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63
이경자 지음 / 사계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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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후, 강원도 양양에서 6살 순이의 삶이 한 편의 흑백 영화처럼 잔잔하게 그려졌다. 과잉 감정도 절제도 허락하지 않은 채, 담담히.

책을 읽기 전에는 가난이 혹은 여자라는 부당함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굴곡진 여인네의 삶에 포커스를 맞췄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순이는 6살에서 초등 입학하는 시점에서 끝나고 있다.

넓대대한 얼굴에 쪽 찢어진 눈이 예쁘진 않지만 귀염성 있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표지의 순이는 그러나 저렇게 깔끔한 모습은 아니다. 늘 땟국이 흐르고 옷에는 흙을 묻히고 무릎은 헤진 바지 차림을 주로 했다. 먹는 것을 보면 눈을 희번덕거리고 것이 순이의 본 모습이다.

이 책에서는 지리적 배경인 강원도 사투리가 많이 나와 말의 재미를 전한다. 문학작품에서 점점 사투리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아 아쉬웠으나 순이에서는 대부분이 사투리인 대화에 적응하기가 오히려 힘들 지경이었다.^^

순이는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았단 이유로 구박을 받는다. 꼭 주워온 자식 마냥. 그랬던 순이 엄마가 이해되는 대목이 나온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엄마들이 내가 죽도록 싫은 점을 자식이 닮으면 미워하거나 부딪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닐 미워하는 줄 아너? 난 니가 안 미워! 니가 괄시받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거여. 어머니는 순이 얼굴을 씻기며 속으로 말했다. 사람이 욕먹었다고 못 크는 건 아니여. 어머이두 외할머니한테 매두 맞고 욕두 먹구 그랬어. 싫어서 욕하구 때리는 건 아니여. 어머니는 속으로 말하면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고 미리 만들어 둔 새 바지로 갈아입히고 헝겊 자투리로 만든 가방도 주었다.’ (131쪽)

<순이>에서는 큰 사건이 없이 전개된다. 그러면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게 많았던 듯하다. 고부갈등, 이데올로기, 가정 내 폭력 등을 비롯하여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을 넘어 미국이 천당으로까지 미화되고 있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이 이 부분 정확히 알고 읽어야 될 것이다. 순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문자를 익힌 후, 어린 시절 그토록 믿고 경외했던 천국과 미국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배신감을 느끼게 됨을 마지막에서 밝히고 있다.

이렇게 순이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아이다움을 잃지 않고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자랐다. 전쟁이후 어린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 치고는 너무 밋밋하여 아이들이 자칫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쯤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자를 익히고 이전과는 다른 행복을 느낀 순이, 너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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