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전쟁 - 세계 경제를 장악한 월스트리트 신화의 진실과 음모
펠릭스 로하틴 지음, 이민주 옮김 / 토네이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출판사가 좋은 책을 망쳐놓은 경우이다. 이책의 내용은 책 표지에 도배된 음모론 문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책은 음모보다는 월스트리트 금융사의 자료로 훌륭하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네트웤 덕분에 놀랄 정도로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글로벌 시스템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비밀스런 대화와 은밀한 만남을 충분히 관찰해온 나는 여기에 음모가 도사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엇다. 실제로 이들 엘리트들은 서로의 의견차에 고통을 받으며 대부분의 음모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좌절한다. 세계지배에 대한 오래된 환상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다.

유대인인 나는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의 음모’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렇게 된다면 유대인 숫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세계지배기관의 내부조직에서 괜찮은 자리를 하나 얻을 가능성이 꽤나 높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음모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그 음모에 참여할 경우 비밀을 지키지 못할 것같아서 혹은 뉴저지 출신이어서 특별히 차별을 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까ㅓ지 나는 과거 수천년에 걸친 유대 역사의 주요 사건들, 예컨대 추방과 이단자 탄압, 나치의 대학살, 적들로 둘러싸인 사막에서의 국가 건국, 그리고 잔인한 증오와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그 많은 사건들의 주도자가-희생자가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주장에 항상 놀란다. 유대인이 절말로 그런 음모를 주도했다면 그들은 분명 모든 면에서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로스코프)

‘슈퍼클래스’의 저자는 잇는 것은 음모가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는 엘리트의 엘리트, 슈퍼클래스가 있고 그들은 집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증대하는 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엘리트간의 이해충돌과 의견충돌은 엄연한 사실이며 음모론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한다.

반세기 이상을 월스트리트에서 보낸 이책의 저자는 비즈니스 엘리트들의 네트웤의 중심에 있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에도 연결이 되었다. 이책에는 수많은 거물 경영자들과 정치인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ITT 회장이었던 제닌,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한 스티브 로스, GE의 잭 웰치, 등과 같은 거물 비즈니스맨은 물론 뉴욕시장, 뉴욕 주지사, 닉슨 대통령, 여러 의원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책의 저자는 많은 월스트리트의 엘리트들이 그랬듯 비즈니스와 정치의 경계를 넘나든다. 뉴욕시의 공직을 맡기도 하고 프랑스대사를 지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유대인 금융가인 저자는 음모의 참여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책에는 그런 음모론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 그런 음모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책은 원제인 dealings가 말하듯, 월스트리트 투자은행가가 자신이 해왔던 거래에 대한 회고록일 뿐이다. 여기엔 어떤 음모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지 투자은행가의 비즈니스 현장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가치가 있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월스트리트라면 떠올리는 말이다. '월스트리트'란 영화에서 고든 게코가 한 이말은 우리가 월스트리트라면 떠올리는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실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는 정말 탐욕이 좋은 것인가란 의문을 던지게 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가 원래부터 그런 곳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책의 저자가 처음 투자은행에 들어가 자신의 경력을 쌓던 시절에는 그랫다.

저자는 거의 평생을 라자드 투자은행에서 보냈다. 저자는 처음 입사했을 때 사소한 사고를 친다. 저자가 라자드에 들어간 것은 아버지와 회사의 대표인 마이어와의 인맥 때문이었다. 그러나 물정 모르는 젊은 저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마이어 씨는 사무실에 선 채 처음으로 그와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그의 질문 속에 담긴 비난을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견습으로) 2개월 동안 근무한 후 (정식사원이 되어) 주급이 50달러로 인상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에게 감사의 편지를 쓸 생각조차 못했다. 이는 '가족'의 일원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마이어 씨의 배려로 채용되었든 아니든 '가족'의 일원이 된 이상 가족답게 행동해야 했다는 말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가족'이란 말은 말 그대로엿다. 당시 투자은행들은 주주들의 것이 아닌 파트너들의 공동소유였고 이익이 나면 가족기업처럼 나누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관계는 내부만 아니라 외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이어는 라자드를 가족중심체제의 기업체로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다른 투자은행들처럼 라자드는 여러 세대를 거쳐온 특정한 가족중심체제의 기업들과 오랜 개인적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리먼브러더스와 군로브, 딜리온리드 그리고 골드만삭스처럼 라자드 역시 유대계 기업으로 인식되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건실한 고객관계를 구축했으며 모건스탠리, 이스트만 딜론같은 비 유대계는 그들대로 그들만의 관계를 구축했다." 당시의 투자은행은 J P 모건이 살아있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High finance란 말이 쓰이던 그 시절의 은행업은 광고가 필요 없었다. 물론 소도시의 작은 은행들은 지금 우리가 아는 은행들처럼 지점을 내고 크게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했다.

그러나 모건과 같은 거물들에게 그런 것은 잔챙이들의 코묻은 돈을 만지는 하찮은 일이며 자신과 같은 ‘고귀한(high)’ 은행가가 할 일이 아니었다.

‘고귀한’ 은행가가 할 일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귀한 거물들의 돈을 굴려주는 것이었다. 론 처노는 그런 금융귀족들의 영업방식을 관계형 거래라 부른다.

모건 시절의 고급금융이 몰락한 전후에도 그런 관계형 거래는 살아있었다. 투자은행 자체도 투자은행의 고객도 같은 올드보이 클럽에 속했기에 말 그대로 ‘가족’같은 분위기였다.

“마이어씨는 이 회사의 문화를 구축했다. 그는 이 회사의 투자은행가들에게 라자드가 활동의 양보다 질을 추구하며 우리가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사라는 믿음을 주입햇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어의 시절 라자드에서 "리스크란 리스크를 만들지 않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보수적 은행가인 신사들의 시절은 끝나가고 있엇다. 론 처노는 모건이 살아와 지금의 월스트리트를 걷는다면 뭐라고 할까 상상해본다. 모건이 살아있을 때보다 분명 지금의 월스트리트는 더 화려하고 커졌다. 그러나 모건과 같은 거인이 살았을 때 월 스트리트는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다고 론 처노는 말한다. 모건이 살아 온다면 눈살을 찌푸릴 것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가 화려하고 거대해진 것은 모건과 같은 거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말한다.

월스트리트가 100년을 사이로 허우대만 멀쩡해진 것은 대공황을 전후해 금융의 지배가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며 금융의 몰락을 보통 금융교과서들은 탈중개화로 설명한다. 은행업은 자금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것이다. 은행의 힘은 공급자와 소비자의 힘이 커지면 작아진다. 대공황 이전 강세장은 공급자들, 즉 개미들의 자금이 풍부해지고 잇다는 전조였다. 그리고 그 이후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기업들의 힘이 막강해졌고 2차대전 이후 대중의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들의 자금도 풍부해졌다.

저자가 은행업에 입문한 시절은 바로 탈중개화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거래 상대방보다 은행의 힘이 약해져 간 것이다. 그리고 은행의 약화는 은행의 모습을 바꾸어갔다. 더 이상 신사들의 여유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변화의 촉매는 1970년에 일어났다. 저자는 당시 뉴욕증권거래소의 이사로서 그 중심에 있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하나둘 파산상태에 들어갔고 저자는 라자드와 뉴욕 투자은행가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뉴욕증권거래소의 이사로서 은행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 3년을 분투한다.

저자가 월스트리트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때 이후로 투자은행의 모습은 변한다. 라자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객들이 거대해지고 자본시장에 직접 참여하면서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거래를 잃어갔다. 그리고 증권거래의 수수료도 얄팍해지면서 은행들은 사면초가에 빠진다. 대안은 마찬가지로 거대해지는 것이었다. 올드보이 클럽 같은 목가적 분위기의 파트너십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았다. 이제 은행도 시장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싸구려 용병이 되어야 햇다. 신사의 시대는 끝났다.

“라자드는 성장했다. 1970년대 말에는 30명의 파트너와 250명의 직원들이 근무했다. 그리고 20년 후가 되면 이 회사는 1,000여명의 직원과 69명의 경영이사들이 일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원들이 저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회사가 어떤 속도로 흘러가는 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라자드에서 내가 그렇게 할 수 잇는 날들은 끝났다.

또 한가지 문제는 회사가 내가 거의 열정을 느끼지 않는 분야로 과감하게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이어의 후임인) 마이클은 거대 시장 참여가 우리의 성공적인 인수합병 비즈니스와 비교적 많지 않은 우리의 증권인수능력을 보완하는 데 필요하다고 믿었다. 라자드가 추가적인 트레이딩 기능을 갖춰야 하는지 논의햇던 경영이사 회의에서 나는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무시되었다. 조만간 수익성이 있고 위험성이 낮으며 자본 집약적이지 않은 자문사업이 위험성이 높고 자본집약적인 트레이딩 활동을 보조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차대조표상의 이런 불일치가 회사 내의 긴장감을 유발하게 만들 것이다.”

마이어는 라자드를 작고 가족적인 회사로 유지하려 애를 썼다. 그 시절에 투자은행업에 뛰어든 저자는 자신의 일을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전달하고 주주들에게 수익을 주는 것을 돕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몇십년이 지난 지금 안정된 금융의 원칙은 걷잡을 수 없는 탐욕에 짓밟혔다. (투자은행업의 주업무 중 하나인) 합병은 단순한 딜일 뿐인 추상적인 금융거래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가동 중인’ 기업들이 하는 일이나 제조한 물건 혹은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벌어질 일과는 거의 무관하다. 수천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기업들이 도산할 때 그 지역이 붕괴되는 것은 딜을 성사시키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의 사람이 과 과정에서 얻게 되는 놀라운 부가 전부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기업 문화가 형성되는 것을 목격했다. RJR-나비스코의 합병이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커다란 딜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직원들과 해당 지역에 미치는 결과들은 대부분 무시되었다. 높은 레버리지의 투기시대엿다. LBO와 정크본드들 말이다. 은행가들은 기업을 휘젓는 것과 달리 투자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그때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직접적으로 이끌어낸 관행과 마음가짐, 세상을 바라보고 시장을 조종하는 방식들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리먼을 파산으로 몰고 간 투기적인 도구인 모기지 기반 금융 파생상품의 번들이 정그본드의 사생아였다. 성공적인 LBO가 진행되는 동안 경영자들이 챙겼던 막대한 보수가 오늘날 거대한 월스트리트 보너스의 선구자엿다.”

이책은 저자가 라자드에 처음 입사했던 40년대 후반부터 저자가 프랑스대사로 라자드를 떠난 90년대 후반, 그리고 리먼브러더스에서 일한 2000년대 후반, 그리고 리먼브러더스에서 나와 다시 라자드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50여년을 포괄한다.

그 긴 시간 전체가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월스트리트에서 자신이 반세기를 보내며 겪은 일들의 무용담을 말한다.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노력할 것입니다.” 광고사에 언제나 언급되는 에이비스의 광고이다. 이책의 저자가 맺은 빅딜의 첫머리에 오는 인수합병건이었다. 에이비스를 시작으로 이책에선 60년대 인수합병 열풍의 선두엿던 ITT의 인수합병들을 말하고 RJR 나비스코, GE의 RCA(NBC의 모회사)인수, 마쓰시타의 MCA 인수 등이 말해진다.

저자는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면서 투자은행가가 어떻게 딜을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어떻게 거래기회를 만나고 사람들과 신뢰를 쌓으며 협상을 어떻게 했는가 등 거래의 현장을 그려준다.

저자가 이책에서 소개하는 딜들은 경영사에 기록되는 큰 건들이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책이 큰 가치를 갖기에 부족하다.

월스트리트에서 거물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저자의 경력은 금융에만 머물지 않았다. 경제의 혈관이랄 수 있는 금융은 정치와 연관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일에 종사하면서 공공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그렇기에 나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는 금융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책에서 저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70년의 금융위기와 75년 파산 직전까지 갔던 뉴욕시 재정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위원회를 조직하고 위기를 타개할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을 실행해 하루 하루를 넘기기 위해 어떻게 고군분투했는가가 잘 그려진다.

경영사에 남는 빅딜들과 금융사에 남는 큰 사건의 인사이더의 기록이기에 이책은 처음에 언급했듯이 월스트리트 역사의 좋은 자료이다. 이책은 누구나 읽을 책은 아니다. 금융사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금융과 금융사에 대한 나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경지식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권할만한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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