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이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11
바바라 파크 지음, 김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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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 치료방법도 없고 예방법도 없어 누구나 두려워 하는 병. 더구나 점점 가족의 단절이 심화되어 가고 있어 치매에 걸린 가족조차 서로 돌보기를 꺼려하다보니 치매는 본인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애를 먹인다.
현재 시어머니께서 치매다. 아직 심각하진 않지만 그리고 시누이의 표현을 빌면 귀여운 치매라고 하지만(딸이냐 며느리냐의 차이 일 수도 있다) 늘 가슴에 돌덩어리를 매단 듯 묵직하다. 단단히 마음 먹고 있지만 이게 마음만으로 견딜 문제는 아니다.
가끔은 아들도 멍한 눈으로 쳐다보시기에 손주인 우리 아이들을 몰라보는게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혹여라도 애들이 상처 받을까 미리 얘기를 해 두었다. 집도 못 찾고 자식도 못 알아보고 역한 냄새가 나는 것 쯤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한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으니 어찌 겁 먹지 않겠는가.
어른인 우리도 부모의 치매를 이해하고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데 손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알츠하미머로 기억을 잃어버리고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할아버지. 쓰레기장을 뒤지거나 이상한 행동과 언어로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놀림거리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제이크의 심리변화와 어린이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 등이 비교적 담담하게 그렸다. 특별히 감동적이지 않지만 사실적이고 솔직한 감정의 묘사가 진정성있게 다가온다. 

'"50만원이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모 표정은 앨머 할머니의 월급이 얼마인지 잊지 않고 있다는 분위기였다....그런 다음 이모와 사촌은 차를 타고 붕! 슬픈 노인을 돌볼 필요없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마술처럼 변신할 수 있는 곳으로 서둘러 떠났다'(117쪽)
  

이게 현실이다. 부양하고 있는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식의 현실적인 차이.
그냥 가끔씩 들여다 보고 마는 관계라면 이런 고민도 없을테지만 모셔야 될 부담을 안고 있는 내게는 이런 상황 등이 확연히 보인다.

'나는 불만이 점차 쌓이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에 한 시간만 할아버지를 돌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원해 학교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오는 것과 그래야 하기 때문에 바로 집으로 오는 것은 크 차이가 있었다.
또 내 신경을 긁는 것은 엄마가 내가 성인 군자나 그 비슷한 뭐라도 되는 양 칭찬하는 소리다. 할아버지와 하루에 한 시간씩 같이 지내는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마음이 넓은지 모르겠다고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해댔다.' (63쪽)


늘 시작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다. 아니 힘들 것을 예상하고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게 언제나 짐작했던 것을 훨씬 상회하는 어려움과 맞닥뜨린다.
제이크는 할아버지의 병을 내 생활로 받아들이기까지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나는....? 일 년 같고 안 될 것 같은데....
'평범한 아이'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집안을 '책임'지고 있는 아이로서 사고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제이크.
난 우리 애들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
아이들한테까지 그 부담을 어쩔 수 없이 떠 맡기다보니 아이들의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치매에 걸렸더라도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는 부동의 관계가 미움의 관계로 이어지지 않게 유지시켜주고 싶은데 안좋은 기억만 남겨줄 까봐 걱정스럽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갈등도 생길 수 있다. 굳이 치매가 아니더라도 시부모님과 함께 살며 너무 힘들어 내게 쌓인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었던 경험이 있기에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 이건 전적으로 감정 처리를 제대로 못 하는 내 탓이기도 하다. 내뱉을 창구가 없었고 이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좋은 추억이 많았더라면 어찌 참아보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으니....
무엇보다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손가락질 당할만큼 모른척 무심히 살아가는 것도 아니건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게 더 미칠 노릇이다. 나도 사람인데 안된마음이 왜 없겠는가만은 그것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더 크게 와닿는걸 어쩌란 말인가.

책은 어쨌건 내겐 가상의 공간이고 결말또한 바람직하고 해피하게 끝나지만 난 솔직히 며느리의 의무와 희생만을 강요하는 집단에서 질식사 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어머님 가시기전에 두손 잡고 화해하고 싶다.
이기적이긴 하나 나 자신을 위해. 나 뿐 아니라 다른 자식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고 가셨으면 좋겠다. 왜 하나 같이 자식들 가슴에 못을 박으셨는지. 그런데 정작 어머닌 기억을 놓고 계시니 그게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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