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라하면 여행기를 가장 먼저 떠올렸지 조선의 학자 최부가 쓴 '표해록'을 떠올리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표해록을 잘 알지 못했으니 내가 아이들에게 표해록이 어떤 책인지 물어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들 탓을 할 수는 없을 게다. 더구나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보다 세계 학계에 먼저 알려졌고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니 우리의 문화 유산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데서 부끄러움을 감출수가 없다. 참고로 표해록은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는데 앞에서 말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원나라)과 일본의 스님인 옌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당나라)와 함께 우리의 '표해록'(명나라)를 꼽는다.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날짜와 날씨를 적어두고 있어 일기 형식의 글임에도 어찌나 꼼꼼하게 명나라의 풍경을 적어두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원문은 원래 성종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서로 그대로 번역하자면 '신은 ~하였습니다'로 해야하지만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나는 ~하였다'는 문장으로 번역했음을 밝히고 있다. 명나라 전반기의 역사와 문화를 얼마나 자세히 기록했는지 중국은 이 책으로 중국의 말소리 변천, 사라진 언어들을 연구한다니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또한 중국 서안에 비석이 숲을 이룰 정도로 많다는 비림이란 곳에서도 없다는 '미산만익비'의 비석에 대한 글이 어떤 문헌에도 나와있지 않은데 표해록에서는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리고 최부 일행이 제주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중국에 도착해 왜구라는 혐의로 온갖 고초를 겪는 가운데서도 그는 조선의 학자이며 관원임을 떳떳이 밝혔고 나중에 중국이 최부가 조선의 관원임을 알고 상을 내리는데 천자를 매알할 때는 상복을 벗으라는 중국 관원들에게 상중이라 옷을 바꿔입기를 거부하는 모습이 자주 볼 수 있는데 최부의 올곧은 성격과 당시 '주문공가례'에 의거한 성리학에 따른 생활 예절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던 것을 엿볼수 있다. 이처럼 표해록은 기록이란 면에서 역사적인 사료로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 한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있지만 사실 재미면에서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라는 것은 잊지 않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