부하는 저는 아이에게도 시집을 건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기도 했지만 이야기책보다 지루하지는 않을까 늘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책을 지겨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는 사실 어른들의 두려움만 담겨있지만, 제가 읽기에도 즐거울 동시였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말소리보다 리듬과 반복을 먼저 익히는 아이들의 특성에 따르자면 시만큼 좋은 언어의 기폭제도 없겠습니다. 


첫 돌 이후 첫 번째 동시집은 동시의 고전이 많은 책을 골랐습니다. 유아가 읽기에 적당할 창작 동시집을 그 때까진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판본도 크고 당연히 그림도 동반된, 익숙하고 발랄한 언어로 가득한 책은 생각보다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생각까지 예뻐지는 동시>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저희 어렸을 때 들었던 말노래의 원본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원숭이 똥구멍~으로 시작하는 '말엮기 노래'나 꼭꼭 숨어라~로 시작하는 전래동요, 또 우리가 익히 동요로 불렀던 동시의 진본이 여기저기 숨어 있습니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나무야 나무야' '구슬비''도토리' 등 노래로 불러주기에 딱 좋을 악보가 되어주니 그것 역시 반가웠습니다. 또 동시의 힘을 여실히 증명한 윤석중, 정지용, 강소천, 이상교, 이문구 님의 시들로 가득했습니다. 윤동주
의 동시가 빠진게 아쉽다면 아쉬웠지요.
 










이 동시집은 아이와 노는 방에 그저 한 쪽을 펼쳐놓고 관심을 기울이면 노래를 불러주거나 읽어주거나 했습니다. 하지만 곧 이야기 책들에 뭍혀 한 동안 책장에 꽂혀있는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사실, 이번 이상교 님의 창작 동시집에 비한다면 그림이나 시적 모티브가 좀 오래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위의 책이 좋은 동시들을 엮기는 했지만 통째로 한 권의 동시집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데 반해 이 번 책은 한 달음에 한 권을 볼 정도로 아이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소재나 주제의 흐름, 신기한 반입체 그림들, 통통거리는 언어, 이 모든 것이 그런 힘을 발휘합니다.

 















<소리가 들리는 동시집>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기발하면서도 일상의 친숙함을 상징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림 속에 자리한 시의 구성도 참 아름답습니다. 의성어 의태어도 즐겁지만 보기에 즐거운 책입니다. 고전 동시처럼 짜임새가 완벽하고 긴 호흡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소재에 대한 발상을 간략히 드러내는게 강점입니다. 


예를 들어 <불> 이라는 시는 '장작에/활활/불이 붙었다./넘실넘실/춤추는 것 같다.' 라고 썼습니다. <김밥>이라는 시에는 '하얀 밥/분홍 소시지/노란 단무지/초록 시금치/노르스름 계란말이/까만 김 한 장이/도르르르 안아 주었어요'라고 쓰여져 있구요. <소> 라는 시에는 "밥 벅었니?"/물어봐도 눈만 끔적끔적/"송아지가 보고 싶니?"/물어봐도/입만 우물우물. 이라고 읽기에도 듣기에도 즐거운 말놀이 들이 이어집니다.(아이는 소가된 양  대답을 합니다) 

시들은 주제별로 나뉘어져서 물 흐르듯 시들이 흘러 갑니다. 아침, 학교, 거리풍경, 혼자 집보기 등으로 대여섯개의 시들이 둥그마니 모여 있으니 이야기 책으로서의 기능도 충분히 달성합니다. 소단락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의성어 의태어 잎을 단 나무 그림은 책이 끝날 즈음 초록 잎으로 가득 합니다.

아이는 이게 버튼이라면서 삑삑 누르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부저 소리를 내주고 나뭇잎 안에 자리한 우리말을 읽어주었습니다. 제법 두꺼운 책을 한 달음에 읽은 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어떤 내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아이의 호기심을 이 동시집이 충분히 채워주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그림을 만져보는 아이의 손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