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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친구야
박종인 지음 / 시공주니어 / 2008년 4월
평점 :
어제 다친 손톱 밑의 상처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도 그런 투정을 하지는 못할 거예요.
내가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누가 명품 가방을 들었느니 몇 평의 집에 사는지, 누가 어느 대학이 붙었느냐는 것 들과 비교를 합니다.
그런 비교를 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남의 불행을 보고 나와 비교를 하여 내가 참 많이 복 받았구나를 느끼는 것은 안됐지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어떤 아이들이건간에 웃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예쁩니다.
첫번째 이야기인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에서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을 봅니다.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 잠파는 혼자서 국경을 넘습니다.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진 눈밭을 건너기란 말처럼 쉽지 않지요.
영하 40도란 기온은 가히 상상이 안되며 중국 공안에 들키지 않으려고 밤에만 걸을 수 밖에 없고 허술한 외투 속으로 들어오는 회오리 바람,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를 아홉 살짜리 아이가 견뎌내는 것에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더더구나 가슴까지 차는 냇물을 발가벗고 건넌 후엔 땀이 날 때까지 뛰는 이유가 옷이 젖으면 바로 얼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절박합니다. 우리가 참고 견딘다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겁니다.
무모하달 정도의 모험을 하면서까지 가려는 곳은(혹은 부모들이 떠나 보내는 것은)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어린이 마을'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가족들과 만날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이룬 친구가 없다는 것에 한 숨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자꾸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사막에 버려저 쓰레기를 뒤지며 사는 아이들도 있고 본드를 불어 배고픈 걸 잊으려 하는 아이들을 사진으로도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네 살 때부터 쉬지 않고 돌 깨는 일을 해 온 루빠의 어두운 얼굴을 보면 가슴에도 돌이 얹혀진 듯 무겁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꿈을 키우고 있다는 아이들의 앞날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결국 떨어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합니다.
아마 그림책이 아니었더라면 철철 눈물 흘리며 읽었겠지요.
티베트, 필리핀, 미얀마, 케냐, 인도, 네팔 등의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굶주림 뿐 아니라 어른도 하기 힘든 노동을 하며 꿈을 키우고 있지요.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닌데 새삼 가슴이 아픕니다.
그냥 모른 척 할 수도 있고 애써 외면해도 될 것을 자꾸 이런 책들에 손이 갑니다.
정말 친구라면?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일까?
보다 적극적인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내 아이한테 한 두 권의 책을 사 주는 것으로는 지식을 보태줄 수 있을지 몰라도 더 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어떨지...(책의 뒤쪽에는 이들을 도울 후원 단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 힘들다고...무엇이 그리 아프다고...
너! 이 아이들보다 더 힘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