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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시 코스 - 시한부 세계경제의 진실을 말하다
크리스 마틴슨 지음, 이은주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책이 말하려는 것은 다음 문장으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세상에는 마치 그런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게 문제다. 경제는 성장을 요구한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을 때에만 제 기능을 다한다는 의미다. 경제가 성장해야만 일자리가 창출되고 부채도 상환될 수 있다. 성장이 없으면 일자리도, 기회도, 그리고 부채를 청산할 능력도 아주 말끔히 사라지고 만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경제공황과 혼란을 유발한다.”
길지 않은 문장이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보자.
저자가 문제삼는 것은 성장이 산술적 성장이 아니라 기하급수적 성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기업은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고 지자체는 성장목표를 수립하고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고도성장을 갈망하고 연방정부는 경제성장을 장려한다. 한편 연준은 완전고용을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데 신규 일자리는 경기팽창을 통해서만 창출되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중앙은행 즉 연준의 지상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연준은 또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5 내외로 잡고 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통화공급량의 증가가 중앙은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인플레이션 목표치 자체는 비율로 표시돼 있다. 따라서 연준은 대놓고 통화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공언하는 것과 다름엇다.”
그러나 기하급수적 성장은 유한한 세계에서 불가능하다. 기하급수적 성장의 좋은 예가 복리이다. “여러분의 선조가 약 2천년전에 먼 훗날의 자손을 위해 이자부 예금 계좌에 1센트를 예금했다고 하자. 이때 이자는 단 25라 하자. 예금 원년의 잔고와 1년 후의 잔고의 차액은 1센트의 100분의 2에 불과하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후의 예금 잔고는 1500조달러(2010년 전 세계 통화량의 20배 이상)으로 불어나 있을 것이다.” 은행들이 복리상품을 없앤 이유이다.
다시 말해 유한한 세계에서 영원히 기하급수적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바로 그것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다. 맑스는 그것을 자본의 무한축적이라 말햇다. 저자는 경제가 기하급수적 성장을 전제하는 이유를 통화시스템에서 찾는다.
“통화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첫번째는 은행 신용으로 대출의 형태로 창조된다. 은행 신용은 이와 연계된 부채액과 상쇄된다. 이 부채액은 원금 잔고,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발생한 금리로 구성된다. 역시 무에서 창조된 이 돈에는 이자가 쌓이기 때문에 원금 잔고가 상환된다 해도 이것이 통화공급량의 증가를 촉진한다. 이자는 시간에 지남에 따라 축적되는 돈이며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는 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자가 일정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통화가 두번째 유형이다. “본원통화 역시 대출을 통해 창조되며 이 두가지 통화가 어루러져 기하급수적으로 팽창되는 통화시스템이 구축된다. 실질적으로 이자부 대출을 통해 창조된 통화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모든 달러(통화)는 부채를 기반으로 창출된다,”
“우리의 ‘부채기반 통화 시스템’은 항상 일정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가 기하급수적 속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통화는 자산에 대한 청구권에 불과하다. 통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될 때는 미래 경제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는 전제가 있다.” 다시 말해 “현대 금융시스템은 영원한 팽창을 요구한다. 통화공급량이 지속적으로 증가(신용팽창을 통해)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 사태를 포함해 온갖 문제가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맑스의 자본의 무한축적이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 보지만(저자의 예는 원인이라기 보다 증상이다) 저자의 예도 경제성장이 기하급수적 성장을 전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충분하다. 그러면 왜 우리는 성장을 원하고 성장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산업혁명은 폭발적인 성장과 번영을 가져왔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성장과 번영 간의 표면적인 상관성을 체감할 수 있다. 선진국의 거의 모든 국민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대단한 부자들만 누렸던 것과 같은 수준의 번영과 안락함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성장이 이런 번영을 선사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토록 성장을 숭배하고 갈구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과 번영은 같은 말이 아니다. 성장은 “잉여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우리 신체는 잉여 음식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섭취한 열량과 소모한 열량이 정확히 일치하면 몸무게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경제에서도 역시 잉여는 에너지의 잉여이다. ”경제 성장 여부는 줄리언 사이먼이 말하는 ‘주요 자원’ 즉 에너지에 좌우된다.” 물론 번영 역시 잉여의 결과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로 가계수입이 10% 늘었다. 공돈으로 아이를 하나 더 낳아 키울 수도 있고(성장) 아니면 각자의 용돈을 더 늘릴 수도 있다(번영) 그러나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다. 성장과 번영을 동시에 실현하려면 둘을 다 지원할만큼 충분한 잉여가 있어야 한다. 즉 성장과 번영은 동의어가 아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성장과 번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을만큼 잉여 에너지가 항상 존재했기 때문에 두 개념을 같이 인식해온 면이 있다.”
다시 말해 성장이 기하급수적이란 말은 잉여에너지가 무한히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우주는 유한하고 에너지도 유한하다. 그러나 경제는 무한을 원한다. “경제학자들이 낭패를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를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전제하는 세상은 무제한의 특히 자원 이용에 제약이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은 물론 있을 수 없다.
경제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듯 닫힌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시스템이다. 오픈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에너지가 소비될 때 아니 더 정확하게는 에너지가 소비될 때에만 개방 시스템 내에서 질서와 복잡성이 구현된다. 농축된 에너지를 취해 이를 덜 농축된 형태로 만든 다음 여기서 유용한 일 에너지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열을 발생시킬 때 질서와 복잡성이 구현된다.” (복잡계 경제학에 대해선 ‘부의 기원’이 사실상 교과서이다)
“우리 경제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며 이런 복잡성은 지속적인 에너지 처리량을 바탕으로 한다. 개방 시스템에서는 에너지 사용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복잡성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복잡성이 높다 또는 증가한다는 말은 에너지 투입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농업혁명 이후에는 건축설계, 미술, 음악, 음악, 법률 기타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직종이 생겼다. 이처럼 다양한 직종이 생겨나고 사회적 복잡성 수준이 높아진 것은 잉여 식량이 전문적 역할과 활동을 추진하는 에너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복잡성은 만년전 농업이 시작되었을 때 그리고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진화는 한 가지로 설명된다.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는 방향으로 진화햇다는 말이다. “약 150년전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된 ‘세번째 사건(복잡성 수준의 폭발적 향상)의 촉발 인자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물론 식량자원이 아니라 에너지였다. 고대의 태양광말이다.”
문제는 그 속도다. “우리는 150년 남짓 되는 짧은 기간에 번개보다 빠르게 수십억년 동안 농축된 에너지를 뽑아냈다. 복잡한 경제 시스템을 창조하고 유지하려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는 그 에너지가 무한하다는 가정으로 작동해왔다. 만일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거나 감소한다면 우선 경제성장이 중지될 것이고 그 다음에 성장의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후 저자는 피크오일, 식량위기, 자원의 고갈 등에 대해 위에서 소개한 기하급수적 성장의 한계에 기초해 설명한다. 이책의 후반부에서 소개되는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논의들을 한권에서 단순한 이론에 기초해 일관된 설명을 한다는 것이 이책의 장점이며 매력이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