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책에 대해 안 것은 이책을 감수한 신영복 씨의 책에서 이다. 논어를 다룰 때 이책에 수록된 ‘제자’를 언급했다.

논어를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주자가 논어집주 첫머리에 인용한 “논어를 읽고도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는 정자의 말은 논어를 읽는 방법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말이다.

논어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인(仁)이라든가 성(誠)이라든가 또는 충, 효 등의 추상적 개념이나 가치가 아니다. 공자라는 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진실이다. 공자의 논술이 아니라 공자의 말을 기록한 논어는 제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했다. 그렇기에 논어의 말은 구체적인 상황이 있고 대화의 상대방이 있다.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누구에게 한 말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공자라는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런 구체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이책에 실린 ‘제자’는 그렇기에 논어를 읽는 사람에겐 공자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겐 가치가 높다.

언뜻 보기에 ‘제자’는 그리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한문고전을 어느 정도 읽은 사람에겐 어디선가 읽은 말들을 이어붙인 글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원칙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로서의 나카지마는 ‘이능’뿐만 아니라 ‘산월기’ ‘명인전’ ‘제자’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술이부작이라는 절제된 필의로 역사의 사람들을 단지 현재에다 생환해 놓는데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해 둔다.” 그러나 그 술이부작은 문학적 상상력의 술이부작이다.

“이대로 좋은 것인가? 사마천은 자문했다. 이렇게 열띤 필치가 과연 괜찮은 것인가? 그는 ‘만드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자신이 할일은 ‘논술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그는 논술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생기발랄한 논술 방법이가? 비상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기술이엇다. 그는 때때로 ‘만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이미 쓴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그것이 있으므로 해서 역사상의 인물이 살아서 움직인다고 생각되는 자구는 지웠다. 그러면 인물은 분명히 생생했던 호흡을 먼춘다. 이로써 ‘만드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면 항우가 항우가 아니지 않은가. 항우도 시황제도 초나라 장왕도 모두 같은 인물이 되어 버린다.

다른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기술하는 것을 ‘논술한다’고 할 수 있는가? ‘논술한다’란 다른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 기술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되면 그는 역시 지워버린 자구를 다시 살려 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원래대로 고쳐 다시 한 번 읽어본다ㅑ. 그제야 그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거기에 기록된 역사상의 인물들, 항우나 번쾌, 그리고 범증 등이 모두 이제는 제대로 각각의 자리에 안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어떤 고민을 했을지 저자가 상상한 대목이다. 사마천의 사기, 특히 열전은 역사이기도 하지만 문학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만 기록했다면 사기열전이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천은 역사적 사실만 기록하지 않고 그 인물이 되어 그 사람이 했을 법한 말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었기에 인물은 더 진실에 가까운 인물이 되었다.

저자가 이책에 실린 작품들에서 하려한 것이 바로 그런 일이다. 술이부작하기 위해 창작하는 것.

이책에 실린 역사상의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위에서 인용한 사마천에 대한 ‘창작’도 사마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제자’에서 그리는 자로와 공자에 대한 저자의 인물분석도 새로운 것은 없다. 이책에서 읽는 자로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논어 전체를 통하여 자로는 가장 많은 단편에서 그 언행을 보여 주고 잇을 뿐 아니라 그의 두드러진 개성 때무누에 논어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를테면 그가 용기와 신의를 중히 여긴다던가 성격이 직설적이라던가 공자에 대해 종종 불만도 갖는 강한 의협심의 소유자라던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로는 공자가 자신에게 하는 대부분의 말이 어떤 커다란 가르침의 일환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공자의 노선과 갈등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로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 공자의 세계를 수용하기에는 늘 지나치게 견고하였기 때문이다.

자로는 적어도 공자가 어떤 측면에서는 소극적이고 옹색하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코 그러한 현실적 조건들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했다. 그것은 그가 호방한 사람이엇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이전에 부귀와 공명 등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신념의 사람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개성적이고 자기중심이 강한 제자와 공자와의 사제관계는 특별했다. 공자는 자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르침에 있어서 바로 그의 여러 자기 자긍하는 부분을 정면으로 찌르며 그의 가르침을 시도햇다. 따라서 공자가 자로의 장점으로 인정하는 바는 다음 순간 어김없이 비판의 표적이 된다. 공자의 비판을 읽다보면 자로가 어떻게 공자와 각별한 사제의 인연을 유지하며 공문의 중요한 인물로 부각될 수 있엇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자로에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특별한 미덕이 었었다. 그의 두드러진 미덕인 저으이감이라든가 신의 또는 용기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공자에 대한 아주 특이한 경외심이엇다. 이 경외심은 자로에 있어써 언제나 그 어떤 예감과ㅣ도 같이 늘 그를 사로잡고 있었지만 좀처럼 의식적으로 자각되지는 않았고 그만큼 논어 단편에서도 은미한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자로와 공자의 관계를 이해할 때 이 측면을 놓치면 자로는 거의 희화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자로는 공자라는 이 희유한 인물과의 만남을 그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전 생애를 걸고 이 인물을 돌보고 존중하고 또 그의 진실성을 끊임없이 시험하면서 그와의 이 인연을 유지해갔다. 그러나 정작 그는 위나라 대부 공회의 읍재로 있던 중 위나라의 정변에 휘말려 공자보다 한 해 먼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의 비극적 최후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스승과 제자로서의 길고도 절실한 인연에서 끊임없이 이끌리고 또 끊임없이 달아났던 그는 역시 완전히 끌려들 수도 오나전히 달아날 수도 없었던 그 미묘한 인간적 거리에서 공자와는 크ㅜ게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이수태)

좀 길게 인용한 것은 자로에 대한 표준적인 이해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책의 ‘제자’는 위의 인용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논술’인 위의 인용에선 느낄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제자’만이 갖는 점이다. 그 느낌은 사기열전을 읽을 때의 맛과 같다. 그 느낌을 신영복 씨는 이렇게 말한다.

“견고하면서도 결코 과열하지 않는 그의 담담한 문장과 함께 그의 작품 도처에서 느껴지는 공간과 여백과 여유가 바로 그 점을 증거로 보여준다. 모든 문학작품의 여백은 곧 독자와 관객들의 창조적 공간이다. 독자들의 몫이고 책임이다. 뿐만 아니라 때와 장소를 초월해 생환한 역사의 사람들을 삶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이른바 ‘생환의 완성’도 어차피 당대 사람들이 고뇌해야 할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사람들을 살려내는 작업은 곧 역사를 완성시켜 가기 위한 실천이고 또 하나의 창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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