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푸른도서관 5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힘없는 나라이기때문에 부당하게 겪는 일이야 부지기수일 것.

세월이 흐르면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보상과 위로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고려인이라 불리는 까레이스키는 관심을 끌기조차 어려웠다. 여전히 잊혀진 존재로 남았다. 몇번 방송을 통해 그들의 어려움에 대한 프로를 잠깐씩 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곧 기억속에서 사라지기 일쑤.

그때마다 미안할 뿐이다. 자국에서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프고 허망할까.

 

1924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신한촌에서 카레이스키로 태어난 어린 소녀 동화가 화자가 되어 가슴아픈 우리의 역사이자 까레이스키의 비극적이고 한스런 삶을 성장소설적 기법으로 이야기한다.

 

내무인민위원에서 나온 사람은 까레이스키 전체에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고 사흘 후 블라디보스토크 역 광장으로 모이라 한다. 이에 앞서 동화 아버지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끌려갔지만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시베리아 횡당 열차를 탄 17만여 명의 까레이스키들은 추위와 배고픔은 물론 생리적 욕구도 해결되지 않는 가축 운반용 차량에 실려 가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만삭이었던 동화의 엄마도 뱃속의 아이도 그렇게 목숨을 잃지만 변변히 시체를 갈무리하지도 못하고 눈밭에 덮는 정도로만 처리하고 다시 기차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오빠는 이대로 가면 모두 얼어죽을 것을 염려해 반항을 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죽자 죄책감에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게 되었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는다.

연해주를 떠난 40여 일만에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의 눈 세상이자 황무지 우슈토베.

당장 짐을 부릴 곳조차 없는 얼음 구덩이와 다름 없는 이곳에 버려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까레이스키인들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연해주를 출발할 당시 공민증을 빼앗긴 이들은 허가장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감시 당하는 적성이민족으로 분류되어있었다.

이는 곧 죄인들과 같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런 가운데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은 공동으로 농사를 지어 공동으로 경작하는 꼴호즈(집단 농장)로 바뀌어 수확을 늘리고자 한다. 동화는 아버지의 소식을 알고자 노력영웅이 되려고 일벌레가 되기를 자처한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그후 3년이 흐른 어느 날 공민증을 돌려주지만 이는 유형 기간이 8년이나 지난 56년에서야 되돌려 받게 된 것. 이주당한지 20년이나 흘렀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렇다고해서 적성이민족으로 분류된 것이 풀린 것도 아니다. 그즈음 아버지가 강제 이주 전에 즉결 처형을 받

았다는 통지를 받게 된다.

동화는 자식들이 까레이스키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고자 한다. 그 한가지로 조선어 사용을 금지시키려고 책을 모두 회수 했을 때 몇권 남겨둔 조선어 교본을 꺼낸다. 모국어를 가르쳐 아버지의 뜻을 잇고자 함은 물론 레닌 훈장을 받으려 열심히 일한다.

 

조국이 해방되었는지조차 모르고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해 온 까레이스키.

소련이 무너지고 위성 국가들이 하나둘 독립을 하자 까레이스키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져 방랑하는 유랑 민족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안타까움을 어찌하리....

소련의 잘못된 정책으로 60년 가까이 억울한 삶을 살아온 까레이스키들의 보상은 어떤 금전적인 것으로 갈음되지 않는다.

조국조차 관심 밖에 있었으니 우리가 같은 조국의 국민이라고 과연 말 할 수 있을런지....

 

작가의 작품 중 <에네껜 아이들>도 같은 맥락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으로 선정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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