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 골딘 Nan Goldin 열화당 사진문고 11
귀도 코스타 지음, 김우룡 옮김, 낸 골딘 사진 / 열화당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사진집의 표지는 방콕 게이클럽의 여장남자를 찍은 사진이다. 이책에는 뉴욕의 게이바의 여장남자들, 트랜스젠터, 호모 또는 가끔씩 레즈비언들의 초상과 그들의 성교장면이 등장한다. 그 사진들은 연출된 것이 아니다. 모두 사진작가의 친구들이다.

퀴어, 뭔가 어긋났다고 말해지는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며 그들에게 공감을 숨기지 않는다. 사진집의 처음에 놓인 사진은 강가에서의 소풍을 찍은 것이다. 그 사진에는 케이크를 먹으며 즐겁게 웃고 잡담을 나누는 여장남자들과 여성이 담겨져 있다. 작가가 퀴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사진처럼 따뜻하다. 이성애자들이라면 역겹다고까지 생각할 동성애자들의 성교장면도 비정상이란 느낌을 갖기 어렵다. 그녀는 그 사진들에서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아름다움을 잡아낸다.

그녀는 왜 그런 시선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그녀가 동성애를 경험하긴 했지만 이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레즈비언이 된 이유는 많은 레즈비언들이 그렇듯 남성과의 관계에서의 환멸때문이었다.

그녀의 출세작인) ‘The Ballad of Sexual Dependecy’가 출간되었을 때 표지에 쓰인 ‘침실에서의 낸과 브라이언(1983)’을 보자. 이 사진은 “책 전체의 시상을 대변하는 결정체라 할 만하다. 친밀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존재하는 두 사람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영속저긍로 존재하는 변증법을 완벽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화면에 나타난 빛의 구성조차도 두 존재간의 거리감과 차이점을 강화한다. 골딘의 표정에는 남자와 좀더 접촉하기를 원하는 욕망과 함께 어떤 두려움이 동시에 나타난다.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암시해준다.”

‘친밀함 안에 존재하는 끝없는 거리감’은 ‘The Ballad of Sexual Dependecy’의 중심주제이다. ‘침실에서의 남녀(1977년) 역시 같은 주제를 다훈다. “이 이미지에서는 남녀가 섹스 후 종종 느끼게 되는 기묘한 소외감과 소원한 분위기가 드러나 있다. 골딘은 이런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남녀관계에 대해 골딘이 그렇게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섹스 중의 스킨헤드족(1978)’이나 ‘쿠키와 빗토리오의 결혼식(1986)’, ‘키스하고 잇는 라이즈와 몬티(1988)’는 섹스에서 드러나는 연인사이의 일체감을 잘 포착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일체감에 “이 에로틱한 마주함이 일시적인 것이며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어떤 불편한 느낌”을 숨기고 있다.

“골딘은 섹스를 영혼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로 보았다. 그리하여 섹스를 사랑과 우정에 동반하는 고통과 기쁨의 보다 깊고 복합적인 관계성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관계는 고독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없다. 그녀가 찍었던 친구들이 즐겼던 마약처럼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다.

그녀는 그런 시선을 어떻게 얻은 것일까?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많이 언급한다. “얘기는 1960년대 초, 워싱턴의 별 특징 없는 한적한 마을에 살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 아버지와 네 자녀가 있었고 그 네 아이들과 함께 민권운동 집회에 참가하곤 하던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어머니가 잇었다. 당시 미국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식상해 있던 전형적인 유태인 지식인 가정이엇다.

가족 모두를 보여주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한 장 남아 잇다. 어느 식당에서의 축하모임이엇던 것으로 보인다. 1964년이엇다. 바버라 홀리와 스티븐이 부모와 함께 앞불에 앉아 있고 그 뒤로 이제 갓 열살을 넘긴 낸시와 조나단이 서 잇다. 앨리스 밴드를 착용한 낸시는 가족 중 유일하게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잇다. 당시 낸시의 꿈은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엇다. 언니 바버라 홀리는 낸시에게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이자 삶의 한 본보기엿고 재능있고 열성적인 피아니스트엿다. 나른하고 즐거운 시골 생활이 일년간 이어졌다.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아메리칸 드림’에 빠져 잇던 시간이엇다. 그런 후 어둠의 시기가 찾아왔다.

1965년 4월 12일 언니 바버라가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한다. 당시 열여덟이었다. 바버라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낸시의 부모들은 상실감과 죄책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청난 이 사실을 단지 부정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엇다ㅓ.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버라의 죽음을 이웃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엇다. 낸시에게도 사고로 죽은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예민한 낸시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었고 깊이 상처받게 된다. 어떤 경우라도 진실을 찾아내는 데 집착하고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불편함이나 따분함, 체면 손상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그의 태도는 아마 이 사건에 연원하는 것 같다.낸시는 온갖 사람들과 온갖 사물들을 대상으로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그녀는 미국 정신의 어두움으로 존재하는, 그 ‘꿈’ 뒤에 감춰진 악몽인 당대의 거짓과 물질주의를 가장 미워햇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녀는 싸움에 지친 것 같다. 그녀가 사진경력을 시작할 때 주류는 미술계와 마찬가지로 추상적 구조가 지배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싸움을 해나갓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만 보는데 지쳐간 것으로 보인다. ‘부두에 서 있는 귀도(1998)’을 보자. “이탈리아 친구 중 한 사람을 찍은 이 사진은 인물과 풍경 간의 대조를 담아내려는 골딘의 새로운 추구를 보여준다. 보다 묵상적이고 부드러운 것에 대한 골딘의 기호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특정한 작업 안에 들어가 잇지 않으면서도 골딘의 야외사진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자연광을 교묘히 이용해 사람의 몸을 순수 추상처럼 묘사해내고 있다.”

그리고 ‘실버 힐 병원의 골든 리버 다리 위에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1998)’를 보자. “최근의 이 사진은 골딘의 자화상과 새롭게 발견한 자연을 하나로 결합하고 있는 것으로 그 안에는 개인의 고독이 묘사되어 잇다. 골딘으로서는 매우 힘겨운 시기에 찍은 이 사진은 배경의 아름다운 금빛과 완전히 대조되는 고통스런 내면으로부터 만들어졋다는데 큰 의미가 잇다. 슬픔과 비밀을 간직하고 잇으면서 동시에 희망과 화해를 암시하고 잇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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