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해 봐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4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받을 당시, 그동안 읽고 싶어 주문한 세 권의 책을 비롯하여 몇 권의 책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이 책 표지의 저 눈빛은 뭐고 뭘 말하라고 강하게 말하는 거지, 하고 뒤표지에 적혀 있는 글을 보다가 너무 놀라 흠칫 했다.
‘술에 취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나를 성폭행했다.‘
반사적으로 조두순 사건이 생각났고, 어쩌면 좋아...라며 책을 열어 5줄이나 읽었을까. 바로 책을 덮었다.
조두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얼마나 살이 떨리던지, 더 읽어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해봐야 했다. 걸레질을 하고 나서 저만치 밀쳐둔 책을 쳐다보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의 성폭력이 단순히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설정이 아니라 너무나 사실적이란 점에서 충격적이라 할만하다.
대부분의 번역소설이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는 점에서 공감대의 폭이 줄어들었다면 이 책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말해 봐>는 성폭력을 당한 멜린다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등 학교생활 부적응자로 전락하고, 말하는데 대단히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가운데 미술활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위안 받으며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가장 끔찍했던 순간은 레이첼에게 차인 앤디가 멜린다를 찾아와 했던 말과 다시 멜린다를 성폭행하려는 순간이었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잖아. 전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어. 넌 좋아했다고. 내가 너 말고 네 친구와 데이트를 해서 질투하는 거야. 네가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은데.”(283p)
아....이게 남자들의 함정이다. 미친새끼.
책을 덮고 나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무서운 세상이고 우리나라는 지금 조두순 사건으로 흉흉하다.
이 책의 번역자도 밝혔듯 딸은 어떻게 키울 것이며 또 아들의 성교육은 어떻게 해야 좋을 지와 같은 생각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공통된 생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 이유는 범죄자의 인권을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한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여 큰 상처를 남겼음에도 그 짓을 한 놈에게 내려진 법원의 형량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가벼운 형량 때문이다. 아이는 평생을 감옥에 갇힌 것보다 더 괴로운 삶을 살고 때때로(실제로는 매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생각 할 만큼 힘들어 할지도 모르는데!(가정법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은가.)
법원이 내린 판결을 보면 피해자가 겪는 고통이 왜 훨씬 더 커야 할까?
268p에서 멜린다가 짐승인 앤디에게서 레이첼을 떼어놓기 위해, 자신이 앤디로부터 성폭행 당했음을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너 정말 괜찮니?????????'. 레이첼이 아니더라도 괜찮냐고 밖에 물을 수 없어서 미안함에 눈물이 흐른다. 어떻게 괜찮을 수 있을까. 괜찮다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여기 있다. 혼란스럽고 엉망이지만, 어쨌든 여기 있다. 이제 어떻게 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영혼의 전기톱이나 도끼가 있어서 내 기억이나 공포를 잘라 낼 수 있을까?’(275p)
성폭력은 육체에 대한 폭력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지만, 머릿속까지 성폭력을 당하는 악질적이고 비인간적인 범죄란 것을 알아야 한다.
미안하다. 힘과 용기를 내서 지켜주지 못하는 이 사회가.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