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은 약손 국시꼬랭이 동네 18
이춘희 지음, 윤정주 그림,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를 펼치자마자 파란 통을 메고 자전거를 끌고가는 아저씨의 걸걸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아이스-케-키-
얼마나 정겨운지.
다닥다닥 머리를 맞댄 지붕과 그 안으로 살짝살짝 보이는 작은 마당의 빨래줄에 걸린 빨래가 슬몃 미소를 머금게 한다. 볼품 없는 전봇대마저 소곤소곤 말을 걸어 올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그림에 빠져버렸다.
다시 한 장을 넘기자 연희는 아이스케키 사 달라며 땡강이라도 부리는 듯 온몸으로 아이스크림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주머니를 뒤져본 엄마는 잔돈이 없자 헌 구무신을 꺼내 들려준다. 골목 밖으로 나가니 저멀리 찌그러진 냄비를 들고 입이 찢어져라 달려오는 아이도 보이고 빈 병을 손에 쥐거나 말짱해 보이는 노란 양은 냄비를 머리에 쓰고 뛰어 오는 아이들에겐 오로지 아이스케키 밖에 보이지 않겠지. 옛날엔 양은 냄비도 땜질해서 썼던 것 같은데 괜히 혼나는 건 아닌지. 한쪽엔 아기를 업고 있는 누나의 손을 잡고 아이스케키 사 달라고 울며 떼쓰는 남동생에 어쩌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등에 업힌 아기마저 아이스케키를 알아버렸는데 누나라고 먹고 싶지 않을쏘냐.
헌 고무신 한 켤레를 주고 받은 아이스크림 세 개. 아껴 먹느라 천천히 빨아 먹는 숙희. 연희는 뽀삭 소리가 나도록 깨물어 먹는다. 하나 남은 것을 탐낸 연희는 엄마 드릴 거란 언니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아이스케키를 낚아채 "퉤퉤퉤' 침을 뱉고 한입 베어 문다. ㅋㅋㅋ
한 번쯤의 경험 있지 않은지. 실제로 침을 뱉지는 않았어도 형제끼리 내가 더 먹으려고 저런 짓까지 서슴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결국 욕심 부린 연희 배가 아프다며 울며 집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계시지 않았다. 한참을 허둥대던 숙희는 장독대로 달려가 소금을 가져와 동생에게 먹인다. 엄마가 배 아플 땐 소금을 먹였던 가 보다. 난 첨 듣는 민간요법인데 과연 효험이 있을런지. 소금과 찬물을 번갈아 정성껏 먹였지만 연희는 점점 배가 더 아프다하고 결국 웨엑 토해낸다. 그럼에도 연희는 손가락을 따겠다며 바늘을 가져온다. 헉~ 무셔.
체했을 때 손을 따면 쑥~ 체기가 내려가긴 하지만 정말 무섭다. 따는 사람도 손을 맡긴 사람도.
엄지손가락에 실을 칭칭 감고 바늘로 찌르려 하자 연희가 자지러지게 엄마를 부르며 우는 타이밍에 엄마가 마당에 들어선다.
휴~ 다행이다.
이후 내용이야 표지와 제목에서 드러났듯 엄마의 사랑과 정성의 손길로 아팠던 배가 절로 낫는다는 것인데, 사실 절로는 아니고 여기서는 볶은 소금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였고 삼베 주머니에 볶은 소금을 담아 배꼽 아래에 얹어 주었다. 더 결정적으로는 엄마의 따뜻한 손! 소금의 효능은 모르겠지만 실제로 엄마의 따뜻한 손으로 배를 문질러 주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이야 배가 아프면 병원이나 약국으로 달려가지만 예전엔 왠만하면 참아보거나 엄마의 약손으로도 치유가 되었더랬다.

'엄마 손은 약손 ***배는 똥배...'하고 배를 살살 쓸어주며 노래를 부르면 애들은 똥배라는 말에 깔깔거리며 웃는다. 
동생 때문에 애를 태웠을 숙희와 연희가 나란히 엄마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살랑살랑 부채질 해 주는 엄마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사랑이 부럽고 행복해 보인다.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도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그립기만 하다. 지금 내가 배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면 애들 뭐라고 할까?
화장실 가라거나 병원가라고 하겠지. 그도 아니면 신경도 안 쓰거나.ㅠㅠ

이 책은 글보다 그림이 더 정겹고 먼저 와 닿는다. 대문에 걸린 그림 작가 이름의 문패, 담벼락에 쓰인 '철수♥미란이 얼레리 꼴레리' 란 낙서, 사각 무늬에 커다랗게 그려진 꽃무늬의 장판, 미원, 흔히 오봉이라고 불렸던 동그란 양은 쟁반, 알전구 등등 그림 속에서 옛 추억을 더듬어 보게 한다.
국시꼬랭이 시리즈는 아이들보다 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책이었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내가 더 신나서 한 권씩 모았던 책. 책을 읽어 주는 시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적의 나를 찾아 추억을 더듬어보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떤 책에서 '어른은 그림책의 그림을 전체와 연결지어 읽지 않고 장식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그림책을 어린이처럼 읽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했다. 그건 그림책의 참 맛을 모르는 사람들 얘기고 그림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예외라 말하고 싶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일부의 책은 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이나 추억을 건드려 주는 그림은 글보다 그림에 더 치중하여 글로 된 언어보다 그림이 전달하는 언어를 반복적으로 읽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게 글과 그림을 연쇄적으로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 나간다고 할 수 있다.
국시꼬랭이 시리즈가 한때 그만 나올 거란 얘기에 무척 아쉬웠는데 다시 나와서 정말 반갑다. 담에는 나도 잊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의 어떤 추억을 꺼내줄까 시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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