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보는 로마인 이야기
강현식 지음 / 살림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책의 장르는 역사심리학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실, 이책의 경우엔 로마의 역사를 심리학으로 설명한다는 말이다. 말은 이해가 가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이런 식이다.

“영웅이라면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주 대단한 적을 상대해야 할 것같다.” 그러나 로마건국신화의 로물루스 형제는 늑대가 키웠다는 특이한 출생 이외엔 그리 특별하지 않다. 형제가 로마를 세우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고난도 그리 특별할 것이 없고 그들의 행동도 영웅답지 않다. 동생을 쳐죽이는 비윤리성은 그렇다치더라도 폭군이 되어 원로원 의원들에게 살해당하는 결말은 무어란 말인가? 위대한 천년제국의 건국신화치고는 좀 그렇다. 로물루스 형제는 결코 영웅답지 않다.

왜 그럴까? 어차피 신화라면 다른 민족들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잇지 않았을까? 왜 유독 로마만 그럴까? 저자는 로마인들의 집단무의식 때문이라 말한다.

“로마는 한 사람의 영웅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뿌리가 되는 신화에서조차 건국 시조를 한 명이 아닌 두명, 혼자가 아닌 쌍둥이, 동생에게 인정받는 형이 아니라 동생을 죽인 형, 시민들에게 칭송받는 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해도 더 이상 찾지 않는 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성공은 뛰어난 한 사람의 영웅 때문이 아님을 천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로마는 다른 제국들과 구별된다. 많은 제국들이 한 명의 영웅과 함께 출현했다 사라졌지만 로마는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로마사엔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가령 리델 하트는 한니발을 이긴 스키피오를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로 평가한다. 카이사르도 역사상 어떤 영웅 못지 않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로마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한니발을 이긴 것도 이순신처럼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이지 로마인들의 지원을 받아 이룬 것이 아니다. 카이사르의 최후도 스키피오의 운명 못지 않게 비참했다.

저자는 로마의 건국신화에서 영웅을 거부하는 로마인들의 집단무의식을 읽는다. 사람보다 시스템을 신뢰하는 로마인들의 성향은 원로원이란 시스템을 낳았다. 저자는 한니발에 맞서 절대적인 어려움을 딛고 연전연패를 최후의 승리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원로원이란 시스템의 우월성으로 설명한다.

공화정 시대 로마의 최고의결권은 사실상 원로원에 있었다. 원로원의 의사결정이 효율적이었기에 로마는 성공할 수 있엇다고 저자는 본다.

원로원은 집단이다. “집단이 개인보다 훌륭한 결정을 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의사결정은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토의하는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고 결정된 것을 이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집단의 의사결정은 집단내에 다양성이 살아있을 때 개인보다 뛰어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원로원은 다양성이 살아있었다. 여러 계층에 의석이 개방된 “원로원의 물갈이는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원로원의 구성권들은 원로 못지한게 신참도 많을 수 밖에 없엇다. 당연히 패기와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분위기를 아직 파악하지 못햇거나 굳이 다른 사람의 눈칠르 볼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많앗다. 토의과정에서 다양하고 기발한 의견들이 제시될 수 잇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로원이 승리한 가장 핵심적 이유가 아닐까.”

저자는 원로원의 개방성이 폐쇄성으로 바뀌면서 로마공화정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기원전 200년부터 카르타고가 멸망한 해인 기원전 146년까지 54년 동안 집정관 수는 108명이 된다. 이들 가운데 과거에 집정관을 배출한 적이 없는 가문의 출신자, 즉 로마인들이 신참자라고 부른 사람의 수는 8명에 불과하다. 원로원 계급에 속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점점 고정되어갔다.” 원로원의 멤버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되면서 원로원은 정체되었고 집단사고가 지배하게 되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2차 포에니 전쟁 때의 원로원과 이후의 원로원은 달랐다. 구성원이 바뀌지 않아서 폐쇄적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친밀감만 발생하게 된다.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 서로의 의견에 동조해 주는 것이다. 누가 새로운 의견이나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내기만 하면 곧바로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나 원로원의 정체는 로마공화정 몰락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증상에 가까웠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로 국민개병제를 채택햇던 것이 한몫햇다. 당나라 군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화보다는 전쟁이 일상이엇던 로마에서 징병제는 사회를 무너트렷다. 징병자원인 시민이 전쟁터에 묶이면서 가계가 무너진 것이다. 물론 원로원계급도 징병대상이엇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도 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전쟁의 과실을 쓸어담았다.

양극화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이지만 양극화로 인한 징병자원의 부족은 징병대상의 하한선을 내리게 만들었고 로마군의 질을 떨어트렷다. 이대로는 로마가 망할 것이라 본 그락쿠스 형제는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들의 개혁은 로마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들이었다. 그러나 원로원은 형제를 죽이면서까지 개혁에 저항햇다. 왜 그랫을까?

“로마의 원로원 귀족들을 비롯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날마다 호황이엇다. 그런데 이 모든 경제적 이득은 로마라는 울타리가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로마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무너진다면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런데 로마라는 울타리 역할을 해주던 막강 군대가 허약 군대가 되어가고 도시에는 걸인이 넘쳐났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울타리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귀족이, 그들의 공화정이 유지되려면, 그들이 계속 ‘무임승차’를 하려면 평민층이 건재해야 한다.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은 그것을 위한 것이엇다. 원로원 계급을 무너트리는 ‘혁명’이 아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개혁’이엇다. 그러나 그들은 저항했다.

왜 그랫을까?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이 급진적이엇던 것은 사실이다. 속도를 너무 빨리 냈다. 그러나 형제는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개혁에 동의할 것이라 순진하게 생각한 것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합리적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원로원 계급이 저항한 이유는 당장의 손실이, 개혁으로 평민층에게 내주어야 할 손실이 장기적인 이익보다 더 크게 보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손실회피 성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개혁이 힘든 것은 바로 이런 심리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어 모두를 위한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한다고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르다. 부유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부를 내놓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 의하여 자신의 재산권이 침해당한다고 느낀다면 그 심리적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결국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은 실패했다. 공화정의 몰락은 확정되었고 카이사르는 로마가 존재하기 위해선 제국이 되는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