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위대한 여행
앨리스 로버츠 지음, 진주현 옮김 / 책과함께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해안에서 여행을 시작했고 또 해안에서 여행을 마쳣다. 나는 그동안 지구촌 방벙곡곡을 누볐다ㅓ. 현생인류의 고향인 아프리카부터 아메리카 대륙까지 말이다. 나는 살을 에는 북부 시베리아의 추위를 경험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타는 듯한 여름도 견뎌냈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비록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웃음과 몸짓으로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의 겉모습이 아무리 달라보여도 외모의 차이는 아주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한 말이다. 이책은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갔는가를 주제로 한다. 이책의 줄거리는 그 경로이다. 동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에서 출발한 호모 사피엔스가 아라비아반도를 통과해 인도양과 동남아를 거쳐 호주로 퍼져나갔고 여기서 다시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알타이 산맥을 통과해 시베리아와 러시아 지역으로 갔으며 동남아 해안을 따라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퍼져나갔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간 흐름은 시베리아로 건너간 지류와 동남아를 거쳐 동북아로 올라간 지류가 베링해 지역을 통과해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유럽으로의 진출은 지금까지 추정대로 레반트 지역을 통과해 동유럽을 거쳐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책의 내용은 이게 전부이다. 지도 한장에 그릴 수 있는 이 루트를 기억했다면 이책은 다제대로 읽은 것이다. 백과사전에 실린다면 길어야 2페이지 보통은 한 페이지로 끝나는 내용이다. 그러면 왜 이책은 600페이지에 육박할까? 그것은 그 경로가 추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는 프로세스이다. 그러나 고인류학은 그 가설을 증명하는 프로세스가 다른 학문들에 비해 대단히 빈약하다.


고인류학의 증거라고 해봐야 뼈다귀와 돌조가리 뿐이다. 유전학이 약진한 요즘은 유전자가 좋은 증거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부족한 증거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고인류학자가 하는 일이란 빈약한 증거의 틈새를 무한한 상상력으로 메우는 일이 본업이 된다.


알프스 얼음계곡에서 발굴된 아이스맨 미이라를 보자. 5300년전에 죽은 미이라와 함께 풀로 엮은 외투, 가죽옷과 모자, 칼, 도기, 활과 화살, 약초, 휴대용 식량 등이 나왔다. 이런 것들 것 알프스와 같은 환경이 아니면 모두 썩어 없어지는 것이다. 뼈와 돌 밖에 나오지 않는 보통의 고고학 유적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실제 삶의 모습은 그런 썪어없어지는 것들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고인류학자는 그 많은 부분을 빈약한 조각을 기초로 상상해야 한다.


그런 상상력의 창조물인 가설들은 당연히 빈약할 수 밖에 없다.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다. 보통 대중을 상대로한 교양서에선 그런 빈약함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봐야 읽는 재미만 떨어지고 책의 호소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저자는 가설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를, 학자들이 왜 그런 가설을 내놓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려한다. 그러다보니 간단하게 한 페이지로 요약되는 결론만 쓸수는 없다. 그 결론이 얻어지기 까지 과정을 보여주려다 보니 책은 두꺼워진다.


이책의 논의는 그렇기 때문에 장황하고 그랬을 것이다는 추정이 주를 이룬다. 길고 긴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결론이라고는 아마도 이것이 최선의 추정이라 생각한다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그렇게 쓰여졌기 때문에 이책은 재미있다. 이책은 저자 자신의 학설은 소개하지 않는다. BBC의 방송용 다큐멘터리로 쓰여진 이책의 목적은 현재 고인류학의 연구성과를 종합해 보여주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거의 다 현재 그 분야에서 뛰고 있는 학자들의 학설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저자가 그들이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그 과정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그 학자들의 동료로서 그들의 학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함께 소개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고인류학자인 저자가 그 당시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사막과 시베리아의 추위, 오스레일리아의 더위 등을 몸으로 겪어보는 과정들이 소개된다.


그러다 보니 이책의 분량은 600 페이지에 가깝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재미있다. 고고학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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