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치 - 제7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미래의 고전 11
보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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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원죄란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정이란 단어가 반감이 많이 들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부정한 아이들로 낙인찍힌 뿔치와 살강이는 자신들을 키워준 당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용궁을 찾아 간다.

이 책은 작가도 생소했지만 이들의 모험이 펼쳐지는 무대가 바다란 점도 색달랐다.(그래서 해양 판타지란 말로 책의 장르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글투가 낯설었다.

어쨌거나 판타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르이니만큼 다양한 소재에 착안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나 솔직히 판타지가 아직은 번역서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작가나 출판사야 기분 나쁘겠지만 재미 면에서나 큰 스케일에 따른 글을 끌고 나가는 힘이나 분량에 따른 풍성함이 아무래도 시리즈물에 비해 약하다. 우리나라의 판타지 작가로 내세울 판타지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영도(드래곤라자)작가 외에 특히나 아동물에서는 이 사람이다, 하고 콕 집어낼 작가가 없다는 게 아동문학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지만 판타지는 무한 상상력을 요구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글쓰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판타지만 쓰는 작가의 발굴이 필요하다. 굳이 같은 출판사에서 주로 책을 내는 작가를 들자면 강숙인 작가가 역사 (판타지를 포함한)동화를 주로 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뿔치>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갖추지 못한 허접한 동화란 게 아니라 이 책이 재미있으니까 판타지란 장르의 우물만 팠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이 작가의 책을 검색해보고 든 생각.

자신이 푸른 용이라 여겼으나 사실은 내가 아니라는 것, 검무기가 이무기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 등의 반전이 극적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성장이란 것까지 껴안고 있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인 뿔치만큼 여자 주인공인 살강이에 대한 비중도 엇비슷한 무게를 가졌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엊그제 읽은 책 <마음 읽는 소녀 린>에서는 그러한 편견을 가볍게 깼다. 대부분의 판타지가 남자 아이들에 중점을 둔데 반해 그 책은 여자아이를 위한 판타지였다고 생각한다. 

‘부정이 무엇이냐. 깨끗하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나 깨끗하지 않은 마음, 남을 미워하고 해를 끼치려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가득 찬 것을 부정하다 이르는 것이다. 뿔치야 네 마음이 그러냐?’ (203쪽)
고 묻지만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누가 비껴갈 것인지.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부정한 것들인데...부정한 아이란 굴레를 벗게 된 데에는 본성을 찾으려는 열망과 사랑이 보태지고 용기가 더해지진 복합적인 결과이다. 부정의 본질이 무어냐 용왕께 묻자 용왕은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붙여 놓은 것은 본질이 아니라 이름일 뿐이니, 너희에게 붙은 그것도 부정 그 자체가 아니라 부정이란 이름일 뿐이거늘.” (300쪽)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을 알려준다. “달리 불러 줄 이를 찾으면 될 터.”

남들이 붙여 놓은 부정이란 이름 따윈 중요치 않다. 그걸 가두는 건 자기 자신이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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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09-12-3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글쎄 리뷰 읽다가 아동물이라는 글자에서 야동물로 읽었다는... 그래서 이상하다 싶어 다시 읽어보니 아동물!

희망으로 2009-12-30 17:22   좋아요 0 | URL
푸하하~~야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