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의 탄생 - 뇌과학,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성격의 모든 것
대니얼 네틀 지음, 김상우 옮김 / 와이즈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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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본성인가 양육인가(nature or nuture)? 오랜 논쟁이다. 전공이 전공이라 본성보다는 양육이 결정적이라 배웠다. 인간은 문화 때문에 다른 동물과 다르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형편없는 인간이 동물들의 위에 군림하는 이유는 문화에 맞춰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유연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는 인간은 인간 스스로 만든 환경이 결정한다는 환경결정론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진화론과 유전학의 영향력이 인간을 다루는 분야, 특히 심리학으로 확장되면서 환경결정론은 구닥다리 헛소리가 되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심리학에선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심리학자들은 환경이 성격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환경이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근거도 부족하고 검증도 부족한 어려운 분야다. 그리고 이런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동유전학자들이었다. 행동유전학자들은 유전적 요인이 성격 형성에 약 50%의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렸다.

환경이 같을 때 일란성 쌍둥이들의 성격이 이란성 쌍둥이들보다 비슷하다는 것은 일란성 쌍둥이들이 동일한 유전자 변형체를 50%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유전적 요인이 적어도 50%는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이 정도라면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다. 쌍둥이는 더 비슷하게 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환경이 달라도 일란성 쌍둥이가 닮은 정도는 같다는 것이다.

“입양등으로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들의 성격은 함께 자란 일란성 쌍둥이들만큼이나 비슷했고, 떨어져 자란 이란성 쌍둥이들의 성격은 떨어져 자란 일란성 쌍둥이들보다 더 달랐다. 또 쌍둥이가 아닌 형제로서 각자 다른 가정에 입양된 형제들은 거의 또는 전혀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닮았고 같은 가정에 입양되엇지만 생물학적 부모가 다른 형제들과는 타인만큼이나 성격이 달랐다.”

물론 유전자가 성격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행동유전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성격의차이는 50% 정도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도 성격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쌍둥이 끼리도 달라지는 것은 나머지는 환경이 만들 것이라는 예상은 직관적이고 옳다. 문제는 그 환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최소한 가정환경은 아니다. 다른 가정에서 키워진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가정에서 키워진 일란성 쌍둥이가 성격이 다른 정도는 동일하고 “생물학적 부모가 서로 다른 입양 형제들 간의 성격 유사성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혼한 부모의 자녀들도 성인이 된후 이혼할 가능성이 높고 어린 시절 부모의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자라서 더 폭력적이 된다는 연구결과는 어찌된 것인가? 이런 연구들도 유전적 영향으로 설명된다. 신경질적인 사람은 우울증과 이론의 가능성이 다른 사람보다 높고 그들 자녀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은 자녀들이 부모를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 애당초 부모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유전형질을 자녀들이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성격 형성에 환경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환경이 무엇인지는 애매하다. 가정환경은 적어도 아니다. 다른 환경요인들은 “예컨데 아이가 동년배 집단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성격 형성에 미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전적 영향보다 더 강한 설명력을 갖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유전된다는 것인가? 저자는 유전적으로 성격이 결정되는 것은 뇌구조와 뇌기능의 차이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차이에 따라 5대 성격특성(Five Factor Model, 스눕을 보았으면 이 모델을 알 것이다)의 값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5대 특성 중 외향성부터 보자.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보통 사교적이고 활동적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융이 묘사한 외향적인 사람은 외부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사색보다 활동을 좋아하고 자신의 생각에 빠지기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고 움직인다.”

그러면 외향적인 사람은 사교적인가?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외향성이 좋은 인간관계와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향성은 파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사교활동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는지 새 친구를 얼마나 쉽게 사귀는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는 하지만 그런 인간관계를 얼마나 잘 유지하는지 알려주는 지표는 아니다. 외향적인 파티에 가서 신나게 취하고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과 대판 싸움을 벌이는 부류드,ㄹ이다.” 대부분의 출세지향적인 사람들이 그렇듯이 (뒤에서 볼) 친화성이 낮은 외향적인 사람들은 “아무런 가책 없이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친구를 무시하기도 하며 이런 행위를 통해 뭔가 얻는 것이 있으면 그런 행동을 즐기기도 한다.”

저자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람 자체를 만나기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 얻을 ‘보상’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무엇인가 가치 잇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보상추구성이 외향성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야망을 가진 경우가 많고 높은 지위와 사회적 관심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여가활동도 좋아하지만 명예와 돈을 좇아 열심히 일할 준비도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목표를 추구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활동적인 사람들이다.”

융이 외향적인 사람을 외부에 관심이 있다고 정의한 것은 그들이 원하는 보상이, 자극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의 기쁨, 흥분 등 긍정적인 감정을 즐긴다. 물론 누구나 같은 것을 원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외향적인 사람은 “더 큰 기쁨과 자극을” 느낀다.

융이 말한 “내향적인 사람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만 몰두하며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고 고독과 평화롭게 사색하는 것을 즐긴다.” 그들은 외향적인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끌리긴 하지만 “그런 일에서 느끼는 흥분은 상대적으로 적다. 약간 더 많은 돈이나 명예를 얻으려고 여유시간을 쓰는 일, 파티에 가려고 시내를 가로질러 차를 몰고 가는 일, 또는 새로운 섹스를 시도하기 위해 현재의 결혼생활을 포기하는 일을 시도할 가능성이 적다.”

저자는 외향성과 내향성을 나누는 것은 도파민이 말한다. “도파민 관련 뇌 영역에서 반응성이 높은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이다. 이런 뇌 영역은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동기를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외향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이 부분의 반응성이 낮고 따라서 보상을 찾아 나서는 일이 적다.” (구체적으로 이 뇌구조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D4DR이라고 한다)

“외향성이 긍정적인 감정과 관련 있는 것처럼 신경성은 부정적인 감정과 관련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란 무엇인가? 공포, 걱정, 모욕감, 죄책감, 혐오, 슬픔 등의 감정이다. 긍정적인 감정이 존재하는 이유(설계특징)가 좋은 것을 추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면 부정적인 감정이 만들어진 목적은 먼 조상 때부터 나빴던 것을 피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신경성 수치가 지나치게 높을 때이다. 표현하는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분류되는, 보통 쓸데 없는 걱정이란 말로 가리키는 감정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쓸데없는 걱정의 비율이 80%라면 신경성 수치가 놓은 그룹은 99%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정말 사소한 걱정거리를 아주 오랫동안 고민한다. 예컨데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안 좋았어’ ‘저 사람들은 틀렸어’ ‘다음엔 더 잘될 거야’하는 식으로 반응하기 보다 ‘그건 다 내 탓이야’ ‘모두 나를 싫어해’ ‘나는 절대 성공 못할 것야’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신경성에 관계하는 유전자는 세로토닌 전달유전자이다. 이 유전자가 짧으면 “긴 유전자를 가진 사람보다 신경성 수치가 높다.”

성실성은 충동을 통제하는 능력을 말한다. “술과 약물에 굴복하는 정도는 외향성 정도에 따라 다르다. 외향성은 스릴 넘치는 자극에 대한 뇌 보상시스템의 반응성으로 측정되는데 술, 약물, 도박은 모두 스릴 넘치는 자극이다. 그러나 중독을 유발하는 것은 외향성이 아니라 성실성 수치와 관련이 있다.”

충동으로 무엇을 시작할 수 있다. 성실성은 그것을 시작하는 것이 멈추는 것과 관련된다. “많은 중독자들의 경우 마약주사로 얻는 쾌감은 사실상 없다. 뇌가 이미 마약에 아주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담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끊지 못하는 것은 쾌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버릇을 끊을 통제 메커니즘이 약하기 때문이다.”

성실성과 관련된 뇌의 회로는 전에 금연 서적 리뷰에서 언급한 G0-NOGO를 관장하는 영역이다. “충동성은 성실성의 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목표나 원칙을 위해 즉각적인 반응을 억제하는 전두엽 뇌 메커니즘의 반응성(활성화)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성실성이 다소 낮으면 일에도 영향을 준다. 성실성 수치를 가지고 전반적으로 직업적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성실성 수치가 높을수록 일을 더 잘한다.” 스눕에서도 언급하듯이 문제는 애석하게도 면접으로는 성실성을 체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성실성은 겪어봐야 알 수 있는 특성이다. “일하는 사람에게 많은 자율성이 부여될 경우 이러한 성실성의 혜택은 더욱 두드러진다. 성실성이 내적으로 설정된 목표나 계획을 추구하는 능력이라면 어떤 누구도 개입하지 않을 때 성실성은 더 빛을 발한다. 그러나 성실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목표를 실행하지 않는 방편으로 일을 미루고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마음이론(theory of mind)’은 마음읽기와 공감하기 두가지로 나뉜다. 그러나 마음읽기를 잘하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 그러나 꼭 공감할 필요는 없다. 마음읽기와 공감하기는 서로 연관되지만 다른 것이다.

“공감하기도 역시 타인의 마음상태를 읽는 것이지만 그중 특히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경우다. 공감하기는 마음읽기에 관여하는 뇌 영역 일부 그리고 관련된 감정을 느끼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뇌 영역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두 기능은 중첩된 작용이다. 그러나 두가지 기능은 별개로 작동한다.

친화성은 두 기능에서 공감하기를 가리킨다. “친화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협조적이고 사람을 잘 믿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반면 친화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차갑고 적대적이며 온순하지 않다. 친화성 수치가 높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상태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강하고 이를 행동에 옮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으로 낮은 친화성을 보이는 사람이 바로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는 완전히 자기중심적이며 죄책감이 없고 부정직하며 사랑할 줄 모르고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만 이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친화성만 낮다고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가 되려면 친화성과 함게 성실성, 신경성도 낮아야 한다. “친화성이 낮은 사람은 공감이 부족하다. 그러나 사려나 공포가 있으면 반사회적 행동을 억제할 수 잇다.” 3가지 특성이 모두 낮아 심리적 구속이 없어야 “심각하고 냉혹하며 잔인한 사이코패스적 행동이 나온다.”

친화성이 높은 사람은 누구나 환영한다. 친화성이 높아는 것은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는 성향이 높다는 것이고 자신을 존중해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러면 친화성은 높을수록 좋은가?

“좋은 사회 및 인관관계 차원에서는 친화성이 높은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공의 차원에서는 불리하다. 40대의 기어 임원 4,000명의 성격과 경력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친화성이 높을수록 수입, 승진, 그리고 CEO가 되는 데 불리하다.” 친화성은 성공과만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성과도 반비례한다. “창조적인 일에서 실제로 성공한 ㄴ 사람은 친화성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왜 그런가? 성공하려면 냉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로 냉철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감으로 어떤 사람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은 문화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친철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도 상당히 중시한다. 그러나 친절함과 공감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과 충돌한다. 여성들이 이 두개의 서로 엇갈리는 가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여성에게 화려한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개방성은 “가장 신비로우며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흔히 개방성을 지능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지능과 개방성은 별개라고 말한다. 개방성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집단은 시인이나 예술가들이다. 그러나 예술적 감성과 지능은 상관성이 높지 않다.

개방성은 독창성 또는 창조성과 관련된다. 개방성이 그런 효과를 낳는 이유는 개방성이 ‘확산적 사고’이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모든 개념과 지각된 내용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연상을 하면 독특한 믿음을 가질 수 도 있다. 생각을 청각으로 연상하면 환청이 되고 우발적인 사건을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연관시켜 생각하면 텔레파시를 느끼거나 신비한 관념을 갖게 된다. 본질적으로 개방성이 낮은 사람의 마음혹에서는 각각 분리되어 존재하는 서로 다른 의미영역과 의미처리 과정이 개방성이 높은 사람의 마음속에선 활발하게 상호작용하고 서로 관련된 것으로 인식된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에게 자주 나타나는 “환청, 환영, 그리고 비과학적인(다시 말해 비상식적인) 믿음은 모두 이런 광범위한 연상에 따른 부작용이다. 언어를 독특하고 은유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다른 영역에 속한 의미들을 서로 관련시키고 비언어적 사례를 통해 유사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의 본질”이며 개방성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개방성의 심리적 기초가 뭐냐고 묻는다면 의미영역과 의미처리 네트웤 간의 광범위한 상호작용 즉 광범위한 연상이다.”

그러면 개방성이 높을수록 좋은가? 꼭 그렇지가 않다. 광범위한 연상이란 비용이 높다. ‘뇌의 분리된 회로들 간의 상호작용이 증가하면 회로들 각각의 전문영역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독특한 경험 수치와 지능이 약간 반비례하고 개방성 수치가 노ㅠ은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산란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개방성 수치가 낮은 사람이 개방성 수치가 높은 사람보다 실용적이고 실제적 문제 심지어 아주 어려운 문제도 더 잘 푼다. ‘전구 하나를 바꿔 끼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인이 필요한가’란 ㄴ 농담을 해도 될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개방성이 증가할수록 서로 멀리 떨어진 인식영역들이 더 많이 얽히고 그러다 보면 점점 이상한 관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ㅓ. 미학적인 것과 신비주의적인 관념이 얽히고 신비주의적 관념은 비과학적인 관념이 되고 비과학적인 관념은 서서히 망상이 된다.” 그러므로 “개방성이 증가하면 예술가적 명성이 높아질 가능성은 있지만 정신병적 장애를 겪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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