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 읽는 CEO - 나를 바꾸는 창조적 파괴 읽는CEO 인물평전편 3
아키야마 슌 지음, 박화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 전국시대의 세 영웅이다. 이들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로 ‘울지 않는 두견새’를 흔히 말한다: 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든다, 히데요시.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이에야스. 이 이야기에서 새를 일본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오다 노부나가란 사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노부나가는 말수가 적었다. 노부나가가 내뱉은 말이라고는 고작 ‘그러한가’ 또는 ‘하는 수 없군’이 전부엿다고 한다. 물론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암울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행동을 분석하다 보면 마치 심연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혼란스러워진다. 노부나가의 목표와 의도, 행동의 동기와 이유, 계획과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의 행동을 지탱하는 삶의 원리와 방법, 원칙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노부나가는 살아있을 때도 죽은 후에도 이해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천재이기 때문이라 흔히 말해진다. 천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 자신이 보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을 천재는 견디지 못한다.

노부나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신들을 불신하고 경멸햇다. 노부나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역시 그에 못지 않았다. 노부나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려워 하거나 멍청이라 치부하는 둘 중 하나엿다. 어린 시절 그의 별명은 ‘오와리의 멍청이’였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부나가는 밝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해받지 못했기에 그는 말이 없을 수 밖에 없엇다.

그러나 저자는 노부나가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히데요시의 매력이 현실성에 있다면 노부나가의 매력은 비현실성에 있다. 그에게는 본보기가 없었다. 그의 비현실성을 이상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는 없다. 이상은 항상 현실과 타협한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한다.”

또다른 천재였던 나폴레옹은 천재를 이렇게 정의한다. “전술을 짤 때에는 모든 기회를 잘 계산해야 한다. 우연조차도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고려해야 한다. 결코 실수해서는 안도니다. 소수점 이하의 작은 차이로도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천재는 객관적 판단력과 빠른 두뇌 회전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창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객관적 판단과 빠른 두뇌회전력이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임기응변 능력이 단연 으뜸인 까닭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임기응변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통사람에게 신기해 보이는 우연도 천재에게는 현실일 뿐이다.”

저자는 노부나가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었다고 그 능력이 노부나가의 비현실성이었다고 말한다.

나폴레옹처럼 노부나가의 전술은 새로웠고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기에 아버지의 가신들은 그를 불신했다. 아버지의 사후 가신들이 노부나가 대신 그의 동생을 옹립하려 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 가신들과 10여년간 내전을 치루어야 했다.

“’이리저리 머리 굴리는 자는 필요없다. 이유 불문하고 오직 나를 믿는 자만 내 뒤를 따르라!’ 선두를 달리는 노부나가만이 상징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고 따라올 병사들을 조직하고 훈련했다. 인간은 힘을 얻기 위해 일족이나 주변 인물을 포섭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을 적대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반감시켯다. 다시 말해 자신을 깍아내린 것이다. 노부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힘을 철저하게 부정햇다. 나폴레옹은 힘이 곧 진실이라 했다. 노부나가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가진 본연의 힘을 되찾으려 애썼다.”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도 믿지도 않을 사람들을 끌어안아 봐야 그것을 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믿을 사람들만으로 조직을 꾸렸다. “노부나가는 자기 삶의 원리를 부정하거나 모욕하는 자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설사 피를 나눈 형제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엇다. 이것이 노부나가 삶의 신조엿다.” 집안싸움을 하던 시절 그의 병력은 고작 700명이었다. 가신들이 가진 병력보다도 턱 없이 작앗다. 그러나 그는 그 병력으로도 언제나 이겼다. “나중에 노부나가의 병사들에게 그의 말은 절대적인 것이 된다. 한 인간의 말이 이렇게 절대적인 힘을 지닌 예를 노부나가 외에는 찾아볼 수없다 노부나가의 촌철살인하는 한마디는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이는 그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병사 700~800명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노부나가는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관철시켰고 병사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그의 말이 곧 법임을 가슴 깊이 새겼다.”

노부나가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행동과 결과엿다. 그는 항상 선봉에 서서 돌격했고 말을 하느니 행동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는 승리라는 결과로 자신을 증명했다. 저자는 그런 노부나가를 ‘강직함’이란 말로 정리한다. “강직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위엄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눈빛으로 나폴레옹의 강직함을 느꼈으며 노부나가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강직함만이 인간의 정신을 이끌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노부나가는 강했다.”

노부나가와 같은 사람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그와 같은 사람은 적어도 일본사에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노부나가가 살았던 시대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본다. “센고쿠 시대의 일본인은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요컨대 개개인이 힘과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뮈든 도전하고 실험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모형 또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가공할 에너지가 분출된 시대기도 하다. 사람들은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당시 일본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전이므로 본보기로 삼을 견본이 없었다. 고바야시 히데오는 센고쿠 시대를 일컬어 ‘문명의 대경험’이라고 했다. 일본의 문명은 센고쿠 시대를 겪으며 밑바닥부터 개조되었다. 그 누구도 미래를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었으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식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였다.”

저자가 노부나가와 비교하는 나폴레옹 역시 그런 시대의 자식이다. 그런 시대였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천재가 나타날 수 있었고 울지 않는 새는 죽이고 우는 새로 바꿀 수 있엇다. 노부나가가 울게 하려던 새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울지 않았고 노부나가는 그 일본을 죽이고 새로운 일본을 창조했다. 저자는 노부나가가 일본을 창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천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

“신겐은 가문을 소중히 여겼다. 그는 ‘사람은 돌담, 사람은 성’이라는 말을 남몄다. 이는 그의 가치관을 잘 반영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과 자신을 중십ㅁ으로 한 국토의 번영과 영토 확대를 위해 전쟁을 치렀다. 즉 그의 전쟁원리는 일족의 번영과 확대에 있었다.

이와 달리 노부나가는 계속해서 본거지를 새로운 곳으로 옮겼다. 이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과 자기 가문을 부정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천하’ 또는 ‘천하포무’라는 사상은 자기 가문을 부정하는데서 출발한다. 이와 달리 신겐에게는 가문을 부정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가 과연 천하포무의 뜻을 품었을지 의심스럽다. 그들은 주변의 작은 분국을 흡수하여 자기 영토를 넓히는데 혈안이었다. 그들에게는 천하라는 개념이 없었다ㅓ. 설사 그들의 손에 천하를 쥐어준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을 것이다. 천하를 대상으로 자아를 확대,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센고쿠 시대를 이끌어갈 참신한 사상이며 현실적인 이념이지만 굳이 모든 것을 걸면서까지 천하를 향해 질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노부나가는 전쟁의 천재였다. 그러나 센코쿠 시대에 그만 전쟁의 천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노부나가처럼 천하를, 일본을 무대로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 그들이 노부나가에게 이길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라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노부나가의 군대는 노부나가의 ‘천하’라는 비전에 이끌렸기에 천하제일의 군대가 될 수 있었지만 노부나가의 경쟁자들은 단지 자신의 가문을 위한다는 것 이상을 제시하지 않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센코쿠 시대의 해방자였다. 천하포무는 정의와 불의의 관념을 타파하는데서 시작된다. 노부나가는 기묘한 원석을 자기 내부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반노부나가 동맹군은 특권을 유지 강화하려는 자와 빼앗긴 특구너을 회복하려는 자, 신흥세력으로 부상하려는 자 등 서로 목적이 다른 무리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구심점은 물론이고 어떠한 이상도 없었다. 이와 달리 노부나가군에게는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노부나가라는 하나의 이상이 존재했으며 이것이 통일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시대의 해방자가 되려는 노부나가를 히데요시는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노부나가 군의 대다수가 그렇듯 “히데요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의 전통적 질서와 계층을 무시한 노부나가라는 자기장이 있었ㅎ기 때문이다. 노부나가라는 자기장이야말로 홀로 앞장서서 새롭게 개척하려는 세계이며 그를 중심으로 확대되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영역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자기장은 노부나가 독재 아래 있는 일종의 공화제라는 느낌을 준다. 즉 천하포무는 노부나가라는 자기장의 천하제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자기장은 노부나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다. 노부나가의 후계자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를 대신해 그 자기장의 중심이 될 수 없었다. “노부나가 덕분에 한낱 하급무사 출신에 불과했던 자신이 자유를 얻어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으므로 히데요시도 노부나가만큼은 진심을 다해 섬겼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군에 들어가면 자기도 해방되어 좀 더 새로운 힘을 발휘할 수 잇다고 생각했다. 이에야스 시대에 넓은 소유지를 확보한 다이묘 대부분이 노부나가 밑에서 입신양명의 뜻을 이룬 자들이다. 그들의 으뜸이었던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후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자로서의 노부나가와 계승자로서의 히데요시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다. 노부나가는 산업, 교통, 유통, 무역의 진흥과 정신세계의 자유를 목표로 일관된 정책을 펼쳤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부나가의 머릿속에 새롭고 바람직한 일본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있다. 그것은 하나의 이상이다. 이것을 실현하려고 노부나가는 끊임없이 노력햇다. 그가 말하는 천하포무는 단순한 천하통일이 아니라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상없이는 천하통일도 무의미하다. 이는 훗날 모모하고 터무니없는 조선출병을 단행한 히데요시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히데요시에게는 정복원리와 해방에 대한 어떤 이상과 기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노부나가의 운명이었다. “노부나가에게는 전쟁과 평화라는 개념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오로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앞장섰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전쟁이 불가피했으며 때로는 평화를 유지해야 했다. 노부나가의 전쟁은 가문을 번영시키거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전쟁은 천하포무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일국을 넘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쇼군이 되어 일본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명예심을 과시하려는 것도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기가 열어갈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 그뜻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노부나가는 전쟁으로 변화를 추구했으며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매진했다. 이는 자아의 현실과 시대의 현실, 즉 현재를 철저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노부나가가 꿈꾸는 천하포무였다. 그의 정신세계에서 현재는 항상 새롭게 창조되었다. 노부나가는 천하의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해 곧바로 질주했다.”

그러나 히데요시를 포함한 그의 부하들은 현실적인 인간이었다. 노부나가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비현실성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노부나가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개방하고 보편화하려는 의도를 바탕으로 무명장수를 등용하고 이제 막 이렁서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마쓰나가 히사히데에에게 손을 내밀었다. ‘노부나가처럼만 하면 된다는 말이지?’하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노부나가만큼 따라가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도 없다. 실제로 노부나가를 따라가려다 보면 또 하나의 노부나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부나가를 거울로 삼아 자기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다시 말해 노부나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자아상을 찾아내고 그것에서 노부나가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노부나가가 선두에 서서 미노를 공략할 때까지만 노부나가와 추종자들은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노부나가에게 맡겼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눈앞에는 천하라는 광대한 무대가 펼쳐졌다. 천하라는 관념은 노부나가의 견해와 대략 일치하므로 각자 원하는 자아상을 노부나가라는 거울에 비춘다. 그런데 이를 통해 노부나가의 그림자를 지우기 시작하여 결국 그와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골은 점점 깊어진다. 이 무렵부터 노부나가는 독재자의 기질을 드러냈다. 그는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적들은 경멸하고 자기를 추종하는 아군은 신뢰했다. 그런데 아군이라도 자기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노부나가를 대신하여 새로운 정신세계를 접하고 날카로운 투시력과 성찰력을 발휘할 부하가 없었으므로 그는 스스로 독려하며 모든 것을 직접 부딪쳐 깨달음을 얻어야 햇다. 노부나가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 사이에 침범하기 어려운 고독의 영역이 발생하고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팽이같이 혼자서 빠르게 돌아가는 인간 주변에는 고독의 영역이 필연적으로 형성되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인들이야 천하포무라는 노부나가의 구상을 익히 알고 잇으나 당시 사람들에게 노부나가의 싸움은 목적도 끝도 없는 전쟁으로 보엿다.” 그것은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좋아하여 복고왕정과 자유주의자들에게 ‘코르시카의 식인귀’란 공격을 받았다. 탈레랑은 나폴레옹이 전쟁의 천재임은 인정하나 정치가나 외교가로서는 낙제생이라고 비평했다. 또 그는 잇달아 승전보를 터뜨리는 나폴레옹에게 진지하게 충고햇다. ‘승전국은 패전국에게 관대한 손길을 보내고 동맹세력의 일원으로 만들어 되풀이되는 패배로 상실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햐 한다.’ 이러한 정책을 실시한 대표적인 인물이 히데요시다. 그러나 노부나가와 나폴레옹은 이 같은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로서는 근접하기 어려운 뭔가 다른 계산이 있었다. 융통성 있는 히데요시의 방식이 천하를 통일하기 쉬운 것은 사실이나 노부나가가 이루려던 천하포무와 차이가 있다. 노부나가는 밑바닥부터 현실을 변화시켜 세상을 새롭게하고자 했다. 고바야시 히데오의 ‘고흐의 편지’에서 인용해보자.

‘고흐의 머릿속은 무한성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며 자기만의 새로운 양식을 얻으려는 노력으로 늘 복잡했다.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성향이었던 모양이다. 잠깐의 휴식도 잠도 허락하지 않고 뭐라 이름을 부여하기 어려운 힘이 그를 지배하며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

노부나가의 전쟁은 무한성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며 양식을 얻으려는 노력, 또는 전쟁과 정치의 이음매다. 여기서 양식은 전쟁의 스타일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양식, 평범한 인간의 양식을 탐구하려 했던 것이다. 이 무렵부터 노부나가와 가신들 사이에 미세한 단절이 생긱기 시작했다.

그의 목적은 체제변혁이었다. 그는 현실을 깊이 파헤쳐 요소들로 분해한 뒤 이를 변화시켜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려 했다. 새로운 형태가 어떤 것인지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은 노부나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부나가에게 자신의 시책을 나폴레옹이나 메이지 신정부의 시책과 대조해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는 누구도 본보기로 삼지 않았다. 끊임없이 현실을 파헤쳐 새로운 현실의 형태를 끌어내려고 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려고 했으므로 그야말로 독창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있다. 그래서 부하들은 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생 오십년
천하에 비한다면
덧없는 꿈과 같은 것
한 번 태어나서
죽지 않는 자 그 누구인가

노부나가가 부르던 노래이다. 이해받지 못한 주군에 대한 모반이 끊이질 않았다. 자신이 부르던 노래의 50세를 채우지 못한 49세에 노부나가는 총애하던 부하 미쓰히데의 손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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