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무함마드 알리.델핀 미누이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아홉 살 소녀와 결혼하면 행복한 결합이 보장된다”
이런 미친...욕이 절로 튀어 나온다. 조혼 풍습이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고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서구 사회에서도 존재했었다. 그런데 마치 이슬람에서만 존재했던 추잡한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이혼이란 딱지가 누주드에겐 희망의 시작이었다. 열 살. 그리고 이혼.
요즘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초등 성폭력 사건으로 불쾌하다. 아니 불쾌함을 넘어 분노에 몸서리쳐진다. 어떻게 그 어린 몸에 그런 짓이 생각나는지. 참...이해불가다. 딸아이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남자들은 전부 거세를 시켜야 한다고 씩씩댄다.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나 역시 그럴진데.

문제는 우리나라나 <나 누주드, 열 살 이혼녀>에의 예멘이나 어린아이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열 살이라고는 했지만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았기에 열 살인지도 정확치 않다. 아홉 살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혼 당사자인 십대 소녀들의 의견 같은 애초부터 반영되지 않는다. 가난, 교육의 부재, 문화, 부족 간의 복수나 간통 등 어떤 것으로도 변명이 될 수 없다.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은 남자에게 결혼을 하고 그 성적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던 누주드의 이혼은 불행한 관습에 종지부를 찍는 시발점이 되었다고는 해도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명예를 중시하는 그들 사회의 남자 가족들에게 조차. 극단주의자들에 따르면 누주드의 이혼은 응징의 대상, 즉 살해 당할 위험까지 있으니 이러한 관습을 깨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렇기에 누주드의 행동이 얼마나 용기를 필요로 했던 일이란 말인가.
이러한 끔찍한 비극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뒤쪽의 에필로그에 소개된 것을 보면 암담하기만 하다.

“최근에 사우디아라비아 남자와 결혼한 아홉 살짜리 예멘 소녀가 결혼한 지 사흘 만에 죽었다. 아이의 부모는 추한 소문에 울어야 했겠지. 대신 그들은 나쁜 상품을 거래했다는 듯이 소녀의 남편을 서둘러 용서해 주고, 소녀의 일곱 살짜리 여동생으로 아내를 바꾸어 주었다”

제발 누주드의 용기가 헛된 일이 되지 않기를, 빨리 변화 되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란다.

누주드의 이혼을 돕기 위해 힘썼던 사람들과 같이 자신도 변호사가 되기를 꿈꾸는 누주드.

누주드의 그 꿈이 꼭 이뤄지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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