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자다 - 왕멍, 장자와 즐기다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이책은 장자 내편에 대한 주석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주석서와는 다른 구성을 보인다. 이 책의 구성은 장자 본문을 따라가면서 본문에 대한 코멘트를 더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코멘트는 김용옥을 떠올릴 정도로 상당히 장황하다. 김용옥을 닮은 것은 양만이 아니다. 내용도 그렇다. 표지를 보면 ‘왕멍, 장자와 즐기다’란 말이 있는데 광고문구로 적당히 붙인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저자는 장자라는 책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자라는 저자를 읽어내려 한다.

근대 이전에 성립된 주석서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제하고 문구 자체의 의미를 밝히는 형식을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석은 자구 대 자구로 본문이 한줄이면 그 아래 두줄로 축자적으로 붙이는 형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책 자체의 글자 하나 하나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장자라는 책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대만이나 본토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본문이 있고 그 다음에 백화 번역이 달린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냥 본문을 달아놓고 번역을 하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엄청난 의역을 한다. 그리고 나서 엄청난 길이로 ‘설’을 늘어놓는다. 게다가 본문을 전부 싣지도 않고 자신의 ‘설’로 연결이 되면 본문을 생략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장자라는 책 자체보다는 왜 장자가 이런 말을 했는가를 묻는다.

새로운 형식이다. 분명 이책의 체제는 내편 6편의 주석 형식이다. 그러나 그 형식과는 달리 이 책의 내용은 장자라는 책에 대한 전반적인 입문서에 가깝다.

그러면 저자가 읽어낸 장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저자가 읽어낸 장자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이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루루티아(ルルティア)의 음악이다.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면 아마도 일렉트로니카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일렉트로니카는 신디사이저가 보급된 1970년대에 성립했다. 지금은 공기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기에 간단하게 키보드라 불리는 신디사이저는 음악에 혁명을 일으킨다. 구체적으로는 바로크 음악의 부활이었다.

클래식이라 하면 구체적으로 하이든 이후의 고전파를 말한다. 고전파 이후의 음악은 고전파에 의해 정립된 작곡논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고전파 이전의 바로크 음악과 고전파 음악은 사운드 레이어의 구성법이 달랐다.

서양음악의 사운드 레이어는 4개로 이루어진다: 리드, 백그라운드, 레퍼런스, 패턴. 밴드 구성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리드는 멜로디 레이어로 보컬이나 기타 등의 멜로디 악기를 말한다. 백그라운드는 리드 레이어의 화음을 연주하는 레이어로 역시 기타나 피아노 등의 화음악기와 백코러스를 말한다. 레퍼런스는 토닉과 기준이 되는 레퍼런스 화음의 레이어로 베이스 기타를 말한다. 패턴은 드럼이나 신디사이저로 어택감이나 공간묘사를 담당한다.

고전파 음악에선 리드 레이어를 중심으로 일치된 진행을 만든다. 그러나 바로크 음악에선 4개의 레이어가 서로 독립된 진행라인을 갖는다. 그런 진행을 대위법이라 한다. 댄스뮤직으로 출발한 일렉트로니카는 바로크적 진행을 부활시킨다.

댄스홀에선 화음진행이 아니라 리듬이 중요하며 대위법적 진행이 더 어울린다. 결국 일렉트로니카에선 레퍼런스와 패턴 레이어의 진행을 음악의 중심으로 삼아 분위기와 리듬감을 강조하게 된다. 4개의 레이어가 일치된 협화음적 진행이 아닌 대위법적 진행을 갖는 바로크적 논리는 80년대 드림 팝, 노이즈 팝 90년대 트립합, 고딕 메탈의 혁신을 일으켰다.

멜로디 진행과 독립된 대위법적 진행으로 모호해진 공간과 사운드 윤곽은 불안정한 느낌을 만들어 앰비언트와 같이 꿈꾸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거나 스칸디나비아 메탈처럼 슬픔, 분노 등 부정적 정서의 배경을 만드는데 적합하다.

보통 루루티아의 음악를 '환상적이다' '신비감과 광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이런 인상은 바로크적 논리의 연출효과이다. 루루티아 음악의 의미는 곡의 분위기가 만드는 이미지이다. 루루티아의 음악에서 우선되는 것은 사운드가 만드는 '분위기'이며 분위기는 레이어의 대위법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바로크적 논리의 문제는 멜로디 라인이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댄스뮤직이면 모를까 아시아에선, 거의 멜로디만 듣는 아시아인들에겐 그런 음악은 호소력이 없다.

루루티아 음악의 특징은 바로 바로크와 고전파의 절충이다. 보컬이 아예 없거나 존재감이 약한 앰비언트나 스칸디나비아 메탈과 달리 보컬의 존재감이 강하고 멜로디가 아름다운 루루티아 음악의 정서는 보컬과 하위 레이어의 긴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루루티아 음악의 매력 역시 그 긴장관계에서 나온다.

작곡가가 아닌 보컬로서의 루루티아는 특이하다. 그녀는 숨을 내쉬고 바로 삼키듯, 맑고 가는 달콤한 음색으로 언제나 소곤거린다. 웅얼거리듯 소곤거리는 것은 지금, 여기의 사건보다는 여기가 아닌 과거에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데 적합하며 자기주장이 약하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라져간 것에 대한 아픔과 슬픔이며 깨질 것 같은 덧없는 아름다움이다. 그녀 음악의 신비감은 이러한 보컬의 정서에 하위 레이어의 윤곽이 불분명한 텍스쳐가 대비되어 만들어진 효과이다. 그러나 바로크적 텍스쳐가 만드는 분위기에 멜로디 라인의 통일성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은 그녀가 원용한 앰비언트나 스칸디나비아 메탈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 통일감은 환상이다.

루루티아 음악의 정서와 사운드는 스칸디나비아 메탈에 가깝다. 시끄럽다는 말이다. 메탈의 정서가 그렇듯 루루티아 음악의 배경은 탐욕과 위선, 광기, 잔인한 폭력의 세계이며 그런 세계에 대한 분노, 슬픔, 절망, 좌절을 표현한다.

보컬과 백그라운드 레이어는 세계에 대한 정서를 멜로디로 표현하고 부정적 세계는 레퍼런스와 패턴 레이어의 어두운 노이즈로 표현한다. 루루티아 음악의 의미는 레이어의 긴장관계에서 만들어진다. 문제는 세계에 대한 정서를 표현하는 멜로디 레이어, 즉 보컬이다.

루루티아는 속삭인다. 보통 팝에서 whisper라 말하는 것으로 보사 노바에 잘 어울리지만 하위 레이어가 두껍고 시끄러운 메탈에선 묻혀버리는 목소리이다.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해법은 프로듀싱이다. 바로크적 텍스쳐에 묻히지 않게 편집한다는 말이다. 라이브로 들을 수는 없는 음악, 그것이 루루티아의 음악이며 루루티아의 음악이 환상인 이유이다.

저자는 장자의 세계가 그와 같은 환상이라 본다.

장자의 첫편은 소요유이다. 논어의 학이편 1장이 그렇듯 중국 고전에서 처음에 오는 장은 그 책 전체를 규정한다. “장자가 주는 첫인상은 ‘소요’라는 두 글자로 함축할 수 있다. 장자는 일생동안 줄곧 소요에 이르는 길, 즉 인간 내면의 초탈과 해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소요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신 상태이자 개인이 사회와 집단의 관념적 구속에서 벗어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내면 정신세계의 자유와 독립을 의미한다. 이것은 근현대에 서양에서 들어온 개인주의 관념과는 차이가 있다. 후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중국의 소요는 사회와 집단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가치판단에 대한 주관적인 해방 또는 일시적인 망각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주관적인’ 해방과 ‘일시적인’ 망각이 장자가 지금까지 읽혀온 이유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해방과 망각은 아Q정신과 닮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살다보면 실패할 때도 있고, 패배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이유 없이 구박을 당하고 모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중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루쉰(魯迅)의 소설 『아Q정전』에 나오는 주인공 아Q는 그런 상황에서 매우 독특하게 대처한다. 시골에서 날품을 파는 아Q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주 멸시당하고 이유 없이 맞기도 한다. 현실에서 그는 늘 패배자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당한 멸시와 패배를 아주 간단한 방법을 통해 승리로 바꾸어 버리고, 마음의 평정을 회복한다. 아Q가 애용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하나는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이유 없이 자신을 때린 사람보다 자기가 훨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처럼 지체 놓은 사람이 하찮은 인간들을 상대해 무엇 하겠느냐고 생각한다. 무서워서 상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의 패배와 굴욕을 잊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앞의 방법과 반대로 자신을 완전히 낮추는 방법이다. 자신은 형편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모욕을 당하거나 그런 패배를 당할 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Q가 애용하는 세 번째 방법은 자신이 당한 패배와 모욕을 자기보다 약하고 못한 존재에게 전가시키는 방법이다. 강자에게 뺨 맞고 약자에게 분풀이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아Q가 늘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늘 즐겁고 낙천적인 것은 이처럼 현실의 패배와 굴욕을 그 나름의 조작법을 통해 정신적인 승리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Q는 늘 패배하지만 늘 승리자이다.” (이욱연)

장자는 어렵다. 그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배운 사람 그것도 엄청나게 배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2천년이 넘도록 읽혀온 이유는 장자가 정신승리법을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선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사람들, 특히 글 읽는 지식인들은 장자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거대함과 웅대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신승리법의 최고봉이 아닌가. 정신적인 승리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렇게 확실하고 영원한 승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춘추전국시대부터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 쓰이지 못하면 한평생 허송세월하고 어저다 운이 좋아 높은 벼슬에 앉는다 해도 느닷없이 재앙이 닥쳐 하루아핌에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곤 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여러 차례 남에게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큰 뜻은 품었으나 재주가 변변찮고 운이 없는 탓에 가난과 실의에 빠져 시름겨운 한세상을 살다 가기도 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온전히 정신적이고 완벽하게 무조건적인 승리조차 얻을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장자가 기재이고 독특한 논리로 훌륭한 글을 썼다 해도 그의 글을 읽다보면 ‘아Q 정신’이 응집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울 것은 없는 말이다. 중국혁명 직후 장자는 철저하게 부정당했다. 중체서용이니 떠들며 너희가 힘은 셀지 몰라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더 고귀하는 식으로 현실의 패배, 정신의 승리를 말하며 중국을 말아먹은 아큐정신의 궁극이라는 논리였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논리가 살아남지는 않았다. 눈 감고 아옹하는 아Q가 되기에 장자는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이었고 현실을 비참할 정도로 철저하게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장자가 보았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가?

“노담의 제자 백구가 제나라에 도착하자 형벌을 받아 기시된 시체를 보았다. 시체를 밀어 바로 누이고 조복을 벗어 덮어주엇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곡하며 말했다.

오 그대여! 천하에는 피살자가 많은데 그대가 먼저 당했구려! 말끝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하지만 영욕으로 핍박하니 이런 병통이 나타났고 재화가 한곳으로 모이니 이런 쟁투가 나타났다. 지금은 사람을 몰아 세워 병들게 하고 사람을 모아 싸우게 하고 사람의 몸을 곤궁하게 하여 한시도 쉬지 못하게 하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재물을 위해 간계를 부리고 지혜롭지 못하면 어리석다 하고 어려운 일을 시키고 감내하지 못하면 죄를 주고 무거운 임무를 맡기고 다하지 못하면 벌을 주고 먼 길을 가게 하고 이르지 못하면 죽인다. 그러므로 부득이 민(民)은 지혜와 힘을 다해 꾀로 죄를 모면하려 한다. 무릇 힘이 부치면 꾀를 쓰고 지혜가 부족하면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도둑이 횡행하는 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옳은가?” (장자 잡편 칙양)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제자백가 모두가 물었던 질문이다. 제자백가의 아버지라 해야 할 공자는 성인의 질서로 돌아가자(복례 復禮)를 말하면 지배층의 질서를 바로잡아 천하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논어 미자편의 5장에서 7장까지 나오는 은자들은 공자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탁한 물이 도처에 도도하게 범람하는데 누가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나쁜 사람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세상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란 은자들의 조롱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햇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른과 어린이의 질서를 폐기할 수 없는데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어떻게 폐기할 수 있겠는가? 자기 한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사회관계를 파괴한 것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도의가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다.” (리쩌허우의 해석)

공자와 은자들의 차이는 세상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엿다. “새나 짐승과 함께 살 수 없지 않느냐? 사람의 무리가 아니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 천하가 태평하다면 내가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에서 공자 자신이 항상 말한 사람에 대한 사랑 또는 사람다움이란 뜻인 인(仁)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나 은자들은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는 사회의 근간인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주와 신하는 오늘날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직무상의 관계이고 그 원칙은 의(義), 즉 공평하고 정직하며 공적인 일을 받들고 법을 지키며 편을 들어 사사로움을 도모하지 않으며 윗사람을 속이거나 아랫사람을 억누르지 안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구별이 있다는 것은 가정 중심의 가치관이다. 사랑에 그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서 피차에 언제나 돕고 이끌어주며 관용하고 양해하며 어른을 높이고 어린이를 어루만져주는 것” (리쩌허우) 공자가 하려한 것은 그런 당연한 도리가 천하에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와 그를 조롱한 은자들이 살던 시대는 그것이 당연할 수 없는 시대엿고 시대가 그렇다는데 공자와 은자들은 이견이 없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자신을 조롱하는 은자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은자들은 그런 공자를 조롱하며 공자가 되돌아가자는 성인의 질서(예)를 조롱했다. 그 은자들은 도가 계열의 선구였을 것이다.

그 은자들의 맥을 잇는 노자는 전쟁과 살육, 착취와 억압은 권력의 본성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권력이란 것 자체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노자는 사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부정하지 않았다. 입신출세를 철저하게 부정한 것은 장자가 처음일 것이다.” 치국의 도를 말하던 제자백가와 달리 장자는 “완전히 상반된 길의 극단에 있었다. 그는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을 모조리 부정했다. 왕후와 귀족을 부정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논쟁하는 것 자체도 부정했다. 그가 자기 자신과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모델로 삼은 것은 왕후도 제자백가도 아니요 곤이나 붕새, 이백이나 베토벤 같은 천재도 아니었다. 바로 작디작은 뱁새와 두더지였다. 천재형 지식인들이 정신적 우월감을 느끼며 세상을 업신여기고 잘난 척했다면 장자는 자신에 대한 기준을 보이지도 않을만큼 낮춰서 뱁새와 두더지 같은 마음으로 세속의 명리와 권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소요와 자유를 추구했다. 그는 밖에서부터 먼저 출발하지 않고 내부에서 먼저 모든 명리를 부정하고 세속에서 멀리 떨어져 화를 피하고 근심을 멀리했다. 세속에서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얻기 위해 추구하는 모든 수단을 멀리했다. ‘자기 자신’의 편안함과 자유로움, 만족감, 다른 사물과 환경에 대한 무관심 외에는 그 어떤 감정도 인정하지 않았다. 장자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한 것은 자기 앞에 놓인 현실에 대한 무력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자의 소요는 절망이다.

공자가 천하를 유세한 것은, 도를 다시 세우려 한 것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장자를 읽어보면 장자는 유가계열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공문에서 장자는 출중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의 글에 엿보이는 “강한 자신감, 강한 자부심, 강한 사명감”은 천하를 논하는 유가 선비의 태도이다. 주자를 비롯한 송유들은 노자는 싫어해도 장자는 좋아했다. 자신들과 뿌리가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왔을 때 천하는 무도(無道)했고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엔 자살과 모험, 정신적 해탈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막다른 길에 몰리면 사람은 위험한 모험을 하든가 자신의 지혜를 숨기고 어수룩한 것처럼 핻동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편 전체를 통해 장자가 바라보는 공자에 대한 시선은 따뜻하다. 그러나 공자의 주장에 대해선 냉정하다. 공자의 논리에 대한 장자의 비판은 “결코 추상적인 부정이 아니라 그것이 당시의 시대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이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비극적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결과를 분명히 알 수 있는 형국에서 한발 물러설 줄 모르니” (왕보) 지혜라 할 수 없다.

흔히 불난 집의 비유를 들어 공자와 장자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웃에 불이 났으면 물 한 통 가져다 뿌린다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자는 마땅히 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도리니까. 그러나 장자는 그것은 의(義)도 인(仁)도 아니라 말한다. 그것은 동정일 뿐이며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것이다. 장자라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냥 앉아 있겠다고 말한다. 장자는 냉정하다. 이 차가움을 장자는 ‘무정(無情)’이라 말한다. 대붕이 되어 소요하는 것은 무정해야만 할 수 있다.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인간세의 자잘함은 보이지 않을 때 소요는 가능하다.

무정을 말할 때 친구 혜시는 정(고대 중국에서 정은 감정을 말한다)이 없는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논박한다. 혜시가 옳다.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물 한 통 뿌리는 수고도 하지 않는 사람은 인(仁)하지 않다. 인(仁)은 손익계산이 아니라 사람이면 마땅히 느끼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자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인(仁)할 수 있고 한 것은 그것을 말한다. 장자는 공자의 말을 잘 알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仁)해서는 천하의 불을 끌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을 끄려는 마음 자체를 없애야 한다. 사람이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정이란 말은 소요란 말은 철저한 절망의 표현이다.

언뜻 장자의 소요, 좌망, 무정 등은 불교의 해탈, 무욕, 무아 등과 닮았다. 실제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왔을 때 중국인들은 장자의 개념을 빌려 불교를 이해하고 불경을 번역했다. 그리고 선불교는 도가식으로 불교를 이해한 결과였다.

그러나 장자의 소요를 불교의 열반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의문이다.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장자의 논리에 자기모순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다투지 않고 논쟁하지 않을 것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논쟁하고 다투었고 한편으로는 마른 고목 같은 몸과 식은 재 같은 마음으로 홀로 앉아 세상의 모든 외물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좌망(坐忘)’을 주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모든 걸 꿰뚫을 듯 날카로운 기세와 현란한 언변, 웅대한 기백을 과시하며 자신을 드러내 자랑했다. 이런 글이 마른 고목 같은 몸과 식은 재 같은 마음에서 나왔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자기과시욕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고 열정으로 잔뜩 격앙된 상태라야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장자는 세속을 거부하고 거듭 반복해서 초월하고 또 초월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들에0서 수신제가평천하라는 이상을 하찮은 것으로 조롱하고 비웃었고 입신출세하려는 이상을 부정했다. 그랬던 장자가 왜 뒤에서는 ‘응제왕’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제왕과 유토피아에 대해 논했단 말인가? 그의 논리대로라면 비(非) 제왕과 무(無) 제왕을 쓰든가 최소한 망(忘)제왕을 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결국 장자의 소요란 자발적인 은퇴가 아닌 강제된 유배였다. 유배된 장자가 쓴 글을 저자는 ‘처연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천하 속에서 천하를 떠나는 장자의 글은 ‘사변적 기능보다 심미적 기능이 훨씬 강하다. 이것은 철학이 괴로운 처지에 빠진 인간을 위해 찾아낸 아름잡지만 힘없고 속이 텅 비어 있는 열매와도 같다.” 장자의 글은 “훌륭하지만 읽는 이를 탄식하게 하고 감탄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씁슬한 건 어쩔 수가 없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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