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의 도시 환상문학전집 7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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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책의 플롯은 ‘토털 리콜’과 비슷하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 새로운 기억 위에 쌓은 정체성, 또는 인격을 포기하고 기억을 잃기 전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물론 이책의 내용은 토털 리콜과는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플롯의 기본구조가 만드는 긴장감은 상당히 닮아있다. 아마 토털 리콜이 이 작품의 플롯 구조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헤인 시리즈 3부에 해당하는 이책의 배경은 연맹이 무너진 후 멸망한 지구에서의 이야기이다. 연맹이 무너진 후 지구에는 오직 하나의 도시만 남아 과거 문명의 잔해를 기억한다. 그리고 지구는 그 도시의 지배를 받고 그 도시의 지배자, 싱의 지배를 받는다.

그 도시를 제외한 지구의 나머지는 숲 속에 흩어져 가족단위로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들, 고대 유목민 사회로 퇴보한 사람들, 남은 것은 과거의 잔해뿐이다.

“사람들은 도서실을 통해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전기 관련 기술 한 가지를 알 수 잇었다. 그래서 사내아이들은 방에서 방으로 서로에게로 연락할 작은 원격장치를 즐겨 만들었다. 그러나 텔레비전도 전화도, 라디오도, 개척지 너머로 소식을 전하거나 받을 수 있는 전신도 없었다. 그러ㅓ니까 원거리 통신수단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다른 집에 방문하여 거래할 일이 있으면 걸었고 먼 길일 때는 말을 탔다.’


“우리의 적이 누구지?”
“싱이지요”
“어째서 그런가?”
“그들은 ‘모든 세계의 연맹’을 무너뜨리고 사람의 선택권과 자유를 빼앗았으며 모든 사람의 일과 기록을 파괴하고 종의 진화를 막았습니다. 그들은 폭군이요 거짓말쟁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잘 살아가게 내버려 두고 있지.”
“우린 숨어삽니다. 놈들이 내버려 두도록ㄷ 따로 떨어져 살고요. 우리가 대규모의 기계를 만들려 한다면 우리가 뭔가 큰일을 하려고 모이거나 마을이나 국가를 만든다면 싱이 침투해서 일을 망치고 우리를 흩어놓을 겁니다.”
“우린 싱에게서 숨어살지, 또한 예전의 우리로부터 숨어 살아. 알겠나, 팔크? 우린 따로 떨어진 집에서 잘 살고 있네, 아주 잘 살고 있지. 하지만 우리는 공포에 지배당하네 한때는 배를 타고 별 사이를 날아다녔는데 우린 집에서 100마일 떨어진 곳에도 가지 못해. 얼마 안되는 지식을 품고 그걸로 아무것도 안 하지. 하지만 한때 우린 그 지식을 써서 밤과 혼돈을 가로지르는 태피스트리 같은 삶의 패턴을 자아냈어. 삶의 기회를 확장했지. 사람다운 일을 했던 거야.”

싱이라 불리는 도시의 지배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당신이 싱으로 알고 있는 우리는 사실 인간입니다. 당신의 조상, 웨렐(2권의 행성) 첫 거류지의 자콥 아가트와 마찬가지로 지구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테라(지구) 인이죠.

머나먼 별들로부터 모든 세계의 연맹을 공격하러 온 적은 없었습니다. 연맹은 혁명과 내전, 내부의 부패와 군국주의, 폭정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모든 행성에 반란, 폭동, 찬탈이 벌어졌고 ‘최초의 세계’로부터 돌아온 보복은 많은 행성을 불태워 검은 모래로 만들어버렸지요. 더 이상 위험한 미래를 향해 나거는 광속선은 없었습니다. 오직 미사일 우주선이며 세계의 파괴자인 FTL기만 움직였습니다.

절망에 빠진 일부 지구인은 새로운 무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이름과 언어, 그들이 온 머나먼 고향 세계에 대한 애매모호한 이야기들을 지어낸 다음 지구 전역에 자기네 군대와 충성파 주둔지 양쪽에 적이 왔다는 소문을 퍼트렸지요. 내전은 모두 그 적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어디에나 침투해서 연맹을 무너트리고 지구를 조종해 온 적이 이제 힘을 갖고 전쟁을 멈추려 한다고,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악한 외계의 힘으로 이루어냈다고, 텔레파시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힘으로 그랬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악역을 맡아 싱이라 불리며 그 거짓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에스 토지의 우리들은 태초에 창조주가 어마어마한 거짓말을 했노라는 자그마한 신화를 이야기하지요.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으나 창조주가 있다고 말하자 존재했다고, 그러니 보십시오. 신의 거짓말을 신의 진실로 만들기 위해 우주가 존재하기 시작하게 아닙니까…

인류의 평화가 거짓에 의해 윺지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거짓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적이 와서 지구를 지배한다고 주장했기에 우리는 그 적이라고 자칭하고 통치했습니다. 엄청난 거짓말을 했기에 지금 우리는 엄청난 법칙을 떠받들어야 합니다.”

장대하고 슬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거짓말의 이야기가 진실일까? 그 거짓말이 진실이라기에는 에스 토치는 뭔가 이상하다. 도시 밖의 사람들이 ‘거짓의 도시’라 부르는 그 도시는 뭔가 이상하다.

“엘로나에, 인간이 있을곳. 그러나 이 도시는 그에게 근심만 더해 주었다. 열 채가 넘는 이나 백명이 넘는 사람을 한꺼번에 본 적이 한 번도 없기는 하지만 군중 때문에 마음이 심한 것은 아니었다. 팔크의 기를 꺾은 것은 도시의 현실이 아니라 그 비현실성이었다. 이 곳은 ‘인간의 장소’가 아니다. 에스 토치에는 역사의 흔적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이전 시간이나 바깥 공간이 느껴지지 않았다. 1000년이나 세계를 지배했는데도 말이다. 조브의 집에 있던 고대 텔레스크롤에 나오는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위대한 인간의 시대를 되살려주는 기념물이 전혀 없었다. 배움의 흐름은 물론이고 상품의 흐름도 없었다. 이곳에서 쓰이는 돈은 싱이 인심 쓴 물건일 뿐, 그 돈에 진짜 활력을 부여할만한 경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다는 지배자들은 지구상에 이 도시 하나만을 유지했다. 지구ㅜ 자체가 한때 연맹을 형성했던 수많은 세계와 멀리 떨어진 것처럼 이 도시도 홀로 떨어져 있었다. 에스 토치는 독립적이고 자급자족하며 뿌리없는 도시였다. 에스 토치의 광휘와 덧없는 불빛, 기계와 얼굴들, 넘쳐나는 이방인과 사치스러운 복잡성 모두가 갈라진 틈, 공허한 장소 위에 걸쳐서 있었다. 이곳은 ‘거짓의 장소’였다. 그러나 훌륭했다. 지구의 너른 황야에 떨어진 보석 세공품처럼 훌륭하고 처음도 끝도 없이 영원했으며 이질적이엇다.”


진실은 싱은 외계인 침략자이고 그들은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는 능력으로 연맹을 무너트렸다는 것이었다. “팔크가 조브의 집에서 배운 옛 역사에서는 싱이 하이아데스 너머 어쩌면 수천 광년 떨어진 머나먼 은하계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보았다. 정녕 그렇다면 그렇게 광대한 시공을 많은 수가 건너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타고난 마음 거짓말 능력과 소유하거나 소유했던 다른 기술 혹은 능력으로 잠입하여 연맹을 무너트리기에는 충분한 숫자였겠지만 과연 그들이 분열시키고 정복한 모든 세계를 통치하기에도 충분했을가?” 그들은 소수였기에 오직 파괴와 거짓으로만 통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연맹을 무너트린 후 학살을 하지 않았다. “싱은 정말로 지각력 있는 존재를 죽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를 살려두었고 아마 다른 승무원도 죽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공들여 정체를 감춘 그들의 음식은 모두 식물성이었다.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부족간에 싸움을 붙였고 전쟁을 시작하되 살인은 인간이 하게 했다. 그리고 역사에 따르면 통치 초기에 그들은 대량 학살 대신 우생학과 재식민을 이용하여 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니까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법에 복종하지는도 모른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통치는 “관습과 책략과 두려움과 무기를 이용해서 강력한 부족이 일어나거나 그들을 위협할 수도 있는 지식이 모일 경우 재빨리 막아버림으로써 인간을 통제했다. 그들은 인간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배하지 않았다. 오직 파괴할 뿐이었다.”

파괴와 거짓의 통치. 그것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놈들은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죽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그런 두려움을 생명 존중이라고 불렀다. 싱, 적, 거짓말쟁이들… 그들이 정말 거짓말을 한 걸까? 어쩌면 그건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의 거짓말이란 본질적으로 뿌리 깊고 고칠 길 없는 이해 부족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인간과 접촉하지 못했다. 그들은 마음의 거짓말을 크나큰 무기로 만들었고 그 무기를 이용하고 그로 인해 득을 보았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보낸 시간만큼의 가치가 있었던가? 먼 별에서 온 유배자인지 해적인지 제국 건설자인지는 몰라도 그들과는 마음이 전혀 통하지 않고 육체도 영원히 볼모인 인종을 지배하기로 결심하고 처음 여기로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짓말로 이루어진 십이 세기의 세월, 환영의 세계에서 벙어리를 다스리는 외롭고 고독한 벙어리들. ‘망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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