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계 -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매혹적인 심리 실험
엘렌 랭어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가 이책을 쓰게 된 것은 한가지 실험 때문이었다. 여러 심리학 책에 등장하는 이 실험은 통제권 또는 선택에 관한 실험이었다. 요양원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집단은 “스스로 결정을 더 많이 내리도록 장려”했다. 보통 요양원의 규칙이나 통제에 따라 결정되던 사항들인 언제 방문객을 만날 것인가, 어떤 영화를 언제 볼 것인지를 요양원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다든가, 화분에 심을 종류를 스스로 결정하고 어디에 놓을지도 스스로 결정하고 돌보는 것도 스스로 하는 것 등 사소한 것들을 노인들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통제집단은 원래 요양원에서 하던 대로 놔두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1년 6개월이 지난 뒤, 우리는 실험 전과 후에 실시한 다양한 검사를 바탕으로 첫번째 집다느이 구성원들이 더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민첩한 것을 확인했다. 실험 참가자들이 더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민첩한 것을 확인했다. 실험 참가자들이 모두 연로하고 허약한 노인들이었기 때문에 우히는 실험 이후 그들이 훨씬 더 건강해졌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다.” 여기까지는 원래 실험의 의도대로 였다. 요양원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실험이었고 개선방향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그 이상이엇다. “그런데 보다 적극적인 생활을 한 노인들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았던 대조군의 절반에도 못 미칠만큼 낮다는 사실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이책은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한 저자의 오랜 탐구결과이다. 요양원 실험의 후속 연구로 저자는 1979년, 이책의 원제이기도 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counterclockwise study)’란 실험을 한다.

이 실험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1959년의 세상을 재창조하여 피험자들에게 20년 더 젊은 나이로 살도록 요구”했다. 저자가 이 실험에서 알고 싶었던 것은 “마음을 20년 전으로 되돌려 놓으면 그 변화가 몸에도 반영될까?”였다.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노인들을 모집해 59년처럼 꾸며진 환경에서 1주일 동안 지내게 햇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우리는 일주일이 채 다 지나기 전에 행동과 태도에 변화가 있음을 알아차렷다. 실제로 실험 이틀째가 되자 다들 음식을 나르고 식사 후 뒷정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실험 전 인터뷰를 위해 하버드대 심리학과에 왔을 때 차로 데려다 준 친지에게 극단적으로 의존하던 그들이 은둔처에 도착한 순간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같은 경험을 한 두 집단 모두 청력과 기억력이 향상되었고 체중이 평균 1,5킬로그램 늘어났으며 악력도 현저히 향상되었다. 수많은 측정 결과에서 참가자들은 ‘더 젊어졌다.’”

이 실험 결과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를 울타리에 가두는 것은 신체적인 자아가 아니라 신체적인 한계를 믿는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요양원 실험과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에서 달라진 것은 피험자들인 노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가에 대한 우리의 기대였다. 요양원에선 돌보아야 할 무력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피험자를 재정의했었고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에서는 노인들이 더 젊었던 20년전으로 돌아가도록 강제되었고 그 당시에 살았던 것처럼 행동하도록 요구되었다. 은둔처에 도착해 가방을 자기 방으로 가져가는 것도 스스로 해야 했으며 걷는 것부터 세수부터 설거지, 청소, 옷 입는 것 등도 스스로 해야 했다.

물론 생물학적 노화는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노인들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물리적인 근거를 가진 것일까? 우리가 그리고 그 생물학적 노화 자체도 우리의 기대에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

“우리는 훨씬 어린 남자와 결혼한 여자들은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사는 반면,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와 결혼한 여자들은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결과는 소녀경에 나오는 회춘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이 ‘사회적인 시계’의 영향을 크게 받아 특정한 행동이나 태도에 어울리는 ‘올바른 나이’가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 우리는 자신의 사회적 또는 생물학적 시계를 배우자의 나이에 맞추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배우자는 ‘더 늙게’ 되어 예상보다 일찍 죽는 반면 나이 든 쪽은 ‘더 젊어’지고 예상보다 오래사는 것이라 추론했다.”

저자는 자신의 실험들과 연구들을 통해 인간의 노화는 생물학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가 노화에 대해 가지는 사고방식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 아닐까 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여행 가방을 옮길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중 일부는 절말로 한 번에 한 걸음씩 옮겼지만 결국 모두 다른 이의 도움없이 자기 짐을 방까지 가져갔다.”

실제 노화에서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과 우리의 의식이 결정하는 것이 어느 정도나 될까? 저자는 노화란 이런 것이다 노인은 마땅히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젊음과 늙음, 건강함과 건강하지 못함과 같은 구분은 사회적인 구성물일 뿐 그 의미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회적인 구성물일 뿐인 늙음과 ㄱ건강함에 대한 고정관념은 상식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의학의 권위를 입고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주입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책은 우리에게 늙음이란 이런 것이다 노인은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고정관념들에 대한 반박으로 쓰여졌다.

“요양원에서 지내 보지 않는 한 그곳에서 사는 것이 어떤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의 방으로 이어지는 문은 언제나 열려있고 모든 일이 내가 정하지 않은 스케줄에 따라 나를 위해 이루어진다. 식사는 물론 언제 샤워를 할지 어디는 갈 수 있고 어디는 갈 수 없는지 모두 나의 권한 밖이다. 요양원에서 노인 호나자들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서글퍼지고 말앗다.”

저자가 선택에 대한 실험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요양원이 운영된 것은 무력하고 무능한 돌보아야 하는 존재로 노인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전제를 제거했을 때 노인들은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고 무능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이 드러났으며 그들의 행복도 수명도 늘어났다.

“처음 은둔처에 들어온 실험 참가자들이 처음에 자기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나같이 그 같은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모두들 자신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쉽게 소화된다고 알고 잇는 음식만 먹엇고 미뢰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여 음식을 선택할 때도 모험은 삼갔다.” 그들에게 늙음이란 결국 자신들이 받아들인 한계가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 은둔처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인 한계를 간단하게 극복햇다. 저자는 그 한계를 그은 고정관념을 깨버리라고 말한다. 무엇이 가능한지 모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고정관념에 따라 미리 선을 긋지 말고 현실에 부딪히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자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고정관념은 의학이란 권위를 입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학이란 자체가 너무도 쉽게 변하는 지식의 집합일 뿐이며 의학 자체가 과학이 모두 그렇듯이 무엇 무엇은 이러 이러할 때 이럴 확률’이 높다는 추정일 뿐이지 절대진리가 아니다. 왜 그런 흔들리는 권위에 기대 고정관념에 자신을 맡기는가? 저자가 이책에서 하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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