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탄생 - 제국은 어떻게 태어나고 지배하며 몰락하는가
피터 터친 지음, 윤길순 엮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책은 번역서의 제목이 저자가 직접 붙인 제목보다 좋은 경우이다. '전쟁 그리고 평화 그리고 전쟁'이란 원제는 책을 읽다보면 의미가 드러나지만 책을 읽지도 않은 사람에겐 의미가 불명이다. 한때 ~~ 시대란 제목이 유행한 것처럼 xx의 탄생이란 제목이 쏟아지지만 '제국의 탄생'이란 번역 제목은 책의 내용을 잘 알려준다. 탄생과 몰락 또는 제국의 일생이란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역사 상의 제국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몰락하는가를 다루는 이책의 제목으로 적당하다.

제국에 관한 책은 많다. 그러나 제국이란 주제를 잘 다룬 경우는 드물다. 요 몇년 동안 나왔던 책 중 그래도 가장 잘 만들어진 책으로는 '제국의 미래'를 들 수 있다. 제국은 다민족국가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제국의 핵심에는 항상 하나의 민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하나 이상의 민족이 주도권을 행사할 경우 제국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로 평화롭게 분리된 이유는 제국의 주도민족이 스페인의 카스티야 민족과 오스트리아의 독일인의 둘 이상이었기 때문이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불안정했던 이유도 독일인과 헝가리인의 두 민족이 제국의 주도권을 다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국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민족을 포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제국의 안정성은 다른 민족을 포용하는 관용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제국의 미래'에서 에이미 추아가 하려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20% 부족한 말이기도 하다. 에이미 추아가 두꺼운 그 책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은 책이 나올 당시 부시 정권의 불관용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이지만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그리 높게 쳐주기 힘들다. 관용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관용이 어떤 조건에서 가능하고 어떤 조건에서 사라져가는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제국에 대한 일반이론이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에이미 추아는 역사학자가 아니고 그책의 의도가 제국의 일반이론을 세우려는 것도 아니니 그책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제국에 대한 많은 책들이 일반이론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어 제국이면 관용이 있어야지 하는 수준의 인상론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도 아니면 기번의 기죽게 두꺼운 책처럼 몇몇 제국의 역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지금까지 나온 제국에 대한 책 중에서 발군이다. 이책은 제국이 왜 거기서 그때 등장하고 왜 그때 망했는가에 대한 일반이론을 제시한다. 대담한 시도이다. 더 좋은 것은 그 이론이 한두페이지에로 요약할 수 있게 간단명료하면서 역사상의 제국들의 역사에 적용가능하다는 점이다.

인간이 집단을 만드는 이유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도 규모가 클 뿐 그런 집단의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제국은 어떤 집단이냐는 것이다.

저자는 집단의 기초단위로 문명을 말한다. '사람들을 무리 지을 때 많은 민족을 합쳐서 가장 넓게 무리 지은 것을 문명이라 한다. 나는 그런 존재를 민족을 넘어선 공동체라느 뜻에서 초민족 공통체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문화적 차이는 서로 다른 초민족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제국은 초민족 공동체의 변경(frontier)에서 자란다고 말한다.

왜 변경인가? 변경에선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충돌은 변경의 사람들에게 선택압력으로 작용한다. 저자가 드는 예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를 말하자면 미국은 전형적인 변경에서 성장한 제국이라 저자는 말한다. 유럽문명의 변경이 된 북미에서 미국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서로를 못잡아 먹어서 난리였다. 싸움은 거의 400년을 이어졌고 그 충돌에서 미국인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기준이 미국에선 인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선 유럽보다 인종차별이 심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본다.

미국과 대비되는 예는 러시아이다. 중앙아시아 스텝 지대의 유목민과 슬라브 농경인들의 충돌은 러시아의 정체성을 만들었고 여기서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기준은 그리스 정교란 종교였다. 로마 역시 켈트족과의 투쟁에서 태어난 제국이다.

그러면 이런 충돌이 왜 제국의 배경이 되는가? 집단역학 때문이다. 계속되는 충돌은 집단역학이 갈등보다는 협력이 우세하게 만든다. "집단마다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정도가 다르고 따라서 결속과 연대의 정도도 다르다. 이븐 할ㄷ둔을 따라 나는 이런 집단의 속성을 아사비야라고 부른다. 아사비야는 사회집단이 집단적으로 일치된 행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아사비야는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변수이다. 집단마다 그 양이 다르고 집단 내에서도 그 양은 변해간다.

변경의 생존압력은 아사비야를 높이고 아사비야가 높은 민족은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이들은 제국의 핵심을 이루는 '제국민족'이 된다.

제국은 관용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관용은 변경 너머의 그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관용은 변경 안쪽의 우리란 말을 쓸 수 있는 민족들에게 적용된다. 변경 너머의 그들은 '우리'를 정의하는 정체성의 대립항이므로 관용이 적용되지 않는다. 로마인들은 관용으로 이름 높았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제국민족이 되도록 한 켈트족에 대해선 관용이 적용되지 않앗다. 켈트족을 받아들인 것은 변경이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게르만 지역으로 확장된 후이다.

아사비야란 개념은 제국의 건설만 아니라 제국의 해체도 설명한다. 제국의 건설은 변경을 밀어내는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협력을 위한 즉 아사비야를 높엿던 타자를 밀어내면 필연적으로 고수준을 유지하던 아사비야가 약화될 조건이 만들어진다. 그 충분조건을 필요조건으로 만드는 것은 불평등의 심화이다.

선택압력이 작용하던 변경에선 빈부차가 심할 수 없다. 그러나 제국이 만들어지고 전쟁이 평화로 바뀌면 통합의 단계와 분열의 단계가 반복되는 세기적 순환이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국은 안정과 내부 평화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안에 미래에 혼란을 낳을 씨앗을 가지고 잇다. 안정과 내부 평화는 번영을 가져오고 번영은 인구의 증가를 낳는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는 인구 과잉을 낳고 인구 과잉은 임금 하락과 지대 상승, 평민의 1인당 소득의 감소를 가져온다. 처음에는 낮은 임금과 높은 지대가 상류층에 유례없는 부를 가져다주지만 상류층의 수가 증가하고 탐욕이 늘면 그들도 소득의 감소를 겪기 시작한다. 생활수준의 하락은 불만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엘리트층은 국가에 의지해 고용과 추가 수입을 얻으려 하고 그래서 국가의 지출은 늘어나는데 사람들이 갈수록 빈곤해져 세수는 줄어든다. 국가재정이 무너지면 국가가 군대와 경찰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면 모든 제약에서 풀려나 엘리트층의 갈등이 고조되어 내전이 일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불만이 폭발해 민중반란이 일어난다.”

분열의 단계에서 빈곤의 원인인 인구과잉과 엘리트층의 과잉이 해소되고 사람들이 혼란에 넌더리가 나 통합을 바라는 마음이 강해지면 다시 통합의 단계로 들어선다.

저자는 세기적 순환의 한 사이클이 보통 2-3세기가 걸린다고 말한다. 제국은 보통 3-4번의 세기적 순환을 겪는데 그 후엔 아사비야가 완전히 소멸해 제국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로마제국이 멸망했을 때가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침략해온 게르만족은 2-3만 밖에 되지 않았다. 최소한 수백배에 이르는 이탈리아인들이 저항하지 못한 것은 아사비야가 바닥났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중국은 4번 을 넘어서는 순환을 겪었지만 지금도 건재한 제국으로 남아있다. 그러면 중국은 예외인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제국이 3-4번의 순환을 겪고 무너지는 것은 제국이 태어난 변경이 제국이 건설되면서 초민족 공동체의 핵심이 되면서 변경이 밀려났고 변경이 밀려나면서 아사비야의 과잉 수준을 만들었던 조건이 사라졌다. 아사비야의 충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몇번의 순환을 겪으면 재고가 바닥난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변경에서 태어난 제국이다. 중앙아시아 유목민과의 끊임없는 경쟁이 중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중국은 농경민족인 중국인은 유목민의 땅인 스탭을 정복할 수 없었다. 무력으로 유목민을 밀어내도 그 땅은 그대로 남을 수 밖에 없었고 전주인이 밀려난 자리에 다른 유목민족이 들어와 다시 변경은 부활될 뿐이었다. 중국이 수천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변경이 언제나 거기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국가들의 형성 역시 변경이론으로 설명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스페인은 무슬림과의 변경에서 태어났고 프랑스는 이민족과 충돌한 북프랑스의 변경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은 (기독교 개종이전의) 슬라브 이민족과 충돌한 프로이센에서 태어났다. 그런 변경을 밀어낸 중세 이후 유럽 역사는 세기적 순환의 좋은 예라고 저자는 말한다.

“첫번째는 13세기 중세 전성기(통합의 단계)고 뒤이어 14세기의 위기(분열의 단계)가 왔다. 두번째 물결은 르네상스(통합의 단계)고 뒤이어 17세기의 위기(분열의 단계)가 왔다. 세번째 물결은 계몽주의(통합의 단계)고 이것에는 혁명의 시대(분열의 단계가 뒤따랐다. 네번째 물결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다. 통합의 단계는 평온했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시작되어 거의 20세기 내내 지속되엇다. 이 단계의 후반과 특히 1960년부터의 특징은 지속적인 가격 인플레이션이며 이것은 어떤 세기적 순환에나 일어났던 현상이다. 분열의 단계는 20세기 말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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