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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에 대비하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김현구 옮김, 남상구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이 소책자는 저자의 전작인 ‘블랙 스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쓰여졌다. “’블랙 스완’은 중대한 인식론적 한계, 즉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지식에 대한 심리적 철학적 한계를 다룬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전작에서 자신을 소개하라면 ‘한가지 문제에만 집중하는 게으른 독서가’라고 할 것이라 했다. 저자가 말하는 ‘한 가지 문제’가 바로 그가 말하는 인식론적 한계이고 검은 백조는 그 상징이다.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우리 지식의 한계를 알자는 것이고 저자는 철학전통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회의적 경험주의’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계 이론을 동원해 자신의 입장과 대립하는 전통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열심히 보았지 손가락이 가리킨 달은 보지 못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책은 저자의 답답함 때문에 쓰여졌다.
“나는 전문가들이 ‘블랙 스완’의 메시지를 이해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을 간략히 언급할 것이다. 놀랍게도 평범한 독자, 아마추어, 내 친구들은 어려움을 덜 겼었다.” 전문가들은 “전문 용어들을 살펴보고 선입견들과 재빨리 연결시키면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블랙 스완’에서 표현된 생각들을 기존 틀에 구겨 넣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의 입장이 회의론, 경험론, 본질론, 실용주의, 포퍼적인 반증주의, 나이트적 불확실성, 행동경제학, 지수법칙, 카오스 이론 등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블랙 스완’의 내용은 분명 그런 용어들로 설명된다. 그러나 저자가 그런 내용들을 동원한 것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지 입장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세계가 존재론적으로 불확실하고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그 불확실성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실천론이 저자의 관심이다. ‘블랙 스완’에서 저자의 입장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을 고르라면 여기저기서 동원된 이론들이 아니라 그 이론들의 의미랄 수 있는 ‘바벨 전략’이 오히려 적당하다.
월스트리트의 현자라 불리는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론이 아니다. 세상이 어떠하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란 물음에 답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블랙 스완’을 과학 서적도, 사회과학 서적도, 경제서적도 아닌 철학책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철학이란 요즘 우리가 보는 강단의 무기력한 공론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철학이란 렐레니즘 시대의 스토아 학파와 같이 삶에 대해 묻는 철학이다.
그러므로 이 소책자는 ‘블랙 스완’ 이후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잇지 않다. 단지 자신의 주저가 오해받고 잇다는 답답함이 이책을 쓴 이유이다.
이책의 목적이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블랙 스완’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듯이 이책에는 블랙 스완의 몇장에서 말한 내용이 어쩌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말한 내용이 어떻다.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블랙 스완’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별 의미는 없다. 그러나 블랙 스완을다시 읽어봐야 겠다거나 블랙 스완의 내용이 가물가물 하다거나 다시 그책의 내용을 되새기겠다는 사람에겐 의미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