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금가문비나무
존 베일런트 지음, 박현주 옮김 / 검둥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이유야 다를지라도 우리는 얼마 전 숭례문이 불에 타는 것을 목격했고 참담한 심정을 겪어야 했다.
이는 그랜트 해드윈이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자행된 원시림 벌목에 저항하기 위해 벌인 사건과 참 많이 닮은 듯 보이고 그에 대한 어이없음과 분노가 마치 숭례문 화재 때와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을 대신할 그 무엇도 없고 한편으로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꼴이 정작 숭례문이나 황금가문비나무의 소실은 아닐 것이다.
숲의 보전이란 개념이 아닌 정복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지상 최대의 과제로 여겨 돈벌이로만 여긴 나머지 나무의 정체성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영국이 목재를 체계적으로 벌목하면서 최강의 힘을 자랑하는 강력한 해군을 빌미로 베어내자 서유럽에 나무옹이가 없는 미끈한 소나무 재목을 찾을 수 없어 퀸샬럿제도까지 벌목을 하는 것에서 나는 또 우리의 숭례문 재건에 필요한 나무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책의 내용이야 요약되어있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고,
황금가문비나무가 이러저러한 생물학적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의 한 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비정상적이라거나 혹은 병들었다거나 돌연변이였다고 하더라도 황금가문비나무를 신성시하고 가치를 부여하였던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그랜트의 행동이 안타깝기만 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종이’의 발명을 최대의 문명으로 손꼽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쓰러뜨렸는지에 대한 것에 비판의 글을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최대의 자연 파괴를 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양심에 거리낌도 없을 뿐더러 아직도 우리는 그 같은 일들을 멈추고 있지 않다.
윈스턴 처칠의 말대로 그것을 문명이란 말로 한껏 치장을 하고 있기 까지 하다.
정말로 문명이라 말 할 수 있을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