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 KBS 특선 다큐멘터리, 세계 금융의 중심
CCTV 다큐멘터리 <월스트리트> 제작진 지음, 홍순도 옮김 / 미르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책은 중국 CCTV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읽기 쉽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책은 월스트리트의 현재와 역사를 파악하는데는 충분하다.

“뉴욕은 미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끈입니다. 또 미국을 대표해 세계와 소통하는 관문입니다. 월스트리트의 발달한 금융 서비스업은 미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하는 발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울러 대량의 외국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유치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월스트리트와 은행업의 납세액이 뉴욕시 총 세수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월스트리트가 그런 위치와 역할을 갖는 것은 월스트리트에서 움직이는 자본의 규모이다.

“2008년의 경우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50여개의 비교적 큰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발행해 100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닳랬다. 그런데 이 가운데 40%가 월스트리트에서 조달한 것이다.” 이 자금의 출처는 “각종 저축입니다 저축은 주로 연금기금과 보험회사에 집중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저축액이 끊임없이 증가하면서 일부 자금이 월스트리트에도 흘러들었습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가계 자산 중 평균 33-42%가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 시장에 투자된 것으로 분석’된다.

월스트리트의 힘은 미국에 축적된 자금의 규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월스트리트에서 움직이는 돈은 미국인의 돈만이 아니다. 방대한 규모의 자금이 해외에서 월스트리트로 흘러들어간다. 그 자금을 끌어들이는 힘은 물론 미국 자체의 자금규모이기도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자금운용력이기도 하다.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뉴욕 증권거래소는 줄곧 시대를 앞서가는 과학기술을 지향하고 있다. 이곳에서 전보와 주가 표시기가 맨 처음 사용됐다는 점만 봐도 이 사실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화가 발명된 다음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화기를 보유한 곳이 되엇고 컴퓨터 응용 기술이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에도 이곳에서는 이미 컴퓨터를 이용해 재래식 거래 방식을 변화시켰다.”

규모와 기술을 가진 월스트리트는 매력적인 자금운용처이다. “APG는 유럽 최대의 네델란 연금 관리 기관으로 유명하다. 무려 2000억 유로의 자산을 운용한다. ‘저희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고 투자할 수 있는 자본 시장이 필요합니다. 세계적 범위에서 자산을 운용고나리하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는 월스트리트가 적격입니다. 월스트리는 최대의 거래량과 최저의 거래 비용이 장점인 자본시장입니다.’ 해마다 약 1조달러의 외국자본이 미국에 유입된다. 이 가운데 상당부분은 월스트리트로 흘러들어간다.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방대한 자금 네트웤은 이미 전 세계의 무수한 금융 투자기관을 망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수천개의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방대한 산업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익히 잘 알듯이 투자은행들이 있다.

세계경제의 자본시장인 월스트리트는 세계경제의 중심이다. 그렇다면 월스트리트는 어떻게 그런 힘을 갖게 된 것인가? 미국독립 당시 정치로부터 분리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이책은 말한다.

건국초기 제퍼슨과 해밀턴의 이념적 대립은 유명하다. 금융자본이 권력화되는 것을 두려워한 제퍼슨은 해밀턴과 거래를 해 금융자본의 본거지인 뉴욕으로부터 연방정부를 떨어트리는데 성공한다.

“1790년 8월 연방정부는 뉴욕을 떠났다. 이때부터 월스트리트와 워싱턴 정부는 각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후 긴 세월동안 워싱턴 정부와 월스트리트는 소 닭 보듯 무심한 관계를 계속해왔다. 정부는 더 이상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 드디어 정부의 공권력 제로 상태에서 월스트리트의 개인 금융기관들은 기회를 틈 타 미국의 금융대권을 장악했다.”

미국의 금권을 장악한 월스트리트는 미국이 경제대국이 되면서 점점 더 강력해졌다. “1901년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패기있고 젊은 대통령답게 월스트리트의 금융재벌들이 워싱턴 정부에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ㅡ그러나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든 정부의 공권력으로 월스트리트를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정말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ㅓ. 그러나 이미 자유에 길들여진대다 막강한 파워까지 가진 월스트리트가 정부의 권력에 굴복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왜 뉴욕인가? 그 이유는 우선 뉴욕이 천혜의 항구로 무역이 일찍부터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스턴 같은 다른 동부의 항구도시들을 제친 이유는 무엇인가? 이리 운하때문이었다고 이책은 말한다.

“뉴욕을 대표로 하는 동부지역은 상업이 발달했다. 또 서부지역은 전통 농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그러나 서부의 물자가 동부로 가기는 힘들었다. 19세기 초 “서부에서 밀가루 1톤을 동부로 운송하는데는 대략 20여일이 소요됐다. 당시 밀가루 원가는 1톤당 40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운임이 기가 막혔다. 무려 120달러나 됐다.” 1817년 월스트리트가 자금을 댄 이리 운하가 착공되었다. “운하를 통해 뉴욕과 오대호가 연결될 수 있얶기 때뮨애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 및 일리노이에서는 오대호에서 이리운하, 이리 운하에서 얼바니, 다시 수로를 통해 뉴욕으로 물자를 운송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운하는 뉴욕을 미국에서 제일가는 운송 허브로 발ㅈ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류센터가 된 뉴욕은 동시에 금융센터가 되엇다. “이리 운하가 착공되면서 미국의 다른 도시들은 금융 센터가 될 가능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리 운하는 뉴욕에 미국으ㅢ 다른 도시들과 차별화되는 절대적 우위를 부여했습니다.”

월스트리트가 본격적으로 금융센터가 된 것은 남북전쟁이었다. “1865년까지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 규모는 27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ㅏ는 당시 미국 재정 수입의 7배 GDP 의 27배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남군의 한 장군은 자신의 회고록에 일찍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북군의 군사력에 패한 것이 아니었다. 자금력에 패했다.’ 전쟁자금은 모ㅗ두 월스트리트를 거쳐 조달됐습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별로 유명하지 않던 월스트리트가 일약 런던에 버금가는 세계 두번째 금융시장으로 부상했다.”

이후 철도, 철강, 석유 등 미국의 산업발전에 자금을 댄 것도 월스트리트였다. “미국은 100년의 발전을 거쳐 세게 제 1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음했습니ㅏㄷ. 또 100년이 지난 후에는 세계 최강의 정치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현대금융의 뒷받침이 없었더라면 이 모든 기적은 일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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